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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물의 3일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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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당에서 이재민 위로회가 열린 날 오후. 1학년 병반(당일은 이곳을 우리――졸업생과 재학생의 사무소로 썼다)의 교실에 들어가자 우에하라 군과 이와사 군이 교실 한가운데에 책상을 두고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고개 숙인 우에하라 군의 얼굴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리 붉게 보였다. 입구 근처 책상 위에는 나나조 군이나 시타무라 군, 또 내가 이름을 모르는 졸업생들이 기부 받은 유카타나 수건, 천, 종이 따위를 이재민에게 분배할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콘가스리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천을 접어서는 손수건 사이즈로 자르고 있다. 그런 모습을 갈색 오구라 하카마가 각을 잡아서는 깔끔하게 샇아 올리고 있다. 반대편에서는 하라 군이나 오노 군이 책상 위에 소금 전병 봉투를 펼쳐 숫자를 세고 있다.
 요다 군도 그 옆에서 커다란 단팥빵 봉지를 뜯고서 "다섯 열, 스물"하고 세는 게 보인다. 소금 전병하고 단팥빵을 합치면 4엔 가량은 되니까 세 사람 모두 계산에 조심스러운 모양이다.
 교단 쪽을 보니 잘리지 않은 채 밧줄로 묶인 종이나 손수건이 난잡한 가운데 히라츠카 군이나 코쿠후 군, 키요미즈 군이 칠판에 이재민에게 알려야 할 사항이나 소금전병의 수 따위를 쓰고 빼고 나누고 있다. 급하게 쓴 탓인지 숫자마저 개발새발이라 우습다. 그러고 있자니 히로세 선생님이 찾아오셨다. 두세 마디를 하시고는 다시 곧장 나가셨다. 그러는 사이 빵이 부족해져 새로 보충한다. 서둘러 선생님을 찾아 통신부를 여는 교섭을 한다. 카이세이샤에 전화를 걸고 빨리 편지를 보낸다. 모두가 하나같이 급하다. 뭘 해도 급하다. 대신 무엇이든 금세 정리가 된다. 창밖을 보니 서서히 물이 빠진 운동장이 눅눅한 붉은 진흙을 남기며, 또 벽토를 녹일 거 같은 색을 한 물이 팔 월의 푸른 하늘을 비추며 어디 가지 않고 꼼짝없이 자리해 있다. 그런 물 안을 털이 길고 마른 검은개가 푹 젖은 채 코를 훌쩍이며 달려간다. 건방지게도 개마저 바쁜 것처럼 느껴졌다.


 위문회가 열린 건 세 시 경이었다.
 회색 벽과 침울한 유리창에 둘러싸인 밋밋한 강당에는 몇 백 명의 이재민이 초췌한 얼굴을 한 채 난잡히 줄지어 있었다. 때묻은 유카타를 입은 채 피부에 하얀점을 가진 남자아이를 업은 아주머니도 있었다. 더러워진 얇은 도테라에 손수건 오비를 묶은, 눈에 다래기낀 할머니도 있었다. 하얀 메리야스 셔츠와 속바지 차림인 젊은 남자도 있었다. 크게 찢어진 시루시한텐에 산쟈쿠를 둘둘 만 젊은 여자도 있었다. 색이 바란 붉은 천을 허리에 두른 코가 새빨간 할아버지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두가 노랗게 질리고 탄력 없는 얼굴로 교단을 보고 있었다. 교단 위에선 축음기가 쉰 목소리로 캇포레인지를 틀어 놓고 있었다.
 측음기가 멈추자 이즈노 씨의 개최 인사가 있었다. 꽤나 내용이 길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다 까먹고 말았다. 그 후 다시 축음기가 돌아 테스이의 코단 "카치카치진베이"가 시작되었다. 여기저기서 밝은 웃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웃음도 여기 사람들은 며칠만에 겨우 해보는 것이리라. 학교가 위문회를 연 것도 이 웃음을 듣기 위함이지 않았을까. 유리 창문을 통해 사각형의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이런 웃음을 듣고 있자니 어쩐지 슬픔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코단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위문회가 끝이 났다. 그렇게 이재민들은 좁은 입구를 통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그 도중의 복도서 어른에게는 비스킷 보따리를, 소년소녀에겐 소금전병과 단팥빵을 주었다. 역무소 직원이나 하얀옷의 젊은 순사가 "인사하셔야죠"하고 주의를 주기에 이재민들은 일일히 고개를 숙였다. 개중에서도 열하나, 열둘쯤 되어보이는 붉은 오비를 한 작은 여자아이가 "인사해야지"란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가 신발로 걷는 모래투성이 복도에 이마를 붙여가며 "감사합니다"하고 말했을 때에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뻔했다.

