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타의 자그마한 학생 둘이 저희 집을 찾았습니다. 저는 아쉽게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자고 있었는데 잠깐 하면 끝날 이야기라면, 하고 마루서 나와 잠옷 위에 하오리를 걸치고 만났습니다. 두 사람 모두 예의가 바르고 심지어 용건만 빨리 끝내 곧장 물러났습니다.
요컨대 이 신문에 수필을 쓰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보기엔 하나같이 열여섯열일곱으로 밖에 안 보이는 온화한 학생이었는데 역시 스물 넘은 어른이었던 걸 테지요. 요즘 들어 영 남의 연령이 구분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열다섯도 서른도 마흔도 또 쉰도 같은 일로 화를 내고 같은 일로 웃고 마찬가지로 조금 치사하고 또 마찬가지로 약하고 비굴하여 실제로 사람의 심리만 보아서는 나이 구분 따위 혼란스럽기 짝이 없어서 아무래도 좋아져 버립니다. 방금 말한 두 학생도 열여섯이나 열일곱으로 보이나 그 대화서는 자그마한 심리전 따위도 찾아 볼 수 있는 등 꽤나 성숙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신문편집자로서 이미 한 사람 몫을 하는 셈이지요. 두 분이 돌아가시고 저는 하오리를 벗고 다시 이불 안으로 들어가 잠시 생각했습니다. 방금 온 학생들의 처지가 어쩐지 불쌍히 느껴진 것입니다.
학생이란 사회의 어떤 부분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또 속해서는 안 된다 생각됩니다. 학생이란 본래 푸른 망도를 덧입은 차일드 해럴드여야 한다고 저는 완고히 믿고 있는 자입니다. 학생이란 사색의 산책꾼이기도 합니다. 푸른 하늘의 구름입니다. 온전한 편집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온전한 공무원이어서도 안 됩니다. 온전한 학자여서도 안 됩니다. 성숙한 사회인이 된다는 건 학생에게 무시무시한 추락입니다. 학생 스스로의 죄는 아닐 테지요. 분명 누군가가 그렇게 만든 걸 테지요. 그렇기에 저는 불쌍하다 말합니다.
그럼 학생의 본래 모습이란 무엇이랴. 그에 대한 명답으로 제가 실러의 설화시 한 편을 소개해드리죠. 실러는 더 많이 읽혀야 합니다.
이런 시국이기에 더 많이 읽혀야 합니다. 대범함, 강한 의지, 굉장히 밝고 높은 희망을 지니기 위해서도 여러분은 지금 실러를 떠올리고 이를 애독해야 합니다. 실러의 시에 "지구의 분배"란 재미난 한 편이 있는데, 그 큰 뜻은 대강 아래와 같습니다.
"받으라, 이 세계를!" 신의 아버지 제우스가 하늘 위에서 인간에게 호령했다.
"받으라, 이건 너희 것이다. 너희에겐 이를 유산 삼아 영원한 영지로서 주마. 자, 사이좋게 나누라" 그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앞다투어 자신의 몫을 한껏 빼앗기 시작했다. 농민은 들판의 경계에 말뚝을 박고 그곳을 밭으로 삼았을 때, 지주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 "그 칠 할은 내 거야" 또 상인은 창고를 채울 물자를 모으고 장로는 귀중한 오래된 포도주를 건지고 귀족들은 녹색 숲에 줄을 빙글 둘러 그곳을 자신의 즐거운 사냥터와 밀회 장소로 삼았다. 시장은 항구를 분배 받고 어인은 물가 주변에 자신의 영역을 만들었다. 아아, 그때는 어디에 무엇도 없이 모든 땅에 지주의 이름표가 붙어버렸다. "아아, 너무하다! 왜 나 혼자만 무엇도 받지 못하는가. 이 내가, 당신의 가장 충실한 아들이!" 그렇게 큰소리로 괴로움을 호소하며 그는 제우스의 옥좌 앞에 몸을 던졌다. "꿈속에서 얼마든지 궁시렁거리거라" 신은 차가웠다. "왜 나를 원망하지? 너는 대체 어디에 있었는가. 모두가 지구를 나눠 받을 때." 시인은 답했다. "다는 당신의 옆에 있었습니다. 눈은 당신의 얼굴을 향했고 귀는 천상의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 마음을 용서해주소서. 당신의 빛에 흠뻑 취해 지상의 일을 잊은걸." 그때 제우스는 상냥하게 말했다. "어쩌면 좋지? 지구는 모두 주어버렸다. 가을도, 사냥터도, 시장도 이젠 내 게 아니다. 네가 이 천상에 있고 싶다면 찾아오라. 그곳은 너를 위해 비워두마!"
어떠한가요. 학생 본래의 모습이란 즉 이러한 신의 총애, 이러한 시인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지상의 생활로는 무언가 자랑할 게 없더라도 그 자유롭고 고귀한 동경으로 이따금 신과 함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특권을 자각해야 합니다. 이러한 특권을 자랑스러워 해야 합니다. 한사코 가질 수 있는 특권은 아닙니다. 아아, 이는 정말로 짧은 기간이죠. 그 기간을 소중히 해야 합니다. 결코 자신을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지상의 분할 따위는 학교를 졸업하면 싫어도 받게 됩니다. 상인도 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도 될 수 있습니다. 공무원도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의 옥좌서 신과 나란히 앉을 수 있는 건 학창 시절 이후론 결코 찾아 오지 않습니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미타 학생 여러분. 여러분은 항상 "땅의 왕자"를 노래하는 동시에 또 조용히 "마음의 왕자" 또한 자임해야 합니다. 신과 함께 있을 시기는 여러분의 평생 중 단 한 번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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