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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현학산방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2.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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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그건 작게 만들어진 품격 있는 문이 자리한 집이었다. 물론 이 근방에선 드물지도 않은 집이었다. 하지만 '현학산방'이란 팻말이나 울타리 너머 보이는 정원수는 어떤 집보다도 풍류로 넘쳤다.
 이 집 주인, 호리코시 겐카쿠는 화가로서 조금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산을 만든 건 고무도장 특허를 받은 덕이었다. 혹은 고무도장 특허를 받은 후로 땅을 사고팔은 덕이었다. 실제로 그가 가지고 있던 교외의 어떤 땅은 생강마저 제대로 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붉은 벽돌집이나 푸른 벽돌집이 늘어선 소위 '문화 마을'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현학산방'은 작게 만들어진 품격 있는 문이 자리한 집이었다. 특히 요즘엔 정원 소나무에 눈을 막는 줄을 걸거나 현관 앞에 마른 송엽에 자금우 열매가 붉게 구르는 등 한 층 더 풍류 있게 보였다. 그뿐 아니라 이 집이 자리한 골목도 인기척이랄 게 거의 없었다. 두부 장수마저 그 앞을 지날 때엔 짐을 큰길에 내려두고 나팔만 불며 지나갈 뿐이었다.
 "현학산방――현학玄鶴, 겐카쿠가 뭘까?"
 우연찮게 그 집 앞을 지나던 머리가 긴 미술 학도는 얇고 긴 그림도구를 옆구리에 낀 채로 마찬가지로 금색 단추 교복을 입은 한 미술 학도에게 그렇게 묻곤 했다.
 "모르겠네. 설마 엄격厳格, 겐카쿠란 말장난은 아니겠지."
 두 사람은 웃으면서 가볍게 집 앞을 지났다. 그 후엔 단지 차가운 길가에 둘 중 하나가 버리고 간 "골든 배트" 꽁초 하나만이 푸른 연기를 얇게 내뿜을 뿐이었다………
 


 쥬키치는 겐카쿠의 사위가 되기 전부터 어떤 은행에서 일했다. 따라서 집에 돌아오는 건 늘 전등불이 들어올 즘이었다. 그는 요 며칠 동안 문안에 들어오자마자 곧 묘한 냄새를 느꼈다. 그건 노인 치고는 보기 드물게 폐결핵으로 누워 있는 겐카쿠의 숨결이 뿜는 냄새였다. 하지만 물론 집밖에선 그런 냄새가 날 리도 없었다. 겨울 외투의 겨드랑이 아래에 가방을 낀 쥬키치는 현관 앞의 돌을 밟으며 자신의 신경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겐카쿠는 '별채'에 자리를 깔고 누워 있지 않을 때는 밤옷을 입은 산 밑턱을 어슬렁거리곤 했다. 쥬키치는 외투나 모자를 벗으면 반드시 이 '별채'를 찾아 '다녀왔습니다'니 '오늘은 어떠셨습니까'하고 말을 걸고는 했다. 하지만 '별채' 안에는 함부로 발도 들이지 않았다. 이는 장인의 폐결핵이 옮는 걸 우려했기 때문이기도 했으며 또 한 편으론 숨 냄새를 불쾌하게 여겼기 때문이기도 했다. 겐카쿠는 그의 얼굴을 볼 때면 단지 "그래", "잘 왔다"하고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역시나 힘이 부족하여 소리보다도 숨결에 가까운 것이었다. 쥬키치는 장인의 그런 말을 들으면 이따금 자신의 몰인정에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하지만 '별채'에 들어가는 건 영 꺼림칙하기 짝이 없었다.
 그 후 쥬키치는 거실 옆방서 누워 있는 장모 오토리를 보러 간다. 오토리는 겐카쿠가 드러눕기 전부터――칠팔 년 전부터 걷지 못하여 화장실도 마음 편히 다니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 겐카쿠가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 건 그녀가 아무개 번의 오랜 가신의 딸이란 것 이외에도 얼굴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라 들었다. 그런 만큼 나이를 먹은 그녀도 눈매만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불 위에 앉아 하얀 양말 따위를 기우는 모습은 미라와 별다를 바 없었다. 쥬키치는 그녀에게도 역시나 "장모님, 오늘은 좀 괜찮으세요?"하는 짧은 말을 남긴 채로 여섯 첩짜리 거실로 향했다.
