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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방황하는 유대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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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국가라면 어딜 가도 '방황하는 유대인' 전설이 남아 있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이 구전이 없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때문에 이 전설을 소재로 한 예술 작품은 예나 지금이나 잔뜩 있다. 귀스타브 도레의 그림은 물론이요, 유잔 수도 닥터 클로리도 이 전설을 소설로 썼다. 뭉크 루이즈의 명성 높은 소설에도 루시퍼나 '피를 흘리는 비구니'와 함께 '방황하는 유대인'이 나온 걸로 기억한다. 최근에는 피오나 맥 클레오 드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한 윌리엄 샤프도 이 이야기를 소재로 짧은 단편을 썼다.
 그럼 '방황하는 유대인'이란 무엇이랴. 예수 그리스도의 저주를 받아 마지막 심판이 올 날을 기다리며 영원히 표류하는 유대인의 이야기이다. 이름은 기록에 따라 제각기 다르다. 어디서는 카르타필루스, 어디서는 아하스 페르쯔, 어디서는 부타데우스, 또 어디서는 이자크 라퀘뎀이라고 한다. 그런 데다 직업 역시 기록에 따라 다르다. 예루살렘에 위치한 산헤드린의 문지기인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필라투스의 부하인 경우가 있다. 개중에는 신발 가게인 경우도 있었다. 저주를 받은 원인은 어느 기록이나 다를 바 없다. 그는 골고타에 끌려 가는 그리스도가 그의 집 현관 앞에서 잠시 숨을 돌리려 했을 때, 비정하게도 매도를 쏟고는 무언가를 마구잡이로 던졌다. 그때 받는 게, "가란다면 못 갈 것 없으나, 그대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저주이다. 그는 그 후, 바울로가 세례를 받은 것과 같은 아나니아의 세례를 받고 요셉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하지만 한 번 받은 저주는 세계가 멸망할 때까지 풀리지 않는다. 실제로 그가 천칠백이십일년 유월 이십이 일, 무니히에 나타났다는 사실은 홀마이엘의 다쉔 부흐 안에 기록되어 있다.
 이건 가까운 일이지만 먼 문헌을 되짚어 봐도 그에 관한 기록이 자주 발견된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 아마 매튜 패리스가 편집한 세인트올번스 수도원의 연대기에 나오는 기사이리라. 이에 따르면 대아르메니아의 대승정이 세인트올번스를 찾았을 때, 통역을 맡은 기사가 대승정은 아르메니아에서 종종 '방황하는 유대인'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말했다고 한다. 다음으론 플란데런의 역사가 필립 머스크가 천이백사십이 년에 적은 운문 연대기 중에서도 같은 기사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니 13세기 이전까지는 유럽 땅을 방황한 듯하다. 적어도 사람들의 귀와 입을 탈 정도로. 그러나 천오백오 년이 되면 보헤미아에서 코코토라고 하는 베 짜는 사람이 60년 전에 그 조부가 묻은 보물을 그의 도움을 빌어 발굴해냈다. 그뿐이 아니다. 천오백사십칠 년에는 슐레스비히의 승정 바울 폰 아이젠이란 남자가 함부르크의 교회에서 기도를 올리는 그와 만났다. 그 이후로 18세기 초기에 이를 때까지 그가 남북 유럽에서 모습을 드러낸 기록은 굉장히 많다. 가장 명백한 것만을 들어봐도, 천오백칠십오 년에 마드리드에 나타나고, 천오백구십구 년에 윈, 천육백일 년에 뤼벡, 레뷀, 크라쿠프 세 곳에 나타났다. 루돌프 보톨레스에 따르면 천육백사년에는 파리에 나타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로부터 나움부르크나 브뤼셀을 지나 라이프치히를 방문해, 천육백오십팔 년에는 스탠포드의 사무엘 월리스라는 폐병을 앓는 남자에게 붉은 사루비아잎 두 장에, 양제 잎 하나를 맥주에 섞어 마시면 건강이 회복된다는 비법을 가르쳐줬다고 한다. 이어서 앞서 말한 무니히를 지나 다시 영국에 들어가 켐브릿지나 옥스포드의 교수들의 질의에 대답한 후, 덴마크에서 스웨덴을 지나 끝내 족적을 감추어버렸다. 그 후로 오늘까지 그의 소식은 알려져 있지 않다.
