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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야리가타케 등반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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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카자와

 잡목으로 이루어진 어두운 숲을 나오자 안내자가 여기가 아카자와란다. 더위와 피로로 눈이 침침해진 나는 이제까지 땅만 보며 걸었다. 축축한 이끼 사이에 해오라비난초 같은 작은 보라색 꽃이 핀 걸 보았다. 조릿대 안에 토끼 똥이 하얗게 구르고 있는 걸 보았다. 하지만 당최 숲 안을 지나는 건지 덤불 속을 지나는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저 무작정 바위투성이 길을 오른 것만 기억하고 있다. 그런 상황서 "여기가 아카자와입니다"하는 말을 듣느니 이거 참 살았지 싶었다. 그렇게 고개를 들어 이제까지 우리가 걸은 게 무성한 잡목숲이란 걸 인식했다. 안심하자 불쑥 사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눈앞에는 높은 산이 우뚝 솟아 있다. 높은 산이라 해도 평범하게 높기만 한 산은 아니다. 산의 표면은 하얀색에 가까운 회색이다. 그 회색에 종횡의 주름이 있고 움푹 파인 곳은 회색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튀어나온 곳은 격한 한여름 햇살로 눈이 쌓여 있나 싶을 정도로 하얗게 빛나 보인다. 산의 팔 할 가량이 회색 바위고 나머지는 검게 물든 녹색을 띄엄띄엄 두르고 있다. 그런 녹색이 세로로 M자 형태를 하여 산피부를 덮고 있는 게 어쩐지 황량함을 연상케 했다. 이런 산이 병풍을 두른 것처럼 이어진 위에는 옅은 노란색의 직물 같은 빛을 두른 푸른 하늘이 자리해 있다. 푸른 하늘에는 열과 빛과 어둠을 두른 녹아내릴 거 같은 하얀 구름이 강철을 갈고닦은 것처럼 빛나 보랏빛 납색의 그림자를 산의 정상에 걸어두고 있다. 산에 둘러싸인 얇고 긴 계곡은 돌로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해도 좋다. 햇살을 반사하거나 붉은 잉크 항아리 같은 형태를 하고 있거나 직팔면체로 각지어 있거나 일그러진 공처럼 둥근 크고 작은 화강암이 다양하게 좁은 계곡의 급한 경사를 가득 채우고 있다. 돌의 홍수. 조금 우습지만 돌의 홍수란 말이 용납될만한 광경이었다. 위를 올려다보면 풀 하나의 푸름에도 꽃 하나의 붉음에도 물들지 않은 돌의 연속이 저 먼 곳까지 이어져 있다. 가장 먼 돌은 게 껍데기만 한 크기로 보인다. 그런 게 가까워지면서 점점 커지더니 우리 발밑에 이르러서는 높이가 다섯 척 정도 되는 회색의 사각 돌이 되었다. 황폐와 적막――참으로 원시적이면서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는 강한 힘이 이 양쪽 산과 그 사이에 놓인 계곡 위에서 움직이는 것만 같다. 안내자가 "아카자와의 오두막이란 게 저거입니다"하고 말한다. 우리가 선 위치보다 조금 낮은 곳에 베개 같은 돌이 놓여 있다. 그게 또 굉장히 크다. 동물원의 코끼리 다리와 코를 잘라 몸통만 서너 개 연결한 것 정도는 될지 모르겠다. 그런 돌이 반쯤 올라와 있고 아래엔 모닥불을 피운 흔적이 있다. 검은 재와 하얀 돌이 산처럼 쌓여 있다. 저 돌 아래에서 자는 모양이다. 밤중에 모종의 박자로 저 돌이 뒤척거리기라도 하면 아래에 있는 사람은 납짝쿵해질 거 같다. 계곡 아래쪽은 이 큰 돌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눈앞에 펼쳐진 건 단지 길고 난잡한 돌의 행렬, 머리 위를 뒤덮은 거 같은 회색 산들. 그리고 이 모든 걸 강하게 비추는 한여름의 하얀 햇살뿐이다.
 자연이란 걸 고스란히 본 것만 같아 나는 기어코 격한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침 세 시

 자, 가자. 나카하라가 말한다. 가자고 대답하며 장갑을 끼고 있자니 나카하라가 먼저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번 더 가자고 말하니 나카하라의 발은 내 머리보다도 높은 곳에 있었다. 위를 보니 어두컴컴한 가운데 한 여름옷의 뒷모습이 비틀비틀 좌우로 흔들리며 올라간다. 나도 지팡이를 짚고 뒤를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오르기 시작하여 조금 놀랐다. 말이 길이지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오우가시에 참치가 달린 것처럼 난잡히 구르는 돌 위를 깡총깡총 뛰어오른다. 가끔 흔들거리는 녀석이 있다. 어라 싶어서 다음 돌에 발을 뻗으면 또 흔들거린다. 어쩔 수 없어 네 발로 기다시피해 원숭이 같은 자세를 취해 오른다. 그런 데다가 아직 어두워서 잘 판별이 가지 않는다. 그저 어두운 가운데 희미하게 하얀 게 하늘하늘 올라가는 걸 적당히 따라갈 뿐이다. 조마조마하기 짝이 없다. 더군다나 굉장히 춥다. 어젯밤 뜬 버선이 오늘 아침에는 딱딱하게 굳어 있다. 손으로 돌부리를 붙잡을 때마다 추위가 털실 장갑 너머로 전해진다. 코끝이 차가워져 숨이 헐떡여진다. 하하 말할 때마다 입에서 하얀 서리가 나온다. 도중에 돌아보니 계곡 밑바닥까지 검은 게 이어져 그 도중에 하얗고 둥근 것과 얇고 긴 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이"하고 부르니 밑에서도 "어이"하고 대답한다. 어릴 때에 우물에 어이하고 말하면 어이하고 울린 게 떠오른다. 둥근 건 시무라의 밀짚모자이고 얇고 긴 간 나카즈카의 유카타였다. 검은 건 계곡 밑바닥에서 올라와 말의 등처럼 하늘을 덮는다. 그런 가운데 머리 위 멀리서 마름의 꽃잎의 뾰족한 부분을 위로한 듯한 자조개껍데기 무더기에서 나오는 흑요석 화살촉 같은 형태를 한 게 야리가타케고, 좌와 우에 양치잎 같은 고저를 가진 걸 길게 이은 게 시나노와 비탄의 연산이다. 하늘은 그 위에서 어두컴컴함을 두른 채 남색으로 물들어 별이 크고 밝게 백호 부처상처럼 빛나고 있다. 야리가타케의 반대편에는 달이 아직 남아 있다. 칠 월의 달로 노란빛을 머금고 있다. 주위는 조용하다. 쥐 즉은 듯한 조용함, 그런 생각이 든다. 돌을 떨구니 데굴데굴하는 소리가 한동안 들리더니 이윽고 다시 조용해진다. 길이 언송 안으로 들어가자 걸을 때마다 습하고 둔하며 무거운 소리가 들린다. 불쑥 꺅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싶었더니 안내자가 "뇌조입니다"하고 말했다. 형태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어둠 속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릴 뿐이다. 사람을 저주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조용한 두려움을 품은 절경의 대기를 뚫고 들린 뇌조의 목소리는 어쩐지 어떤 상징처럼도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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