 아내 오스즈는 거실에 없었다. 신슈 출신 여종 오마츠와 좁은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 듯했다. 깔끔하게 청소된 거실은 물론 아궁이가 자리한 부엌마저도 쥬키치에겐 장인장모의 방보다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는 한때 지사도 된 적 있는 어떤 정치가의 차남이었다. 하지만 호걸 기질을 지닌 아버지보다도 과거에 여류가인이었던 어머니에 가까운 수재였다. 그 사실은 그의 사람 좋은 눈매나 마른 턱에서도 또렷이 드러났다. 쥬키치는 이 거실에 들어오면 양복을 일본옷으로 갈아 입고서 화로 앞에 편하게 앉아 저렴한 담배를 피우거나 올해 겨우 초등학교에 들어간 외동 아들 타케오와 놀아주고는 했다.
 쥬키치는 언제나 오스즈나 타케오와 탁자를 둘러싸고 식사를 했다. 그들의 식사는 북적였다. 하지만 요즘 들어선 "북적인다" 하더라도 어딘가 또 갑갑함에 분명했다. 그건 겐카쿠의 간호를 위해 코노라는 간호사가 와있는 탓이었다. 물론 타케오는 "코노 씨"가 있어도 여전히 장난을 쳤다. 아니, 혹은 "코노 씨" 때문에 되려 더 장난을 칠 정도였다. 스즈는 이따금 눈살을 찌푸리며 그런 타케오를 노려보곤 했다. 하지만 타케오는 어리둥절해하며 일부러 거창하게 밥을 떠보이곤 했다. 쥬키치는 소설 따위를 읽고 있는 만큼 타케오의 소란 속에서 느껴지는 "남자"에 불쾌함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작게 웃고선 조용히 밥만 먹을 뿐이었다.
 "현학산방"의 밤은 조용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오는 타케오는 물론이요 쥬키치 부부도 대부분은 열 시면 잠자리에 들었다. 그 후로도 일어나 있는 건 아홉 시 전후부터 밤 시중을 드는 간호사 코노뿐이었다. 코노는 겐카쿠의 머리맡에 붉게 불이 오르는 화로를 둔 채 조는 법도 없이 앉아 있었다. 겐카쿠는――겐카쿠도 때때로 잠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뜨신 물이 식었다느니 수건이 말랐다느니 이외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런 '별채'서 들리는 건 정원에 심은 대나무가 살랑이는 소리뿐이었다. 코노는 옅은 추위를 머금은 정적 속에서 가만히 겐카쿠를 바라보며 여러 생각을 했다. 이 집안 사람들의 심리나 자신의 미래 따위를………
 


 어느 눈 그친 오후, 스물네다섯 쯤 되는 여자 하나가 가녀린 남자아이의 손을 끌며 창문 너머로 푸른 하늘이 보이는 호리코시 집안의 부엌에 얼굴을 드러냈다. 쥬키치는 물론 집에 없었다. 마침 미싱을 돌리던 오스즈는 조금 예상은 하였으나 살짝 당혹에 가까운 걸 느꼈다. 하지만 일단 손님을 맞이하러 화로 앞에 일어났다. 손님은 부엌에 오른 후, 자신의 신발과 남자아이의 구두를 나란히 정리했다.(남자아이는 하얀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미안함을 느끼는 건 이런 동작만으로도 명백히 알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녀는 겐카쿠가 요 대여섯 해 동안 어느 도쿄 근방에 둔 채 공연히 왕래한 여종 출신의 첩, 오요시였으니까.
 오스즈는 오요시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녀가 많이 늙었다 느꼈다. 심지어 그건 얼굴만이 아니었다. 오스즈는 네다섯 해 전에는 둥글게 살이 오른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는 그녀의 손마저 정맥이 보일 정도로 마르게 했다. 또 그녀가 입에 두르고 찬 것도――오스즈는 그녀의 저렴한 반지서 어쩐지 생활고의 쓸쓸함을 느꼈다.
 "이건 오빠가 나리께 전해달라 했어요."
