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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다자이 오사무

소리 - 다자이 오사무

by noh0058 2022.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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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를 읽다 보면 그곳에 표현된 음향이 한사코 귀에서 떨어지지 않는 일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 다음과 같은 걸 배웠다. 맥베스였던가 다른 연극이었던가 조사해보면 바로 알 일이지만 지금은 어찌 되었든 셰익스피어의 연극 중 하나였던 것만 확실히 해두겠다. 그 연극의 살인 장면, 침실에서 조용히 숨을 죽여 히어로도 나도 무거운 숨을 들이 마신다. 이마의 땀을 닦으려 지독히 경직된 손가락을 움직인 순간, 똑똑 누가 방밖에서 문을 두드린다. 히어로는 무서운 나머지 껑충 뛰어올랐다. 노크는 무심이 이어지고 있다. 똑, 똑, 똑. 히어로는 그 자리서 미쳐버렸던가. 나는 그 후의 내용은 잊어버렸다.
 유지옥에서도 요헤이라는 젊은 무뢰한이 우연찮은 일로 여자를 잔혹하게 죽여 그 자리서 멍하니 서있는다. 그때가 마침 오 월의 한낮이었는데 거리의 깃발이 펄럭펄럭펄럭 열풍이 나부끼는 소리가 쓸쓸하고 안타까워 요헤이가 불쌍하기 짝이 없었다. 오인녀에서도 오시치가 밤에 마음을 먹고 키치사에 찾아가니 불쑥 딸랑딸랑 종소리가 들리더니 스님에게 아가씨가 그러면 쓰나하고 혼나자 두 손을 마주하고 스님에게 부탁하는 부분이 있었던 게 같은데, 그 의미심장한 종소리에는 읽는 사람 모두의 혼이 쏙 빠졌을 게 분명하다.
 아직 아무도 영역하지 않은 모양인데 프로페서란 소설이 있다. 작가가 여성인데 다른 장편 소설을 하나 쓴 게 있다. 아무개 문고에서 일본에 그 이름을 소개했을 터인데 지금 당장은 작가 이름도 소설 이름도 그 문고 이름도 전부 떠오르지 않는다. 이 또한 찾아 보면 알 일인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지 싶다. 프로페서란 소설은 어느 시골 여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는데, 방과 후 아무도 남지 않은 텅빈 교정, 황혼, 어두컴컴한 음악 교실서 남교사와 주인공인 아름다운 여성 둘이 소곤소곤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가을바람이 사람 없는 복도에 불어 저 먼 곳의 문이 쾅하고 닫힌다. 그렇게 다시 고요해져 독자는 저도 모르게 험난한 세상 살이에 몸을 떠는 그런 구조가 되어 있다.
 같은 문 소리라도 전혀 다른 효과를 주는 경우도 있다. 이 또한 작가 이름은 잊어 먹었다. 영국의 청답파인 것만은 확실하다. 랜턴이라는 단편 소설이다. 문장이 굉장히 난잡하여 나는 끝까지 읽지 못했다. 온 정신을 집중하여 긁어모은 문장일 테지. 빈민가의 낡은 아파트, 모래먼지, 아이들의 싸움, 양동이 물도 곧장 식어버리는 염열, 그 아파트에 유감스러운 히로인이 참기 어려운 초조함에 몸부림치고 있다. 옆방에서 빠르게 도는 회전 축음기가 끼릭거린다. 나는 거기까지 읽고 숨이 헐떡거렸다.
 히로인은 비틀비틀 일어나 철문을 밀어낸다. 뜨거운 햇살, 모래먼지. 황량한 바람이 쿵하고 입구의 문을 연다. 이어서 가까운 문들이 쾅쾅쾅 열도 스물도 한없이 열리고 닫힌다. 나는 먼지투성이 걸레로 얼굴을 닦은 것만 같았다. 다들 잠들어 있을 시간, 서른 살 가량의 히로인은 랜턴을 걸고 썩어가는 복도의 판자를 밟으며 걸어 다니는데, 나는 또 생각지도 못한 무거운 문이 언제 쾅하고 큰 소리를 내며 닫힐지 몰라 조마조마하며 글을 읽었다.
 율리시스에서도 다양한 소리가 잔뜩 담겨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소리의 효과적 적용은 대중문학에 많은 모양이다. 본래는 볼품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차라리 부끄럽고 슬픈 일이리라. 성서나 겐지모노가타리에는 소리가 없다. 정말로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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