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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번역413

부족한 자신 - 다자이 오사무 본지(아사히 신분)에서 나가쵸 선생님께서 제 보잘것없는 작품을 열거하며 현대 신인의 통성을 지적하셨습니다. 다른 신인 작가에게 책임을 느꼈기에 이렇게 한 마디 합니다. 고금서 일류 작가란 작인이 확실하여 그 실감이 강하고 따라서 그곳에 흔들리기 어려운 어떤 자신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반면 지금의 신인은 그 작인에 자신이 없어 흔들리고 있다. 그런 말씀은 그야말로 날카로우며 정확하게 허를 찌르신다고 느낍니다. 자신을 가지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자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저희는 결코 나태하지 않습니다. 무뢰한 생활도 보내지 않습니다. 조용히 독서를 하고 있을 터입니다. 하지만 노력과 함께 끝내 자신을 잃고 맙니다. 저희는 그 원인을 이래저래 지적하며 죄를 사회에게 전가하지도 않습니다... 2022. 1. 2.
고쇼가와라 - 다자이 오사무 숙모님이 고쇼가와라에 계셔서 어릴 적에 자주 놀러갔습니다. 아사히자의 무대도 보러 갔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가 4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분명 토모에몬이었을 겁니다. 우메노요시베를 보고 울었습니다. 회전 무대를 난생 처음 보았을 때는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 설 정도로 놀랐습니다. 이 아사히자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재로 전소했습니다. 그때의 불꽃이 카네키에서 똑똑히 보였습니다. 영사실에서 불이 붙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던 초등학생이 열 명 가량 죽었습니다. 영사기사가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과실상해치사란 죄명이었습니다. 어린아이임에도 어째서인지 그 기사의 죄명과 운명만은 잊을 수 없었습니다. 아사히자란 이름에 '불(히)'이 들어가 탄 거란 소문도 돌았습니다. 스무 해도 더 된 일입니다. 일.. 2022. 1. 1.
무관심 - 다자이 오사무 이 미타카 안쪽으로 이사 온 건 작년 9월 1일이다. 그 전에는 코후의 구석진 곳을 빌려 살았다. 그 집의 집세는 6엔 50전이었다. 또 그 전에는 미사카토우게 정상에 위치한 카페의 2층을 빌려 살았다. 더욱이 그 전에는 오기쿠보의 볼품 없는 하숙집 한 방을 빌려 살았다. 또 그 전에는 치바현, 후나바시 구석에 24엔의 집을 빌려 살았다. 어디에 살아도 매한가지다. 이렇다할 감개도 없다. 지금의 미타카 집에 이르러서도 손님은 여러 감상을 해주지만 나는 그저 적당히 맞장구만 치고 있다. 아무래도 좋은 일 아닌가. 나는 의식주에는 이렇다할 흥미가 없다. 의식주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 사람은 굉장히 우습게 보여 도리가 없다. 2021. 12. 31.
혁명 - 다자이 오사무 스스로 한 일은 이렇게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혁명도 무엇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하더라도 행동하면서 인간이란 이래야 한다느니 떠들고 있는 동안은 밑바닥부터의 혁명은 한사코 불가능한 일입니다. 2021. 12. 30.
정직한 마음 - 다자이 오사무 솔직하게 말하죠. 저는 앞으로 쓸 소설 혹은 과거에 쓴 소설의 의도, 바람, 괴로움을 별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제가 거짓되고 오만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쓴 글이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도리도 없는 일이고 쓰려는 소설을 아무리 열정적으로 말해본들 지금의 저로서는 그렇게 우수한 대걸작을 쓸 수 없는 걸 알고 있으며 제 작가 역량도 대강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당초 저는 지금 좀 더 정직해져야 합니다. 대다수의 작가가 제 분수를 모르고 포부를 순수하게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저는 그 사람들이 부럽고 사는 게 괜히 더 힘들어집니다. 아시겠나요? 하지만 저는 그런 작가들을 결코 거부할 수 없습니다. 저도 약을 먹을 때는 일단 약에 부속된 효능을 정성스레 읽고 영어로 적힌 곳마저 부족한 어학을.. 2021. 12. 29.
아오모리 - 다자이 오사무 아오모리에는 4년 동안 있었습니다. 아오모리 중학교를 다녔기 때문입니다. 친척인 토요타 님의 집에 줄곧 신세를 졌습니다. 테라마치에서 옷가게를 하시는 토요타 님이십니다. 돌아가신 토요타의 "아부지"는 제게 꽤나 힘을 주시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저도 "아부지"께 많이 어리광을 부렸습니다. "아부지"는 좋은 분이셨습니다. 제가 바보 같은 짓만 하며 훌륭한 일을 해내지 못 할 사이에 돌아가셔서 아쉬운 일입니다. 5년, 10년만 더 사셔서 제가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 아부지께서 기뻐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만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부지"께는 고마운 생각 밖에 떠오르지 않아 아쉬울 따름입니다. 제가 중학교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성적을 받으면 아부지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기뻐해 주셨습니.. 2021.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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