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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아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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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로드 파레르의 작품을 처음으로 일본에 소개한 건 아마 호리구치 다이카쿠 씨이리라. 나는 벌써 6, 7년 전에 '미타분카쿠' 덕에 호리구치 씨가 번역한 '여우'함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
 '여우'함 이야기는 물론이요 파레르의 작품에는 동양의 아편 연기가 스며 들어 있다. 나는 그쯤 야노메 겐이치로 씨가 번역한 파레르의 '정적 밖에서'를 읽고 다시 한 번 이 연기에 접했다. 물론 이 '정적 밖에서'는 기품 있는 아편의 냄새 이외에도 죽은 사람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포와 보들레르" 형제 상회가 만든 죽음의 냄새도 풍기고 있다.
 "어라, 들렸어. 아니, 잘못 들은 건가. 모르겠군. 죽은 사람의 땅에서 새어나온 거라기엔 너무 큰 소리야. 애당초 여기서 무언가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릴 리가 없어. 흙 안에서 관이 재채기한다――한 장의 판이 흔들린다. 튼튼한 못이 박혀 있는 걸 무서운 소리를 내며 삐걱인다……"
 이는 포의 "Premature Burial(성급한 매장)"이 대서양의 피안에 전한 수많은 반향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내가 재밌었던 건 아래에 인용하는 구절이다――
 "하지만 이미 프랑스 땅에서 아편을 만들려다 실패만 해서 수없이 고심했지. 통킹에서 가져온 양귀비 종자를 시체로 비옥해진 묘지에 심어 보니 생각보다 성적이 좋고 그 특징을 발휘할 수 있었지. 이제는 그 독즙으로 부풀어 오른 꼭다리를 자르기만 하면 내가 바라던 갈색 눈물 같은 게 뚝뚝 떨어져……"
 아편에서 죽은 사람을 떠올리는 게 파레르가 처음은 아니다. 나는 요전 번에 우연히 유월의 "우대선관필기"를 읽는 동안 그런 속전이 중국인 사이에도 있단 걸 발견했다. 동서에 기재된 '가신암' 이야기에 나왔기 때문이다.
 가신암은 건륭 말기의 늙은 유생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어느 날 밤 꿈속에 커다란 관아 같은 집 앞으로 들어갔다. 집은 두터운 중문이 되어 있었고 한적하여 인기척이 없었다. "배회하는 동안 겨우 몇 사람 보았다. 아내를 데리고 먼 곳에서 와 이 문 밖에 이른다." 그리고 그들은 무슨 생각인지 부인의 상하의를 벗겨버렸다. 부인은 아직 어렸다. 그뿐 아니라 얼굴도 고았다.  "전라를 아름답게 드러내며 선다. 수치심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이 무거워진 가는 곧장 그들의 무례를 꾸짖었다.
 "이 자식들, 뭐 하는 짓이냐. 왜 이런 무례를 범하느냐?"
 하지만 그들은 작게 웃으며 이렇게만 답했다.
 "다들 이렇게 합니다."
 "말도 아직 끝나지 않은 사이에 문이 열린다. 몇 명인가가 있다. 커다란 통 하나를 짊어매고 나간다. 문서 한 뭉터기를 들고 그 뒤를 따라 나선다. 전라의 아내는 안겨서 문안으로 들어간다. 가 또한 바로 뒤를 따라 들어간다." 그렇게 문 몇 개를 지나 넓은 정원에 이르자 "남녀 수백이 있다. 누구는 서있고, 누구는 앉아 있고, 누구는 누워 있다. 하나 같이 전라이며 천 하나 걸치고 있지 않다. 당상에 관리 하나가 앉아 있다. 그 앞에 커다란 착상 하나가 놓여 있다. 건장한 남자 여럿이 대철야를 들고 임의의 남자와 여인을 끌고 와 통 안에 놓고 큰 돌을 이용해 압착한다. 고혈이 낭자한다. 아래로 흐르기에 그릇을 놓는다. 그릇이 가득 차면 곧장 커다란 통안에 붓는다. 그렇게 하기를 십여 차례. 커다란 통이 가득 찬다. 몇몇 사람이 이를 들고나간다. 관리가 문서에 도장을 찍고 부하 하나를 뒤따르게 한다." 그때 가가 부하의 얼굴을 보니 진작에 죽은 옛 이웃 주달부였다. 가는 주의 이름을 불렀다.
