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옛날 옛날, 먼 옛날. 어떤 깊은 산 안쪽에 커다란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크다는 말로는 부족할지 모르다. 이 복숭아 가지는 구름 위로 뻗었고 뿌리는 대지의 밑바닥에 자리한 황천에까지 미쳤다. 듣자 하니 천지개벽의 때, 이자나기노미코토는 여덟 개의 번개를 물리기 위해 요모츠히라카사에 복숭아 씨앗을 뿌렸다고 한다――그 신화 시절의 복숭아 열매가 이 나무가 된 셈이다.
이 나무는 세계의 여명 이후로 만 년에 한 번 꽃을 피우고 만 년에 한 번 열매를 맺었다. 꽂은 진홍 꽃봉오리에 황금 술을 지녔다고 한다. 열매는――물론 열매 또한 큼지막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신비한 건 그 열매의 중심에 아름다운 갓난아기를 한 명씩 절로 품고 있다는 점이었다.
옛날 옛날, 먼 옛날. 이 나무는 산골짜기를 덮은 가지에 열매를 주렁주렁 단 채 조용히 햇빛을 받고 있었다. 만 년에 한 번 맺어진 열 매는 천 년 동안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쓸쓸한 아침, 운명은 한 마리의 야타가라스가 되어 그 가지에 내려앉았다. 그러더니 붉은색을 머금은 작은 열매 하나를 쪼아 떨구었다. 열매는 구름과 안개를 뚫고 저 먼 아래의 계곡으로 떨어졌다. 강가는 물론 산들 사이에 하얀 수증기를 일으키며 사람이 사는 마을로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갓난아기를 품은 열매가 산속에서 벗어나 어떤 사람에게 주워졌는가?――그런 걸 새삼 이야기할 필요나 있을까. 계곡의 끝에는 할머니 한 사람이, 일본의 모든 아이들이 알다시피 나무를 패러 간 할아버지의 옷을 빨고 있었다.
둘
복숭아에서 태어난 모모타로는 오니가시마에 정벌 갈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가. 그는 할아버지나 할머니처럼 산이니 강이니 밭으로 일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노인 부부는 내심 이 문제아에게 정나미가 떨어지고 있었기에 한 시라도 빨리 나가줬으면 했다. 깃발이니 검이니 진바오리 같은 출진 준비도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쳐주었다. 그뿐이랴, 도중의 식량 삼아 역시나 모모타로의 주문대로 키비당고마저 준비해주었다.
모모타로는 의기양양히 오니가시마 정벌을 시작했다. 그러자 커다란 들개 한 마리가 굶주린 눈을 빛내며 모모타로에게 말을 걸었다.
"모모타로 씨, 모모타로 씨. 허리춤에 찬 게 무엇인가요?"
"이건 일본 제일의 키비당고지."
모모타로는 의기양양히 대답했다. 물론 실제로 일본 제일인지는 모모타로에게도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개는 키비당고란 말에 바로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하나 주시면 같이 가겠습니다."
모모타로는 곧장 주판을 튕겼다.
"하나는 못 준다. 절반을 주마."
개는 한동안 고집스럽게 "하나 주세요"'하고 반복했다. 하지만 모모타로는 무슨 말을 해도 "절반을 주마"를 철회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갖은 장사가 그렇 듯이 가지지 못 한 자가 가진 자의 뜻에 복종하기 마련이다. 개는 기어코 한숨을 내쉬며 키비당고 절반을 받고 모모타로를 따르게 되었다.
그 후, 모모타로는 역시나 키비당고 절반을 미끼 삼아 개 이외에도 원숭이나 꿩을 부하로 삼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튼튼한 이빨을 가진 개는 기개 없는 원숭이를 무시했다. 키비당고의 감정이 재빠른 원숭이는 당연히 꿩을 무시했다. 지진학 등에 뛰어난 꿩은 머리가 둔한 개를 무시했다――그런 감정싸움이 이어지니 모모타로는 부하를 가진 후로도 도무지 쉽지가 않았다.
