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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가레노쇼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2.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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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소, 쿄라이를 불러 눈도 마주하지 않고 불러 들이더니 돈슈에게 적게한 구이니 한 번 읽어보라 말한다.

  여행에 지쳐 꿈만 마른 들판을 달리는구나
――하나야닛키――



 겐로쿠 7년 10월 12일의 오후이다. 아침 노을에 붉어진 하늘은 또 어제처럼 비가 내릴까 걱정이 된 오사카 상인의 졸린 눈을 먼 지붕 너머로 이끌엇다. 다행히 잎을 살랑이는 버드나무 가지를 흐리게 할 정도의 비는 내리지 않았다. 이윽고 어두우면서도 희미한 빛이 드리우는 조용한 겨울의 낮이 밝아왔다.  줄지은 집들 사이를 흐르지 않는 듯 흐르는 강물마저 오늘은 희미한 광택을 감추었고 그 물에 떠오른 파쪼가리도 어쩐지 차가운 색을 두르고 있지 않았다. 하물며 강뚝을 걷는 사람들은 두건을 뒤집어 쓴 자도 가죽 양말을 신은 자도 모두 초겨울 부는 세상을 잊은 것처럼 멍하니 걷고 있다. 노렌의 색, 오가는 수레, 인형연극의 먼 샤미센 소리――모두가 희미하고 조용한 겨울의 낮을 다리의 기보슈에 쌓인 먼지조차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히 지키고 있다……
 이때, 미도마에 미나미큐 타로마치, 하나야니자에몬의 방에선 당시 하이카이의 큰스승으로 일컬여진 바쇼안마츠오토세이가 사방에서 모인 문하인들의 문안을 받으며 쉰하나를 끝으로 "묻힌 잔불의 온기가 가시듯이" 조용히 숨을 거두려 했다. 시각은 대략 신시의 중간쯤 되었을까――후스마를 치운 넓은 방 안에선 머리맡에 놓인 향 연기 한 줄기가 올라와 천하의 겨울을 방안에 가둔 새로운 장자의 색마저 어둡게 물들인 채로 몸에 스며드는 듯이 차갑게 식히고 있다. 그 장자 쪽에 머리를 두고 숙연히 누운 바쇼의 주위에선 먼저 의사인 모쿠세츠가 잠옷 아래로 손을 넣어 약한 맥을 짚으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뒤에 자리하여 아까부터 작은 소리로 염불을 이어가는 건 이번에 이가서 찾아 온 늙은 하인 지로베임이 분명하다. 그런가 하면 또 모쿠세츠 옆에 자리한 건 모르는 이 없는 통통한 체격의 신시 키카쿠가 명주 카쿠토오시를 품이 느슨하게 입고서 켄포코몬 어깨를 세운 늠름한 쿄라이와 함께 가만히 스승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또 키카쿠 뒤에는 승려를 방불케 하는 죠소가 손목에 보리수 염주를 차고서 단정히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옆을 앉은 오토쿠니가 끝없이 코를 훌쩍이는 건 올라오는 슬픔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런 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오래된 법의 소매를 단정히 바로 잡아 무뚝뚝한 턱을 삐쭉 내민 키가 작은 승려는 이넨 스님으로, 까무잡잡하고 듬직한 시코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모쿠세츠 반대편에 앉아 있었다. 그 외엔 몇 명의 제자들이 모두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조용하게 어떤 이는 오른쪽에서, 또 어떤 이는 왼쪽에서 스승의 침상을 둘러싸며 한없는 사별의 슬픔을 안타까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개중에서 단 한 명, 방 구석에 앉아 바닥에 몸을 바짝 엎드린 채로 통곡을 하는 건 세이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방 안에 희미하고 차가운 침국에 짖눌려 머리맡에 놓인 향의 희미한 냄새를 흐트릴 정도의 소리라곤 할 수 없었다.
 바쇼는 방금 전 가래 끼고 갈라진 목소리로 힘없는 유언을 남긴 후에는 눈을 반쯤 뜬 채로 혼수 상태에 처해 있었다. 작은 종양이 돋은 얼굴은 광대뼈를 드러낸 채 말랐고 주름에 둘러싸인 입술에도 핏기가 가셔 있었다. 특히 안타까운 건 그 눈동자 색으로 희미한 빛을 드리운 채 마치 지붕 너머에 있는 끝을 모르는 찬 하늘이라도 바라보는 듯이 먼 곳만을 바라보고 있다. "여행에 지쳐 꿈만 마른 들판을 달리는구나"――어쩌면 이때 이 갈 곳 없는 시선 속에는 삼사 일 전에 스스로 쓴 절명시서 읊은 것처럼 넓고 마른 들판의 어두운 색이 조금의 달빛도 없이 꿈처럼 떠올라 있는 걸지도 몰랐다.
