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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다자이 오사무

정직한 마음 - 다자이 오사무

by noh0058 2021.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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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하게 말하죠. 저는 앞으로 쓸 소설 혹은 과거에 쓴 소설의 의도, 바람, 괴로움을 별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제가 거짓되고 오만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쓴 글이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도리도 없는 일이고 쓰려는 소설을 아무리 열정적으로 말해본들 지금의 저로서는 그렇게 우수한 대걸작을 쓸 수 없는 걸 알고 있으며 제 작가 역량도 대강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당초 저는 지금 좀 더 정직해져야 합니다. 대다수의 작가가 제 분수를 모르고 포부를 순수하게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저는 그 사람들이 부럽고 사는 게 괜히 더 힘들어집니다. 아시겠나요? 하지만 저는 그런 작가들을 결코 거부할 수 없습니다.
 저도 약을 먹을 때는 일단 약에 부속된 효능을 정성스레 읽고 영어로 적힌 곳마저 부족한 어학을 끌어와 독파하여 쾌심의 웃음을 짓고 그 우수한(그렇게 적힌) 약품을 복용하여 바로 효과가 난 듯한 착각에 빠져 만족하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효능이 적히지 않은 약품은 현이 없는 바이올린처럼 덧없고 불안한 존재지 싶습니다. 효능은 적어둬야 하는 법이죠.
 하지만 예술이 약인지는 조금 의문입니다. 효능이 적힌 탄산수를 생각해 보죠. 위장에 좋다는 교향악을 생각해 보죠. 벚꽃을 보러 가는 건 축농증을 치료하러 가는 게 아닐 겁니다. 저는 이런 생각마저 합니다. 예술에 의의나 이익이란 효능 따위를 추구하는 사람은 되려 자신의 삶에 자신을 가지지 못한 겁쟁이라고요. 듬직하게 사는 직공이나 군인은 예술과 아름다움을 마음 가는 대로 순수하게 즐기고 있지 않을까요.
 "뒤마는 재밌지요. 보들레르의 시는 꽤나 독특하고요. 요전 번에 뭐였더라? 슈니츨러란 사람의 단편을 읽었는데 글을 잘 써요" 이렇게 거리낌 없이 문학을 즐기는 겁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효능을 적을 필요가 별로 없는 모양이죠. 마음이 편해집니다. 효능을 필요로 하는 건 당신들(용서해주시길)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부탁 좀 드립니다.
 저는 불친절한 의사일지 모릅니다. 저는 제 작품을 걸작이라 말한 적이 없습니다. 볼품없다 한 적도 없지요. 그건 걸작도 아닐뿐더러 마냥 볼품없지도 않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조금 괜찮은 편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까지 한 편의 걸작도 쓰지 못했습니다. 그건 분명합니다. 요전 번에도 어떤 선배하고도 이야기한 일인데 실제로 제 스스로의 가슴으로 깔끔하게 납득할 수 있는 작품을 하나라도 쓰게 되면, 또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자신이 있으면 이렇게 시궁창 쥐처럼 어슬렁거릴 게 아니라 긴자서도 의사당 앞에서도 제국 대학 부지 내에서도 자세를 딱 잡고 당당히 걸을 수 있을 텐데요, 하지만 도무지 그럴 수 없습니다. 아마 저는 그른 거겠죠. 그렇게 말하니 그 선배도 하긴 남이 귀하의 대표작은 뭐죠? 하고 물으면 글쎄요, 벚꽃 동산, 세 자매 정도 아닐까요 하고 번듯하니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네 하고 절절하게 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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