 위문회가 끝나자마자 사무실에서 통신부를 시작한다. 편지를 쓰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써주는 설비이다. 하라 군과 오노 군과 내가 같은 책상에서 쓴다. 사무실 지하에 접한 유리 장자를 열어두고 안에 도서실의 얇고 긴 책상과 강당에 있는 벤치를 들고와 셋이서 앉아 있다. 바깥 벽에는 타카다 선생님께서 쓰신 "무료로 편지를 써드립니다"는 종이가 붙어 있었기에 곧장 많은 사람들이 창밖에 몰렸다. 그렇게 편지에 연필을 얹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써지겠지 하고 나태한 근성으로 있었는데 막상 써보기 시작하니 "이래저래 했는데 무사하니 걱정 마세요" 정도로는 도저히 얼버무릴 수 없게 되었다. 두세 번째로 내게 온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듣자 하니 코마츠가와의 아무개 병원에서 회계로 일하는 숙부의 동생의 딸이 그 숙부의 누나의 아들의 아내의 분가의 차남에게 결혼을 갔는데, 코마츠가와에서 물난리가 났으니 그 삼촌의 누나의 아들의 아내의 분가의 차남의 마을에서도 옛날부터 신세 진 사람의 아들이 가진 물레방아로 가라느니 어쩌느니, 그 병원 회계의 숙부의 동생이 어쩌느니, 만나서 그 삼촌의 아들의 친구의 숙부의 신다의 사루가쵸에 열쇠를 고친 집에 어쩌고저쩌고 하는 통에 몇 번이나 다시 들어도 야와다의 늪이라도 걷는 것처럼 도무지 요령을 알아듣지 못해 곤란했다. 아직도 당시를 생각하면 편지에 무슨 내용을 썼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이는 하라 군에게 온 아주머니 이야기인데, 하라 군이 "받는 분은요?"하고 말하니 헤이고로 씨라고 한다. "성은 어떻게 되시나요"하고 되물으니 성은 모르지만 헤이고로 씨며 헤이고로 씨라고 하면 주위에 다 통하니 성이 없어도 도착할 게 분명하단다. 아무리 하라 군이라도 "그냥 헤이고로 씨라고 하면 갈 리가 없죠"하고 발을 뺐지만 기어코 도리 없이 아무개쵸 몇 번지의 헤이고로 경이라고 써버렸다. 만약 그 정도로 헤이고로 씨께 도착하면 헤이고로 씨 본인도 용캐 왔지 싶을 게 분명하다.
 더 웃긴 건 누구한테 온 건지는 잊었는데 받는 이를 'しようせんじ、のだやすつてん'라 적어 아무도 한자로 번역하지 못했다. 결국 '修善寺野田屋支店'라고 적게 되었는데 이런 와한 번역 문제가 나오면 어느 학교 수험자든 낙제할 게 분명하다.
 통신부는 해가 질 적에 문을 닫았다. 항상 은행원이 찾아와 수업료를 받아 가는 작은 창문 쪽에서도 우에하라 군이나 이와사 군, 다른 졸업생들이 집필을 해주었다. 그리고 우리도 이래저래 비슷한 시각에 창을 닫았다. 우리가 돌아갈 적에는 주위가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2층 창에서는 짙은 불등이 들어와 있고 백양 가지에 걸려 있던 세탁물도 전부 걷혀 있었다.

 통신부는 그 후로도 이어졌다. 앞서 쓴 멤버를 제외하고도 히라츠카 군, 코쿠지 군, 스나오카 군, 키요미즈 군, 요다 군, 나나조 군, 시타무라 군, 그 외에 지금은 내가 잊어버려 여기서 표창하는 영광을 잃게 한 게 슬플 따름이다. 수많은 학생들이 열심히 펜을 움직여 주었으니 대략 육백 장 전후의 편지가 소비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여기서 밝혀두고 싶다.