 "물을."
 모쿠세츠는 이윽고 그렇게 말하며 조용히 뒤에 자리한 지로베를 돌아보았다. 이 늙은 하인은 진작에 물 한 대접과 하네요지를 준비해두었다. 그는 둘을 머뭇머뭇 주인의 머리맡에 놓고는 새삼 떠오른 것처럼 빠른 목소리로  염불을 외우기 시작했다. 소박한 산 사람인 지로베의 속내에는 바쇼이든 누구이든 두 세계를 오갈 적에는 누구나 매한가지로 부처의 자비에 매달릴 거라는 굳은 신념이 뿌리내려 있었던 것이리라.
 한 편 모쿠세츠는 "물을"하고 말한 찰나의 순간에 과연 자신이 의사로서 모든 일을 다 한 걸까 하는 여느 때와 같은 의혹과 마주했다. 하지만 곧 자신을 격려하는 심정으로 옆에 있는 키카쿠를 보면서 말없이 작게 신호를 보냈다. 바쇼의 침상을 둘러싸고 있던 일동의 마음에 드디어 긴장의 기색이 스쳐 지나간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긴장을 전후로 일종의 이완이――말하자면 올 게 드디어 왔다는 안심에 가까운 심정이 스쳐 지나간 것 또한 논쟁의 여지가 없으리라. 단지 이 안심에 가까운 심정은 모두가 그 존재를 긍정하지 않았을 정도로 미묘한 성질을 지녔을까. 실제로 여기에 있는 일동 중에선 가장 현실적인 키카쿠마저 얼굴을 마주한 모쿠세츠의 눈동자 안에서 같은 심정을 발견했을 때에는 오싹해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는 황급히 시선을 돌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하네요지를 들고서
 "그럼 먼저"하고 옆에 있는 쿄라이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그 하네요지를 물로 적셔 두꺼운 허벅지를 들어 스승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사실 그는 이렇게 되기 전까진 스승과 평생 헤어지는 게 꽤나 슬프리라는 예측에 가까운 생각도 해왔다. 하지만 이렇게 마지막 물을 뜨고 있으니 실제 자신의 심정은 그런 연극과 같은 예측을 빗겨나가 한없이 냉담하기 짝이 없었다. 그뿐 아니라 더욱 의외였던 건 말 그대로 뼈와 가죽만 남은 채 마른 죽기 직전의 스승님이 가진 꺼림칙한 모습은 거의 등을 돌리고 싶어질 정도로 격렬한 혐오감을 일으키게 했다. 아니, 단순히 격렬하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표현이라 할 수 없었다. 그건 마치 보이지 않는 독처럼 생리적인 작용마저 일으키는 견디기 힘든 종류의 혐오였다. 그는 이때 우연한 계기로 추한 모든 것을 대하는 반감을 스승의 병상 위에 흘리고 만 걸까. 혹은 또 "삶"의 향락가인 그에게 상징처럼 나타난 "죽음"의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저주해 마땅한 자연의 위협이었던 걸까――어찌 되었든 빈사 상태인 바쇼의 얼굴서 말로 다 못할 불쾌함을 느낀 키카쿠는 거의 어떤 슬픔도 없이 그 보라색으로 물든 입술에 약간의 물을 바르고는 얼굴을 찌푸리며 물러났다. 물론 물러나면서 자책과 비슷한 일종의 심정이 찰나 그의 심정을 스치긴 하였다. 그가 방금 느낀 혐오의 감정은 그런 도덕감에 헤아려질 정도로 너무나 강렬했던 듯하다.
