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교토 일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7. 28.
728x90
반응형
SMALL

     코에츠지

 코에츠지에 갔더니 본당 옆 소나무 안에 작은 집 두 개가 세워져 있었다. 하나 같이 묘하게 당당한 게 창고는 아닌 듯했다. 아닌 듯하기는 고사하고 그중 하나에는 오오쿠라 키하치로 씨가 쓴 현판도 걸려 있었다. 그래서 안내해준 코바야시 우코 군을 붙들고 "이게 뭔가요?"하고 물으니 "코에츠카이서 세운 찻방입니다"라고 답해주었다.
 나는 불쑥 코에츠카이가 하찮아졌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코에츠의 주인이라도 되는 줄 아나 봅니다."
 코바야시 군은 내 독설에 히죽히죽 웃었다.
 "이게 만들어져서 타카가미네와 와시가미네가 이어져 있는 게 보이지 않게 되었죠. 찻방을 만드느니 저 주변 잡목이라도 좀 자르지."
 코바야시 군이 양산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확실히 적당히 자란 초여름의 잡목 가지가 타카가미네의 왼소매를 음울히 가리고 있다. 저걸 자르면 산뿐만 아니라 반대편에서 빛나는 대나무숲도 잘 보일 테지. 애당초 찻방을 만드는 것보단 더 쉬운 일일 게 분명하다.
 그로부터 둘이서 고리로 가서 승려분께 안내를 받아 보물을 보았다. 그 중 하나, 은으로 된 도라지나 금으로 된 갈개 위에 아름다운 필적으로 우타를 쓴 팔촌사방 정도의 작은 족자가 있었다. 참억새 잎이 굽어 있는 완성도가 참 재밌었다. 코바야시 군은 전문가인 만큼 기둥 밑으로 내려달라 하더니 "좋은데, 은도 잘 구워졌어"하고 말했다. 나는 시키시마를 입에 물고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이 그림을 보자 마음이 안정되고 밝은 심정이 들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승려분이 코바야시 군을 보고 이런 말을 했다.
 "얼마 안 있으면 또 찻방이 생긴답니다."
 코바야시 군도 그 사실에는 살짝 놀란 듯했다.
 "또 코에츠카이인가요?"
 "아뇨, 이번엔 개인입니다."
 나는 불쾌한 걸 넘어 괴상해졌다. 대체 코에츠를 뭐로 생각하는 걸까. 코에츠지를 뭘로 보는 걸까. 또 타카가미네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게 찻방을 세우고 싶다면 챠시로지로의 집터나 어디 밀밭이라도 사서 적당히 둘러싸면 될 터이다. 그리고 그 찻방 건물에 현판이든 제등이든 얼마든지 달라지. 그러면 나도 시작할 테니 일부러 코에츠지에 올 리도 없다. 그렇고 말고, 누가 올까 보냐.
 나중에 밖에 나오니 코바야시 군이 "오늘은 잘 왔네요. 찻방이 더 늘어나면 눈 뜨고 못 볼 거예요"하고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확실히 좋은 시기에 잘 온 거 같긴 하다. 하지만 하나의 찻방도 없는 더 좋은 시기에 오지 못한 건 정말이지 유감이지 짝이 없다――나는 더욱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코바야시 군과 함께 대나무숲의 뒤에 서있는 쓸쓸한 코에츠지의 문을 나섰다.

     대나무

 어느 비가 그친 밤. 차를 타고 교토 거리를 지나고 있더니 차부가 어디 가십니까, 어디 가시나요하고 말했다. 어디 가냐느니 당연히 숙소로 가는 거 아니겠냐고 말하자 숙소다, 숙소하고 동유지 뒤에서 두 번 가량 말했다. 차부는 그 숙소가 어딘지 모른다며 거리 한가운데에 선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통에 당혹스러워졌다. 숙소의 이름이야 알지 숙소 주소는 기억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이름이란 게 굉장히 평범하기 짝이 없으니 그것만으론 아무리 현명한 차부라도 만족스레 돌아가지 못하리라.
 곤란하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차부가 동유지를 열더니 엉뚱한 곳에 와있다고 말했다. 제등의 빛으로 보니 차 앞에는 대나무숲이 있었다. 대나무숲은 어둠 속에 길고 푸른 모습을 연이으며 겹쳐진 잎이 차갑게 젖어 빛나고 있다. 큰일이지 싶어서 이런 시골이 아니다, 골목을 두 개 가량 굽으면 시죠의 큰다리가 나온다 설명했다. 그러자 차부가 황당하단 얼굴로 여기도 시죠 근처라고 말했다. 그래서 흐음, 그러냐, 그럼 좀 더 북쪽이는 곳으로 가달라며 일단 눈앞의 상황만 넘겼다. 그대로 차가 움직여 첫 골목에서 왼쪽으로 꺾으니 대뜸 카부렌죠 앞으로 나오니 참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것도 마침 미야코오도리를 하고 있었으니 양쪽에 키온단고의 붉은 제등이 규칙적으로 불을 뿜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방금 전 대나무숲이 켄닌지였단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 어둠 속 대나무숲과 이 밝은 거리가 마주하고 있단 건 아무리 생각해도 거짓말 같았다. 그 후, 숙소에 무사히 도착했지만 당시에 여우에 홀린 듯한 기분은 오늘까지 똑바로 기억하고 있다……
 그후로 주의 깊게 보면 교토 외진 곳에는 어딜 가든 대나무숲이 있었다. 아무리 북적이는 거리라도 이것만은 결코 방심할 수 없다. 집들 사이를 좀 벗어났다 싶으면 곧 대나무숲이 나타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거리가 된다. 특히 지금 말한 켄닌지의 대나무숲은 그 후에도 기온을 지날 때마다 반드시 방할[각주:1]처럼 내 눈앞에 나타난다……
 하지만 익숙해지니 신기하게도 도쿄의 대나무는 조금도 강하단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마치 거리에 스며든 상냥한 대나무만 같다. 뿌리가 빨아 들이는 물도 백분의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하나 더 형용해 보자면 처음부터 린파 화공의 붓 위에 오르기 위해 태어난 것만 같다. 이러니 거리 안에 살아 있어도 조금도 지장이 없다. 차라리 기온의 한가운데에도 코에츠의 마키에에 나올 법한 두터운 녀석이 두세 개 가량 세워져 있으면 더욱 좋겠지 싶다. 
   벗겨진 뿌리 봄비 속 대숲처럼 푸르르려나.
 오사카로 가서 타츠무라 씨께 무언가를 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교토의 대나무를 떠올려 이런 구를 썼다. 그만큼 많은 교토의 대나무는 교토답게 만들어져 있었다.

