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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다자이 오사무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 다자이 오사무

by noh0058 2022.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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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분게이순슈 9월호에 나를 향한 험담을 적었다. "전략――확실히 광대의 꽃 쪽이 작가의 생활이나 문학관을 한 층 풍부하게 드러내고 있으나 내가 보기에 작가의 눈앞 생활엔 불쾌한 구름이 껴 재능을 순수히 발휘하지 못할 듯할 우려가 있다."
 서로 괜한 거짓말은 하지 않도록 하자. 나는 당신의 문장을 서점 앞에서 읽고 굉장히 불쾌해졌다. 이래서야 마치 당신 혼자서 아쿠타가와상을 정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당신의 문장이 아닐 테지. 분명 다른 누군가에게 쓰게 한 문장임에 분명하다. 심지어 당신은 그걸 드러내 보이는 노력마저 하고 있다. "광대의 꽃"은 삼년 전, 내가 스물네 살일 적의 여름에 쓴 글이다. "바다"란 제목이었다. 친구인 콘 칸이치, 이마 우헤이에게 읽게 한 글인데 지금 것에 비해 굉장히 소박한 형식으로 작중 등장하는 "나"라는 남자의 독백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이야기만으로 마무리된 작품이었다. 그해 가을, 지드의 도스토옙스키론을 이웃 아카마츠 겟센 씨에게 빌려 읽고 생각 끝에, 나의 원시적이며 단정된 "바다"를 갈기갈기 찢어 "나"라는 남자의 얼굴을 작중 곳곳에 심어 이제껏 일본에 없던 소설이라고 친구들에게 허세를 부리고 다녔다. 친구인 나카무라 치헤이, 쿠보 카이치로 또 이웃 이부세 씨께서도 읽어 주셨는데 평이 좋았다. 기운을 받아 더욱 손을 주어 지우고 덧써 다섯 번 정도 다시 쓴 후 소중히 봉투에 담아 서랍에 넣어두었다. 올해 정월쯤 친구인 단 카즈오가 그걸 읽고 이건 걸작이야, 어딘가 잡지사에 투고해봐라고 하기에 내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씨를 찾은 것이다. 가와타바 씨라면 분명 이 작품을 알아주실 거라고 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소설이 써지지 않아 소위 나를 자연에 내놓는단 심정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게 자그마한 소동이 되었다.
 아무리 형한테 혼이 나도 오백 엔만 빌리고 싶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해보자. 나는 도쿄로 돌아왔다. 친구들의 도움 덕에 나는 형에게서 이삼 년 동안 매달 오십 엔의 돈을 받게 되었다. 나는 바로 빌릴 집을 찾았다. 그러는 사이 맹장염이 생겨 아사가야의 시노하라 병원에 입원했다. 복막에 고름이 생겨 조금 늦었다고 한다. 입원이 올해 사 월 사 일이었다. 나카타니 타카오가 병문안을 왔다. 일본낭만파에 들어가자. 그 선물로 '광대의 꽃'을 발표하자. 그런 말을 했다. '광대의 꽃'은 단 카즈오가 가지고 있었다. 단 카즈오는 여전히 가와바타 씨에게 가지고 가는 게 좋다 주장했다. 나는 절개한 복부의 고통 때문에 도통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폐가 안 좋아졌다. 의식불명인 날이 이어졌다. 의사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말했다고 아내가 가르쳐주었다. 꼬박 한 달을 그 외과 병원에 누워 머리를 들어 올리는 것마저 쉽지 않았다. 나는 오 월에 세타가야구 쿄도의 내과 병원으로 옮겨졌다. 거기서 두 달 있었다. 칠 월 일 일, 병원 조직이 바뀌어 직원도 모두 교대한다는 이유로 환자 또한 전부 쫓겨났다. 나는 형과 형의 지인인 키타요시 시로란 양복집 주인 둘이서 상담해 정해준 치바켄 후나바시로 옮겨졌다. 종일 등나무 의자에 누워서 아침저녁으로 가벼운 산책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도쿄서 의사가 왔다. 그런 생활이 두 달 가량 이어져 팔 월 말, 서점 앞에서 분게이순슈를 읽던 차에 당신의 문장을 발견했다. "작가의 눈앞 생활에 불쾌한 구름이 운운" 나는 사실 분노로 불탔다. 몇 밤이나 잠도 들지 못하고 괴로워 했다.
 작은 새를 키우고 무도를 보는 게 그리도 훌륭한 생활인가. 찌르자. 그런 생각도 했다. 대악당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문득 나를 향한 비틀어지고 강렬한 애정을 당신의 깊은 곳에서 느꼈다. 아니다, 아니다. 그렇게 고개를 저었으나 그 냉정함을 꾸미고 있으나 도스토옙스키처럼 혼란스러운 당신의 애정이 내 몸을 뜨겁게 했다.
 저는 지금 당신과 지혜로 겨루려는 게 아닙니다. 저는 당신의 그 문장 속에서 '세간'을 느끼고 '금전관계'의 안타까움을 느꼈죠. 저는 그걸 두세 명의 올곧은 독자에게 알리고 싶을 뿐입니다. 알려야만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제 인종의 미덕을 의심하기 시작했기에.
 키쿠치 칸 씨가 "뭐, 그래도 좋았어. 무난하니 좋았어"하고 히죽히죽 웃으며 손수건으로 이마땀을 닦는 광경을 생각하면 나는 다른 뜻 없이 웃게 된다. 정말로 좋았구나 싶어진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조금 불쌍하게 여겼는데 무얼, 이 또한 '세간'이다. 이시가와 씨는 훌륭한 생활인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똑바로 임하고 있다.
 단지 나는 안타까울 뿐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아무렇지 않은 듯 꾸며, 미처 꾸며내지 못한 거짓말이 안타까워 마지않다. 이럴 리가 없었다. 결코 이럴 리가 없었다. 당신은 작가란 "얼간이" 속에 살아 있음을 좀 더 또렷이 의식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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