그런 데다가 원숭이는 배가 부르면 금세 명령에 불복했다. 키비당고 절반으로는 오니가시마 정벌에 함께하는데 수지가 맞지 않는다 싶었다. 그러자 개가 으르렁거리며 대뜸 개를 물어 죽이려 했다. 만약 꿩이 말리지 않았다면 원숭이는 게의 원수 갚기도 기다리지 못 하고 죽어버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꿩은 개를 말리면서 원숭이에게 주종의 도덕을 가르치고 모모타로의 명령에 따르라 말했다. 그럼에도 원숭이는 길거리 나무 위로 개의 공격을 피한 뒤였기에 간단히 꿩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 원숭이를 기어코 납득시킨 건 분명히 모모타로의 수완이었다. 모모타로는 원숭이를 올려다보며 히노마루가 그려진 부채를 써서 일부러 차갑게 선언했다.
"그래그래, 그럼 따라가지 말거라. 대신 오니가시마를 정벌해도 보물은 하나도 주지 못 한다."
욕심 많은 원숭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물? 헤에, 오니가시마에 보물이 있나요?"
"있기만 할까. 무엇이든 원하는 걸 꺼낼 수 있는 망치 같은 보물마저 있지."
"그럼 그 망치로 무엇이든 꺼내는 망치를 수없이 꺼내면 한 번에 뭐든지 얻을 수 있겠군요. 그거 좋은 일이군요. 부디 저도 따라가게 해주시지요."
모모타로는 다시 한 번 그들을 데리고 오니가시마 정벌로 향했다.
셋
오니가시마는 외딴섬이었다. 하지만 세간이 생각하듯이 바위산 투성이었던 건 아니다. 실은 야자나무가 솟아 있거나 극락조가 지저귀는 천연 낙원이었다. 이런 낙원에 태어난 오니는 물론 평화를 사랑했다. 아니, 오니란 애초부터 우리 인간보다 향락적으로 만들어진 종족인 듯하다. 혹부리 영감에 나오는 오니는 하루 종일 춤을 추었다. 한 치 동자에 나오는 오니 또한 자신이 위험해지는 것도 아랑곳 않고 공주를 바라보았다고 한다. 확실히 오오에야마의 슈텐도지나 라쇼몬의 이바라키 도지는 희대의 악당처럼 다뤄진다. 하지만 이바라키도지는 우리가 긴자를 사랑하듯이 스자쿠오오지를 사랑한 나머지 이따금 라쇼몬에 산책 나오는 게 전부이지 않을까? 슈텐도지도 오오에야마에서 술만 마신 건 사실이다. 여인을 납치했다는 건――진위는 잠시 묻어둔다 하여도 여인들의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말들을 고스란히 진실로 인정하는 건――나는 이 이십 년 동안 이런 의문을 품고 있다. 그 라이코나 사천왕은 하나같이 살짝 미쳐버린 여성숭배가가 아니었을까?
오니는 열대 지방의 풍경 속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고, 고대 시인의 시를 노래하는 등 굉장한 안녕 속에서 살고 있었다. 또 오니의 아내나 딸 또한 베를 짜거나 술을 만들거나 난 꽃다발을 만드는 등 우리 인간의 아내나 딸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생활하였다. 특히 머리가 하얗게 벗겨지고 이빨이 빠진 어머니 오니는 손자를 돌보며 우리 인간의 무서움을 이야기 삼아 들려주었다.
"너희도 나쁜 짓 하면 인간의 섬으로 끌려간단다. 인간의 섬으로 끌려 간 오니는 그 옛날 슈텐도지처럼 죽어버리고 말아. 음, 인간이 뭐냐고? 인간이란 건 뿔이 없고 창백한 얼굴과 손발을 가진 참 꺼림칙한 존재란다. 더군다나 인간 여자는 그 창백한 얼굴이나 손발에 한가득 납칠을 하지. 그게 전부라면 차라리 낫겠지만 남자든 여자든 하나같이 거짓말을 하고, 욕심이 많고, 질투가 심하고, 자아도취가 강하고, 저들끼리 살육하고, 불을 피우고, 도둑질하는 등 손 쓸 수 없는 털복숭이들이란다……"
넷
모모타로는 그런 죄 없는 오니에게 건국 이래 최대의 두려움이 되었다. 오니는 방망이를 잊은지 오래였기에 "인간이 왔다"고 소리치며 높게 솟은 야자나무 사이로 우왕좌왕 도망칠 뿐이었다.
"가라, 가라! 오니란 오니는 보이는 대로 한 마리도 남김없이 죽여버려라!"
