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우지노다이나곤타카쿠니 "이거야 원, 낮잠에서 일어나 보니 오늘은 한 층 더운 거 같구나. 저 소나무 가지의 등나무 꽃을 흔들 정도의 바람 하나 불지 않으니. 항상 시원하게 들리는 연못 소리도 유지매미 소리에 섞여서 되려 덥고 갑갑하기만 해. 어디, 또 아이들에게 부채질이나 부탁해 볼까."
"뭐, 거리 사람들이 모여 있어? 그럼 그쪽으로 가보자. 너희도 그 커다란 부채 잊지 말고 뒤에서 잘 따라오너라."
"그래, 내가 타카쿠니일세. 헐벗고 있는 무례는 용서해주게나."
"오늘은 그대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일부로 이 우지노테이에 모은 걸세. 실은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소시 하나를 만들어 보려 해. 근데 이게 혼자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쉽게도 나는 글로 쓸만한 이야기를 알지 못하잖나. 그렇다고 성가신 취향 따위를 골똘히 꾸며보는 것도 나 같은 게으름뱅이에겐 한 세월이고. 허니 오늘부터 거리 사람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하나씩 들어 그걸 소시로 편찬해보려 하네. 허면 집 안팎만 어슬렁거리는 나로선 생각지도 못할 특이한 일과 기이한 이야기가 배에 싣고 수레에 실을 정도로 사방에서 모이지 않겠나. 허니 모두에겐 미안하나 이 바람을 들어주지 않겠나?"
"뭐, 그래주겠다고? 그거 고맙구나. 그럼 바로 순서대로 이야기를 들어보자꾸나."
"자, 아이들아. 사람들에게 바람이 가도록 부채질 좀 하거라. 그러면 조금은 시원해지겠지. 주물사도 도기 장인도 사양할 건 없어. 둘 다 계속 이 책상 옆에 있어도 된다네. 생선 파는 여자도 해가 들면 통을 그 옆에 두면 좋을 게야. 스님도 금고를 내려놓지 그래. 저기 사무라이는 아예 돗자리를 깔았구나."
"허면 준비가 되는 대로 먼저 나이 많은 도자기 장인부터 무엇이든 이야기해보거라."
둘
할아버지 "이거 참 정중하기도 하시지. 미천한 제가 하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소시에 적어주신다니――그것만으로도 제가 얼마나 황송한지 모릅니다. 허나 그렇다고 바로 물러나서는 되려 뜻에 거스르는 게 되니 무례한 걸 무릎쓰고 별 볼 일 없는 옛날이야기 하나 해드리지요. 부디 지루하더라도 잠시간 귀를 빌려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아직 어릴 적에 나라에 쿠로도도쿠고 에인이라 해서 코가 정말 큰 스님 한 분이 계셨지요. 심지어 그 코 끝이 마치 벌에라도 쏘인 것처럼 사시사철 새빨갛지 뭡니까. 그래서 나라 사람들이 이에 별명을 붙이기에 하나鼻쿠라――본래는 코가 큰 쿠로도도쿠고라 불렸는데 그러면 기니까요. 이윽고 모두가 하나쿠로도라 부르며 놀렸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길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쿠라하나쿠라 노래하게 된 겁니다. 실제로 저도 한두 번 그 시절의 나라 코후쿠지 절 안에서 그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확실히 하나쿠라 소리를 들을 만한 참으로 크게 붉은 텐구 코였습니다. 그 하나쿠라가, 그 하나쿠로도가, 코가 큰 쿠로도도쿠로 에인 스님이 어느 밤에 제자도 데리지 않고 가만히 사루사와 연못 옆으로 와서 그 우네메야나기 앞에 꿇어 앉아 '3월 3일 이 연못서 용이 오르리라'하고 두텁게 쓴 푯말 하나를 꽂았습니다. 하지만 에인이라고 사루사와 연못에 용이 사는지는 알지 못 했습니다. 하물며 그 용이 3월 3일에 승천한다는 건 되는 대로 뱉은 허풍입니다. 아뇨, 굳이 따지자면 승천하지 않는 게 더 확실했을 테죠. 그럼 왜 그런 쓸데 없는 짓을 했는가. 에인은 평소에 나라의 속승이 사사건건 자신의 코를 비웃는 게 불평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자신이 가장 뛰어난 스님인 걸 증명하여 되갚아 주자는 속셈으로 그런 장난을 했다지요. 나리께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우습지도 않겠지만 아무래도 옛날 일이니까요. 그 시절은 그런 장난을 하는 게 흔히 있었습니다."