     마이코

 카미키야쵸의 찻방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더니 게이샤 하나가 괜히 소란을 떨며 돌았다. 그게 내게는 도무지 미치광이의 전조처럼만 보였다. 조금 꺼림칙해져서 그쪽 상대는 코바야시 군에게 맡기고 옆에 있던 마이코를 보았다. 이쪽은 얌전히 츠바키모찌를 먹고 있다. 목덜미의 하얀 가루가 희미해져 건강한 피부가 검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쪽이 더 듬직하지 싶었다. 어린애같이 귀여워서 체조를 아느냐 물어보았다. 그러자 체조는 잊었지만 줄넘기라면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 보여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샤미센 소리가 들려 하지 못했다. 물론 그렇게 말해본들 해주지 않았을 테지.
 그 샤미센에 맞춰 코바야시 군이 오오츠에의 우타를 불렀다. 듣자 하니 문구는 반절에 쓴 게 품 안에 담겨 있어서 그걸 보면서 부르지 않으면 이상적으로 노래할 수 없다고 한다. 이따금 위태로워지면 옆에 있던 두세 명의 게이샤가 가세를 했다. 더욱이 그 게이샤가 위태로워지면 로기가 가세했다. 그렇게 여러 목소리가 오오츠에를 보충하는 모습은 마치 이리저리 뒤섞인 병풍을 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우스워져 도중에 아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코바야시 군도 그걸 따라 기어코 웃음으로 오오츠에를 끝나버렸다. 그 후에는 로기가 홀로 마지막까지 불렀다.
 그 후로 코바야시 군이 마이코에게 춤을 춰보라 했다. 로기는 공간이 좁으니 당지를 열고 옆방에서 추라고 말했다. 그러자 츠바키모찌를 먹던 마이코가 순순히 옆방으로 가서 쿄노시키를 추었다. 아쉽게도 나는 잘 추는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는 춤이었다. 하지만 꽃비녀가 기울거나 느슨한 오비가 움직이거나 부채가 빛나는 등 굉장히 아름다웠으니 오리 로스를 먹으면서 재밌게 보았다.
 하지만 사실 재밌게 본 건 단순히 아름다웠기 때문만은 아니다. 마이코는 감기에 걸렸는지 아래를 내려다 볼 때면 반드시 보기 좋은 코 안쪽에서 콧물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참 어른스러운 쿄보의 어린아이 같아서 자연스레 흐뭇해졌다. 나는 취해 있었고 묘하게 기분이 좋았기에 춤이 끝나고는 그 마이코에게 양갱이니 츠바키모찌 따위를 주었다. 만약 마이코가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다면 너는 다섯 번이나 콧물을 삼켰다고 말해주고 싶었을 정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칠 거 같은 게이샤가 돌아와 방이 급속도로 조용해졌다. 유리창 밖을 보니 광고의 전등불이 강물에 비추고 있다. 하늘은 어두웠기에 히가시야마가 어디 있는지 판별이 가지 않았다. 나는 반동적인 생각이 들어 코바야시 군에게 또 오오츠에라도 부르지 않겠냐 말했다. 코바야시 군은 등받이에 기대며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거절했다. 역시 많이 취한 것일 테지. 마이코는 츠바키모찌에 질렸는지 홀로 종이학을 접고 있었다. 로기 이외의 게이샤는 작은 목소리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나는 도쿄서 나온 이후로 처음으로 이 화려한 찻방 안에서 향수의 쓸쓸한 감정을 맛보았다.

(다이쇼 7년 6월)

 

 

 

  1.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낼 때, 또는 수행자를 꾸짖거나 호통칠 때, 주장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후려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토하는 큰소리를 할(喝)이라 함. [본문으로]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