 키카쿠에 이어 하네요지를 들어 올린 건 방금 전 모쿠세츠와 신호를 주고 받을 때부터 이미 침착함을 잃은 듯한 쿄라이였다. 평소부터 공겸의 명성을 가졌던 그는 일동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바쇼의 머리맡으로 다가갔다. 그렇게 침상에 누운 늙은 시인의 병든 얼굴을 바라보자 어떤 만족과 회한이 신비하게 뒤얽힌 심리를 싫더라도 맛봐야만 했다. 심지어 그 만족과 회환이란 마치 음과 양처럼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을 짊어지고서 실은 요 사오 일 전부터 끝없이 소심한 기분을 흐트러놓고 있었다. 스승이 중병이란 걸 듣자마자 곧장 후시미에서 배를 타고 심야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문을 두드린 이후로 그는 단 하루도 스승의 간병을 소홀히 한 적이 없다. 더군다나 신도에게 부탁해 도우미 주선을 이어 받고 스미요시다이묘진에 사람을 보내 회복 기도를 올리게 하고 또 이 방에서 니자에몬과 상담해 간병 도구를 사오게 하는 등 거의 수레바퀴 한 쪽이라도 된 것처럼 모든 일을 돌보았다. 그야 물론 쿄라이 스스로 나서서 한 일이니 누구한테 은혜를 살 생각은 전무했다. 그러나 온몸으로 스승 간호에 몰두했단 자각은 그의 마음 밑구석에 커다란 만족감의 씨앗을 뿌렸다. 그게 단지 의식할 수 없는 만족이 되어 그의 활동 배경에 따스한 심정을 퍼지게 있던 동안에는 그 또한 자신의 행동거지에 어떤 고집도 느끼지 않은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밤의 행등 아래서 시코와 세상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구태여 효도의 뜻을 풀어 자신이 스승을 모시는 건 부모를 모시는 것 같다고 길게 술회하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때, 의기양양했던 그는 사람 나쁜 시코의 얼굴서 잠깐 스친 쓴웃음을 보더니 불쑥 이제까지 느꼈던 마음의 조화에 일그러짐이 생긴 걸 의식했다. 그리고 그 일그러짐의 원인은 처음 알아차린 자신의 만족과 그 만족에 대한 자기평가에 존재함을 발견했다. 내일도 장담할 수 없는 큰병에 걸린 스승을 간호하면서 이를 걱정한다는 사실이 괜히 자신의 뼈가 빠지는 듯한 모습을 만족스레 바라보고 있다――확실히 이는 그와 같은 정직한 자에게는 스스로를 꺼림칙하게 만들 사안임에 분명했다. 쿄라이는 그런 만족과 회한의 감각 탓에 그 후로 어느 일을 하든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의 주저함을 느끼게 했다. 우연찮게 시코의 눈 안에서 미소가 보였을 때면 되려 그런 만족의 자각이 또렷히 느껴져 결국 자신의 추함을 하찮게 느끼게 한 일도 왕왕 있었다. 그런 게 며칠인가 계속된 오늘, 이렇게 스승의 머리맡에서 마지막 물을 드릴 때가 되자 도덕적인 결벽증을 지니고 의외로 신경이 약한 그가 자신이 품은 모순에 침착함을 잃는 건 안타까울지언정 당연한 일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때문에 하네요지를 들어 올린 쿄라이는 묘하게 몸이 굳어 물을 머금은 하얀 끝자락마저 바쇼의 입을 쓰다듬는 내내 덜덜 떨렸을 정도로 이상한 흥분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와 함께 그의 속눈썹을 적신 건 눈물방울이기도 했기에 그를 보던 제자들은, 아마 그 신랄한 시코마저도 이 흥분이란 그의 슬픔이 가져 온 결과라 해석해주었으리라.
 이윽고 쿄라이가 또 어깨를 세워 천천히 자리로 돌아오자 하네요지는 그 뒤에 있던 죠소의 손에 건네졌다. 평소부터 견실한 그가 얌전히 고개를 낮추고 입안에서 무어라를 작은 소리를 읊으며 조용히 스승의 입술을 적시는 모습은 아마 누구의 눈에나 엄숙하게 보였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 엄숙한 순간에 대뜸 방 구석에서 꺼림칙한 웃음 소리가 들렸다. 아니, 적어도 그 때에는 들린 줄만 알았다. 그건 마치 배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큰웃음이 목덜미와 입술에 막히고 그러고도 우스운 걸 참지 못해 콧구멍으로 간간히 새어나오는 듯한 그런 소리였다. 하지만 말할 것도 없이 이는 누구의 웃음도 아니었다. 목소리는 사실 아까부터 눈물에 젖어 있던 세이소가 참다참다 못한 통곡이 이 순간 가슴을 찢으며 흘러 넘쳤던 것이다. 그 통곡은 물론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어쩌면 제자 중에는 "무덤 흔드는 나의 울음 소리는 가을의 바람"이란 스승의 명시를 떠올린 자도 적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 처절한 통곡에도 마찬가지로 눈물에 목이 막혀 있던 오토쿠니는 그 안에 있던 일종의 과장에――그런 표현이 잘못되었다면 통곡을 억제할 의지력의 부족에 조금의 불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단지 그런 불쾌함의 성질은 한없이 지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그의 머리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심장은 곧장 세이소의 애통한 목소리에 끌려 어느 틈엔가 눈안을 눈물로 한 가득 채웠다. 하지만 그가 세이소의 통곡을 불쾌해 하고 나아가 자신의 눈물마저 곱게 여기지 않은 건 방금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눈물은 더더욱 눈에 흘러 넘쳤다――오츠쿠니는 이미 두 손을 무릎 위에 둔 채로 저도 모르게 오열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때 숨을 토한 건 비단 오츠쿠니만이 아니었다. 바쇼의 침상 옆에 자리해 있던 몇 명인가의 제자들 중에선 그와 거의 동시에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고요히 개여 있던 방의 공기를 뒤흔들며 띄엄띄엄 들리기 시작했다.