"해서 다음 날, 가장 먼저 이 푯말을 발견한 게 매일 아침 코후쿠지의 여래님께 기도를 올리러 오는 할머니로 염주를 찬 손에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서 아직 안개가 낀 연못 옆을 지나고 있자니 어제까지 없었던 푯말이 세워져 있지 뭡니까. 이게 또 절에서 세운 것치고는 묘한 곳에 세워져 있어 의아했는데 글자를 읽지 못하니 그대로 지나치려 했습니다. 마침 그때 건너편서 법의를 입은 스님 하나가 오지 뭡니까. 글을 읽어달라 부탁하니 '3월 3일 이 연못서 용이 오르리라'이니――이거야 놀라지 않고 배길 수나 있을까요. 할머니도 황당하여 굽은 허리를 더 숙이며 '이 연못에 용이 있을까요'하고 스님의 얼굴을 올려다봅니다. 허니 스님은 되려 침착하고 '과거에 당나라의 어떤 학자가 눈썹 위에 혹이 생겨 간지러워 견딜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한데 어느 날 날씨가 어둡더니 비가 내리고 천둥번개가 쳤다지요. 그랬더니 곧장 그 혹이 갈라지고 그 안에서 한 마리 검은 용이 구름을 휘감으며 말 그대로 승천했다고 합니다. 혹 안에도 용이 있는데 하물며 이 연못 밑바닥에는 이무기니 독뱀이 몇 마리나 뭉쳐 있어도 이상할 건 없지요'하고 논하셨습니다. 할머니야 스님께서 거짓말을 할 일이 없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으니 이 말을 듣고 얼마나 오싹해졌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듣고 보니 이 주위의 물색이 좀 괴이하게 보이긴 하군요'하고 아직 3월 3일도 되지 않았 건만 스님을 홀로 들고 중얼중얼 염불을 외면서 지팡이를 짚고 있음에도 비틀비틀 황급히 도망쳐버렸습니다. 나중에 보는 눈이 사라져 스님은 배를 부여잡았는데――그것도 그럴 테지요. 실은 에인, 별칭 하나쿠라가 어젯밤에 세운 팻말에 걸린 새를 보고 싶다는 참 못난 생각으로 상황을 보며 연못 옆을 어슬렁거렸던 거니까요. 하지만 할머니가 간 뒤론 짐을 짊어 맨 하인을 옆에 둔 벌레 먹은 옷을 입은 여행가 하나가 삿갓 아래로 팻말을 읽는 정도였습니다. 해서 에인도 열심히 웃음을 죽이며 자신도 팻말 앞에 서 읽는 척을 하며 그 커다란 붉은 코를 자못 신기한 코웃음을 내더니 그대로 코후쿠지 쪽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코후쿠지의 남대문 앞에서 생각지도 못한 얼굴을 봅니다. 같은 절에 사는 에몬 스님이지요. 에몬 스님은 에인 스님을 만나면 평소부터 짓궂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스님께서 이렇게 일어나시다니 별일입니다. 이거야 날씨가 바뀔지 모르겠군요'하고 말하니 이쪽은 붉은 코를 한껏 벌리며 '아무렴요. 날씨 정도야 바뀔지도 모르죠. 듣자하니 저 사루사와 연못서 3월 3일에 용이 승천한다니까요'하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그걸 들은 에몬은 의아하다는 얼굴로 에인의 얼굴을 노려보았는데 곧 목을 울리며 껄껄 웃더니 '스님께선 좋은 꿈을 꾸셨나 봅니다. 왜요, 용이 승천하는 꿈은 길조라지 않습니까'하고 정수리가 열린 머리를 우뚝 솟은 채로 떠나려 했습니다. 하지만 에인은 마치 혼잣말처럼 '아무렴요, 인연 없는 중생은 이해하기 힘들겠지요'하고 중얼거린 목소리가 들린 걸 테지요. 신발 끝 끝자락을 비틀어 원망 섞인 시선을 보내더니 마치 법론이라도 하는 듯한 기세로 '허면 용이 승천한다는 확고한 증거라도 있으십니까'하고 따지고 묻더군요. 