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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타바타 일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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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7일
 아침에 침소에서 꾸물거리고 있었더니 여섯 시가 되었다. 무언가 꿈을 꾼 거 같았는데 떠오르지 않았다.
 일어나 얼굴을 씻고 주먹밥을 먹고 서재 책상 앞에 앉았는데 도무지 무언가를 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읽다 만 책을 읽기로 했다. 어쩐지 이상한 논의가 주구장창 적혀 있다. 귀찮아져서 그마저도 내려놓고 배로 누워 소설을 읽었다. 익사할 뻔한 사람의 심정을 조금 공상적으로 과장해 재밌게 표현했다. 이건 읽어 볼만하다 싶었더니 불쑥 요전부터 쓰고 싶었던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 
 발자크인지 누구인지가 소설을 구상하는 일을 '마법 담배를 피우다'라 형용한 적이 있다. 나는 그렇게 마법 담배와 진짜 담배를 섞어 피웠다. 그랬더니 곧 낮이 되었다.
 점심밥을 먹고 나니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럴 때에 누가 오면 좋겠지 싶지만 아쉽게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나가는 것도 성가시다. 도리 없이 등나무 베개를 받치고 다시 소설을 읽었다. 그렇게 읽으면서 어느 틈엔가 낮잠에 들었다.
 잠에서 깨자 아래층에 오노 씨가 와계셨다. 일어나 얼굴을 씻고 오노 씨를 찾아 골상학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다. 골상학의 기원은 동물학의 기원과 관계가 있다. 그런 이야기는 차츰 아리스토텔레스가 어쩌고로 흘렀다. 그 이야기는 사양하기로 하고 한 번 내 얼굴을 봐달라고 했다. 그러니 나는 직각력도 추리력도 원만히 발달하고 있다니 마음에 들었다. 물론 나중에 "동물성도 꽤나 많군요"하는 말에 결국 무의미해졌다.
 오노 씨가 돌아간 후 목욕을 하고 밥을 먹고 열 시까지 조사를 했다.

 28일
 날이 선선했다. 이런 날에 안 나가면 언제 나가나 싶어서 여덟 시부터 뛰쳐나갔다. 도자카에서 전철을 타고 우에노에서 환승하여 겸사겸사 린로카쿠에 들러 헌책을 둘러보고는 겨우 혼고에 사는 쿠메를 찾았다. 그랬더니 미나미쵸에 가서 자리를 비우고 있단다. 혼고도리의 헌책방을 끊기 좋게 하나하나 둘러보며 서양책을 두세 권 사고는 미나미쵸에 갈 생각으로 산쵸메에서 전철을 탔다.
 하지만 전철을 타는 사이 또 마음이 바뀌어 이번에는 스다쵸에서 갈아타 마루젠으로 향했다. 가보니 친을 끄는 묘한 외국인 여자가 제이콥 소설을 찾고 있다. 그 여자의 얼굴을 어디서 봤지 싶었더니 사오 일 전에 카마쿠라서 헤엄치는 걸 보았다. 저렇게 높은 코는 일본인 중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그럼에도 점원은 레디 오브 더 뱃지는 있습니다 하면서 정중히 인사를 했다. 아마 이 오똑코도 날이 시원해 도쿄서 나온 걸 테지.
 마루젠에 한 시간가량 있다 오랜만에 히요시쵸로 갔더니 키요시 혼자서 집을 보고 있었다. 입학 시험은 어땠냐고 물으니 "뭐 그럭저럭요"하고 말하며 짧은 머리를 쓰다듬더니 히죽히죽 웃었다. 그렇게 시간 때우기로 키요시 상대로 오목을 두었다. 다섯 판 중 네 판 모두 져버렸다.
 그러던 사이 다들 돌아와 같이 밥을 먹으며 별볼일 없는 대화를 나누었더니 야에코가 괜찮지 않냐며 산지 얼마 안 된 여름 오비를 보여주었다. 귀찮아서 "응, 좋네좋아."하고 말하자 일부러 차고 있던 오비를 풀고 "아, 차기 힘드네"하고 얼굴을 찌푸린다. "차기 힘들면 왜 샀어"하고 말하자 곧 "참견은"하고 토라져 버렸다.
 저녁에 미나미쵸에 전화를 걸어두고 돌아가려 했더니 키요시가 "오늘 밤에 다 같이 콘파루칸에 갈 생각인데 같이 가실래요?"하고 물었다. 야에코도 같이 가고 싶은 눈치였다. 이건 내가 신바시의 게이샤를 보지 못했으니 겸사겸사 데리고 가겠단 뜻이었다고 한다. 나는 야에코에게 "너랑 같이 가면 부부로 보니까 싫어"하고 말하니 뒤에서 "뭐야 정말"하는 말소리와 술잔 밑동처럼 입술을 삐죽거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소토보리센을 타고 방금 산 책을 적당히 펼쳐본다. 하루노부론이 나와 왓슨과 비교하는 게 재밌었다. 그렇게 책에 빠져 있으니 그만 환승해야 할 이이다바시서 내리지 못하고 신미츠케마저 가버렸다. 차장한테 그렇게 말하는 것도 내키지 않아 내려서 만세이바시행을 타고 일곱 시가 지나서야 겨우 미나미쵸에 이를 수 있었다.
 미나미쵸에서 밥을 먹으며 쿠메와 이야기를 주고 받았더니 곧 아홉 시가 되었다. 귀갓길에 야라이서 에도가와의 종점으로 나오니 공터서 한 남자가 아세틸렌 가스를 켜고 최면술 책을 팔고 있다. 그 차림이 꽤나 탁려풍발하여서 뭔가 싶어 앞으로 나서 물어보니 당신께 한 번 걸어보지요 하길래 재빨리 물러났다. 사람의 관심을 헛짚는 사람만큼 민폐인 것도 없다. 
 집에 돌아오니 집을 비운 동안 온 편지 중에 나루세 게 섞여 있었다. 뉴욕은 더우니 캐나다로 가겠다 적혀 있다. 그걸 읽고 있자니 오랜만에 나루세랑 함께 말꼬리를 붙잡아 가며 아옹다옹하고 싶어졌다.