 "방황하는 유대인"은 무엇이랴. 그는 과거에서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가. 그런 점은 이상으로 대강의 설명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내 목적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나는 이 전설적인 인물에 관해, 내가 과거에 품은 두 의문을 꼽고, 그 의문이 얼마 전 우연히 내 손으로 발견한 고문서에 의해 모두 해결되었음을 공표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고문서의 내용을 포함해 여기서 공표하고 싶은 게 있다. 가장 먼저 내가 품은 두 의문이란 무엇이랴――
 첫 번째 의문은 전적으로 사실상의 문제이다. '방황하는 유대인'은 갖은 기독교 국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그는 일본에도 온 적이 있지는 않을까. 현대 일본은 제쳐두더라도, 14세기 후반의 일본 서남부는 대부분 천주교를 모셨다. 델블로의 비블리오테크 오리엔탈을 보면 '방황하는 유대인'은 16세기 초기에 파디라가 이끄는 아라비아 기병이 에르방을 함락시킬 적에 그 진안에 나타나 Allah akubar(신은 위대하다)의 기도를, 파디라와 함께 했다고 적혀 있다. 그는 이미 '동방'에 그 족적을 남겼다. 다이묘라 불린 봉건 귀족들이 황금 십자가를 가슴에 걸고 파텔 노스텔이라 말한 일본을――귀족 부인들이 산호 염주를 손에 들고 비루젠 마리아 앞에 무릎 꿇던 일본을, 그가 찾지 않았을 리가 없다. 더욱이 평범하게 표현하면 당시 일본인에게도 이미 그에 관한 전설이,보화나 라베카(하베카)처럼 수입되지는 않았을까――나는 이렇게 의심하고 있다.
 두 번째 의문은 첫 번째 의문에 비하면 살짝 결이 다르다. '방황하는 유대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무례를 저질렀기에 영원히 지상을 방황하는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짊어졌을 적에 그를 괴롭힌 게 꼭 이 유대인만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자는 그에게 가시관을 씌웠다. 어떤 자는 그에게 자주색 옷을 입혔다. 또 어떤 자는 십자가 위에 INRI의 명패를 붙였다. 돌을 던지고 침을 뱉은 자에 이르러서는 분명 굉장한 숫자였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왜 그 혼자 그리스도의 저주를 받은 것일까. 혹은 이 "왜"에는 어떤 해석이 붙어 있을까――이게 내 두 번째 의문이다.
 나는 몇 년 동안 이 두 의문에 대해 어떤 단서도 얻지 못 하고, 마냥 동서의 고문서를 섭렵했다. 하지만 '방황하는 유대인'을 다룬 문헌의 수는 굉장히 많다. 내가 그런 걸 모조리 독파하는 건, 적어도 일본에 있는 한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나는 기어코 이 의문에 답을 내리지 못 하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마침 그런 절망에 빠질 뻔했던 작년 가을의 일이었다. 우연히 얻은 분로쿠 시대의 MSS. 안에서 끝내 '방황하는 유대인'에 관한 전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문서 검정에 관해서는 지금 여기에 느긋하게 풀어낼 여유가 없다. 단지 그것이 당시의 천주교도 한 명이 전해 들은걸, 그대로 당시의 구어로 정리한 간단한 메모 쯤 된다는 것만 알아두면 충분하다.