 "그대가 왜 여기 있는가? 여기는 오래 머물 곳이 못 되네. 어서 나를 따라 나가세."
 주는 놀라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가는 통 안의 물건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다.
 "아편연겁일세."
 건륭 말기에는 아직 아편이 오늘처럼 유행하지 않았다. 따라서 가도 아편이 무엇인지 알지 못 했다.
 "아편이란 게 뭔가?"
 "승평일이 머지않았는데 인구과잉으로 곤란해졌지. 큰 일이 생기기 전에 막을 필요가 생겼어. 본디 큰일이란 게 수화도병의 재해만 한 게 더 있나. 이런 재해를 만나면 현명한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나란히 죽고 말지. 복선화음도 그 앞에서는 비루해질세. 그래서 천제가 신들을 모집해 아편연겁이란 걸 시작했네. 아편연겁이란 세간의 양귀비 꽃즙을 빌려 달여 고약을 만들어서 사람에게 먹이는 걸세. 이 고약을 먹는 게 곧 재해요, 먹지 않는 사람에겐 그렇지 않네. 스스로 택한 것이니 조물을 나무랄 수 있나. 이 재해를 통해 인구 과잉을 줄이면 수화도병의 재해도 절반 가까이 줄어들 테지. 하지만 양귀비란 풀초에 속하여 세간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는 반면에 그 즙이 진하지 못해 달여도 고약으로 만들지 못하지. 따라서 구유의 주인에게 명해 무간지옥 중에서 불충불효무례파렴치의 죄를 범한 혼을 골라 이곳으로 보내 고혈을 착취해 지상. 산륭, 원습, 분연의 신에게 보내 이 고혈을 양귀비 뿌리 안에 넣어 꽃까지 이르게 하면 그 즙도 자연스레 풍부해지니 한 번만 달여도 광택이 도네. 한 번 시험해보는 걸로 이를 알게 되었지. 몇 십 년 후면 이 연기가 천하에 만연할 거야."
 가는 다시 물으려 했다. "그때 몇 명이 수십의 남녀를 데리고 온다. 채찍질에 소리도 없이 오열한다." 가는 놀라서 눈을 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도광 중기 쯤부터 아편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물론 가는 그보다 먼저 고인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가의 꿈 이야기는 아직도 사람들의 귀에 남아 있다. 그때부터 누구랄 것도 없이 "아편 연기 안에는 죽은 사람의 고혈이 담겨 있다"고 입을 모으게 되었다……
 묘지에 심어진 양귀비꽃에서 좋은 아편을 얻을 수 있다는 게 파레르의 상상일까? 아니면 위에 적은 중국 속전이 낳은 것일까? 나는 물론 어느 쪽이라 단언할 자격을 지니지 못한다. 단지 이 속전이 어쩌면 우미인의 피가 우미인초가 되었다는 이야기에 뿌리내려 있지 않을까 생각할 뿐이다.
 또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건 아편 연기는 담배도다도――특히 궐련이나 엽궐련보다도 동양적향이 강하다. 만약 아편 연기 냄새에 가장 가까운 냄새를 찾자면 그건 인기척 없는 묘지 구석에서 스님이 무낙옆을 모아 태우고 있는 냄새일 테지. 따라서 아편 연기 냄새는 청나라 시대의 중국인은 물론이요 우리 현대 일본인에게도 묘――죽은 사람――죽음 따위를 연상하기 쉽게 한다. 하지만 그러한 연상이 꼭 '악의 꽃'의 색채를 두르고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이 문장을 심으며 되려 읽은 적 있는 어느 푸르른 홋쿠를 떠올렸다――

 초겨울일랑 계곡 안에 자리한 묘지 위 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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