그러니 에인은 일부러 유유히 아침 햇살이 드리우기 시작한 연못 쪽을 가리키고서 '이 어리석은 중생이 하는 말이 의심된다면 저 우네메야나기 앞에 있는 팻말을 읽어 보시지요'하고 깔보듯이 대답했습니다. 그에는 아무리 고집 쎈 에몬도 조금은 코가 꺾였는지 눈부시다는 양 눈을 껌뻑이고는 '하하, 그런 팻말이 세워졌습니까'하고 별로 마음에도 두지 않는 투로 말하고는 또 척척 걸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열린 머리를 기울여 무어라 생각에 잠기더군요. 그 뒷모습을 본 하나쿠로도가 얼마나 우스워 했는지는 대강 짐작이 가실 테지요. 에인은 아무래도 붉은 코가 가려웠는지 남대문의 돌계단을 오르는 와중에도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터트리곤 했습니다."
"그 아침부터 '3월 3일 이 연못서 용이 오르리라'하는 푯말이 이만한 효과를 지녔지 않습니까. 하물며 하루요 이틀이 지나니 나라의 어딜 가도 이 사루사와의 연못과 용 이야기로 가득했답니다. 물론 개중에 '누가 한 장난이겠지'하는 자도 있었습니다만 수도서는 본래 신센엔서 용이 승천했다는 이야기도 있었기에 그렇게 말하는 자마저 내심으론 반신반의라 해야 할까요, 어쩌면 그런 큰일이 벌어날지도 모른다 정도는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마침 생각지도 못한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게 무엇인고 하니, 카스가 신사에서 일하는 무녀에게 아홉 살 먹은 딸이 하나 있는데 소문이 퍼져 열흘도 지나지 않은 참에 어머니의 무릎서 곤히 잠들어 있더니 하늘서 검은용 한 마리가 구름처럼 내려와 '내가 드디어 3월 3일에 승천하게 되었는데 결코 너희 마을에 폐는 끼치지 않을 생각이다. 안심해다오'하고 사람처럼 말을 했다지 뭡니까. 해서 딸이 눈을 뜨자마자 그 이야기를 어머니께 하니 사루사와 연못의 용이 꿈자리에 나타났다고 바로 나라 전체가 들썩였다지요. 이쯤 되니 이야기에 꼬리가 꼬리 물어서 왜 저 갓난아기도 용이 빙의되어 우타를 읊었다느니 요 무녀도 용이 나타난다는 신탁을 받았다느니 하며 마치 그 사루자와 연못의 용이 곧 물 위로 고개라도 빼꼼 내밀 듯한 소란을 벌였답니다. 아니, 목까지는 내밀지 않았을 테지면 그러던 중 용을 눈앞에서 똑똑히 보았다는 남자마저 나타났습니다. 이는 매일 아침 민물고기를 잡아 시장에 파는 노인이었는데 그날도 어두컴컴할 때에 사루사와 연못으로 가니 그 우네메야나기 가지 근처 푯말이 자리한 뚝 아래에 드리운 여명 전의 물이 그곳만 희미하고 밝게 빛났다고 합니다. 용 이야기로 한참 떠들던 시기이니 '허면 용신께서 나오시려나 보다'하고 기쁜지 무서운지 단지 벌벌 떨면서 낚시용 짐을 옆에 두고는 발소리를 죽여 우네메야나기에 매달리 듯이 하여 연못을 보았답니다. 그러자 그 밝은 물 밑바닥서 강철 사슬을 감은 듯한 무엇인지 모를 괴물이 가만히 자리해 있었는데 인기척에 놀라기라도 했는지 그대로 몸을 풀고는 연못 표면에 올라와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를 본 노인은 이윽고 온몸에 땀을 흘렸습니다. 짐을 내린 곳으로 가보니 어느 틈엔가 도합 스무 마리나 있던 잉어와 붕어가 사라졌다고 하지요. '나이 먹은 수달이라도 본 걸 테지'하고 비웃는 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용왕이 오실 연못에 수달이 있을 리도 없으니 분명 용왕께서 죽을 물고기들이 불쌍해 자신의 연못에 들이신 것이다'하고 말하는 자도 생각보다 많았다고 합니다."
