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선조님
선조님은 머리숱이 많지 않아 결혼은 못 하겠다고 각오하였다. 하지만 머리숱이 많지 않은 것 자체는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선조님은 피부가 드러난 머리에 이런저런 탈모약을 발랐다.
"하나 같이 광고만 못 하네요."
그렇게 말할 때도 목소리만은 좋았다. 때문에 일을 하는 틈틈이 잇츄부시를 연습해 만약 실력이 좋아지면 스승이 되는 것도 괜찮겠지 싶었다. 하지만 잇츄부시는 쉽지 않았다. 심지어 술버릇이 안 좋은 스승은 이따금 선조님을 붙잡고 잔소 이상의 잔소리를 하곤 했다.
"넌 거름통이라도 두드리며 진쿠라도 부르지 그러냐."
스승도 맨정신일 땐 결코 선조님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 들은 잔소리는 선조님을 울적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제가 뭐 단나슈처럼 할 수 있겠습니까."――선조님은 이따금 형한테도 그런 불평을 했다고 한다.
"소가 고로와 쥬로 중 누가 형일까요?"
마흔이 넘은 선조님은 '카타미오쿠리'를 배우는 사이에 진지하게 그런 물음을 했다. 모두가 대답하기를 당혹스러워했다. 모두가?――아니, '모두가'는 아니다. 겨우 초등학교에 들어 간 나는 곧장 '쥬로가 형이지요'하고 말해 되려 모두를 웃게 한 걸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스승이 그래서야 말이죠."
결국 선조님은 잇츄부시의 스승이 되지 못했다. 선조님은 지진으로 집도 불타버렸다고 한다. 심지어 한 때는 머리 상태도 좋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선조님의 머릿숱이 적은 것도 머리의 병 때문이지 싶었다. 선조님이 사용한 탈모약은 시중약만이 아니었다. 언젠가 선조님은 박쥐피를 머리에 한 가득 바르고 있었다.
"쥐 피도 좋다는데 말이죠."
선조님은 둥근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그런 말을 하셨다.
둘 텃밭
K 씨의 집 뒤에는 두 평 가량의 밭이 있었다. K 씨는 그곳에 채소 이외에도 퐁퐁달리아 따위를 심었다. 그 밭을 가로 막고 있는 건 하루에 대여섯 번 기차가 지나는 3 미터 가량의 제방이었다.
여름이 저물어 가는 어느 오후. K 씨는 이 밭에 나와 꽃을 보기 어려워진 퐁퐁달리아에 가위질을 했다. 그러자 기차가 제방 위를 단숨에 지나며 날카로운 비상 경적을 울렸다. 동시에 무언가 검은 게 밭구석으로 떨어졌다. K 씨는 그걸 보는 박자에 "또 닭이 당했구만"하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검은 깃털에 푸른 광택을 가진 미노루카종 닭이었다. 그뿐 아니라 계관 같은 것도 닭벼슬 같은 것도 똑똑히 보였다.
하지만 닭으로 보인 건 아주 잠깐이었다. K 씨는 선 채로 질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밭에 떨어진 건 사실 막 기차에 치인 스물네다섯 먹은 남자의 머리였다.
셋 타케 씨
타케 씨는 스물여덟 먹었을 적에 무언가에 기대고 싶은 욕망을 느겨(이 욕망을 낳은 원인이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다.) 당시 명성 높은 소설가였던 K 선생을 찾았다. 하지만 K 선생은 무슨 생각인지 현관 안에도 들이지 않고 격자 너머로 말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타케 씨는 격자 너머에 서서 사정을 설명했다.
"제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군요. T 씨를 찾아 보시죠."
T 선생은 기독교적 색채를 지닌 역시나 명성 높은 소설가였다. 타케 씨는 바로 그 날로 T 선생을 찾았다. T 선생은 현관에 고개를 내밀고는 "제가 T입니다. 그럼 이만."하고 말하고는 바로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타케 씨는 당황해 T 씨를 불러세워 다시 한 번 사정을 설명했다.
"그거 참 어려운 일이군요……글쎄요, U 씨를 찾아 보시죠?"
타케 씨는 세 번째로 U 선생을 찾았다. U 선생은 소설가가 아니었다. 명성 높은 기독교적 사상가였다. 타케 씨는 U 선생님에게 신앙을 배워갔다. 동시에 또 요즘에는 보기 드문 생활이 시작되엇다.
그건 겉보기엔 비누나 칫솔을 파는 장사였다. 하지만 타케 씨는 밥만 먹을 수 있으면 많은 짐을 들고 나가지 않았다. 대신 톨스토이를 읽거나 부손의 구집 강의를 읽거나 특히 성서를 필사하고는 했다. 타케 씨가 필사한 구약과 신약은 몇 천 장에 이르렀으리라. 어찌 되었든 타케 씨는 과거 스님이 법화경을 필사한 것처럼 맹렬히 성서를 필사해 갔다.
여름이 다가 온 어느 밤, 타케 씨는 짐을 진 채로 행상에서 돌아왔다. 그렇게 집 근처에 이르렀을 때 무언가 부드러운 걸 밟았다. 달빛에 비춰보니 한 마리 두꺼비였다. 타케 씨는 "내가 실수를 했군" 싶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침상 앞에 무릎을 꿇고는 "주님, 부디 그 두꺼비를 도와주시길"하고 열심히 기도를 했다. (타케 씨는 노상방뇨할 때도 풀초가 없는 곳엔 하지 않았다. 물론 그 탓에 한 어린 나무가 말라버린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다음 날 아침, 타케 씨를 깨운 건 평소보다 빠른 우유 배달이었다. 배달부는 타케 씨의 얼굴을 보고는 보랏빛 병을 내밀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요앞 길을 지나는데 짓밟힌 두꺼비 한 마리가 풀 안으로 들어가더라고요. 두꺼비는 보통 강한 게 아닌가 봅니다."
타케 씨는 우유 배달이 돌아간 후 바로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이는 타케 씨께 직접 들은 이야기다. 나는 현대에도 이런 기적이 이뤄지는 걸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다. 단지 현대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내 생각은 타케 씨의 생각과――이 이야기를 한 타케 씨의 생각과 반대되리라. 하지만 나는 불행히도 타케 씨처럼 신앙을 지니지 못했다. 따라서 생각이 다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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