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반응형
SMALL

소설번역413

편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저는 지금 이 온천 여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피서할 생각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느긋이 읽거나 쓰고 싶은 생각도 분명히 있습니다. 여행안내서의 광고에 따르면 여기는 신경쇠약에 좋다고 합니다. 그 탓인지 미치광이도 둘인가 있습니다. 한 명은 스물일곱여덟 먹은 여자입니다. 이 여자는 아무 말도 없이 아코디언만 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차림새는 번듯하니 어딘가 상당한 집안의 사모님일 테지요. 그뿐 아니라 두세 번 본 바로는 어딘가 살짝 혼혈아 같은 윤곽이 고운 얼굴을 지녔습니다. 또 다른 미치광이는 붉은 이마 위에 벗겨진 머리를 지닌 마흔 전후의 남자입니다. 이 남자는 왼팔에 소나무 잎 문신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미치광이가 되기 전에는 무언가 거친 장사라도 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저는 물론 이 남자와 이.. 2021. 7. 13.
프랑스 문학과 나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는 중학교 5학년 때 도데의 '사포'란 소설의 영역판을 읽었다. 물론 어떻게 읽었는지는 말할 바도 없다. 적당히 사전을 옆에 두고 몇 페이지를 팔랑거렸을 뿐이지만 어찌 되었든 그 책이 내가 가장 먼저 친근해진 프랑스 소설이었다. '사포'에 감탄했는지 어땠는지는 확실히는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무도회에서 돌아올 때에 파리 광경을 그린 대여섯 줄의 문장이 있다. 그게 아름다웠던 것만은 기억하고 있다. 그 후로는 아나톨 프랑스의 '타이스'란 소설을 읽었다. 와세다분가쿠 신년호에 야스나리 사다오 군의 소개글이 있었는데 그걸 읽고 바로 마루젠에 가서 사온 기억이 있다. 이 책에는 크게 감복했다.(지금도 프랑스의 저서 중 뭐가 가장 재밌느냐 물으면 나는 바로 '타이스'라 대답한다. 다음으로는 '여왕 렌느 뻬도크'.. 2021. 7. 12.
한산과 습득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오랜만에 소세키 선생님댁을 찾았다. 선생님은 서재 한가운데 앉은 채로 팔짱을 끼고 무언가 생각에 잠겨 계셨다. "선생님, 무슨 생각하세요?"하고 물으니 "지금 고코쿠지의 삼문에서 운케이가 인왕을 새기는 걸 보고 온 참이야"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요즘 세상에 운케이 같은 건 아무래도 좋지 싶어서 내키지 않아 하는 선생님을 붙들고 톨스토이니 도스토옙스키 같은 이름이 들어간 어려운 의논을 조금 나누었다. 그리고 선생님댁을 뒤로하여 에도가와 종점에서 전철을 탔다. 전철은 지독히 복잡했다. 하지만 겨우 구석 손잡이를 붙들고 품에 넣어둔 영역판 러시아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혁명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노동자가 어쩐 일로 미치광이가 되어 다이너마이트를 던지고 끝내는 그 여자마저 어떻게 했다. 어찌 되었든 만.. 2021. 7. 11.
이토에서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저는 본래 신문 편집을 경험해 본 바가 없습니다만 문예상의 작품은 문예란에 올린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건만 4월 13일 지지신보(시즈오카판)는 문예상의 작품을 문예란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건 '오늘의 자습 과제'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벚꽃잎은 어떤 구성을 하고 있나요? 초등학교 5학년. 화광암은 어떤 광물에서 오나요? 초등학교 6학년. 해조의 효능을 말해보세요. 이는 물론 시일 테지요. 특히 벚꽃잎의 '구성'이란 말에선 어리고 부족하지만 묘한 말임이 분명합니다. 무언가 편집상의 실수일 테지만 앞으로 이런 작품은 문예란에 걸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 봅니다. 보잘 것 없는 저의지만 주의 삼아 올려봅니다. 4월 13일 이토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사사키 모사쿠 님께 추신. 소생과 같은 숙소에 열두세.. 2021. 7. 10.
동양의 가을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는 히비야 공원을 걷고 있었다. 하늘에는 옅은 구름이 겹쳐져 지평에 가까운 나무 위에만 희미하게 희미한 푸른색을 남기고 있다. 그 탓인지 가을 나무 사이의 길은 아직 저녁노을이 오지 않은 새에 모래도 돌도 마른풀도 푹 젖어 있는 듯하다. 아니, 길의 좌우에 가지를 뻗은 버즘나무에도 이슬에 씻긴 듯한 여명이 역시 나 노란 잎 한 장마다 희미한 음영을 품은 채로 울적하게 떠다니고 있다. 나는 등나무 지팡이를 옆구리에 끼고 불이 꺼진 담배를 문 채로 이렇다 갈 곳도 없이 쓸쓸하고 정처 없는 산책을 계속했다. 그 쌀쌀한 길 위에는 나 이외엔 아무도 걷지 않았다. 길을 사이에 둔 버즘나무도 조용히 노란 잎을 늘어트리고 있다. 살짝 이슬이 맺힌 길가의 나무 사이서는 단지 분수 소리만이 백 년 전과 다를 바 없이 .. 2021. 7. 9.
모리 선생님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어느 여름밤, 아직 문과대학 학생이었던 친구 산구 마코토 군과 칸쵸로를 찾은 적이 있다. 모리 선생님은 하얀 셔츠에 하얀 병사용 하카마를 하고 계셨던 걸로 기억한다. 무릎 위에 작은 자제분을 앉히시고 프랑스 소설이나 중국 희곡 등을 이야기하셨다. 이야기하는 도중, 서상기와 비파기를 실수하셨기에 선생님도 이따금 실수하신단 걸 알고 되려 친근함을 느낀 적이 있다. 방은 네즈 주변이 잘 보이는 2층, 나가이 카후 씨의 히요리 게타에 기재된 것과 같은 방이지 싶다. 그 시절의 선생님은 얼굴을 까맣게 태우셔서 참 군인처럼 느껴졌지만 근엄이나 딱딱함은 느끼지 못했다. 영웅 숭배로 가득 찬 우리에게는 쾌활한 선생님으로만 보였다. 또 나츠메 선생님의 장례식 때, 아오야마 장례식장 천막서 조문객을 받은 적이 있는데 늦가.. 2021. 7. 8.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