모모타로는 복숭아 깃발을 한 손에 들고 히노마루가 그려진 부채를 휘둘러 개원숭이꿩 세 마리에게 호령했다. 세 마리는 사이가 좋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굶주린 동물은 충실하고 용맹무쌍한 병졸의 자격을 얻어냈다. 셋은 마치 폭풍처럼 도망치는 오니를 쫓았다. 개는 한 입에 젊은 오니 하나를 물어 죽였다. 꿩도 날카로운 부리로 아기 오니를 찔러 죽였다. 원숭이도――원숭이는 우리 인간과 친척이었기에 여자 오니를 졸라 죽이기 전에 반드시 굴욕을 주었다.
갖은 죄악이 벌어진 후, 끝내 오니 추장은 목숨을 건진 몇몇 오니와 함께 모모타로의 앞에 항복했다. 모모타로는 의기양양할 터였다. 오니가시마는 더 이상 어제와 같은 극락조가 지저귀는 낙원이 아니었다. 야자나무숲 곳곳에 오니의 시체가 흩뿌려져 있었다. 모모타로는 역시나 깃발을 한 손에 들고 세 부하를 이끌며 납거미처럼 자세를 낮춘 오니 추장에게 엄숙히 이렇게 말했다.
"허면 격별한 연민으로 네놈들의 목숨은 구해주마. 대신 오니가시마의 보물은 하나도 남김없이 헌상하라."
"네, 헌상하지요."
"또 네놈들의 아이를 인질로 데려가겠다."
"그것도 잘 알겠습니다."
오니 추장은 다시 한 번 이마를 땅에 붙인 후, 머뭇머뭇 모모타로에게 질문했다.
"분명 저희가 당신께 모종의 무례를 끼쳤기에 정벌하러 오셨겠지요. 허나 사실 저를 시작으로 오니가시마의 오니는 당신께 어떤 무례를 범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부디 그 무례함을 가르쳐주실 수 있으십니까?"
모모타로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 제일의 모모타로는 개원숭이꿩 세 마리의 충의자를 품게 되었기에 오니가시마에 정벌을 온 거다."
"허면 그 세 명을 품게 된 건 어떤 연유십니까?"
"오니가시마를 정벌하기 위해 키비당고를 주어 품었다. ――어떠냐? 이래도 모르겠다면 네놈들도 몰살해버릴 테다."
오니 추장은 놀라서 세 척 정도 뒤로 튀어 오르더니 다시 정성스레 고개를 숙였다.
다섯
일본 제일의 모모타로는 개원숭이꿩 세 마리와 인질로 잡은 아이 오니에게 보물 짐차를 끌게 하며 의기양양히 고향으로 개선했다――이게 전부라면 일본의 모든 아이들이 아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모모타로가 꼭 행복하게 평생을 보낸 건 아니다. 아이 오니는 성장하여 파수꾼 꿩을 깨물어 죽인 후, 곧장 오니가시마로 귀환했다. 그뿐일까. 오니가시마에 남은 오니들은 이따금 바다를 건너와 모모타로의 집에 불을 붙이고, 자는 모모타로의 목을 받아 가려 했다. 듣자 하니 원숭이가 죽은 건 착오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게 거듭되니 모모타로는 불행한 탄식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오니의 뿌리 깊은 집념이란 곤란하기 짝이 없군."
"목숨을 부지해준 주인님의 큰 은혜를 잊는다니 지독한 녀석들이옵니다."
개도 모모타로의 떨떠름한 얼굴을 보고는 안타깝다는 양 신음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쓸쓸해진 오니가시마의 물가에선 아름다운 열대 태양빛을 받는 오니 젊은이 대여섯 명이 오니가시마 독립을 꾀하기 위해 야자열매에 폭탄을 설치하고 있었다. 상냥한 오니 소녀들에게 사랑하는 것마저 잊었는지 묵묵히. 하지만 밥공기만 한 눈동자를 즐겁게 빛내면서……
여섯
인간이 모르는 산 깊은 곳. 안개와 구름을 뚫은 복숭아 나무는 오늘도 그 옛날처럼 무수한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물론 모모타로를 품은 열매만은 계곡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미래의 천재는 아직 그런 열매 안에 몇 명이나 잠들어 있다. 그 커다란 야타가라스는 또 언제 나뭇가지 위에 모습을 드러낼까? 아아, 미래의 천재는 아직 그런 열매 안에 몇 명이나 잠들어 있다……
'고전 번역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가사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1.02.22 |
---|---|
이누카이 군에 관해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1.02.22 |
서적 디자인에 관한 내 생각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1.02.22 |
여자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1.02.22 |
산실――하기와라 사쿠토 군에게 바친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1.02.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