 오요시는 거실에 발도 들이기 전에 머뭇머뭇 낡은 신문지로 포장된 짐 하나를 부엌 구석에 두었다. 설거지를 하던 오마츠는 빠르게 손을 움직이며 머리를 새로 묶은 오요시를 곁눈질 했다. 하지만 이 신문지 포장을 보고는 더욱 악의 섞인 표정을 지었다. 짐에서는 아궁이나 화사한 접시와 조화되지 않는 악취가 뿜어지고 있었다. 오요시는 오마츠를 보지 않았으나 적어도 오스즈의 얼굴색서 묘한 기색은 본 걸 테지. "이건 그, 마늘이에요"하고 설명했다. 그리고 손가락을 물던 아이에게 "자, 도련님. 인사해야죠?"하고 말했다. 남자아이는 물론 겐카쿠와 오요시 사이의 아들인 분타로였다. 오스즈는 오요시가 그런 아이를 '도련님'이라 부르는 게 참으로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녀의 상식은 곧장 그것도 이런 여자에겐 도리 없는 일이란 생각을 들게 했다. 오스즈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한 채로 거실 구석에 앉은 모자에게 집에 있던 과자나 차를 권하며 겐카쿠의 몸상태를 이야기하거나 분타로의 기분을 맞춰주곤 했다………
 겐카쿠는 오요시를 첩으로 들인 후, 간선 전철 환승도 힘들어하지 않으며 일주일에 한두 번은 반드시 그녀를 찾아 갔다. 오스즈는 당초 그런 아버지의 심리를 혐오했다. "엄마 생각 좀 하시지"――그런 생각도 번번히 들었다. 물론 오토리는 전부 체념한 듯했다. 하지만 오스즈는 그런 만큼 한 층 더 어머니를 안타까워했고 아버지가 오요시를 찾아 나간 후에도 어머니께 "오늘은 시 모임이라네요"하고 뻔뻔한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그 거짓말이 도움이 되지 않은 건 그녀 자신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따금 어머니에 얼굴에 드리운 냉소에 가까운 표정을 보면 거짓말한 걸 후회했다――보다 정확히는 되려 자신의 마음도 알아주지 않는 앉은뱅이 어머니에게 무언가 매정함을 느끼곤 했다.
 오스즈는 아버지를 보낸 후 가족을 생각하기 위해 미싱을 돌리는 손을 멈추는 일도 잦았다. 겐카쿠는 오요시를 들이기 전부터도 "훌륭한 아버지"라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상냥한 그녀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단지 그녀가 마음에 걸렸던 건 아버지가 그림이나 골동품마저 오요시의 집에 옮기는 것이었다. 오스즈는 오요시가 여종이었을 적부터 그녀를 나쁜 사람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아니, 되려 남들보다 소심한 여자라 생각했다. 하지만 도쿄 변두리서 생선가게를 하는 오요시의 오빠는 무엇을 꾸미는지 알 수 없었다. 실제로 그녀는 그가 질 나쁜 잔재주로 가득한 남자로 보였다. 오스즈는 이따금 쥬키치를 붙들고 자신의 걱정을 풀어놓곤 했다. 하지만 그는 어울려주지 않았다. "아버님께 내가 무슨 말을 해"――그의 대답에 오스즈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설아 아버님도 오요시가 나빙의 그림을 이해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쥬키치도 이따금 오토리에게 은근히 그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하지만 오토리는 쥬키치를 올려다보며 항상 쓴웃음을 지은 채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게 아버지 성격이야. 나한테도 '이 벼루 어떤 거 같아?'하고 묻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누구에게나 바보 같은 걱정이었다. 올해 겨울 이후로 병이 무거워져 오요시의 집에 갈 수 없게 된 겐카쿠는 쥬키치가 꺼낸 절연 이야기에(물론 그 이야기 조건은 그보다도 오토리나 오스즈가 마련한 것에 가까웠지만) 의외로 순순히 승낙을 해주었다. 그건 또 오스즈가 겁내던 오요시의 오빠도 마찬가지였다. 오요시는 천 엔의 절연금을 받고 카즈사의 어떤 해안가에 위치한 부모님 집으로 돌아가 다달이 분타로의 양육비로 약간의 돈을 받는다――그는 그런 조건에 조금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오요시의 집에 둔 겐카쿠의 비전 차도구 따위도 재촉도 하지 않은 사이에 옮겨왔다. 오스즈는 이전에 의심했던 만큼 그에게 한 층 더 호의를 느꼈다.
 "실은 동생이 만약 일손이 부족하면 간병을 가고 싶다 말하더군요."
