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고전 번역928 소세키 공방의 가을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밤의 추위가 매섭게 스며드는 오르막 거리를 오르자 낡은 판잣집 문 앞에 이른다. 문에는 전등이 들어 와 있지만 기둥에 걸린 명패는 거의 존재 여부조차 구분이 가지 않았다. 문을 넘자 모래와 돌이 깔린 길이 나온다. 또 그 돌과 모래 위에는 정원수의 낙엽이 난잡하게 떨어져 있다. 모래와 낙옆을 밟고 현관으로 향하니 역시나 낡은 격자문 이외에는 벽이라고 할 게 못 됐다. 하나 같이 덩굴에 뒤덮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안내를 구하려면 먼저 마른 덩굴 잎을 치우며 벨 버튼을 찾아야만 한다. 그렇게 겨우 벨을 누르면 불이 들어와 있는 문이 열리고 머리를 묶은 여종 하나가 바로 격자문의 잠금쇠를 풀어준다. 현관 동쪽으로는 복도가 있고 그 복도 난간 밖에는 겨울을 모르는 목적색이 정원을 한 가득 메우고 있다. 그러.. 2021. 3. 28. 또렷한 형태를 취하기 위해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카무라 씨. 저는 지금 여느 때처럼 미처 거절하지 못 한 원고를 끙끙 앓으며 쓰고 있기에 당신께서 주신 문제에 응할 만큼 머리를 정리할 여유가 없습니다. 때문에 당신이 보내신 편지를 읽다만 책 사이에 꽂아두었다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때문에 저는 대답해야 할 문제의 성질을 굉장히 막연히만 느끼고 있습니다. 단지 당신의 문제가 '어떤 요구에 따라 소설을 쓰는가'였던 건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 요구를 편의상 직접적인 요구라 해두겠습니다. 그럼 저는 지극히 평범하게 '쓰고 싶으니 쓴다'고 대답합니다. 그건 결코 겸손도 아니고, 되는대로 하는 말도 아닙니다. 실제로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소설도 온전히 쓰고 싶기에 쓰고 있습니다. 원고료를 위해 쓰는 게 아닌 것처럼, 천하의 창생을 위해 쓰는 것도 .. 2021. 3. 27. 연애와 결혼애를 착각해서는 안 된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중매결혼으로 충분합니다. 중매결혼과 자유결혼의 득실이란 결국 두 종류의 결혼 양식이 결혼 후의 생활에서 어떠한 행복을 이끌어내고, 어떠한 불행을 가져오는 지로 귀결된다. 하지만 결혼 생활의 행복이란 과연 무슨 뜻이랴. 그것도 생각해야 한다. 굵고 짧게 즐길 것인가. 가늘고 길게 즐길 것인가. 또는 부부간에 충돌이 있는 생활인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이다. 또 연애라는 게, 옛날 사람들이 생각할만한 청초고결한 연애라는 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에도 나는 회의를 품고 있다. 실제로 그런 생활이 존재할 수 있는지는 별개로 치부하더라도,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 굵고 길면서 평화롭게 즐길 수 있는 부부 생활을 이상이자 행복으로 생각한다면, 총명한 남녀에게는 자유 결혼이 적합하며 그렇지 않은 남녀에게는 중매결혼이.. 2021. 3. 26. 군함 콩고 항해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더운 프록 코트를 여름 양복으로 갈아입고 다른 녀석들과 함께 갑판으로 나가니, 젊은 기관 소위 셋이 다가와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야 신병이니 세 사람하고는 처음 만나지만, 다른 녀석들은 모두 교실에서 한 번은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 사이였다. 그러니 나는 살짝 거리를 둔 채 얌전히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아무개 소위가 요코스카에서 S와 S의 부인과 둘이서 산책하는 걸 만났더니 잘 사는 거 같아 그날 밤부터 속이 안 좋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른 녀석들은 그 말을 듣고는 아하하 크게 웃었다. 단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S만은 그 안에 끼지 못 했다. 기쁜 얼굴로 히죽히죽 웃었던 것이다. 나는 저녁 햇살을 한가득 받은 군항을 바라보며 새신부를 집에 두고 온 S에게 연민에 가까운 동정을 느꼈다... 2021. 3. 25. 러역단편집 두서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제 작품이 러시아어로 번역된다는 점은 물론 꽤나 유쾌한 일입니다. 근대 외국 문예 중 러시아 문예만큼 일본 작가에게――라기보다도 되려 일본의 독서 계급에 영향을 준 문예는 없겠지요. 일본의 고전을 모르는 청년마저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 체호프의 작품은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 일본인이 러시아와 친하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확연하겠지요. 그분 아니라 제 개인적인 생각에 따르면 러시아가 낳은 근대의 정치적 천재, 레닌을 생각해도 소위 Europe이 레닌을 이해하지 못 한 건 레닌이 동양적인 정치적 천재였던 탓일지도 모릅니다. 가장 이상으로 불탔던 동시에 가장 현실을 알고 있던 레닌은 일본이 낳은 정치적 천재들, 미나모토노 요리모토나 토쿠가와 이에야스에 꽤나 가까운 천재입니다. 말하자면 동양의 .. 2021. 3. 24. 쿠보타 만타로 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내가 아는 에도 남자 중에서 문단에 관련된 자를 묻는다면 가장 먼저 고토 스에오 군, 두 번째로 츠지 쥰 군, 세 번째로 쿠보타 만타로 군이 있다. 이 세 사람은 제각기 성격이 달라도 에도 남자란 풍채와 기질을 나란히 드러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후천적으로도 에도 남자의 호칭을 분명히 하는 게 바로 쿠보타 만타로 군이다. 적어도 '촌뜨기' 분위기를 두르지 않고 '거리'의 특색을 풍부히 지닌 건 분명하다. 에도 남아는 포기와 함께 산다. 혹은 포기에 산다고 할까. 적극적이고 강하게 말하는 법이 없다. 쿠보타 군의 예술은 쿠보타 군의 생활과 마찬가지로 이런 특색을 지니고 있다. 쿠보타 군의 주인공은 항상 도덕적 여명에 사는 무명의 뒷골목 남녀이다. 이러한 남녀는 체호프의 작품에서도 찾아 볼 수 있지만, 체호프.. 2021. 3. 23. 이전 1 ··· 134 135 136 137 138 139 140 ··· 155 다음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