"하나쿠라 에인 스님은 '3월 3일 이 연못에서 용이 오르리라'하는 푯말이 소란의 중심이 되어 내심 그 큰 코를 벌렁이며 히죽히죽 웃었는데 이윽고 그 3월 3일이 네다섯 날 앞으로 다가오자 놀랍게도 셋츠노쿠니 사쿠라이에서 비구니 생활을 하는 숙모께서 용의 승천을 보고 싶다며 먼 길을 찾아오셨지 뭡니까. 이에 에인도 당혹스러워 겁을 주고 속이는 등 이런저런 방법으로 사쿠라이로 돌려보내려 애썼답니다. 하지만 숙모는 '나도 나이가 있지 않니. 용왕께서 오르는 걸 보면 이제 이번 생엔 한이 없구나'하고 고집스럽게 눌러 앉아 조카의 말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 푯말을 자신이 장난삼아 세웠다고 이제 와서 자백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에인도 기어코 뜻을 꺾고 3월 3일까지는 숙모의 생활을 봐주는 것뿐만 아니라 당일엔 함께 용신이 오르는 걸 보러 가자는 약속마저 했습니다. 헌데 일이 이렇게 되어 생각해 보니 숙모마저 용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면 야마토는 물론이요 셋츠, 이즈미, 카와치를 시작으로 어쩌면 하리마, 야마시로, 오우미, 탄바 등에도 이 소문이 퍼져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요컨대 나라 사람을 놀리려 시작한 장난이 예기치 않게 몇 만인지 알 수도 없는 온 나라 인간을 속인 꼴이 된 셈이지요. 그리 생각하니 우습기보다 무서운 게 앞서서 아침저녁으로 숙모를 데리고 나라의 절들을 돌아보는 와중에도 검비위사의 눈을 속여 몸을 숨기는 죄인인 것처럼 마음이 켕기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따금 거리에서 푯말 아래에 향과 꽃이 올려지고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꺼림칙한 한 편으로 무언가 큰 공이라도 하나 세운 듯한 만족감이 가시지는 않았답니다."
"그러는 사이 점점 날이 흘러 기어코 용이 승천한다는 3월 3일이 되었습니다. 에인은 뒤늦게 약속을 깰 수도 없으니 마지못해 숙모와 함께 사루사와의 연못이 한눈에 보이는 코후쿠지 남대문의 돌계단 위에 섰습니다. 마침 그날은 하늘도 맑게 개고 문의 풍경이 울 정도의 약한 바람 하나 불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만을 기다리던 구경 인파는 나라만 아니라 카와치, 이즈미, 셋츠, 하리마, 야마시로, 오우미, 탄파서도 몰려온 게 분명했습니다. 돌 계단 위에서 바라보고 있자니 서쪽이나 동쪽이나 인파로 가득하였고 또 끝으로는 안개 낀 두 큰 길마저 갖은 모자의 파도로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곳곳에서 어떤 건 푸른 실로 또 어떤 건 붉은 실로 혹은 전단으로 꾸민 달구지가 인파를 가르며 가마 위에 박은 나사 따위를 봄 햇살에 눈부시게 빛내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 양산을 쓴 자, 가림막을 머리 위에 치는 자, 혹은 돗자리를 길에 까는 자――마치 눈앞의 연못 주변서는 때아닌 카모 축제라도 열린 듯한 광경이었습니다. 설마 푯말 하나를 세우는 정도로 이만한 소란이 일어날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에인 스님은 황당하다는 양 숙모를 보면서 '이거 참, 말도 안 되는 인파네요'하고 한심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오늘만큼은 큰 코로 웃을 만한 기력도 나오지 않았는지 그대로 남대문 기둥 아래에 힘없이 주저앉았습니다."
