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시마시마라는 거리의 숙소로 도착한 건 오후――저녁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숙소의 마룻기틀 위에는 서른 가량의 유카타 차림의 남자가 어린대나무 피리를 울리고 있었다.
그런 귀에 거슬리는 높은 소리를 들으며 먼지투성이 짚신의 끈을 풀었다. 그때 여자 하나가 얕은 바가지에 세족용물을 뜨러 왔다. 차갑고 맑은 물 밑바닥에는 거친 모래가 잠겨 있었다.
2층 복도의 차양에는 햇살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탓인지 다다미와 후스마도 잔혹할 정도로 축 처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름옷을 유카타로 바꾼 나는 베개를 꺼내 달라해 옆으로 누운 후 어제 도쿄를 떠날 때 산 코단 타마기쿠도로를 조금 읽었다. 읽으면서 유카타의 풀칠 냄새가 종일 거슬렸다.
해가 지가 방금 전 여자가 칠이 벗겨진 쟁반에 목욕찰 하나를 얹어서 찾아왔다. 그러고는 욕탕은 저쪽이니 한 번 씻으러 오란다.
그렇게 노끈 신발을 신고 돌길 너머에 있는 작은 욕탕으로 향했다. 욕탕에는 겨우 두 척 가량의 탈의실 밖에 없었다.
손님은 나 하나뿐이었다. 어두컴컴한 목욕통에 몸을 담그고 있자니 위에서 뚝하고 무언가가 떨어졌다. 바깥 조명을 통해 보니 노래기란 벌레였다. 손바닥의 물 위에서 그 갈색 벌레가 또렷이 신축하는 모습은 나를 묘하게 쓸쓸하게 했다.
욕탕에서 돌아 와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 나는 여자에게 야리가타케 안내자를 한 명 구해달라 부탁했다. 여자는 바로 알겠다며 대나무 램프에 불을 붙이며 한 남자를 2층으로 불렀다. 방금 전에 어린대나무 피리를 불던 남자였다.
"야리가타케라면 이 사람이 구석 먼지까지 다 알고 있습니다."
여자는 그런 농담을 하면서 다 먹은 접시를 치웠다.
나는 그 남자에게 여러 산을 물었다. 야리가타케를 넘어 히다의 가마타 온천으로 갈 수 있느냐. 곧 분화한단 소문이 있다, 야케타케에 오를 수 있느냐. 야리가타케의 정상을 타고 호타카야마에 갈 수 있는가――그런 게 주된 문제였다. 남자는 갑갑하다는 양 몸을 움츠리고는 적당히 간단하다고 대답했다.
"나리께서 걸을 수만 있으면 어디든 문제없습니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죠슈의 미야마, 아사마야마, 키소노온타케, 또 코마케타케――그 외에 산이라 이름 붙여야 할 산에는 한 번도 오른 적이 없는 나였다.
"그렇군. 일단 산악회 녀석들만큼 걸으면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두겠네."
남자가 내려간 후 나는 곧장 마루에 이불을 깔게 하여 오래된 모기장 안에 누웠다. 문을 열어둔 복도 밖에는 어두운 산에서 유일하게 한 점, 숯장이의 붉은 불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건 내 마음에 향수라 해야 좋을 희미한 쓸쓸함을 옮겨다 주었다.
이윽고 여자가 문을 닫으러 왔다. 문이 닫힘에 따라 산위의 별과 달이 내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침구 주위에는 낡은 모기장에 사방을 가로막힌 행등 정도의 조명만 남았다. 나는 눈을 크게 뜬 채로 낡은 모기장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어린대나무 피리 소리가 희미하게 아래층에서 들려왔다.
둘
――산옆을 하나 굽으니 대뜸 내 발밑으로 몇 마리 동물이 지나갔다.
"젠장, 철포만 있으면 안 놓쳤는데."
안내자는 발을 멈추고 원망스럽다는 양 혀를 차며 길거리의 커다란 상수리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상수리나무의 어린잎이 겹쳐져 길 위의 하늘을 가로막은 가지에는 두 아기 원숭이를 끄는 부모 원숭이가 조용히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신기하단 눈초리로 그 세 원숭이가 천천히 가지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안내자에게 원숭이는 원숭이기 이전에 사냥감이었다. 그는 떠나기 아쉽다는 양 상수리나무 가지를 올려다보며 괜히 돌멩이를 주워 던지고는 했다.
"이봐, 가지."
나는 그렇게 그를 재촉했다. 그는 아직 원숭이를 돌아보며 마지못해 걸음을 옮겼다. 나는 조금 불쾌했다.
길은 점점 험해졌다. 하지만 말이 지나는지 말똥이 곳곳에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굴뚝나비가 적갈색 날개를 맞춘 채로 몇 마리나 머물러 있었다.
"여기가 도쿠고 언덕입니다."
안내자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작은 가방 외에는 아무런 짐이 없는 몸이었다. 하지만 그는 식기나 식량 이외에도 내 모포나 외투 같은 걸 어깨에 높게 짊어매고 있었다. 그럼에도 언덕에 오르자 그와 나 사이의 거리는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30분 후, 기어코 나는 나 홀로 산길을 허덕이며 오르는 여행자가 되었다. 옅은 햇살에 증발된 언덕 공기는 꺼림칙한 정적을 품고 있었다. 말똥에 모여 있는 굴뚝나비와 돗자리로 부채질하며 오르는 나――그게 이 급한 길 위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니 무거운 날개 소리가 나서 검푸른 말파리 한 마리가 내 손등 위에 멈추었다. 그러더니 그곳을 날카롭게 찔렀다. 나는 반쯤 기겁을 하며 바로 그 말파리를 때려 죽었다. "자연은 내게 적의를 가지고 있다"――그런 미신 같은 생각이 나를 한 층 더 두근거리게 했다.
