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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다자이 오사무

3월 30일 - 다자이 오사무

by noh0058 2022.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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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주 여러분.
 분명 제 이름은 알지 못하실 테지요. 저는 일본 도쿄 시외에 사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빈곤한 작가입니다. 도쿄는 요 이삼 일 동안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무사시노 한 가운데에 있는 저희 집에는 모래 먼지가 용서 없이 들어 옵니다. 저는 집안에 있으면서도 마치 땅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기분이었지요. 오늘은 바람도 그쳐서 정말로 봄 다운 조용하고 맑은 날입니다. 만주는 지금 어떨까요. 역시 매화가 피었을까요. 도쿄에서 매화는 이미 철이 지나 꽃잎도 더러워졌습니다. 벚꽃 꽃봉오리는 콩 정도의 크기로 부풀어 올랐습니다. 이제 열흘 정도 지나면 꽃이 피지 않을까요. 오늘은 3월 30일입니다. 남경에 신정부를 성립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저는 정치는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화평건국'이라는 로맨티시즘에는 역시나 가슴이 뜁니다. 일본에는 주로 전쟁을 묘사하는 작가도 있는데 또 전쟁은 전혀 다루지 않고 평화로운 사람들의 모습만 묘사하는 작가도 있습니다. 어제 나가이 카후라는 일본 대가의 소설집을 읽었더니 그 안에
 "아랫것들인 너희가 정치를 논하지 말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선생님, 예로부터 중국에는 태평성대의 전조로 봉황이라는 아름다운 새가 내려온다는 게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아름답고 손이 많이 간 건 무작정 안 좋다는 세상에선 봉황도 알을 낳는 닭보다 못한 셈이니 아무리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가 없지요. 바깥 세상은 어찌 되었든 일본一에도의 명물이라 중국과 인도까지 이름이 알려진 니시키에마저 막아야 한다 하심은 모처럼 태평성대를 축하하기 위해 내려 온 봉황의 목을 비트는 꼴 아니겠습니까?"
 그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이는 "산류창석영"이라는 소설에서 한 사람의 감개를 적은 것입니다. 텐포연간의 근검절약을 두고 한 이야기지요. 저는 나가이 카후란 작가를 결코 무조건적으로 숭배한느 게 아닙니다. 어제 그 소실집을 읽으면서도 몇 번인가 불만을 느꼈습니다. 저 같은 촌뜨기하고는 경우가 다른 작가인 듯합니다. 하지만 지금 발췌한 한 문장에는 조금이나마 공감을 느꼈습니다. 일본에는, 또 전쟁 중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아도 평화로워지면 쭉쭉 뻗어 아름다운 평화의 노래를 부를 작가도 있다는 걸 결코 잊지 말아주세요. 일본은 결코 전쟁을 좋아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모두 평화를 바라고 있지요.
 저는 한 번쯤 만주의 봄을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마 저는 만주에 가지 못하겠지요. 만주는 지금 굉장히 바쁘니 풍경 같은 걸 보려 어슬렁거리면 방해만 될 테니까요. 일본에서 꽤나 많은 작가가 간 모양이지만 분명 다들 방해꾼 취급 받아 돌아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이 굉장히 바쁜 모습을 누군가의 안내까지 받아가며 '시찰'하는 건 생각하기에 따라선 실례되는 일이지 싶습니다. 제 지인이 지금 세 명 정도 만주에서 굉장히 바쁘게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지인들과 만나 하룻밤 술이라도 나누고 싶어 그것 때문에라도 만주에 가고 싶습니다만 만주가 굉장히 바쁜 걸 생각하면 분명 진지해져서 들뜬 기분도 날아가겠지요.
 저처럼 '국책형'이 아닌 무력한 작가라도 만주서 이뤄지는 현재의 노력에는 몰래 성원을 보내고 싶습니다. 저는 적당한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것만을 긍지 삼아 살아 있는 작가입니다. 저는 정치는 조금도 알지 못합니다만 그럼에도 인간의 생활은 조금이나마 알고 있습니다. 일상 생활의 감정만은 조금 알고 있습니다. 그런 걸 몰라서는 작가라 할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 수많은 작가가 만주로 나가 안내를 받으며 '시찰'을 해서 대체 어떤 '생활 감정'을 발견해 돌아온단 걸까요. 돌아 온 후의 보고문을 읽어도 굉장히 어깨가 좁아집니다. 일본서 뉴스 영화라도 보면 알 법한 정도의 걸 발견에서 이죽거리는 듯합니다. 이렇게 된 마당엔 만주서 '일개 생활인'으로 평범하게 살아 무언가 깊은 걸 얻은 사람의 말에 기대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제 세 지인은 진심으로 만주를 사랑하며 아닌 척 만주에 살고 전인류를 관통하는 '사랑과 신실함'의 표현에 고투하고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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