"하지만 숙모는 에인의 그런 심정을 알 리도 없지요. 머리에 뒤집어쓴 두건이 흘러 내릴 정도로 열심히 고개를 뻗고선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확실히 용신께서 사시는 연못의 풍경은 뭐가 다르다니 이만한 사람이 나왔으니 용신도 분명 모습을 드러내실 거니 에인을 붙들며 그런 이야기를 하시곤 했습니다. 그러니 에인도 기둥 아래에 앉아 있을 수만 없으니 마지못해 일어봅니다. 그러니 주위서도 모미에보시나 사무라이에보시가 인간산을 만들고 있지 뭡니까. 그중에는 그 에몬 스님도 여전히 정수리가 열린 머리를 한 층 높게 뻗으며 딴청도 피우지 않고 연못 쪽을 바라보고 있지 뭡니까. 에인은 이제까지 느꼈던 한심함도 잊고서 단지 이 남자마저 속았다는 우스움에 홀로 쿡쿡거리며 '스님'하고 말을 걸고는 '스님도 용이 오르는 걸 보시러 오셨습니까'하고 어딘가 놀리 듯이 물었습니다. 에몬은 거창하게 돌아보고는 생각보다 진지한 얼굴로 '아무렴요. 다른 사람들처럼 꽤나 오랫동안 기다렸으니까요'하고 그 벌레와 같은 눈썹도 움직이지 않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좀 약이 지나쳤나――그런 생각을 하자 들뜬 목소리도 자연스레 가시기 마련이었습니다. 에인은 다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멍하니 인파 너머에 자리한 사루사와 연못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하지만 연못은 미적지근하게 빛나는 수면에 주위의 벚꽃이나 버들을 선명하게 비춘 채로 용을 승천시킬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 주변 몇 리가 구경꾼으로 빈틈 없이 채워져 있는 탓인지 오늘은 연못 면적이 한 층 더 좁게 보여서 애당초 저런 곳에 용이 있다는 게 턱도 없는 거짓말처럼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한 시간 또 한 시간 시간이 지나는 것도 모른 채 다들 숨을 삼키며 느긋이 용의 승천을 기다리고 있었던 걸 테죠. 문앞의 인파는 서서히 넓어지기만 했고 얼마 지나지 않으니 달구지도 수레 바뀌끼리 서로 밀어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아졌습니다. 그걸 본 에인이 자신을 얼마나 한심해 했는지는 앞선 이야기로도 짐작이 가실 테지요. 하지만 여기서 묘한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에인 또한 정말로 용이 오를 법한――그것도 처음에는 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에인이야 그 푯말을 박은 당사자니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이 들 리도 없습니다만 눈앞에 뭉쳐 있는 에보시 파도를 보고 있자니 그런 큰일도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구경꾼들의 마음이 어느 틈엔가 하나쿠라에게도 옮겼다 해야 할까요. 혹은 그 푯말을 세운 탓에 이런 소동이 시작되었다 생각하니 어딘가 마음이 무거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정말로 용이 오르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걸까요. 진실이야 어찌 되었든 그 푯말의 문구를 적은 게 자신이란 걸 잘 알면서도 서서히 한심하단 생각이 가시더니 자신도 숙모처럼 질리지 않고 연못 수면만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하기사 그런 생각이라도 들지 않았다면 아무리 억지로 기다린다 한들 오르지도 않을 용을 기다리며 하루 종일 남대문 아래에 서있을 수도 없을 노릇이었을 테죠."