 오스즈는 그 부탁을 받기 전에 앉은뱅이 어머니와 상담했다. 그게 그녀의 실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토리는 그녀의 상담을 듣고는 내일이라도 분타로를 데리고 오라 권하였다. 오스즈는 어머니의 기분 이외에도 집안 분위기가 흐트러질 걸 우려하여 몇 번이나 생각을 고치게 했다.(그런 주제에 또 한 면으론 아버지 겐카쿠와 오요시의 오빠 사이에 선 입장상, 어느 틈엔가 매몰차게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게 된 심리에도 침울해져 있었다.) 하지만 오토리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스즈는 도리 없이 오요시가 오는 걸 승낙했다. 그것도 혹은 세간을 알지 못하는 그녀의 실책이었을지 몰랐다. 실제로 쥬키치는 은행에서 돌아와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여자처럼 상냥한 미간에 불쾌한 표정을 드리웠다. "그야 일손이 되어주는 건 고맙긴 한데………아버님께도 한 번 이야기해보지 그랬어. 아버님이 거절하면 네가 책임질 일도 없는데"――그런 이야기를 했다. 오스즈는 어느 틈엔가 울적해져 "그러게"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겐카쿠에게 상담하는 건――오요시에게 당연히 미련이 있는 빈사의 아버지께 상담하는 건 돌이켜봐도 불가능한 일임에 분명했다.
 ………오스즈는 오요시 모녀를 상대하며 이런 우여곡절을 떠올렸다. 오요시는 화로에 손도 뻗지 않은 채 띄엄띄엄 자신의 오빠나 분타로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말은 사오 년 전처럼 "소레와그건"을 S-rya라 발음하는 시골 억양을 고치지 않았다. 오스즈는 이 시골 억양서 어느 틈엔가 그녀 또한 어떤 불안을 품고 있단 걸 느꼈다. 또 동시에 후스마 너머서 기침 한 번 하지 않는 어머니 오토리에게 무언가 막연한 불안도 느꼈다.
 "그럼 일주일 정도 계시는 거예요."
 "네, 괜찮으시다면요."
 "갈아 입을 옷은 챙겨왔고요?"
 "오빠가 저녁에라도 전달해준다네요."
 오요시는 그렇게 대답하며 지루해하는 분타로에게 품에서 캐러멜을 꺼내주고는 했다.
 "그럼 아버님께는 그렇게 말해드릴게요. 아버님께서 많이 약해지셔서요. 장자를 향한 귀 한쪽에만 동상이 생기곤 해요."
 오스즈는 화로 앞을 벗어나면서 별생각 없이 주전자의 위치를 고쳤다.
 "엄마."
 오토리는 무어라 대답했다. 그건 오스즈의 목소리에 겨우 눈을 뜬 듯한 늘어진 목소리였다.
 "엄마, 오요시 씨가 오셨어요."
 오스즈는 살짝 마음이 풀려 오요시의 얼굴을 보지 않도록 곧장 화로 앞에 섰다. 그리고 방을 건너 다시 한 번 "오요시 씨가"하고 말했다. 오토리는 옆으로 누운 채로 밤옷 소매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올려다 보고는 눈에만 미소에 가까운걸 드리우고 "어머, 빨리 오셨네"하고 대답했다. 오스즈는 그녀의 등에 오요시가 다가온 걸 느끼며 눈이 쌓인 정원 너머 복도를 통해 "별채"로 서둘렀다.
 "별채"는 밝은 복도서 대뜸 들어 온 오스즈의 눈에는 더 어두워 보였다. 겐카쿠는 마침 눈을 떠서 코노가 읽어주는 신문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오스즈의 얼굴을 보고는 대뜸 "오요시냐?"하고 물었다. 그건 묘하게 긴박하여 힐문에 가까운 갈라진 목소리였다. 오스즈는 후스마 옆에 선 채로 반사적으로 "네"하고 대답했다. 그리고――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곧 오실 거예요."
 "그래………오요시 혼자 왔더냐?"
 "아뇨………"
 겐카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코노 씨, 잠시만 와주시겠어요?"
 오스즈는 코노보다 한 걸음 앞서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지났다. 마침 눈이 남은 종려 잎 위에는 할미새 한 마리가 꼬리를 휘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보다 환자 냄새가 나는 "별채" 안에서 무언가 꺼림칙한 게 묻어 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오요시가 머물게 된 후로 집안 분위기는 눈에 보이게 험악해져 갔다. 타케오가 분타로를 괴롭히는 게 그런 분위기의 첫 시작이었다. 분타로는 아버지 겐타로보다 어머니 오요시와 닮은 아이였다. 심지어 심약한 것마저 어머니 오요시를 닮아 있었다. 오스즈도 물론 그런 아이에겐 동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때때로는 분타로를 똑부러지지 못한 아이로 여기기도 했다.