 이 메모에 따르면 '방황하는 유대인'은 히라도에서 큐슈 본토로 가는 배 안에서 프란시스코 하비에르와 만났다. 그때 하비에르는 "시므온 일루만 한 명을 데리고" 있었는데, 그 시므온의 입에서 당시 상황이 신자 사이에 전해졌고, 그게 다시 사람들 사이에 퍼져 끝내 몇 십 년 후에 이 기록의 필자의 귀에 닿았다고 한다. 만약 필자의 말을 고스란히 믿자면 "프란시스코와 방황하는 유대인의 문답"은 당시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 유명한 이야기로서 이따금 설교 소재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 메모의 내용을 큰 단위로 소개함과 동시에 원문을 인용해가며 상기의 의문을 풀어가는 기쁨을 독자와 함께 맛보고 싶다――
 가장 먼저, 기록은 그 배가 '과일을 잔뜩 쌓고 있었다'고 말해주고 있다. 그러니 계절은 아마 가을이리라. 이건 뒷부분에 무화과 운운하는 내용이 있으니 분명하다. 또 승객은 달리 없었다고 한다. 시각은 한낮이었다――필자는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그 정도의 기록만을 적어두고 있다. 따라서 만약 독자가 당시 광경을 상상하고 싶다면, 기록에 남은 짧은 내용과 햇빛을 받아 생선 비늘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해면, 배에 쌓인 무화가나 석류 열매, 그리고 그 안에 앉아 열심히 대화하는 세 사람의 서양인을 독자 자신의 상상에 그려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살아 있는 묘사는 단순한 일개 학자인 내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독자가 그런 일에 약간의 곤란함을 느끼고 있다면, 펙이 쓴 '히스토리 오브 스탠포드' 안에 기록된 '방황하는 유대인'의 복장을 이곳에 적당히 설명하는 것도 독자의 상상을 돕는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 책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그의 웃옷은 자주색이다. 그리고 허리까지 단추를 잠갔다. 바지 역시 같은 색으로, 척 보기에 낡아 보이지는 않는다 한다. 양말은 하얗지만 린넬인지 모직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또 수염도 머리도 나란히 하얗다. 손에는 하얀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이건 앞서 쓴 폐병을 앓는 사무엘 월리스가 목격한 걸 펙이 기록한 것이다. 그러니 프란시스코 하비에르가 만났을 때에도 그는 아마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그럼 어떻게 그 사람이 '방황하는 유대인'인지 알 수 있었는가. '프란시스코가 기도할 때에, 그 사람 또한 기도했기에', 프란시스코가 먼저 말을 건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아무리 봐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말하는 것도 그렇고 행동도 그렇고, 그 시절 동양을 유랑하던 모험가나 여행가하고는 분위기가 달랐다. "천축 남만의 고금을 훤히" 알고 있기에 "시므온 일루만은 물론이요, 프란시스코마저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하여, "그대는 누구냐 물었더니 머물 곳 없는 유대인"이라 대답했다. 하지만 프란시스코도 처음엔 이 남자의 진위를 조금 의심했으리라. "하늘에 대고 맹세할 수 있는가"하고 물었더니, 상대가 "맹세하자, 프란시스코 또한 마음을 열고 여러 문답을 했다"고 적혀 있다. 단지 첫 부분은 단지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묻는 게 전부로, 종교상의 문제는 조금도 접해 있지 않았다.
 성녀 우르술라와 만천 명의 시녀가 '봉공의 죽음'을 이룬 이야기나, 성 패트릭의 정죄계 이야기를 지나, 서서히 오늘날의 사도행전의 이야기가 되었고, 나아가서는 끝내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골고타에서 십자가를 짊어졌을 때의 이야기가 됐다. 마침 이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프란시스코가 뱃사람에게 무화과를 나눠 받아 '방황하는 유대인'과 함께 먹었다는 내용이 있다. 앞서 계절을 언급하며 이야기했기에 여기 적어두지만 물론 대단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어찌 되었든, 그 문답을 보면 대강 아래와 같아진다.
 프란시스코 "주님께서 수난을 받을 적에는 예루살렘에 있었나?"
'방황하는 유대인' "그렇지요. 눈앞에서 주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본래 저는 요셉이라 하여, 예루살렘에 사는 신발공이었지요. 당일은 주님이 필라투스 경의 재판을 받자마자 집안사람들을 문 앞으로 불러 보아 송구하게도 주님의 고민을 웃으며 구경했습죠."
 기록이 말하기를, 그리스도는 '미친 듯한 군중 속을' 바리새파와 사제들에게 보호받으며 십자가를 등에 짊어 맨 백성의 뒤를 따라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어깨에는 자주색 옷을 걸치고 있었다. 이마에는 가시관을 하고 있었다. 또 손이나 발에는 채찍질 자국이나 긁어낸 상처가 장미꽃처럼 붉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눈만은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푸르게 개어 있는 눈"은 슬픔도 기쁨도 초월한 신비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그 모습은 "나사렛의 목공의 아이"교를 믿지 않는 요셉의 마음에마저 이상한 인상을 주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 후로도 주님의 눈을 볼 때마다 어쩐지 그리워집니다. 죽은 형과 비슷한 눈인 탓도 있겠지요."
