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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다자이 오사무

기다리다 - 다자이 오사무

by noh0058 2022.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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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선 전철의 자그마한 역에서 저는 매일 같이 사람을 맞이하러 갑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맞이하러.
 시장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반드시 역에 들러 역의 차가운 벤치에 앉아 장바구니를 무릎에 얹고 멍하니 개찰구를 바라봅니다. 상행하행 전철이 홈에 도착할 때마다 수많은 사람이 전철 입구서 뱉어지고 북적북적 개찰구에 모여 하나같이 화난 얼굴로 정기권을 보이거나 티켓을 건네고는 곁눈질 한 번 하지 않은 채 제가 앉은 벤치 앞을 지나 역 앞 광장에 나와 제각기 흩어집니다. 저는 멍하니 앉아 있습니다. 누군가 제게 웃으며 말을 겁니다. 아아, 무서워라. 아아, 곤란해라.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생각만으로도 등에 냉수를 뿌린 것처럼 오싹해져 숨이 막힙니다. 하지만 저는 역시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대체 매일 같이 여기에 앉아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요. 어떤 사람을? 아뇨, 제가 기다리는 건 인간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저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아뇨, 무서워합니다.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여 잘 지내시나요, 날이 쌀쌀하네요 같은 하고 싶지도 않은 인사를 적당히 던지면 어쩐지 자신만 한 거짓말쟁이가 세상에 둘도 없는 듯한 괴로운 심정이 들어 죽고 싶어집니다. 또 상대 사람도 허투루 저를 경계하여 떠오르는 아첨을 늘어놓고 뜸을 들인 가짜 감상을 줄지으며, 저는 그걸 듣고 상대의 조심스러움이 슬퍼져 이윽고 세상 그 자체가 싫어서 견딜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세상 사람이란 서로 딱딱한 인사를 나누고 조심하며 그렇게 서로 지친 채로 평생을 보내는 걸까요. 저는 사람과 만나는 게 싫습니다. 그러니 저는 어지간한 일이라도 없는 한 제가 먼저 친구에게 놀러가는 일은 없었습니다. 집에서 어머니와 둘이서 조용히 뜨개질을 하는 게 가장 마음이 편했지요. 하지만 대전이 시작되고 주위가 지독히 긴장한 후로는 저 혼자 집에서 매일 멍하니 있는 게 굉장히 나쁜 일 같고 어쩐지 불안하여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몸을 날려 일하고 직접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제까지의 생활에 자신을 잃어버리고 만 겁니다.
 집에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단 심정이었지만 막상 밖으로 나와본들 저로선 갈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역에 들러 멍하니 역의 차가운 벤치에 앉습니다. 누군가가 훌쩍 나타난다면! 그런 기대와 아아, 나타나면 곤란해, 어쩌지 하는 공포와 하지만 나타난 이상은 어쩔 수 없지, 그 사람에게 내 목숨을 바치자, 내 운은 그때 정해져버리는 거야 하는 체념에 가까운 각오와 그 외에 다양한 발칙한 공상 따위가 기이하게 뒤엉켜 가슴을 한가득 채워 질식할 정도로 괴로워집니다. 살아 있는지 죽은 건지 알지 못할 백일몽을 꾸는 듯한 어쩐지 기댈 곳 없는 심정이 들어 역 앞의, 길가의 거리도 망원경을 거꾸로 들여 보는 듯이 조금 멀게만 느껴지는 통에 세상도 조용해져 버리고 맙니다. 아아, 저는 대체 무얼 기다리는 걸까요. 어쩌면 저는 굉장히 흐트러진 여자일지도 모릅니다. 대전쟁이 시작되어 어쩐지 불안해지고 몸을 날려 일해 도움이 되고 싶다는 건 거짓말이고 사실은 그런 그럴싸한 구실을 세워 자신의 가벼운 공상을 실현시키려 무어라 좋은 기회를 노리는 걸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이렇게 앉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안에도 가슴속으론 불순한 계획이 작게 타오르는 것도 같습니다.
 저는 대체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요. 또렷한 건 무엇도 없습니다. 단지 흐릿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저는 기다리죠. 대전쟁이 시작된 후로는 매일, 매일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역에 들러 이 차가운 벤치에 앉아 기다립니다. 누군가가 웃으며 제게 말을 거는걸. 아아, 무서워라. 아아, 곤란해라. 제가 기다리는 건 당신이 아닙니다. 그럼 저는 대체 누굴 기다리는 걸까요. 남편. 아뇨. 연인. 아닙니다. 친구. 싫어요. 돈. 설마요. 망령. 아아, 싫어라.
 좀 더 부드럽고 밝으며 멋진 것.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이를테면 봄 같은 거. 아뇨, 다르네요. 어린잎, 오 월, 밀밭에 흐르는 맑은 물. 역시 아니에요. 아아, 하지만 저는 기다리고 있답니다. 가슴을 뛰며 기다리고 있어요. 눈앞에서 사람들이 줄지어 지나갑니다. 저것도, 이것도 아닙니다. 저는 장바구니를 품고서 작게 떨면서 진심으로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를 잊지 말아주세요. 매일, 매일 역에 맞이하러 와서는 허무하게 집에 돌아가는 스무 살 소녀를 비웃지 마시고 부디 기억해주세요. 이 자그마한 역의 이름은 일부러 가르쳐드리지 않겠습니다. 가르쳐드리지 않아도 당신은 언젠가 저를 발견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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