 그 다음날 오후, 의연금 일부를 써 산 사백 개 가량의 속옷을 이재민에게 기증하게 되었다. 다 같이 속옷 한 다스가 들어간 상자를 하나씩 들고 방을 돈다. 집시처럼 키가 작은 역무소 직원이 장부서 한 사람 한 사람 이재민을 부르면 우리가 한 장 한 장 속옷을 건넸다. 유감스럽게도 어떤 방에 어떤 사람이 어떤 걸 했는지는 잊었지만 딱 하나 기억하는 건 5학년 병반의 교실에 들어갔을 때지 싶다. 어두컴컴한 구석에 색이 바란 검고 두터운 줄무늬가 있는 파란 담요가 꿈틀거리더니 안에서 회색의 긴 수염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눈이 탁한 붉은 얼굴의 노인이 나왔다. 그리고 끝으로 회색의 길게 뻗은 머리카락이 나왔다. 한동안 우리를 보았지만 다시 눈을 감았다. 옆으로 다가가니 술냄새가 났다. 담요 아래에 워커병이라도 숨기고 있는 거 같았다.
 2층 방을 돌던 히라즈카 군의 말에 따르면 5학년 갑반 교실에 미치광이가 있어 양동이 물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머리를 묶은 여자가 비가 스며 든 회색 벽에 기대어 헤진 모수자 오비에 손을 넣고 고개를 숙여 양동이의 물을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했더니 역시 소설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속옷을 다 나눠준 후, 마에다 후작이 커다란 우메바라 문양이 들어간 상자 안에 담긴 기부품을 잔뜩 보냈다. 라쿠간일까 싶었더니 셔츠와 복대였다. 마에다 후작은 역시 그릇이 큰 인물이지 싶었다.

 이재민들이 며칠 만에 본인들의 집으로 돌아가는 날 오전. 우리는 우리가 모은 의연금의 잔액을 써서 이재민들을 위한 뽑기를 만들기로 했다.
 경품은 전날 밤에 주문했다. 당일 아침, 내가 학교 사무소로 향했을 때는 벌써부터 학생들이 잔뜩 모여 뽑기를 만들고 있었다. 종이를 잘 꼬을 수 있는 사람이 몇 안 돼서 히로세 선생님이나 마사키 선생님이 도와주셨다. 우리 중에선 스나오카 군이 잘 만들었다. 나는 "우와, 재주 좋네"하고 감탄하며 보았다. 물론 나는 꼬지 않았다.
 사무실 안에는 여러 물품이 쌓여 있었다. 어젯밤에 오노 군이 입이 닳도록 그 효용을 보증한 거북이 등껍질 모양 솔도 있다. 미소코시 대신 쓸 수 있다는 소쿠리도 있다. 양갱의 미라 같은 비누도 있다. 빗자루가 있는가 하면 주걱도 있다. 신발이 있는가 하면 식칼도 있다. 빨간 옷을 입은 인형이나 롯펜섬의 바다표범 같은 얼굴을 한 개의 모래 세공 장난감도 있었는데, 그 안에 대여섯 개의 양철 은피리가 담긴 건 하라 군의 추천으로 산 거라 한다. 경품 설명은 이쯤 하겠는데 하나 더 적어두고 싶은 건 노란색의 노시로누리 젓가락이다. 그게 몇 백 개는 쌓여 있다. 나중에 나눠줄 생각을 하니 그 칠냄새가 한사코 손에 남을 거 같아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조금만 맡아도 속이 메스껍다. 뽑기 경품으로 삼는 건 자손 세대까지 금물이라고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
 뽑기가 만들어지자 하라 군과 요다 군이 각방을 돌아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첨 뽑기를 든 사람들이 찾아왔다. 사무실 정면 오른 입구로 들이고 평소에는 닫아두는 반대편 입구로 내보내기로 했다. 경품은 빗자루와 소자루, 비누로 한 쌍, 솔과 소쿠리, 국자로 한 쌍, 신발과 젓가락이 한 쌍이란 비율로 가장 안 좋은 상품이 노시로누리 젓가락 한 쌍이다. 나라면 이 녀석만은 아무리 뽑기에 당첨됐어도 사양하고 싶을 거 같다.
 스나오카 군과 코쿠지 군이 읽는 역할을 맡아 뽑기를 받아 하나하나 큰 소리로 읽어주었다. 개중에는 일가 가족 다섯 명이 신발에 당첨된 사람이 있었다. 일가 가족 열 명이 전부 노시로누리 젓가락에 당첨되면 우스울 거 같았는데 불행히도 그런 사람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 번 뽑기가 끝난 후에도 경품이 꽤나 남아 버렸다. 그래서 남은 경품에 빈뽑기를 더해 다시 뽑기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마저도 끝나니 마침 정오였다. 이재민들은 이제 하나둘 돌아가기 시작한다. 개중에는 정중히 인사하러 오는 사람도 있었다.
 큰 만족과 약간의 피로를 품은 채로 우리가 며칠인가 바쁘게 보낸 사무실을 뒤로할 때,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니 진흙투성이 모래 위에 갈라진 전나무나 낮은 백양나무가 낮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대낮의 햇살이 붉게 드리운 회색 교사에는 아연판이 걸려 있는 게 보였다. 대략 내일부터 뒷정리가 시작되리라.

(메이지 43년, 도쿄부립 제3중학교 학우회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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