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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928

내 주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책상 나는 학교를 나온 해 가을 "참마죽"이란 단편을 신소설에 발표했다. 원고료는 한 장에 40전이었다. 당시에도 그것만으로 입고 먹고 하기에는 부족했다. 때문에 나는 다른 벌이를 찾아 같은 해 12월에 해군 기관 학교의 교관이 되었다. 나츠메 선생님이 작고하신 건 그해 12월 9일이었다. 나는 한 달에 60엔의 월급을 받으며 낮에는 영문일역을 가르치고 밤에는 부지런히 일을 했다. 그로부터 일 년 가량 지난 후, 내 월급은 백 엔이 되었고, 원고료 또한 한 장에 2엔 전후가 되었다. 나는 그런 두 수입이 있으면 어떻게든 집안을 꾸려 갈 수 있겠지 싶어, 전부터 결혼을 약속한 친구의 사촌과 결혼했다. 내 낡은 자단 책상은 그때 나츠메 선생님의 사모님께 축하 선물로 받은 것이다. 책상은 가로로 세 척,.. 2021. 4. 9.
납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집 뒷마당 울타리 옆에 한 그루 납매가 있다. 올해도 츠쿠바산에서 불어오는 추위에 호박과 닮은 꽃을 피우지 못 했다. 이 나무는 본가에서 옮겨 심은 것이다. 가에이 시대에 그려진 집 그림을 펼쳐보면 츠지야 사도노카미의 집 앞에 '아쿠타카와'라 써넣는 걸 볼 수 있다. 이 '아쿠타가와'가 우리 집이었던 셈이다. 우리 집도 도쿠가와 가문의 와해 이후로 얼마 안 되던 돈마저 잃고, 부흥은 이루지 못 했으며 아버지나 숙부 모두 길에 내몰려 집안 재산을 다 팔아 넘겼다 한다. 할아버지의 와카자시 하나 남지 못 했다. 지금은 단지 한 그루의 납매만이 열여섯 손자에게 전해 내려오게 되었다 눈속에서도 투명하게 비치는 납매 가지야 2021. 4. 8.
추위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눈이 그친 어느 오전이었다. 야스키치는 물리 교관실의 의자에 앉아 스토브의 불을 바라보았다. 스토브의 불은 숨이라도 쉬듯이 노란색으로 불타며 검은 잿먼지를 가라앉게 했다. 실내에 감도는 추위와 싸우고 있다는 증거였다. 야스키치는 문득 지구 밖의 우주적 한냉을 상상하면서, 붉게 탄 석탄에 무언가 동정에 가까운 걸 느꼈다. "호리카와." 야스키치는 스토브 앞에 선 미야모토란 이학사理学士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근시용 안경을 걸친 미야모토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콧수염이 옅은 입가에 사람 좋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 "호리카와, 자네는 여자도 물체라는 걸 알고 있나?" "동물이라는 건 알고 있는데." "동물이 아니야, 물체지――이건 나도 고심의 끝에 얼마 전에 발견한 진리야." "호리카와 씨, 미야모.. 2021. 4. 7.
학교 친구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이건 학교 친구들에 관한 말이면서, 학교 친구들의 전부는 아니다. 단지 겨울밤이나 전등 아래에서 원고지를 볼 적에 문득 마음에 떠오른 학교 친구들에 대한 생각일 뿐이다. 코우타키 타카시 내 초등학교 친구이다. 아내 이름은 아키나. 하타 토요키치는 이 부부를 남화적 부부라 말했다. 도쿄 의과 대학을 나와 지금은 샤먼 아미어 아무개 병원에 있다. 인생관상의 리얼리스트지만 실생활에 임할 때에는 그리 리얼리스트라 할 수 없다. 서양 소설 속에 나오는 의사와 닮아 있다. 아이의 이름은 미노토라 한다. 코우타키의 아버지가 작명한 걸 생각하면 독특한 이름을 좋아하는 건 유전적 취미 중 하나로 봐야 하리라. 글은 제법 교묘하다. 노래도 시도 아마추어급으로 만든다. "신나이에서 내려다 바라보면 등롱이려나."란 시를 썼다.. 2021. 4. 6.
아부부부부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야스키치는 꽤나 오랫동안 이 가게의 주인을 알고 지냈다. 꽤나 오랫동안――혹은 그 해군 학교에 부임한 당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성냥 하나를 구입하기 위해 이 가게를 찾았다. 가게에는 작은 장식용 창이 있었고, 창 안에는 대장기를 건 군함 미카사의 모형과, 큐라소 병, 코코아병, 말린 포도캔 따위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가게 앞에 "담배"라 적은 붉은 간판이 나와 있으니 성냥을 팔지 않을 리도 없다. 그는 가게를 들여다보며 "성냥 하나 주게나."하고 말했다. 가게 초입에 자리한 높은 계산대 뒤에는 사시를 가진 젊은 남자 하나가 지루하다는 양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본 남자는 주판을 손에 든 채로 웃어 보이는 법도 없이 대답했다. "이거 가져가시죠. 아쉽게도 성냥이 다 떨어져서요." 가져가라는 .. 2021. 4. 5.
백로와 원앙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2, 3년 전의 여름이다. 나는 긴자를 걸으면서 두 여자를 발견했다. 그것도 평범한 여자는 아니었다. 놀랄 만큼 예쁜 뒷모습을 한 두 여자를 발견한 것이다. 한 명은 백로처럼 가늘었다. 다른 한 명은――이 설명은 조금 성가시다. 본래 예쁜 모습이란 건 통통한 사람보다도 초췌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 듯하다. 하지만 한 명은 뚱뚱했다. 평범하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살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몸의 조화를 조금도 훼손하지 않았다. 특히 허리를 휘두르듯 유유히 걷는 모습은 원앙처럼 훌륭했다. 한 쌍을 이루는 줄무늬 기모노에 여름용 오비를 두르고, 당시에 유행했던 망을 걸친 한 쌍의 파라솔을 든 걸 보면 자매 관계일지 모르겠다. 나는 마치 이 두 사람을 무대 위에 세운 것처럼 갖은 면과 선을 감상했다. 본래 여.. 2021.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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