 29일
 아침부터 낮 조금 전까지 일을 하고 기진맥진해져 밥을 먹고 목욕을 했다. 막연히 딱딱한 글자만 이어진 고서를 꺼내 읽고 있으니 아카기 코헤이가 카타비라 위에 줄무늬 하오리를 걸치고 찾아왔다
 아카기는 옛날부터 이태백을 좋아하여 장진주에는 Weltschmerz[각주:1]가 담겨 있다고 말하던 남자였으니 내가 읽는 책 중에 이태백이 이름이 없다는 걸 아니 나를 크게 경멸했다. 나도 가만히 지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더운 걸 참으며 조금 의논을 했다. 어차피 시간이나 대우려는 의논이니 이겨도 져도 지장은 없다. 그러던 사이 아카기는 "중국인 책에 붉은 방점을 찍는 게 뛰어나지. 일본인은 도무지 따라할 수 없으니 참 신기해"하고 별볼일 없는 것에 감탄을 했다. 붉은색 원을 그리는 것쯤은 나도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그런 소리를 해서야 금세 "그럼 한 번 해봐"할 거 같으니 "흐음, 그런가"하고 거리를 두었다.

 저녁이 되어 둘이서 목욕을 하고 지쇼켄에 밥을 먹으러 갔다. 한 잔의 술을 들면서 아카기에게 오오쿠로 키하치로란 남자가 만든 코우타 이야기를 했다. 무언가를 어떻게 해주십쇼하는 곤란한 코우타였다. 불평도 이야기할 당시엔 기억했는데 이제는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카기는 두세 잔의 술에 얼굴을 붉히고는 흐음, 들을 수록 볼품 없네 하고 그 작가를 크게 매도했다.
 가게를 나오는 길에 여종이 묘한 행등에 불을 붙여 현관까지 안내해주었다. 그 행등에 하얀 나방이 모여 들었다. 그게 굉장히 아름다웠다.
 바깥 공기를 쇠니 이대로 집에 가는 게 아까워졌다. 그래서 둘이 전철을 타고 사쿠라기쵸에 자리한 아카기의 집으로 향했다. 집을 보니 돌문이 있고 안에는 커다란 소나무도 있었다. 아카기에는 조금 아까운 집이지 싶어 야 집세는 얼마냐 하냐고 물어보니 뭐 생각보다 얼마 안 비싸하고 아주 돈이 많은 사람 같은 소리를 하며 시치미를 뚝 뗐다. 그렇게 등나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멋대로 기염을 토하고 있자니 아카기의 아내분이 나와 정중히 인사하기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러자 반대편 집 2층에서 무언가 악기를 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만들린인가 싶었더니 중반부터 타카기가 저건 고토라고 정정했다. 나는 코토란 걸 인정하기 싫어 아니 니겐킨이야 하고 따지고 들었다. 한동안 코토인지 니겐킨인지로 입씨름을 했는데 그러는 사이 악기 소리가 뚝 그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의 말이 그 사람에게 들린 게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몰라도 아카기는 이웃이란 관계상 좀 더 몸을 움츠렸어야 했다.
 돌아가면서 이케노하타의 전철을 탔더니 왼쪽 어금니가 조금 아파졌다. 혀를 대보니 흔들거리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아무래도 아카기의 웅변이 어금니에까지 울렸나 보다.