 그리스도는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걷던 와중, 그의 문앞에 발을 멈추고 잠시 숨을 돌리려 했다. 그곳에는 가죽 허리띠를 조이고 일부러 손톱을 길게 기른 바리새파도 있었을 테고, 머리에 푸른 가루를 뿌리고 향유를 풍기는 창부들도 있었으리라. 혹은 로마 병졸들이 가진 방패가 오른쪽에서도 왼쪽에서도 눈부시고 더운 태양빛을 반사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기록은 단지 '많은 사람'이라고만 적고 있다. 그렇게 요셉은 그 "많은 사람 앞, 사제들에게 충의를 보이기 위해" 그리스도가 걸음을 멈춘 걸 보고 한 손에 자식을 품은 채, 한 손으로 "사람의 자식"의 어깨를 붙들고 거칠게 흔들었다――"이윽고는 십자가를 밀면서 쉬지 말라고 욕을하고, 심지어는 손을 들어 때리기까지 했죠."
 그러자 그리스도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꾸짖듯이 요셉을 보았다. 그가 죽은 형과 닮았다 생각한 눈으로 엄숙히 바라본 것이다. "가란다면 못 갈 것 없으나, 그대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그리스도의 눈을 보는 것과 동시에, 그는 그 말이 열풍보다도 격하게, 또 순식간에 그의 마음에 새겨지는 것만 같았다. 그리스도가 실제로 그렇게 말했는지는 스스로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요셉은 "이 저주가 가슴속에 맺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리라. 들어 올린 손은 저절로 축 처졌고 앞서 나가던 증오가 저 혼자 사라지자, 그는 아이를 품은 채로 저도 모르게 길거리에 주저앉아 발톱이 벗겨진 그리스도의 발에 머뭇머뭇 입술을 뻗으려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그리스도는 병졸들에게 떠밀려 이미 대여섯 걸음은 그의 집 앞에서 멀어져 있었다. 요셉은 그저 망연히, 곧 군중에 뒤섞이려 하는 주님의 자주색 옷을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말로 못 할 후회가 마음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를 동정해주지 않았다. 그의 처자식마저도 그의 그 행동을 가시관을 씌우는 것과 같은 그리스도를 향한 조롱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거리 사람들이 끝내 재밌게 웃기 시작한 건 어쩔 수 없는 이야기다――돌마저 태울 듯한 예루살렘의 햇살 속에서 김이 올라오는 모래먼지를 뒤집어쓰며, 요셉은 어느 틈엔가 아내에게 안겨 있는 것마저도 모른 채 한사코 무릎 꿇은 그대로 움직이지 못 했다……"제아무리 예루살렘이 넓다지만 주님을 욕보인 죄를 깨달은 건 저 하나겠지요. 죄가 죄인 줄 모르는데 천벌이 내릴 리도 없습니다. 말하자면 주님을 십자가에 매달은 죄는 저 혼자 지고 있는 셈이지요. 단지 벌을 받아야 갚을 수 있다는 말도 있으니, 이윽고 주님의 구원을 받은 거도 저 하나뿐이었습니다. 죄가 죄인 줄 아는 자에게는 벌과 구원이 하나 되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지요."――'방황하는 유대인'은 기록 말미에서 내 두 번째 의문에 답해주었다. 당장 이 답의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는 없으리라. 어찌 되었든 답을 얻었다는 것만으로, 나는 만족할 수 있었으니까
 '방황하는 유대인'에 관한 내 의문의 답을 동서 고금서 안에서 찾아낸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이 나를 위해 고견을 아끼지 않을 것을 간절히 바라본다. 또 스스로도 상기의 기술에 관한 인용 서적을 꼽아가며 이 작은 논문의 체재를 완벽히 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럴만한 여백이 남아 있지 않다. 나는 단지 여기에 '방황하는 유대인' 전기의 기원이 16장 28절[각주:1]과 마가복음 9장 1절[각주:2]에 있다는 벨링굿드의 설을 두고서 일단 펜을 멈추려 한다.

 

 

 

 

  1.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여기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죽기 전에 내가 하늘 나라의 왕으로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본문으로]
  2. 그리고서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여기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오는 것을 볼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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