 간호사 코노는 직업상 이 흔해 빠진 가정적 비극을 차갑게 바라보고 있었다――아니, 되려 향락하고 있었다. 그녀의 과거는 어두웠다. 그는 아픈 남편이나 병원 의사 등의 관계 때문에 몇 번이나 청산가리를 먹으려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런 과거는 어느 틈엔가 그녀의 마음에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병적인 취향을 심어주고 말았다. 그는 호리코시 집안에 들어 왔을 때, 앉은뱅이 오토리가 변을 볼 때마다 손을 씻지 않는 걸 발견했다. "이 집 새댁은 참 눈치가 좋아. 우리도 모르게 물을 가져다주고 있으니 말이야"――그런 생각도 한때는 의심 깊은 그녀의 마음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하지만 네다섯 날 지나는 사이에, 그게 곱게 자란 오스즈의 실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다. 그녀는 이 발견에 무언가 만족에 가까운 걸 느끼고, 오토리가 변을 볼 때마다 세면기의 물을 전해다 주었다.
 "코노 씨 덕에 남들처럼 손도 다 씻네요."
 오토리는 손을 마주하여 눈물을 흘렸다. 코노는 오토리의 기쁨에도 조금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로 세 번에 한 번은 물을 떠다주게 된 오스즈를 보는 건 유쾌했다. 따라서 코노에겐 아이들의 싸움도 불쾌하지 않았다. 그녀는 겐카쿠에겐 오요시 모자를 동정하는 기색을 보였다. 또 동시에 오토리에겐 오요시 모자에게 악의가 있는 기색을 보였다. 그건 설령 느리더라도 확실한 효과를 주고 있었다.
 오요시가 머물게 되어 일주일 정도 뒤, 타케오는 또 분타로와 싸웠다. 싸움은 돼지 꼬리가 감의 꼭다리와 닮았냐 닮지 않았느냐 하는 언쟁으로 시작되었다. 타케오는 그의 공부방 구석에――현관 옆 네 첩 반의 구석에 마른 분타로를 떠밀고는 주먹질하고 걷어찼다. 그때 마침 온 오요시가 우는 목소리도 내지 않는 분타로를 안아 올리며 타케오를 꾸지랐다.
 "도련님, 약한 사람을 괴롭히면 안 됩니다."
 그건 소심한 오요시에게선 보기 드문 가시 돋친 말이었다. 타케오는 오요시의 험악함에 놀라서 이번에는 자신이 울며 오스즈가 있는 거실로 도망쳤다. 그러자 오스즈도 화가 났는지 미싱 일을 내버려둔 채 오요시 모자가 있는 곳을 향해 타케오를 억지로 끌고 갔다.
 "넌 왜 그렇게 사람이 못 됐니. 자, 오요시 씨께 사과하렴. 손을 딱 대고 사과하렴."
 오요시는 그런 스즈 앞에서 분타로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사과에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또 그 중재역을 맡는 건 반드시 간호사 코노였다. 코노는 얼굴을 붉힌 오스즈를 열심히 밀어 거실러 되돌리며, 항상 또 다른 사람의――분명 가만히 이 소동을 듣고 있을 겐카쿠의 심정을 상상하며 내심 냉소를 짓고 있었다. 물론 그런 기색을 결코 얼굴색에 드러내는 법은 없었다.
 하지만 꼭 아이들의 싸움만이 집안을 불안하게 만든 건 아니었다. 오요시는 또 어느 틈엔가 매사 체념한 듯한 오토리의 질투를 가만히 부채질하였다. 물론 오토리는 오스즈 본인에겐 한 번도 원망을 털어놓지 않았다.(이는 대여섯 해 전, 오요시가 아직 여종 방서 자고 일어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전혀 관계없는 쥬키치에게 토로하고는 했다. 쥬키치는 물론 곤란해 했다. 오스즈는 그런 게 안타까워 번번히 어머니 대신 사과를 했다. 하지만 그는 쓴웃음을 짓고는 "당신까지 히스테리해지면 곤란해져"하고 대답하고는 했다.
