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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번역413

노로마 인형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노로마 인형으로 공연을 할 건데 보러 오지 않겠나. 불쑥 그런 초대를 받았다. 초대 해준 건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문면으로 그 사람이 내 친구의 지인임을 알 수 있었다. "K 씨도 오신다고 하셨으니"하고 적혀 있다. K가 내 친구임은 말할 것도 없다――어찌 됐든 나는 초대를 받기로 했다. 노로마 인형이 무엇인지는 당일이 되어 K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 나도 잘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찾아 보니 노로마는 '에도의 이즈미 다유가 연극에 노로마츠칸베이라 하여 머리가 평평한 어두운 푸른색의 인형을 쓴다. 이를 줄여서 노로마 인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적혀 있다. 과거에는 쿠라마에의 후다사시나 나가다시가 즐겨 쓰거나 다이묘의 어용금으로 쓰였다는데 이제는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행사 당일 나는 차로 닛.. 2021. 7. 31.
백합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료헤이는 어느 잡지사에서 교정용 빨간펜을 쥐고 있다. 하지만 그건 그가 바란 바가 아니었다. 그는 조금 한가해지면 마르크스의 번역본을 탐독했다. 혹은 두터운 손가락 끝에서 골든배트 하나를 즐기며 어두컴컴한 러시아를 꿈꾸고 있다. 백합 이야기도 그런 때에 불쑥 그의 마음을 스친 단편적인 추억의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올해로 일곱 살이 된 료헤이는 태어난 집의 주방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러자 이웃친구인 킨조가 땀을 머금은 얼굴을 빛내며 무언가 대사건이라도 벌어졌다는 양 대뜸 뛰어 들어왔다. "지금, 료, 지금 말야. 싹이 두 개난 백합을 발견했다?" 킨조는 두 싹을 표현하기 위해 위로 든 코 끝에 두 손의 검지를 모아 보였다. "싹이 두 개라고?" 료헤이는 저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뿌.. 2021. 7. 30.
또 한 마디?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카이죠샤의 코키테츠 타로 군이 말하기에 '탄카는 장래의 문예를 따라갈 수 있을까?'에 대해 내게 한 마디 해달라고 한다. 나는 아마추어 시인이기에 거절했는데 아마추어기에 묻고 싶은 거란다. 도리 없이 펜을 들고 원고 용지를 마주하고 있으니 남을 거 같기도 하고 남지 않을 거 같기도 하다. 일단 메이지와 다이쇼 시대처럼 대단한 시인이 잔뜩 있다면 떼어내고 싶어도 따라잡을 테지. 장래에도 대단한 시인이 나타나 그 시인이 감정을 드러내는데 탄카의 형식을 사용하면 역시 따라잡을 게 분명하다. 그럼 따라 갈까, 따라 가지 않을까를 결정하는 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대시인이 탄카의 형식을 이용하느냐 아니냐다. 대단한 시인이 태어날지 어떨지는 누구도 보증할 수 없다. 또 그 대단한 시인이 탄카의 형식을 사용할지도 짐작.. 2021. 7. 29.
교토 일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코에츠지 코에츠지에 갔더니 본당 옆 소나무 안에 작은 집 두 개가 세워져 있었다. 하나 같이 묘하게 당당한 게 창고는 아닌 듯했다. 아닌 듯하기는 고사하고 그중 하나에는 오오쿠라 키하치로 씨가 쓴 현판도 걸려 있었다. 그래서 안내해준 코바야시 우코 군을 붙들고 "이게 뭔가요?"하고 물으니 "코에츠카이서 세운 찻방입니다"라고 답해주었다. 나는 불쑥 코에츠카이가 하찮아졌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코에츠의 주인이라도 되는 줄 아나 봅니다." 코바야시 군은 내 독설에 히죽히죽 웃었다. "이게 만들어져서 타카가미네와 와시가미네가 이어져 있는 게 보이지 않게 되었죠. 찻방을 만드느니 저 주변 잡목이라도 좀 자르지." 코바야시 군이 양산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확실히 적당히 자란 초여름의 잡목 가지가 타카가미네의.. 2021. 7. 28.
아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클로드 파레르의 작품을 처음으로 일본에 소개한 건 아마 호리구치 다이카쿠 씨이리라. 나는 벌써 6, 7년 전에 '미타분카쿠' 덕에 호리구치 씨가 번역한 '여우'함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 '여우'함 이야기는 물론이요 파레르의 작품에는 동양의 아편 연기가 스며 들어 있다. 나는 그쯤 야노메 겐이치로 씨가 번역한 파레르의 '정적 밖에서'를 읽고 다시 한 번 이 연기에 접했다. 물론 이 '정적 밖에서'는 기품 있는 아편의 냄새 이외에도 죽은 사람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포와 보들레르" 형제 상회가 만든 죽음의 냄새도 풍기고 있다. "어라, 들렸어. 아니, 잘못 들은 건가. 모르겠군. 죽은 사람의 땅에서 새어나온 거라기엔 너무 큰 소리야. 애당초 여기서 무언가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릴 리가 없어. 흙 안에서 관.. 2021. 7. 27.
물의 3일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강당에서 이재민 위로회가 열린 날 오후. 1학년 병반(당일은 이곳을 우리――졸업생과 재학생의 사무소로 썼다)의 교실에 들어가자 우에하라 군과 이와사 군이 교실 한가운데에 책상을 두고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고개 숙인 우에하라 군의 얼굴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리 붉게 보였다. 입구 근처 책상 위에는 나나조 군이나 시타무라 군, 또 내가 이름을 모르는 졸업생들이 기부 받은 유카타나 수건, 천, 종이 따위를 이재민에게 분배할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콘가스리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천을 접어서는 손수건 사이즈로 자르고 있다. 그런 모습을 갈색 오구라 하카마가 각을 잡아서는 깔끔하게 샇아 올리고 있다. 반대편에서는 하라 군이나 오노 군이 책상 위에 소금 전병 봉투를 펼쳐 숫자를 세고 있다. 요다 군도 그 .. 2021.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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