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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다자이 오사무85

세계적 - 다자이 오사무 유럽의 근대인이 쓴 '그리스도전'을 두세 권 가량 읽었다. 별로 감탄하지는 못 했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듯했다. 성서를 깊게 읽지 않은 것이다. 이건 의외였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어릴 적부터 할머니를 따라 절을 찾지 않는가. 또 장례식이나 법요 때면 스님의 경을 듣기도 한다. 하물며 국보인 불상을 구경도 다니지만 글쎄, 외국인이 불교란 어떤 종교냐 물으면 백 중 아흔아홉은 입을 다물 게 분명하다. 아무것도 모른다. 외국인 또한 마찬가지다. 마리아님과 예수님이 정말 고마운 분인 건 교회 분위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어릴 적부터 기도하는 습관도 들지만 꼭 성서에 담긴 그리스도의 비원을 아는 건 아니다. J・M・마리란 사람은 유럽의 일류 사상가지만 그 '그리스도전'에선 새로운 발견도 없다. 한 번 정열을 품.. 2022. 2. 26.
열차 - 다자이 오사무 1925년에 우메바치 공장이란 곳에서 만들어진 C51형 기관차는 같은 공장서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삼 등 객차 세 량과 식당차, 이등객차, 이등침대차 각각 한 량과 그 외에 우편이나 짐을 담는 화물차 세 량과 도합 아홉 개의 상자에 대략 이백 명의 여행객과 십만을 넘는 통신과 그에 따른 비통한 이야기를 싣고서 비 내리는 날도 바람 부는 날도 오후 두 시 반이 되면 기적을 울리며 우에노에서 아오모리를 향해 달렸다. 때에 따라선 만세 소리를, 때로는 손수건에 품어진 작별을, 때로는 오열을 동반한 불길한 인사를 받고는 했다. 열차번호는 103이었다. 번호부터 꺼림칙했다. 1925년부터 지금까지 8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이 열차는 수만 면의 애정을 찢어발겼다. 실제로 나 또한 이 열차 탓에 지독한 꼴을 보았다. .. 2022. 2. 24.
마음의 왕자 - 다자이 오사무 얼마 전 미타의 자그마한 학생 둘이 저희 집을 찾았습니다. 저는 아쉽게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자고 있었는데 잠깐 하면 끝날 이야기라면, 하고 마루서 나와 잠옷 위에 하오리를 걸치고 만났습니다. 두 사람 모두 예의가 바르고 심지어 용건만 빨리 끝내 곧장 물러났습니다. 요컨대 이 신문에 수필을 쓰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보기엔 하나같이 열여섯열일곱으로 밖에 안 보이는 온화한 학생이었는데 역시 스물 넘은 어른이었던 걸 테지요. 요즘 들어 영 남의 연령이 구분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열다섯도 서른도 마흔도 또 쉰도 같은 일로 화를 내고 같은 일로 웃고 마찬가지로 조금 치사하고 또 마찬가지로 약하고 비굴하여 실제로 사람의 심리만 보아서는 나이 구분 따위 혼란스럽기 짝이 없어서 아무래도 좋아져 버립니다. 방금 .. 2022. 2. 23.
'원숭이 얼굴을 한 남자' 후기 - 다자이 오사무 수록――"원숭이 얼굴을 한 남자", "다스 게마이네", "이십 세기 기수", "신 햄릿" 이번 선집에는 대전 중에 재판할 수 없었던 작품만 수록했다. 그리고 이 선집을 하나 읽으면 다자이가 이 십 년 동안 대체 어떤 일을 괴로워 한 작가인지 대강 알 수 있도록 편찬했다. 마지막 '신 햄릿'은 새로운 햄릿 형태의 창조와 더욱이 또 하나 클로디어스를 사용해 근대악을 묘사하기를 꾀했다. 여기 나오는 클로디어스는 과거의 전형적인 악당과 크게 달라 어쩌면 마음 약한 선인처럼도 보이면서 선왕을 죽이고 불결한 사랑에 성공하여 그걸 숨기려 전쟁 등을 꾀한다. 우리를 괴롭혀 온 악당은 이런 형태의 어른이 많았다. 이 작품을 출판할 당시 문단의 평론 중 대부분은 클로디어스의 새로운 형태의 악을 놓치고 마사무네 하쿠쵸 씨도.. 2022. 2. 21.
다두사철학 - 다자이 오사무 사태가 굉장히 복잡해지고 있다. 게슈탈트 심리학이 나오고 전체주의란 표어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세계관이 등장 준비를 시작했다. 낡은 노트만으론 충분치 않게 되었다. 문화 가이드들은 또 도서관을 오가야 하리라. 진지하게. 전체주의 철학의 인식론에 관해 곧장 마주할 난관이란 그 인식 확인의 양식이리라. 무엇으로 표시하는가. 말인가. 사상이란 영원히 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가. 소리는 어떤가. 악센트는 어떤가. 색채는 어떤가. 모양은 어떤가. 몸짓은 어떤가. 표정으론 안 되는다. 눈동자 움직임이란 방법은 또 어떨까. 채용 가능한 요소가 없는지 조사해주었으면 한다. 안 되는가. 하나하나 정성스레 조사했는가. 아니, 여기서 연구 발표를 하나하나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하나같이 대논문임이 분명할 테지. 그리고 역시나.. 2022. 2. 20.
작가상 - 다자이 오사무 고작 열 장짜리 수필 따위 못 쓸 것도 없으나 이 작가는 벌써 사흘이나 생각에 잠겨 썼다가는 금세 찢어버리고 또 썼다가는 금세 찢고 있다. 일본은 지금 종이가 부족한 시기기도 하여 이렇게 찢어서는 아까운 일이다. 스스로도 조마조마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그만 찢어버리고 만다. 말할 수 없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다. 이 작가는 하고 싶은 말과 해서 안 되는 말의 구별이 잘 가지 않는다. "도덕 적성"라 해야 마땅한 게 아직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이다. 하고 싶은 말은 산처럼 있다. 정말로 하고 싶다. 그때 문득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너는 무슨 말을 하든 결국 자기변호잖아." 아니다! 자기변호가 아니라 서둘러 부정해도 마음 한구석에선 뭐 그럴지도 모르지 하고 약하게 긍정해버려서 나는 쓰다 만 원.. 2022.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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