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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다자이 오사무85

작은 뜻 - 다자이 오사무 예수가 십자가에 걸려 그때 벗은 순백의 속옷은 위에서 아래까지 호지 않고 통으로 짠 굉장히 보기 드문 옷이라서 병졸들이 그 옷의 고상함과 아담함에 탄식했다고 성서에 적혀 있다.. 아내여. 예수 아닌 시장의 아무것도 아닌 겁쟁이가 매일 이렇게 괴로워하며 또 만약 죽어야만 할 때가 온다면 통으로 짠 속옷은 바라지도 않는다. 하다못해 옥양목 순백 팬티 한 장을 만들어주지 않겠나. 2022. 3. 7.
소리 - 다자이 오사무 문자를 읽다 보면 그곳에 표현된 음향이 한사코 귀에서 떨어지지 않는 일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 다음과 같은 걸 배웠다. 맥베스였던가 다른 연극이었던가 조사해보면 바로 알 일이지만 지금은 어찌 되었든 셰익스피어의 연극 중 하나였던 것만 확실히 해두겠다. 그 연극의 살인 장면, 침실에서 조용히 숨을 죽여 히어로도 나도 무거운 숨을 들이 마신다. 이마의 땀을 닦으려 지독히 경직된 손가락을 움직인 순간, 똑똑 누가 방밖에서 문을 두드린다. 히어로는 무서운 나머지 껑충 뛰어올랐다. 노크는 무심이 이어지고 있다. 똑, 똑, 똑. 히어로는 그 자리서 미쳐버렸던가. 나는 그 후의 내용은 잊어버렸다. 유지옥에서도 요헤이라는 젊은 무뢰한이 우연찮은 일로 여자를 잔혹하게 죽여 그 자리서 멍하니 서있는다. 그때가 마침 오 .. 2022. 3. 6.
어복기에 대해 - 다자이 오사무 어복기란 건 중국의 옛 서적에 담긴 짧은 이야기의 제목이라고 합니다. 그런 걸 일본의 우에다 아키나리가 번역해서 제목도 몽응의 잉어로 바꾸어 우게츠모노가타리 2권에 수록되었습니다. 저는 애달픈 생활을 하던 시기에 이 우게츠모노가타를 읽었습니다. 몽응의 잉어는 미츠이데라의 코기라는 잉어를 잘 그리는 중이 큰병에 걸렸는데 그 혼이 금색 잉어가 되어 비와코를 한껏 즐겼단 이야기인데, 저는 이를 읽고 물고기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물고기가 되어 평소 저를 괴롭히던 사람들을 웃어주고 싶었습니다. 저의 이런 꿍꿍이는 아무래도 실패한 모양입니다. 웃어주자, 그런 생각이 애당초 좋지 않은 생각이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2022. 3. 4.
그 날 - 다자이 오사무 이는 지금으로부터 사 년 전의 일이다. 내가 이토 미시마의 지인 집 2층에서 여름을 보내며 로마네스크란 소설을 쓸 적의 이야기다. 어느 밤, 술에 취해 자전거를 끌다 다쳤다. 오른발 복사뼈 위쪽이 찢어졌다. 상처는 깊지 않았으나 술 탓에 출혈이 굉장히 심해 황급히 의사에게 달려갔다. 마을의 의사는 서른두 살쯤 되어 보이는 몸집이 큰 사람으로 사이고 타카모리와 닮아 있었다. 굉장히 취해 있었다. 나와 엇비슷할 정도로 비틀비틀 진찰실에 나타난 통에 나는 우스웠다. 치료를 받으면서 쿡쿡 웃어버렸다. 그러자 의사도 쿡쿡 웃었고 결국 참을 수 없어서 둘이 목소리를 맞추어 크게 웃었다. 그 밤부터 우리는 친해졌다. 의사는 문학보다 철학을 좋아했다. 나도 그쪽을 이야기하는 게 마음이 편해 말이 잘 통했다. 의사의 세.. 2022. 3. 2.
여인창조 - 다자이 오사무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게 실소할지 모르나 힘들어지면 내 처지를 여자로 바꾸어 여러 여자의 심리를 추측하고 있자면 별로 웃을 수 없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그야말로 말과 각로라 해도 좋을 정도로 다르다. 생각에 잠기는 사람들은 이를 깨닫는 게 굉장히 느리다. 나도 최근에야 깨달았다. 이름을 잊었는데 어떤 외국인이 쓴 쇼팽전을 읽었더니 그 안에 코이즈미 야쿠모의 "남자란 평생서 적어도 만 번은 여자가 된다"는 기괴한 말이 인용되었는데 그런 일은 없지 싶다. 그건 안심해도 좋다. 일본 작가 중에서 진짜 여자를 그리고 있는 건 슈코이리라. 슈코가 그리는 여자는 실로 지루하다. "흐음"이니 "그렇구나"하고 중얼거리기만 할 뿐으로 조금도 사색적이지 않다. 그건 정확하리라. 말하자면 그리운.. 2022. 2. 28.
I can speak - 다자이 오사무 괴로움은 인종의 밤, 체념의 아침. 이 세상이란 체념을 노력해야 하는가. 슬픔을 참아야 하는가. 젊음은 날로 좀 먹혀 가고 행복도 향간서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나의 노래는 목소리를 잃고 한동안 도쿄서 무위도식하며 그동안 노래가 아닌 소위 "생활의 중얼거림"이라 해도 좋을 걸 적기 시작해 자신의 문학이 나아가야 할 길을 그 작품들을 통해 알리고 뭐 이렇게 하면 되나? 하고 조금 자신과 비슷한 걸 얻어 이전부터 생각하던 긴 소설에 임했다. 작 년 구 월, 코슈 미사카의 정상의 텐카차야란 찻집의 2층을 빌려 그곳에서 조금씩 일을 진행하여 백 장 가까이 썼고 다시 읽어 보아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새로이 힘을 얻어 어찌 됐든 이를 완성시키기 전까지는 도쿄로 돌아갈 수 없다고 미사카의 찬바람 강한 날에 홀로 멋.. 2022.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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