이 편지는 인도 다즐링의 라아마 찹즌 씨께 보낼 편지 안에 넣었어. 그분께서 일본으로 보내주실 거야. 무사히 네게 도착할지 조금 걱정이긴 해. 하지만 너라고 딱히 내 편지를 기대하는 건 아닐 테니 설령 도착하지 않더라도 그 점만은 안심하고 있어. 만약 네가 이 편지를 받는다면 분명 내 운명에 놀라고 말겠지. 첫째로 난 지금 티벳에 살고 있어. 둘째로 나는 중국인이 되었어. 셋째로 나는 세 남편과 한 아내를 공유하고 있어.
이전 편지는 다즐링에 살 적에 보낸 거야. 나는 이미 그 시절부터 중국인 흉내를 내고 있었지. 사실 세상에 국적만큼 성가신 짐 덩어리도 없지. 단지 중국이란 국적만큼은 누가 묻거나 따지는 일이 없는 만큼 굉장히 형편이 좋아. 고등학교 다닐 적에 네가 내게 '방황하는 유대인'이란 별명을 붙여 준 적 있었지? 확실히 나는 네 말처럼 '방황하는 유대인'으로 태어난 모양이야. 그래도 이 티벳 라싸만큼은 제법 마음에 들었어. 풍경이나 기후에 애착이 있는 건 아냐. 나태를 악덕으로 보지 않는 좋은 풍습이 있거든.
똑똑한 너라면 판덴 아지샤가 라싸에 붙인 이름을 모르지 않을 거야. 하지만 라싸가 꼭 식분악귀의 도시인 건 아냐. 거리는 오히려 도쿄보다 살기 좋을 정도지. 단지 라싸 시민의 나태함은 천국의 장관이라고 밖에 할 수 없어. 아내는 오늘도 변함없이 밀짚이 흐트러진 현관서 가만히 무릎을 품은 채로 조용히 낮잠을 자고 있지. 우리 집만 이런 건 아냐. 어느 집 현관에나 두세 명씩 잠에 들어 있지. 이런 평화로 가득 찬 경치는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을 거야. 심지어 그들의 머리 위에는――라마교 사원 탑 위에는 살짝 푸른색을 머금은 태양 하나가 라싸를 둘러싼 봉우리의 눈을 희미하게 빛내고 있지.
나는 적어도 몇 년은 더 라싸에서 살 생각이야. 게다가 나태의 미덕 이외에도 아내의 용모에 조금 마음이 끌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아내 이름은 다와라고 해. 주위에서도 미인이라는 평이 자자하지. 키는 평균보다 큰 정도야. 얼굴은 다와라는 이름답게(다와ཟླ་བ는 달이란 뜻이야) 하얀 피부색을 가지고 시종 부드럽게 웃고 있는 얌전한 여성이야. 남편이 네 명인 건 앞에도 적었지? 첫 번째 남편은 행상인이야. 두 번째 남편은 말단 보병 하사관이지. 세 번째 남편은 라마교의 화가고 네 번째 남편이 나야. 나도 요즘에는 일을 하고 있어. 어떻게 그럴싸하게 꾸며서 거리의 이발사로 일하고 있지.
엄격한 너는 나처럼 일처다부에 눌러 앉은 사람을 경멸할 수밖에 없을 거야. 하지만 내 입장에서 결혼의 형태란 단순히 편의에 기반을 둔 것에 지나지 않아. 일처일부인 기독교가 반드시 이교도인 우리보다 도덕적으로 뛰어난 건 아니지. 그분 아니라 사실상의 일처다부는 사실상의 일부다처와 마찬가지로 여러 나라에 존재해. 하물며 티벳에도 일처일부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 단지 루크소 민즈의 이름 하에(루크소 민즈는 파격을 뜻하지) 경멸 받는 거뿐이야. 마치 우리의 일처다부가 문명국의 경멸을 받는 것처럼 말야.
나는 세 남편과 함께 한 아내를 공유한단 사실에 조금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 다른 세 명 또한 마찬가지일 거야. 아내는 이 네 남편을 모두 똑같이 사랑하고 있어. 내가 아직 일본에 있었을 때 역시 세 남자와 함께 한 게이샤를 공유한 적이 있었지. 이 게이샤에 비하면 다와는 여보살이라 해도 좋아. 실제로 라마교 화가인 세 번째 남편은 다와를 연꽃 부인이란 별명으로 불러. 확실히 강가의 처진 버들 아래서 젖먹이 아이를 품은 아내의 모습은 후광을 등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아이는 여섯 살 첫째를 시작으로 젖먹이 아이까지 셋이나 낳았어. 물론 누가 어떤 남편을 아버지로 삼느냐는 문제는 없어. 첫 번째 남편이 아버지라 불리고 우리 셋은 똑같이 숙부라 불리지.
하지만 다와도 여자야. 죄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지. 2년 전, 산호주를 파는 상인의 종업원과 함께 우리를 속인 적도 있어. 그걸 발견한 첫 번째 남편은 다와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우리와 대책을 상담했지. 그러자 가장 분개한 건 두 번째 남편인 하사관이었어. 그는 곧장 두 사람의 코를 잘라내야 한다고 주장했어. 성품이 거칠지 못한 너는 이 말의 잔혹함을 나무랄지 몰라. 하지만 고를 자르는 건 티벳에서 할 수 있는 개인적 형벌 중 하나야.(이를테면 문명국의 신문 공격이 그렇지.) 세 번째 남편인 라마교 화가는 어지간히 당혹스러웠는지 눈물만 흘렸지. 나는 그때 세 남편에게 종업원의 코를 잘라낸 후 다와의 처분은 그 후의 감정에 맡기자 제안했어. 물론 누구도 다와의 코를 잘라낼 생각은 하지 않았지. 첫 번째 남편인 행상인은 곧 내 말에 찬성했어. 라마교 화가는 불행한 종업원의 코에도 조금 연민을 느낀 모양이야. 하지만 하사관의 분노를 억누르기 위해서는 역시 내게 동의할 수밖에 없었지. 하사관도――하사관은 잠시 생각한 끝에 큰 한숨을 내쉬고는 "아이를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하고 마지못해 우리를 따르기로 했어.
우리 네 사람은 그 다음날에 간단히 종업원을 붙들었지. 하사관은 우리를 대신해 내 면도칼을 받아 들어서 적당히 코를 떨궜어. 물론 종업원도 욕지거리를 하고 하사관의 손을 깨물고 비명을 지르기는 했지. 하지만 코를 잘라내고 지혈제를 줬더니 행상인이나 내게 울면서 감사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야.
총명한 너는 그 뒤에 어떻게 됐을지 저절로 추측할 수 있을 거야. 다와는 지금도 정숙히 우리 네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 우리도――말할 필요가 없지. 실제로 어제는 하사관마저 정말 속에 맺혔다는 양 내게 이렇게 말했어――"지금 생각해 보면 다와의 코를 자르지 않은 건 불행 중 다행이었지."
마침 낮잠에서 깬 다와가 나보고 산책을 가자네. 그럼 저 멀리 바다 너머에 있는 네 행복을 기원하는 동시에 일단 이 편지도 마무리 짓도록 하겠어. 라싸는 지금 집집 정원에 복숭아꽃이 만개해 있어. 오늘은 다행히 황사도 불지 않지. 우리는 이제부터 감옥에 가서 사촌끼리 결혼한 불륜 남녀의 폭로극을 보러 갈 생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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