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눈물의 골짜기서 당신에게 기도합니다……당신의 연민의 눈초리로 우리를 두루 보시옵소서……한없이 유연하시고 더할 나위 없이 자애로우시고 아름다우신 '비루젠 1 산타 2 마리야' 님'――
"이건 어떻습니까?"
타시로 군은 그렇게 말하며 마리아관음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 보였다.
마리아 관음이란 키리시탄 박해 시대의 천주교도가 한동안 성모 마리아를 대신해 예배를 올렸던 관음상이다. 대부분은 백자로 만든 관음상을 사용했다. 오늘 타시로 군이 보여 준 건 그런 마리아관음 중에서도 박물관의 진열실이나 일반적인 수집가들의 캐비닛 안에서 볼 법한 물건은 아니었다. 타시로가 보여 준 마리아관음은 얼굴을 제외하고는 전부 흑단으로 칠한 일 척 가량의 입상이었다. 그뿐 아니라 목 근처에 두른 십자가 형태의 영락도 금과 청자를 상감한 지극히 정묘한 세공인 듯하다. 그런 데다가 얼굴은 아름다운 상아 조각이며 입술에는 산호 같은 한 점의 붉은색마저 가미되어 있다……
나는 조용히 팔짱을 낀 채로 한동안 이 검은 옷 성모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바라보는 사이에 상아 얼굴 어딘가에 괴상한 표정이 떠오른 것만 같았다. 아니, 괴상하단 말로는 부족하다. 내게는 그 얼굴 전체가 어떤 악의를 가진 비웃음을 띄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떻습니까."
타시로 군은 갖은 수집가에게 공통된 긍지 섞인 웃음을 지으며 테이블 위의 마리아관음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다시 한 번 이렇게 반복했다.
"이건 보기 드문 물건이군요. 하지만 이 표정이 어쩐지 꺼림칙하지 않나요?"
"다 좋을 수야 없지요. 그러고 보니 이 마리아관음에는 묘한 전설이 붙어 있답니다."
"묘한 전설이라뇨?"
나는 저도 모르게 마리아관음에서 눈을 떼 타시로 군의 얼굴을 보았다. 타시로 군은 의외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마리아관음을 테이블 위에서 들어 올렸지만 곧 다시 원래 위치에 놓았다.
"네, 왜 전화위복이란 말이 있지요? 이건 반대로 전복위화를 일으키는 꺼림칙한 성모랍니다."
"설마요."
"소유주한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니까요."
타시로 군은 의자에 앉아서는 정말로 의미심장하다 형용해야 할 음울한 눈초리를 지으며 나도 의자에 앉으라며 손짓했다.
"정말인가요?"
나는 의자에 앉는 동시에 저도 모르게 괴상하단 목소리를 냈다. 타시로 군은 나보다 1, 2년 전에 대학을 졸업한 수재라 명성 높은 법학사이다. 또 내가 아는 한 소위 초자연현상에는 추호도 믿지 않는 교양 풍부한 신사상가이다. 그런 타시로 군이 이런 말을 하는 이상 그 묘한 전설이란 것도 마냥 황당무계한 괴담은 아닐 터이다――
"정말인가요?"
내가 다시 한 번 확인을 받자 타시로 군은 성냥불을 천천히 파이프로 옮겼다.
"글쎄요. 그건 선생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지요. 어찌 되었든 이 마리아관음에는 꺼림칙한 사연이 있다고 합니다. 지루하지 않다면 이야기해드리죠――"
이 마리아관음은 제가 구하기 전에 니이가타켄의 어느 거리에 자리한 이나미라는 재산가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골동품으로 가지고 있던 게 아니라 집안의 번영을 기도하고 위한 종문신이었지만요.
그 이나미의 당주가 제 동기 법학사였는데 이 사람은 회사는 물론이요 은행에도 손을 뻗었다는 뭐 보통 사업가가 아닙니다. 그런 관계상 저도 한두 번 이나미를 위해 편의를 봐준 적이 있지요. 그 보답이었을까요. 이나미는 어느 해 상경하는 김에 집안의 가보인 이 마리아관음을 제게 주었습니다.
저의 소위 묘한 전설이란 것도 그때 이나미의 입으로 들은 겁니다. 그 본인은 물론 그런 진실을 믿는 건 아닙니다. 다만 어머니께 들은 대로 이 성모의 사연을 설명했을 뿐이지요.
듣자하니 이나미의 어머니가 열 살인가 열한 살인가 했던 가을이라고 합니다. 시대를 생각해 보면 검은 배가 우라가항을 소란스럽게 한 카에이 말년인데――그 어머니의 동생인 모사쿠란 여덟 살 가량 되는 아이가 큰 홍역에 걸렀지요. 이나미의 어머니는 오에이란 이름이셨는데 2, 3년 전의 역병으로 부모를 잃고 그 모사쿠와 남매 둘이서 일흔 넘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그러니 모사쿠가 큰 병에 걸리니 이나미에겐 증조모 되는 미망인이 얼마나 걱정하셨겠습니까. 아무리 의사가 손을 써봐도 모사쿠의 병은 무거워지기만 했고 일주일도 걸리지 않아 오늘내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어느 밤의 일입니다. 오에이가 자주 자는 방에 대뜸 할머니가 들어 오더니 자고 있는 걸 억지로 깨워 남의 손도 빌리지 않고 혼자 기모노로 갈아 입혔다고 합니다. 오에이는 아직 꿈이라도 꾸는 듯이 정신이 멍했는데 할머니는 곧장 그 손을 끌고 등으로 어두컴컴하고 인기척 없는 복도를 밝히며 낮에도 자주 들어가지 않는 광으로 오에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광 안쪽에는 옛날부터 화재 방지를 기원하는 여우가 모셔져 있는 백목신궁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오비 안에서 열쇠를 꺼내 이 신궁 문을 열었는데 등으로 비춰 보니 낡은 비단 장막 뒤에 서있는 게 다름 아닌 이 마리아관음이었던 겁니다. 오에이는 그걸 본 순간 불쑥 귀뚜라미 울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한밤중의 광이 무서워져 저도 모르게 할머니의 다리에 매달린 채로 울먹울먹 울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평소와 달리 오에니가 우는 걸 신경도 쓰지 않고 그 마리와관음 신궁 앞에 앉아 이마에 십자를 긋더니 오에이가 이해할 수 없는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십 분 가량 이어졌을까요. 할머니는 조용히 손녀를 안아 올리고는 무서워하는 걸 달래어 자기 옆에 앉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오에이도 알 수 있도록 흑단의 마리아관음에 이런 기도를 올리기 시작합니다.
