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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355

요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당신은 제 말을 믿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아뇨, 분명 거짓말이라 생각하실 테죠. 과거라면 또 모를까 제가 하는 이야기는 다이쇼 초대에 있었던 일이니까요. 심지어 이렇게 우리에게 친숙한 이 도쿄서 있었던 일입니다. 밖으로 나가면 전철이나 자동차가 달립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끝없이 전화벨이 울리죠. 신문을 읽으면 동맹파업이나 여성 운동 보도가 이어지고 있어요――그런 오늘날에 이 대도심의 일각에서 포나 호프먼 소설에서나 볼 법한 꺼림칙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건 제가 아무리 사실이라 말해본들 쉽게 믿기지 않기 마련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도쿄 거리에 아무리 많은 등불이 있다 해도 일몰과 동시에 찾아오는 밤을 모조리 떨쳐내 낮으로 되돌리는 것도 아닐 테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무선 통신이나 비행기가 아무리 자연을.. 2022. 5. 12.
아쿠타가와상(제18회) 선평 - 키시다 쿠니오 "목화기", "와지", "전염병원", "담묵", "길" 다섯 편 중 나는 "와지"를 추천하기로 했다. 건강한 아름다움이라 해야 마땅한 게 존재하여 "와지"라는 제목의 상징이 작품 감촉 속에 훌륭히 살아 있는 점을 소설로서 가장 높게 평가하고 싶기 때문이다. "목화기"는 시국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야심작으로 읽는 보람은 있었으나 미완결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점수는 줄 수 없었다. "담묵"은 시국적 의의를 가진 좋은 단편으로 꽤나 날카로운 글재주엔 감탄하였으나 극적인 사건을 기록풍으로 흘려내는 기교엔 되려 허세 같은 게 느껴져 감동이 살짝 붕 떠 있는 걸 느꼈다. "전염병원"은 이런 소재를 자기중심의 생활기록으로 해본들 조금도 신선하지 않고 입을 다물기 어려운 일종의 공분이 불평처럼 울리는 걸 어떻게든 해줬.. 2022. 5. 11.
캇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서장 이는 어떤 정신병원 환자――제23호가 누구에게나 떠드는 이야기다. 그는 벌써 서른을 넘었으리라. 하지만 얼핏 보기엔 참으로 젊어 보이는 미치광이다. 그가 반생 동안 겪은 경험은――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그는 단지 가만히 두 무릎을 안은 채 이따금 창밖을 바라보며(철창이 자리한 창문 밖에는 갈라진 잎마저 보이지 않는 떡갈나무 한 그루가 눈발에 어두워진 하늘에 가지를 뻗고 있었다.) 원장 S 박사나 나를 상대로 길게 이 이야기를 떠들어 갔다. 물론 몸짓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를테면 그는 "놀랐다"고 말할 때엔 갑자기 그 얼굴을 돌리곤 했다…… 나는 이런 그의 이야기를 꽤나 정확하게 옮겼다. 만약 누군가가 내 필기만으로 부족하다 느낀다면 도쿄 시외 XX마을의 S 정신병원을 찾아보라. 나이보다 .. 2022. 4. 28.
네즈미코조 지로키치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어느 초가을 늦은 저녁이었다. 시오도메의 선박장 이토야의 2층에선 한량으로 보이는 두 남자가 마주하여 술잔을 주고받고 있었다. 한 명은 까무잡잡하고 살짝 통통히 살이 오른 남자로 홀옷에 핫탄 히라쿠게 오비를 묶고 있는데 위로 걸친 코와타리 토잔 반텐과 함께 옹골찬 남자 다움을 한 층 더 돋보이게 하는 정취가 있었다. 다른 한 명은 색이 하얗고 마주 앉은 남자보다는 체격이 작은 남자로, 손목까지 새긴 문신이 눈에 띈다. 풀이 떨어진 벤케이지마 홀옷에 주판 삼 척을 둥글둥글 감고 있는 것도 꽤나 방정맞게 보였다. 그뿐 아니라 이 남자는 처지가 비굴한지 상대 남자를 부를 때도 시종 형님 소리를 했다. 하지만 연배는 엇비슷해 보이는 만큼, 일반적인 형님 아우님하는 사이보다는 마음을 턴 교우 관계란 걸 알 .. 2022. 4. 12.
현학산방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그건 작게 만들어진 품격 있는 문이 자리한 집이었다. 물론 이 근방에선 드물지도 않은 집이었다. 하지만 '현학산방'이란 팻말이나 울타리 너머 보이는 정원수는 어떤 집보다도 풍류로 넘쳤다. 이 집 주인, 호리코시 겐카쿠는 화가로서 조금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산을 만든 건 고무도장 특허를 받은 덕이었다. 혹은 고무도장 특허를 받은 후로 땅을 사고팔은 덕이었다. 실제로 그가 가지고 있던 교외의 어떤 땅은 생강마저 제대로 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붉은 벽돌집이나 푸른 벽돌집이 늘어선 소위 '문화 마을'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현학산방'은 작게 만들어진 품격 있는 문이 자리한 집이었다. 특히 요즘엔 정원 소나무에 눈을 막는 줄을 걸거나 현관 앞에 마른 송엽에 자금우 열매가 붉.. 2022. 3. 21.
늙어버린 스사노오노미코토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코시노오로치를 퇴치한 스사노오는 쿠시나다히메를 아내로 들이는 동시에 아시나츠치가 다스리던 부락을 이끌게 되었다. 아시나츠치는 그들 부부를 위해 이즈모의 스카에 야히로도노를 건설했다. 궁은 꼭대기가하늘의 구름에 가려질 정도로 커다란 건물이었다. 그는 새로운 아내와 함께 조용한 아침저녁을 보내기 시작했다. 바람 소리도 물가의 파도도 혹은 밤하늘의 별빛도 이제는 그를 유혹하여 넓고 아득한 태고의 천지를 다시 헤매게 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제 아버지가 되려 한 그는 이 궁의 두터운 마루대 아래의――붉은색과 하얀색의 사냥도가 그려진 그의 방 네 벽 안에서 타카마가하라노쿠니가 주지 않은 화롯가의 행복을 발견해낸지 오래였다. 그들은 함께 밥을 먹고 미래의 계획을 나누었다. 때로는 궁 주변에 자리한 측백나무 숲으.. 2022.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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