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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유유장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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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의 어느 오후, 우리 세 사람은 대화를 하며 소나무 안의 작은 길을 걸었다. 작은 길에선 인기척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단지 이따금 소나무 가지서 직박구리의 울음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고흐의 시체를 얹은 당구대야. 그 위에서는 지금도 공을 튕기고 있지……"
 서양에서 돌아온 S 씨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러던 사이 우리는 희미하게 이끼가 낀 화강암 문앞에 이르렀다. 돌에 꽂힌 푯말에는 "유유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문 안쪽에 자리한 집은――초가지붕의 서양관은 고요히 유리창문을 닫아두고 있었다. 나는 요즘 들어 이 집에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 그 중 하나는 집이 너무나도 깔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도 황폐하기 짝이 없는 주위 경치에――제멋대로 법은 정원의 풀이나 물이 마른 연못서 많은 정취를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 번 안에 들어가 볼까."
 나는 앞장서 문안으로 들어갔다. 돌길 양옆의 소나무 아래에는 히메지버섯 따위도 희미하게 붉은 빛을 머금고 있었다.
 "이 별장 주인도 지진 이후로 안 오게 됐지……"
 그러자 T 군은 현관 앞 싸리를 가만히 보더니 내 말에 반대했다.
 "아니, 작년까지는 왔을 거야. 작년에 손을 보지 않았으면 싸리가 이렇게 못 피거든."
 "근데 이 잔디 좀 봐. 벽에서 흙이 떨어져 있잖아. 이건 지진 때 떨어진 게 그대로 남은 게 분명해."
 나는 지진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은 젊은 사업가를 상상했다. 송악이 뒤엉킨 코티지풍 서양관과――특히 유리 창문 앞에 심어진 종려나 파초 몇 그루와 조화를 이루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T 군은 자세를 낮추어 잔디 위 흙을 줍더니 다시 한 번 내 말에 반대했다.
 "이건 벽에서 떨어진 흙이 아냐. 원예용 부식토지. 심지어 질이 꽤 좋은데."
 우리는 어느 틈엔가 커튼을 친 유리창 앞에 서있었다. 커튼은 물론 밀랍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집 안은 안 보이려나."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몇몇 창문을 들여다보며 걸었다. 커튼은 엄중히 '유유장'의 내부를 감추고 있었다. 하지만 마침 남쪽으로 놓인 창문틀 위에는 약병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하하, 요오드제를 쓰는군――"
 S 씨가 우리를 돌아보았다.
 "이 별장 주인은 폐결핵 환자인 거야."
 우리는 참억새를 가르며 '유유장'의 뒤로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붉게 녹슨 아연 헛간 하나가 자리해 있었다. 헛간 안에는 스토브 하나, 서양풍 책상이 하나, 그리고 머리나 팔이 없는 석고 여인상 하나가 있었다. 특히 여인상은 먼지로 가득 뒤덮인 채 스토브 앞에 누워 있었다.
 "그럼 그 폐결핵 환자는 위안 삼아 조각이라도 하고 있었던 거려나."
 "이것도 역시 원예용인 거지. 머리에 난 따위를 심는 식으로……저 책상이나 스토브도 그래. 이 헛간은 창도 유리니까 온실 대신 썼던 거겠지."
 T 군의 말은 지당했다. 실제로 작은 책상 위에는 난을 심는데 쓰는 코르크판의 파편도 놓여 있었다.
 "어라, 책상다리 밑에 빅토리아 월경대 캔도 굴러다니는군."
 "저건 부인의……아니, 여종 걸지도 모르지."
 S 씨는 조금 쓴웃음 지으며 말했다.
 "그럼 이것만은 확실한가――이 별장 주인은 폐결핵이고 원예를 즐겼으며……"
 ""작년쯤에 죽었겠지."
 우리는 다시 소나무 안을 걸어 '유유장' 현관으로 돌아왔다. 참억새가 어느 틈엔가 바람에 살랑이고 있다.
 "우리가 살기엔 너무 넓나――그나저나 마음에 드는 집인걸……"
 T 군은 계단을 오르며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했다.
 "이 벨은 지금도 울리려나."
 벨은 송악 안에 자리해 있었다. 나는 벨에――상아로 된 버튼에 손을 얹었다. 아쉽게도 벨은 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만에 하나 울렸다면――나는 어쩐지 꺼림칙해져 두 번 다시 누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 집 이름이 뭐였더라?"
 S 씨가 현관에 선 채로 대뜸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물었다.
 "유유장悠々荘?"
 "응, 유유장."
 우리 세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멍하니 현관에 서있었다. 마구잡이로 자란 정원 잔디나 말라버린 연못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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