 30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치통이 어젯밤보다 더 심해졌다. 거울 앞에 서니 왼뺨이 많이 부풀어 올랐다. 좌우가 일그러진 얼굴은 확실히 보기 좋지 않았다. 그래서 오른뺨을 부풀리면 평균이 맞을까 싶어 그쪽으로 혀를 뻗어 보았다. 하지만 역시 얼굴은 왼쪽으로 더 일그러져 있었다. 적어도 오늘 하루는 이런 얼굴을 해야 하나 싶었더니 굉장히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밥을 먹고 혼고의 치과를 찾았더니 대뜸 어금니 하나가 빠진 일에 놀란 듯했다. 들어 보니 이 의사 선생님은 이제까지 치통을 겪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얼굴이 일그러진 나를 붙잡고 매서운 솜씨를 발휘할 리가 없다.
 돌아가는 길에 역소 앞의 고물상에서 청자 향로를 하나 발견해 얼마냐고 물었다. 색안경을 낀 가게 주인은 개벽 이래로 가장 지독한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더니 십 엔이라고 말했다. 누가 그런 불만 많은 주인에게 향로를 산단 말인가.
 그렇게 히로코지에서 담배와 복숭아를 사서 돌아왔다. 치통은 그럼에도 여전했다.
 점심을 대신해 아이스크림과 복숭아를 먹고 2층 마루에 누웠다. 영 기분이 좋지 않아 체온을 재보니 열이 8도 가량 있다. 베개를 얼음 베개로 바꾸고 위로 다시 얼음주머니 하나를 얹었다.
 그러자 두 시쯤 되자 후지오카 조로쿠가 놀러 왔다. 도무지 일어설 수가 없어서 옆으로 누운 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는 짧은 수염 끝자락을 잡으며 내일이나 모레 미타케에 논문을 쓰러 간다고 말했다. 조로쿠가 쓰는 논문이니 어차피 나 같은 건 읽어도 모르겠지 싶어서 또 칸트인지 뭐냐고 놀렸더니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럼 데카르트구나, 너 데카르트가 배 안에서 도둑맞은 일은 알아? 하고 스스로도 영문 모를 일을 대단하다는 양 말했더니 잘 모르겠다며 되려 경멸 당했다. 아마 내가 열 때문에 정신이 없는 거라 생각했겠지. 그 후 내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네 얼굴은 삼각정규를 옆으로 눕힌 듯한 얼굴인데 머리를 이렇게 기르면 미적 감각을 손해 보는 거라며 괜한 충고를 해주었다.
 조로쿠가 돌아 간 후 저녁으로 죽을 먹었는데 정말 맛이 없었다. 온몸이 나른해서 책을 읽어도 하품만 나왔다. 그러는 사이 어느 틈엔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눈을 떠보니 어느 틈엔가 모기장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열어두었던 창문으로 달빛이 드리우고 있다. 물론 소등도 되어 있었다. 나는 얼음 베개의 위치를 고치며 모기장 너머로 아름다운 하늘을 보았다. 그랬더니 요 삼 년 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이 머리에 떠올랐다. 어딘가 먼 곳에서 아마 행복하게 살고 있을 사람이다.
 나는 일어나서 문을 닫고 전등을 켜고 잠이 올 때까지 머리맡의 책을 읽었다.

 

 

 

  1. 감상적 염세 감정, 세계고(苦)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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