 코노는 오토리의 질투에도 역시 흥미를 가졌다. 오토리의 질투 자체는 물론, 그녀가 쥬키치에게 토로하는 심정도 코노는 또렷이 알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그녀는 어느 틈엔가 그녀 자신도 쥬키치 부부에게 질투에 가까운 걸 느꼈다. 오스즈는 그녀에게 "아가씨"였다. 쥬키치도――쥬키치는 괜찮은 남자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가 경멸하는 한 마리 수컷인 것도 사실이었다. 그녀는 그런 그들의 행복을 거의 부당하다 여겼다. 그녀는 이 부당함을 꼬아놓기 위해(!) 쥬키치에게 친근한 행색을 보였다. 그건 어쩌면 쥬키치에게는 아무 감정도 들지 않는 행동일지 몰랐다. 하지만 오토리를 짜증나게 하기에는 절호의 기회를 주었다. 오토리는 무릎을 드러낸 채 "쥬키치, 내 딸로는――앉은뱅이 딸로는 부족하단 거냐?"하고 표독한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오스즈만큼은 그 때문에 쥬키치를 의심하는 법이 없었다. 아니, 코노에게도 안타까움을 느끼는 듯했다. 코노는 그 점에 불만을 가진 걸로도 모자라 새삼스레 사람 좋은 오스즈를 경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쥬키치가 자신을 피해다니기 시작한 건 유쾌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을 피하는 사이에 되려 자신에게 남자 다운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유쾌했다. 그는 이전에 코노가 있더라도 부엌옆 목욕탕에 가기 위해 전라가 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들어선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건 그가 털 빠진 수탉에 가까운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임에 분명했다. 코노는 그런 그를 보면서(그는 얼굴에도 주근깨가 가득했다.) 대체 오스즈 말고 누구를 반하게 할 셈이냐며 홀로 그를 비웃곤 했다.
 어느 서리구름 낀 아침, 코노는 그녀의 방인 현관의 삼 첩방에 거울을 두고 항상 하던 식으로 올백 머리를 묶었다. 그건 마침 오요시가 시골로 돌아가기 전날이었다. 쥬키치 부부는 오요시가 이 집을 떠나는 게 기쁜 듯했다. 하지만 오토리는 되려 한 층 더 짜증을 느끼는 듯했다. 코노는 머리를 묶으며 날카로운 오토리의 목소리를 듣고 언젠가 친구가 이야기한 어떤 여자를 떠올렸다. 그녀는 파리에 사는 사이 서서히 격한 향수병을 앓다 남편의 친구들이 귀국하는 걸 계기로 같이 배에 올랐다. 그녀는 긴 항해도 괴롭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키슈에 이르자 어째서인지 불쑥 흥분하기 시작해서는 기어코 바다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일본에 가까워질수록 향수병도 되려 고취되고 만다――코노는 조용히 기름진 손을 닦으며 앉은뱅이 오토리의 질투는 물론, 그녀 자신의 질투에도 이런 신비한 힘이 감돌고 있다 생각했다.
 "엄마? 왜 그러세요, 왜 이런 곳까지 다 기어 나오시고. 엄마?――코노 씨, 잠시만 와주세요."
 오스즈의 목소리는 "별채"에 가까운 툇마루에서 울리는 듯했다. 코노는 이 목소리를 들었을 때 깔끔한 거울을 본 채로 처음으로 씩 냉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자못 놀랐다는 양 "네, 지금 갑니다"하고 대답했다.
 

다섯


 겐카쿠는 나날히 쇠약해져 갔다. 그는 오랜 병고는 물론이요 그의 등부터 허리에 걸친 욕창의 고통도 극심했다. 그는 이따금 신음 소리를 내면서 조금씩 고통을 풀려 했다. 하지만 그를 머리 아프게 한 건 비단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었다. 그는 오요시가 머무는 동안엔 조금의 위안을 받는 대신에 오토리의 질투나 아이들의 싸움 등으로 끝없이 괴로워 해야 했다. 하지만 그건 차라리 나았다. 겐카쿠는 오요시가 떠난 후엔 무서울 정도의 고독을 느껴 길었던 자신의 평생과 마주해야만 했다.
 겐카쿠의 평생이란 자기 자신에겐 더할 나위 없이 비참한 인생이었다. 확실히 고무 도장 특허를 받은 당시는 그의 평생 속에서도 비교적 밝은 시대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곳에도 동료의 질투나 이익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자신의 초조함이 끝없이 그를 괴롭혔다. 하물며 오요시를 첩으로 들인 후엔――그는 가정 내 소란 이외에도 그들이 모르는 돈을 마련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했다. 심지어 더욱이 비참한 건 젊은 오요시에게 끌림을 느꼈음에도 적어도 요 일이 년은 수도 없이 오요시 모자가 죽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비참해?――하지만 생각해 보면 비단 나만 그런 것도 아니잖아."
