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가 굉장히 복잡해지고 있다. 게슈탈트 심리학이 나오고 전체주의란 표어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세계관이 등장 준비를 시작했다.
낡은 노트만으론 충분치 않게 되었다. 문화 가이드들은 또 도서관을 오가야 하리라. 진지하게.
전체주의 철학의 인식론에 관해 곧장 마주할 난관이란 그 인식 확인의 양식이리라. 무엇으로 표시하는가. 말인가. 사상이란 영원히 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가. 소리는 어떤가. 악센트는 어떤가. 색채는 어떤가. 모양은 어떤가. 몸짓은 어떤가. 표정으론 안 되는다. 눈동자 움직임이란 방법은 또 어떨까. 채용 가능한 요소가 없는지 조사해주었으면 한다.
안 되는가. 하나하나 정성스레 조사했는가. 아니, 여기서 연구 발표를 하나하나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하나같이 대논문임이 분명할 테지. 그리고 역시나 말이어야만 하는가. 소리로는 안 되는가. 악센트로는 안 되는가. 색채로는 안 되는다. 모두 안 되는가. 말에 의존하지 않고선 전체 인식의 확증을 보여줄 수 없는가. 말 이외에 달리 없다면 이 전체주의 철학은 그 인식론 때문에 굉장히 고생을 해야 하리라. 애당초 전체주의란 걸 어떤 양식으로 설명하면 되는가. 역시 이제까지의 사상체계의 설명과 마찬가지로 너저분함도 아랑곳 않고 구조 설명을 해야 하는가. 그래서야 모처럼의 게슈탈트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의외로 이런 곳에 전체주의의 곤란함이 있지는 않을까.
글쎄,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아아, 뭐라고 해야 하지. 그거야. 모르겠어? 뭐라고 해야 할지 나도 잘 모르겠는걸. 그렇게 홀로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면 듣는 쪽도 속이 탄다. 코노에 씨가 의회서 일본주의란 게 뭔가요? 하는 질문에 글쎄요, 그건, 한 마디로 설명하는 건, 그게, 그, 그렇게 크게 곤란해 한 모양인데 무리도 아니지 싶었다.
상징으로 가라, 상징으로.
그럼 재밌다.
"일본주의란 무엇이죠?"
"감입니다." 이 감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
"감인가요. 그거 놀랍군요. 하다못해 창문 정도로 해주시죠."
설마 이런 바보 같은 문답이야 없을 테지만 이 경우 감이든 창문이든 이래이래서 이거다 하는 말하자면 이단논법적인 가져다 붙이기는 아닌 셈이다. 비꼼이나 풍자가 아니다. 그런 은근히 숨겨진 뜻은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감은 이렇게 크고 이런 색으로 심지어 가을에 열매를 맺으니 이러한 의미가 있다. 아아, 죽고 싶을 정도로 망측하다. 상징과 비유가 어떻게 다른가. 그마저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이따금 있으니 말하는데 이만저만 고생하는 게 아니다.
이 인식론을 다수의 시인을 기쁘게 할 게 분명하다. 애당초 귀찮지 않아 좋다. 이성과 지성의 순수성 따위 진작 잃어버린 모양인지 단지 해파리처럼 자신의 피부 감촉만으로 사는 인간에겐 꽤나 고마운 인식론이다. 한 번 연구회라도 만들어볼까. 저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자신의 세계관을 분명히 지니지 않았음에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은 논외이다. 그와 달리 자신의 철학적 사상 체계를 제대로 배 안에 담아두지 않고서는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는 종류의 인간도 잔뜩 있을 거라 본다. 안티테제의 성립이, 또 그 성립을 보는 게 굉장히 성가시고 애매해져서 자신이 이전부터 숨긴 채 지니고 있던 물질론적 논증법의 예리함도 어쩐지 믿음직스럽지 않게 되어 당황한 채 우왕좌왕하는 일부 지식인을 위해서도 이 전체주의 철학은, 그 세계관, 그 인식론을 주저하지 않고 활발히 전개해야만 하리라. 미완성이지 싶다. 그만큼 노력할 보람이 있으리라.
일본에는 철학으로 독립하여 체계를 가진 사상이 적다. 있다면 카루타나, 센류, 논어 등에 드러난 일상윤리관의 계율 따위인데 이것만으론 살아가기 어렵다. 학술의 권위를 위해서도 마르크시즘을 대신할 새로운 인식론을 제시해야만 하리라. 얼버무려서는 안 된다.
앞으로 문화인은 바빠지리라. 낡은 노트의 먼지를 털어내고 칸트나 헤겔, 마르크스를 다시 읽고 또 술을 자중하며 새로운 책을 사고 싶다. 역시 변증법 밖에 없다. 그렇게 다시 반할지 모른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좀 더 많이 공부해보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다. 어찌 됐든 자신이 가진 인식론에 좀 더 확신을 가지고 싶은 것이리라.
방긋 웃지도 않고 진지하게 강의하고 싶은 기분은 있다. 하지만 조금 부끄럽다. 이 감촉은 속일 수가 없다. 게슈탈트 심리학이나 전체주의 철학에 대해 아는 것만으로도 강의해야만 했다. 이것만으론 독자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을 테지. 실수했다.
'고전 번역 > 다자이 오사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의 왕자 - 다자이 오사무 (0) | 2022.02.23 |
---|---|
'원숭이 얼굴을 한 남자' 후기 - 다자이 오사무 (0) | 2022.02.21 |
작가상 - 다자이 오사무 (0) | 2022.02.19 |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 다자이 오사무 (0) | 2022.02.18 |
기다리다 - 다자이 오사무 (0) | 2022.02.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