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무라 씨.
저는 지금 여느 때처럼 미처 거절하지 못 한 원고를 끙끙 앓으며 쓰고 있기에 당신께서 주신 문제에 응할 만큼 머리를 정리할 여유가 없습니다. 때문에 당신이 보내신 편지를 읽다만 책 사이에 꽂아두었다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때문에 저는 대답해야 할 문제의 성질을 굉장히 막연히만 느끼고 있습니다.
단지 당신의 문제가 '어떤 요구에 따라 소설을 쓰는가'였던 건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 요구를 편의상 직접적인 요구라 해두겠습니다. 그럼 저는 지극히 평범하게 '쓰고 싶으니 쓴다'고 대답합니다. 그건 결코 겸손도 아니고, 되는대로 하는 말도 아닙니다. 실제로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소설도 온전히 쓰고 싶기에 쓰고 있습니다. 원고료를 위해 쓰는 게 아닌 것처럼, 천하의 창생을 위해 쓰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왜 쓰고 싶다는 것이냐――당신은 그렇게 물으시겠죠. 하지만 그건 저도 잘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제가 아는 범위에서 대답하자면, 제 머릿속에 모종의 혼돈이 있으며, 그것이 또렷한 형태를 취하고 싶어 합니다. 그건 또 또렷한 형태를 취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혼돈이 한 번 머릿속에 발생하면 기세로라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뭐, 적당히 말하자면 강박관념에 휩싸이는 꼴입니다.
당신이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모종의 혼돈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저는 또 파고들어야 합니다. 사상이나 정서로는 설명할 수 없는――역시 뭐 혼돈입니다. 단지 그 특색은 그게 또렷한 형태를 취하기 전까지는 확실해지지 않겠지요. 아니, 추정형을 쓸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습니다. 이 점만은 다른 정신 활동에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 (조금 옆길로 빠지자면) 저는 예술이 표현이라는 말은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대강 이 정도가 제게 소설을 쓰게 하는 직접적인 요구입니다. 물론 간접적으로는 아직 여러 요구가 있겠지요. 혹은 그중에 인도적이라는 형용사를 둬야 하는 것도 섞여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요구입니다. 저는 시종 평범히, 통속적으로 그저 쓰고 싶기에 써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겠지요. 또 그 이외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그 외에 당신의 편지에는 태도니 뭐니 하는 말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혹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만약 있었다면, 그 대답은 제가 직접 요구를 '쓰고 싶으니 쓴다'에 둔 걸로 거의 알 수 있겠지요. 또, 문제가 도렷하지 않기에 제 대답도 당신이 요구한 것과 일치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부디 관대히 봐주시길 바랍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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