 그는 어느 밤 그런 생각을 하며 친척이나 지인을 하나하나 자세히 떠올려 보았다. 그의 바깥 사돈은 단지 "헌정을 보호하기 위해" 그보다 실력 없는 적을 몇 명이나 사회적으로 죽였다. 또 그와 가장 친한 어떤 선배의 골동품점은 전처의 딸에게 넘어갔다. 또 어떤 변호사는 공탁금을 제 돈처럼 사용했다. 또 어떤 조각가는――하지만 그들이 저지른 죄는 신기하리만치 그의 괴로움을 풀어주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되려 삶 그 자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만 할 뿐이었다.
 "무얼, 이 괴로움도 오래가진 않아. 죽어버리면 그만이야………"
 그게 겐카쿠에게 남은 단 하나뿐인 위안거리였다. 그는 몸과 마음을 좀 먹는 숱한 괴로움을 풀기 위해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려 했다. 하지만 그의 평생은 앞서도 말한 것처럼 비참했다. 만약 그곳에 조금이라도 밝은 일면이 있다면 그건 단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의 기억뿐이었다. 그는 꿈과 꿈 사이서 그의 부모님이 살던 신슈의 어떤 산골마을을――특히 돌을 둔 판자 지붕이나 누에 냄새가 나는 뽕나무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 기억도 이어지진 않았다. 그는 신음 사이에 관음경을 외워보거나 과거에 유행한 노래를 불러보기도 했다. 심지어 '묘음관세음, 범음해조음, 승피세간음"을 외운 후 "어기여차어기여차" 노래하는 우스꽝스러움마저 그에게는 아깝게만 느껴졌다.
 "자는 게 천국이로구나. 자는 게 천국이야………"
 겐카쿠는 이제 모든 걸 잊기 위해 푹 잠들고 싶었다. 실제로 코노는 그를 위해 수면제 이외에도 헤로인을 주사 놔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겐 잠마저 평안하지 않았다. 그는 이따금 꿈속에서 오요시나 분타로를 만났다. 그건 그에겐――꿈속의 그에겐 마음 편한 일이었다.(그는 어느 밤의 꿈속에선 아직 새로운 화투의 "벚꽃"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벚꽃"은 사오 년 전의 오요시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꿈에서 깨면 그를 한 층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겐카쿠는 어느 틈엔가 잠을 자는 것에도 공포에 가까운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섣달 그뭄날이 가까워진 어느 오후, 겐카쿠는 천장을 보며 누운 채로 코노에게 말했다.
 "코노 씨, 한동안 훈도시를 갈아입지 않았으니 무명 여섯 척만 사오시오."
 무명을 손에 넣는 건 일부러 마츠를 근처 옷가게로 보낼 필요도 없었다.
 "갈아 입는 건 혼자 하겠소. 여기 두고 가시오."
 겐카쿠는 이 훈도시로――이 훈도시에 목을 졸라 죽는 걸 결심하여 짧은 반나절이 지났다. 하지만 침상 위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남의 손을 빌려야 하는 그에겐 좀처럼 좋은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막상 눈앞에 다가 온 죽음은 역시나 무서웠다. 그는 어두컴컴한 전등불의 노란 한 줄기를 바라보며 아직도 삶을 버리지 못하는 자신을 비웃곤 했다.
 "코노 씨, 좀 일으켜주시오."
 밤 열 시 경의 일이었다.
 "이제 한숨 자고 싶소. 당신도 사양 말고 쉬시오."
 코노는 묘하게 겐카쿠를 바라보며 쌀쌀맞은 대답을 했다.
 "아뇨, 저는 일어나 있을게요. 그게 제 일이니까요."
 겐카쿠는 코노가 자신의 계획을 간파한 걸 느꼈다. 하지만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무 말도 않고 자는 척을 했다. 코노는 그의 머리맡에서 부인 잡지 신년호를 펼쳐 무언가를 읽는 듯했다. 겐카쿠는 역시나 이불 옆 훈도시를 신경 쓰며 곁눈질로 코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불쑥 우스워졌다.
 "코노 씨."
 코노도 겐카쿠의 얼굴을 보곤 살짝 당황한 듯했다. 겐카쿠는 이불에 기댄 채로 어느 틈엔가 밑도 끝도 없이 웃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아니, 뭐기는. 우스울 것도 없지――"
 겐카쿠는 여전히 웃으며 마른 오른손을 저어 보이곤 했다.
 "이번엔………갑자기 웃음이 나와서 말야………이젠 정말로 쉬어주시오."