"하지만 사루사와 연못은 이전처럼 잔물결 하나 없이 봄햇살을 반사할 뿐이었습니다. 하늘도 역시나 맑기 그지 없어서 주먹만한 구름 그림자 하나 떠올라 잇지 않습니다. 하지만 구경꾼은 여전히 양산 그림자서도, 그늘막 아래서도, 혹은 또 돗자리나 난간 뒤에서나 이리저리 겹쳐서 아침에서 낮으로, 낮에서 저녁으로 해가 옮겨 가는 것도 잊은 것처럼 용왕이 모습을 드러내는 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에인이 밖으로 나와 반나절이 지났을 즘, 마치 선향 연기 같은 한 줄기 구름이 공중에서 하늘거린다 싶더니 그게 서서히 커져 이제까지 맑았던 하늘이 살짝 어두워졌습니다. 그 순간 바람이 휑하니 사루사와 연못에 불어 와 거울처럼 보이던 수면에 무수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각오하며 기다리던 구경꾼들이 무어라 말도 못 하는 사이에 하늘이 기울어 비가 거칠게 내리지 뭡니까. 그뿐 아니라 갑자기 번개도 엄청난 소리로 울리며 천둥이 끝도 없이 하늘을 가득 메웠습니다. 그게 한 번은 구름을 가르는 기세로 연못물을 기둥처럼 용솟음시켯는데 에인의 눈에는 그 찰나, 그 수중기와 구름 사이서 금색 손톱이 빛나며 똑바로 날아가는 백 척 가량의 검은용이 몽롱히 비쳤습니다. 하지만 그건 눈 깜짝할 사이라 그 후엔 그저 폭풍우 속에서 연못을 둘러싼 벚꽃이 어두운 하늘에 날리는 것만 보일 뿐이었습니다――기겁한 구경꾼들이 우왕좌왕 도망쳐 연못에도 밀리지 않는 인파를 번개 아래에 둔 건 이제와 말할 필요도 없을 테지요."
"자, 그러는 사이 호우도 멈추어 푸른 하늘이 구름 사이로 엿보였습니다. 에인은 코가 큰 것도 잊은 듯한 얼굴색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지금 본 용은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닐까――푯말을 박은 당사자인 만큼 용이 승천한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눈으로 본 건 사실입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욱 수상쩍기 짝이 없었지요. 해서 옆의 기둥 아래서 죽은 듯이 앉아 계신 숙모를 안아 일으키곤 묘하게 부끄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로 '용 보셨어요?'하고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그러자 숙모는 큰 한숨을 내쉬며 한동안 입을 열지 않고 단지 몇 번이나 겁에 질린 채로 고개만 끄덕이시다 이윽고 떨리는 목소리로 '봤지, 봤어. 금색 손톱이 빛나는 온몸이 새까만 용신 아니었니'하고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용을 본 건 비단 하나쿠로도 에인의 눈만이 아닌 걸 테죠. 아뇨, 그 후에 세간의 평판을 듣자니 그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구름 안에서 검은용이 오르는 걸 보았다고 합니다."
"그 후 에인은 모종의 박자로 사실 그 푯말은 자신의 장난이었다 자백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에몬을 시작한 동료 스님은 누구도 그 자백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하니 푯말 장난은 의도대로 되었다 해야 할까요, 혹은 엉뚱한 방향으로 갔다고 해야 할까요. 하나쿠라의, 하나쿠라도의, 큰 코 쿠로도 토쿠고 에인 스님에게 묻더라도 아마 그 대답만은 쉽지 않을 테지요…………"
셋
우지노다이나곤타카쿠니 "옳거니, 그거 참 기이한 이야기로구나. 과거엔 그 사루사와 연못에 용이 살았던 모양이야. 아니, 과거에도 있었을지 어떨지는 모르지. 아니, 과거엔 살고 있을 게 분명해. 과거엔 하늘 아래의 인간 모두가 물 밑바닥에 용이 산다고 여겼지. 허면 용도 저절로 천지 사이를 비행하며 이따금 신처럼 기이한 모습을 보여주었을 게야. 허나 내가 이야기하는 것보단 너희 이야기를 듣고 싶구나. 다음은 스님 차례인가."
"뭐, 그분 이야기는 젠치 나이구라는 코가 긴 스님 이야기라고? 이거 참, 하나쿠라 뒤에 들으면 한 층 더 재밌겠구나. 어서 들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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