"비루젠 산타 마리아 님, 제가 하늘과 땅에 이렇게 기도 올리는 건 올해로 여덟 살 먹은 손자 모사쿠와 여기 데리고 온 누나 오에이뿐입니다. 오에이도 보다시피 아직 시집보낼 나이가 아닙니다. 만약 지금 모사쿠에게 혹시 모를 일이 생기면 이나미 집안은 내일 당장이라도 뒤를 이을 사람이 끊기고 맙니다. 부디 그런 불상사가 없도록 모사쿠의 목숨을 지켜주시옵소서. 그게 만약 저따위의 신앙으로는 미치지 못할 일이라면 하다못해 제 숨이 붙어 있는 한이라도 모사쿠의 목숨을 도와주시길. 저도 이런 나이이니 영혼(아니마)를 천주(데우스)에게 바치는 것도 그리 머지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손자인 오에이도 어지간한 재난이라도 없는 한 대강 먹을 대로 먹을 테지요. 부디 제가 눈을 감을 때까지만이라도 괜찮습니다. 죽음의 천사(안죠)의 검이 모사쿠의 몸에 닿지 않도록 자비를 베풀어주시길."
할머니는 머리를 조아리며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이 끝난 순간, 머뭇머뭇 고개를 든 오에이의 눈에는 기분 탓인지 마리아관음이 작게 웃는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오에이는 물론 작은 목소리를 내며 다시 할머니의 다리에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되려 만족스레 손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자, 돌아가자꾸나. 마리아 님은 분명 이 할미의 기도를 들어주실 테니까."
그렇게 몇 번이나 반복하셨다 합니다.
자, 날이 밝아 보니 정말로 할머니의 기도가 이뤄지기라도 한 걸까요. 모사쿠는 어제보다 열이 떨어졌고 멍했던 정신도 서서히 개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의 기쁨은 말로 하기 힘들지요. 듣자 하니 이나미의 어머니는 그때 본 할머니가 웃으면서 우는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러던 사이 할머니는 병에 걸린 손자가 새근새근 잠든 걸 보고 자신 또한 연이은 간병의 피로를 좀 풀 생각이었겠지요. 손자의 옆방에서 간만에 잠에 들었다고 합니다.
그때 오에이는 구슬놀이를 하면서 할머니의 머리맡에 앉아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어지간히 지쳤는지 마치 죽은 사람처럼 푹 잠드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래저래 한 시간가량 지나니 모사쿠를 간호하던 나이 먹은 여종이 후스마를 열고 "아가씨, 안주인님 좀 깨워주세요"하고 급하게 말하던 것이었습니다. 오에이는 어린아이니까 바로 할머니 옆으로 가서 "할머니, 할머니"하고 소매를 잡아당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바로 눈을 뜨는 할머니가 오늘만은 아무리 불러도 답을 할 기색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던 사이 여종도 의아하다는 양 방을 건너왔는데, 할머니의 얼굴을 보자마자 미치기라도 한 것처럼 대뜸 그 옷에 매달려 "안주인님, 안주인님"하고 오열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눈 주위에 희미한 보라색을 띄운 채로 역시나 미동도 않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여종이 황급히 문을 열더니 색이 가신 얼굴로 "안주인님――도련님이――안주인님"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 여종이 말한 "도련님이――"하는 말은 오에이의 귀에도 모사쿠의 상태가 달라진 걸 알리는 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제는 머리맡에서 울며 널브러진 여종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여전히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지요……
모사쿠는 그로부터 십 분도 되지 않아 숨을 거두었습니다. 마리아관음은 약속대로 할머니가 살아 계신 동안은 모사쿠를 죽이지 않은 셈이지요.
타시로는 이런 이야기를 끝내고는 다시 음울한 얼굴을 들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습니까. 선생님께는 이 전설이 정말로 있었던 거 같지 않나요?"
나는 망설여졌다.
"글쎄요――하지만――어떨까요."
타시로 군은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이윽고 연기가 꺼진 파이프에 다시 한 번 불을 옮겼다.
"저는 정말로 있었던 일이라 생각합니다. 단지 그게 이나미 가문의 성모 탓인지는 의문이지요――그러고 보니 선생님께서는 이 마리아관음의 받침에 적힌 글을 읽지 못 하셨겠죠. 여기 보세요. 여기 새겨진 영어를요――DESINE FATA DEUM LECTI SPERARE PRECANDO<rt> "그대의 기도가 신들이 정한 바를 바꾸리라 바라지 마라"는 뜻이죠</rt>……"
나는 이 운명 그 자체 같은 마리아관음에 저도 모르게 꺼림칙한 시선을 보냈다. 성모는 흑단 옷을 두른 채로 역시 아름다운 상아 얼굴에 어떤 악의를 두른 웃음을 영원히, 냉담히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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