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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여신선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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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옛날, 중국의 한 시골에 서생 하나가 살았습니다. 중국 서생이니 역시 복숭아꽃 핀 창문 아래에서 책만 읽었겠지요. 그러자 그 서생의 집 옆에 한 젊은 여자 하나가――그것도 아름다운 여자 하나가 하인 하나 쓰는 법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서생이 그 젊은 여자를 의아해한 건 말할 필요도 없지요. 실제로 여자의 신원을 시작으로, 당최 무얼 하고 지내는지도 아무도 알지 못 했으니까요.
 어느 바람 없는 봄날 저녁, 서생이 밖에 나와 있자니 이 젊은 여자의 큰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디선가 닭이 느긋이 우는 와중에도 참으로 시끄럽게 들려오는 것입니다. 서생은 무슨 일인가 싶어 그녀의 집 앞으로 가보았습니다. 그러자 눈썹을 올린 여자가 나이를 먹은 나무꾼을 붙잡은 채로 백발 머리를 퍽퍽 때리고 있지 뭡니까. 심지어 나무꾼 할아버지는 얼굴에 눈물을 한가득 머금은 채로 자세를 낮추어 연신 사과만 할 따름입니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나이 드신 분을 이렇게 때릴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서생은 여자의 손을 붙잡으며 열심히 말렸습니다.
 "애당초 연상을 때리는 건 수행의 길에도 엇나가 있을 터인데요."
 "연상이라뇨? 이 나무꾼은 저보다 연하입니다."
 "농담하지 마시고요."
 "농담이 아닙니다. 저는 이 나무꾼의 어머니니까요."
 서생은 황당해서 그만 여자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그제야 나무꾼을 내려놓은 여자는 아름다운――정확히는 늠름하고 혈색이 고운 얼굴로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이 아이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시나요? 하지만 이 아이는 제 말을 듣지 않고 고집만 부리다 기어코 나이를 먹어버렸지요."
 "그럼……이 나무꾼은 칠순은 되어 보이는군요. 나무꾼의 어머니라는 당신은 대체 몇 살이란 겁니까?"
 "저 말인가요? 저는 삼백육십 살입니다."
 서생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아름다운 옆집 여자가 신선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이미 신성한 여자의 모습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잘 드는 봄햇살 속에 나무꾼 할아버지를 남긴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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