나는 아픈 손을 문지르며 억지로 걸음을 재촉했다……
셋
그날 오후, 우리는 물이 차가운 아즈사가와의 물줄기 속을 걸었다.
강을 메우고도 남을 밀림 위에는 히다시나노사카이의 산들이――특히 살짝 구름 낀 호타카야마가 높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물을 건너며 문득 도쿄의 어떤 찻집을 떠올렸다. 그 가게에 걸린 기후제등도 눈에 선한 듯했다. 하지만 나를 두르고 있는 건 인기척이 끊긴 계곡이었다. 나는 묘한 모순을 머리 한가득 느끼며 무뚝뚝한 안내자의 엉덩이를 쫓아 이윽고 언덕을 두르고 있는 얼룩조릿대 안에 이르렀다.
언덕에는 커다란 너도밤나무나 전나무가 어두운 숲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가끔 얼룩조릿대의 숫자가 줄어들면 안피로 보이는 꽃이 붉게 핀 습기가 많은 꽃 사이에 방목 중인 소와 말의 발자국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척의 판자 오두막 한 척이 얼룩조릿대 사이서 나타났다. 이게 코지마 우스이 씨 이후로 야리가타케 등산자가 하룻밤 머무는 명성 높은 카몬지 오두막이었다.
안내자는 오두막의 문을 열고는 짊어매고 있던 짐을 내려놓았다. 오두막 안에는 커다란 이로리囲炉裏가 쓸쓸한 잿색을 퍼트리고 있었다. 안내자는 천장에 걸려 있던 긴 낚싯대를 꺼내고는 나를 홀로 둔 채 저녁 반찬을 구하기 위해 아즈사가와의 산천어를 낚으러 갔다.
나는 돗자리나 가방을 내려두고 잠시 오두막 앞을 어슬렁거렸다. 그러고 있자니 얼룩조릿대 안에서 커다란 얼룩소 한 마리가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조금 불안해져 오두막 현관 쪽으로 물러났다. 소는 촉촉이 젖은 눈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목을 옆으로 젓고는 다시 한 번 얼룩조릿대 안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 소의 모습서 사랑과 혐오를 동시에 느끼며 멍하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두운 하늘에서 저녁놀이 사라져 갈 쯤, 우리는 이로리의 불을 둘러싸고 대나무 꼬치에 꽂아 구운 산천어를 반찬 삼아 냄비로 지은 밥을 먹었다. 그러고는 모포로 추위를 막으며 자작나무껍질을 감아 만든 원시적 휏불을 붙인 채로 밤이 장막을 내린 후에도 이런저런 산의 이야기를 했다.
자작나무의 불과 나무 밑동의 불――이 두 종류의 불빛은 이미 등불 문명이 사라져 가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나는 오두막의 판자벽에 짙은 불 두 개가 만든 내 그림자를 바라보며, 산 이야기가 끊겼을 적에는 새삼스럽게 원시 시대의 일본 민족의 생활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넷
――잡목이 겹쳐진 걸 밀어내며 다시 한 번 햇살 빛을 받으니 안내자가 나를 돌아보며
"여기가 아카자와입니다"하고 말했다.
나는 사냥모를 들어 올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았다.
내 앞에 누운 건 수많은 거석이었다. 그런 게 좁은 계곡의 급한 경사를 가득 메우고 있으니 하늘을 가른 산봉우리 너머까지 눈이 닿는 한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만약 형용의 말을 붙이자면 작은 우리 두 사람은 먼 산꼭대기서 흐르는 큰돌의 홍수위에 있는 꼴이었다.
우리는 이 큰돌로 넘치는 계곡을――"장백제비꽃"이 핀 계곡을 벌레처럼 기어 올랐다.
잠시 괴로운 걸음을 계속한 후, 안내자는 대뜸 지팡이를 들고 우리 왼쪽으로 이어져 있는 절벽 위를 가리키면서
"보세요. 저기 푸른 멧돼지가 있군요."하고 말했다.
나는 그의 지팡이를 따라 절벽 위를 보았다. 그러자 거칠게 벗겨진 산피부가 정점 가까이서 소나무의 어두운 녹색을 두른 곳에 작은 동물 한 마리가 보였다. 그게 푸른 멧돼지란 별명을 가진 일본 알프스에 사는 영양이었다.
이윽고 해가 질 즘, 우리 주위에는 서서히 잔설의 색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돌 위에 가지를 늘어트린 쓸쓸한 누운잣나무 무리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따금 돌 위에 발을 멈추고 어느 틈엔가 모습을 드러낸 야리가타케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꼭대기는 커다란 돌살촉처럼 저녁노을의 여담이 사라져 가는 하늘을 한사코 검게 잘라내고 있었다. '산은 자연의 시작이자 끝이다'――나는 그 꼭대기를 바라볼 때마다 이런 문어체의 감상을 반드시 마음속으로 되풀이했다. 그건 분명 이전에 읽은 러스킨의 책 안에서 나오는 말이었다.
그러는 사이 차가운 안개가 어두워진 계곡 아래서 큰돌과 누운잣나무 위를 기어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그렇게 주위를 두르고는 옅은 비를 뒤섞은 바람이 우리 얼굴에 불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산위의 추위를 피부로 느끼면서 한 시라도 발리 오늘 밤 잠들 돌 아래에 도착하길 바라며 열심히 급경사를 올라갔다. 하지만 문득 이상한 소리가 들려 놀랐다. 저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자 그다지 높지 않은 누운잣나무 덤불 위를 흐르 듯이 날아가는 갈색 새 한 마리가 있었다.
"저 새는 뭔가?"
"뇌조입니다."
비에 젖은 안내자는 강한 걸음으로 걸으며 여전히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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