 한 시간 가량 지난 후, 겐카쿠는 어느 틈엔가 잠에 들었다. 그날 밤은 꿈도 무서웠다. 그는 나무가 무성한 가운데 서서 키가 큰 장자 틈새로 방안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전라의 아이 하나가 자신을 보며 누워 있었다. 단지 아이는 마치 노인처럼 온몸에 주름이 가득했다. 겐카쿠는 소리를 지르며 땀투성이가 되어 눈을 떴다…………
 "별채"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뿐 아직 어두컴컴했다. 아직?――하지만 겐카쿠는 탁상시계를 보고 이래저래 정오에 가까운 걸 알았다. 꿈에서 깬 그는 잠시 안도한 만큼 마음이 살짝 밝았다. 하지만 또 여느 때처럼 곧 음울해져 갔다. 그는 자신의 호흡을 세었다. 그건 마치 무언가에게 "지금이다"하고 재촉 당하는 기분이었다. 겐카쿠는 가만히 훈도시를 끌어당겨 머리에 감고는 두 손으로 쭉 잡아당기려 했다.
 그때 고개를 내민 건 둥글둥글 부풀어 오른 타케오였다.
 "와, 할아버지가 이상한 거 해."
 타케오는 그렇게 소란을 떨며 거실로 달려갔다.
 

여섯


 일주일 쯤 지난 후, 겐카쿠는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그의 고별식은 성대(!)했다. (단지 앉은뱅이 오토리만은 그 식에도 참석할 수 없었다.) 그의 집에 모인 사람들은 쥬키치 부부에게 안타까움을 전한 후, 하얀 천에 덮인 그의 관 앞에 향을 올렸다. 하지만 문을 나올 때엔 대부분 그를 잊어버렸다. 물론 그의 옛 지인만은 예외임이 분명했다. "그 영감도 속 편하게 갔을 거야. 젊은 첩도 있지, 돈도 있지"――그들은 하나 같이 그런 말만 나누었다.
 그의 관을 실은 장례용 마차는 한 량의 마차를 끈 채로 햇살도 드리우지 않은 12월 거리서 어떤 화장장까지 달렸다. 칙칙한 뒷 마차에 타고 있는 건 쥬키치나 그의 사촌동생들이었다. 그의 사촌동생인 대학생은 마차 흔들림을 신경 쓰며 쥬키치와 별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작은 책을 읽고 있었다. 그건 Liebknecht의 추억록의 영역본이었다. 하지만 쥬키치는 장례식 피로로 꾸벅꾸벅 졸거나 창밖의 신시가지를 바라보며 "이 주변도 많이 변했군"하고 힘없는 혼잣말을 하곤 했다.
 두 마차는 서리가 녹은 길을 지나 겨우 화장장에 이르렀다. 하지만 미리 전화하여 예정을 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등 화장터는 만원이 되어 이등 화장터만 남았다 한다. 그들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쥬키치로선 사위란 입장보다 오스즈의 생각을 더 우선해 반달형 창문 너머로 열심히 사무원과 교섭을 했다.
 "사실 살아 계셨을 때 치료도 제대로 못해드렸거든요. 하다못해 화장만이라도 일등 화장터서 해드리고 싶은데요"――그런 거짓말도 해보았다. 그건 그의 예상보다도 더 효과가 좋은 거짓말인 듯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일등은 이미 만석이니 특별히 일등 요금으로 특등으로 해드리겠습니다."
 쥬키치는 꽤나 미안함을 느껴 몇 번이고 사무원에게 인사를 했다. 사무원은 진주 안경을 찬 사람 좋아 보이는 노인이었다.
 "무얼, 인사하실 거 없습니다."
 그들은 화장을 시작한 후, 칙칙한 마차를 타고 화장장 문을 나서려 했다. 그러자 의외로 오요시가 홀로 벽돌 울타리 앞에 선 채로 그들의 마차를 향해 목례를 했다. 쥬키치는 조금 당황하여 그의 모자를 들어 올리려 했다. 하지만 그들을 태운 마차는 그때 이미 기울어져 포플러가 갈라진 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 사람이죠?"
 "응………올 때도 저기 있었나?"
 "글쎄요. 거지밖에 못 봤는데……저 여자는 이제 어쩌려나요."
 쥬키치는 시키시마 한 개비에 불을 붙이고 되도록 냉담하게 대답했다.
 "글쎄, 어쩌려나……"
 그의 사촌동생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의 상상은 카즈사의 어떤 해안가 어부마을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부마을서 살아야 하는 오요시 모자도――그는 불쑥 험악한 표정을 짓더니 어느 틈엔가 들기 시작한 햇살 속에서 다시 한 번 Liebknecht를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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