 그 슬픈 목소리 속에 보리수 염주를 손목에 찬 죠소가 다시 조용히 자리로 돌아오자 키카쿠나 쿄라이와 마주하고 있는 시코가 머리맡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 비꼬기 좋아하는 걸로 알려진 동화방에겐 주위의 감정에 이끌려 괜한 눈물을 흘리는 약한 신경은 없었던 듯하다. 그는 여느 때처럼 까무잡잡한 얼굴에 여느 때처럼 남을 깔보는 듯한 표정을 드리운 채 더욱이 또 여느 때처럼 묘하게 횡포한 자세로 적당히 스승의 입술에 물을 발랐다. 하지만 아무리 그라도 이 상황에 조금의 감개가 있었던 건 분명하다. "해골 될 각오 마음에 품고나니 스미는 바람"――스승은 사오 일 전에 "과거엔 풀을 깔고 흙을 베개 삼아 죽을 줄 알았던 내가 이리도 아름다운 이불 위에서 평생의 술회를 전할 수 있어 참으로 기쁘구나"하고 자신들에게 거듭 인사한 적이 있다. 하지만 사실 마른 들판도 이 방도 큰 차이는 나지 않는다. 실제로 이렇게 입을 다물고 있는 자신도 서너 일 전까지는 스승이 절명시를 읊지 않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어제는 스승이 죽은 후 그의 시를 집대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오늘은 이 순간까지 시시각각 임종으로 다가가는 스승의 경과를 흥미진진하다는 양 관찰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더 한 발 비꼬아 생각하면 어쩌면 그런 눈초리 뒤편에선 훗날 자신이 쓰게 될 임종기의 한 구절마저 생각하고 있다 해야 하리라. 그런 걸 보면 스승의 임종을 지키면서도 자신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건 다른 시인과 그 제자들을 향한 명성, 제자들의 이해, 혹은 자신의 흥미나 타산――모두 죽어가는 스승하고는 직접적으로 관계 없는 것들 뿐이다. 그러니 스승은 자신의 시 속에서 예상한 것처럼 끝없는 인생이란 마른 들판 위에서 죽어가고 있다 해도 지장이 없다. 자신들 제자는 모두 스승의 최후를 애도하지 않고 스승을 잃은 자신들을 애도하고 있다. 마른 들판서 죽은 앞선 사람들을 한탄하지 않고 황혼의 어둠 속에서 앞선 사람들을 잃은 자신들을 한탄하고 있다. 하지만 그걸 도덕적으로 비난해본들 본래 박정하게 만들어진 자신들 인간을 어찌하란 말인가――그런 염세적 생각에 잠긴 채로, 또 그런 생각에 잠긴 사실을 의기양양해 하던 시코는 스승의 입술에 물을 다 바른 후 하네요지를 본래의 자리에 돌려놓고는 눈물을 머금은 제자들을 비웃듯 빤히 둘러본 후 천천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사람 좋은 쿄라이는 그 냉철한 태도에 방금 말한 불안을 새삼스래 또 새롭게 했으나 키카쿠가 홀로 묘하게 간질간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 한없이 식어내린 표정을 고수하는 이 동화방의 성격이나 습관 따위를 조금 탐탁치 않게 여기는 탓인 듯했다.
 시코에 이어 이넨 스님이 검은 승려복 소매를 잡으며 작게 기어나왔을 쯤 바쇼의 단말마는 더는 들리지 않았다. 얼굴에선 전보다 더욱 핏기가 가셔 있었고 물에 젖은 입술 사이서도 이따금 잊은 듯이 숨이 나오지 않곤 했다. 그런가 하면 또 떠올린 것처럼 목이 크게 움직여 힘없는 공기가 오간다. 심지어 그 목 깊은 곳에서 희미하게 두세 번 가래가 끓었다. 호흡도 서서히 조용해지는 듯했다. 그때 하네요지의 하얀 끝을 그 입술에 얹으려 하던 이넨 스님은 불쑥 사별의 슬픔과 인연이 없는 어떤 공포의 덮쳐지기 시작했다. 그건 스승 다음으로 죽을 게 자신이지 않을까 하는 거의 이유 없는 공포였다. 하지만 이유가 없는 만큼 한 번 공포를 느끼자 참거나 저항할 도리가 없었다. 본래 그는 죽음이란 말에 병적으로 반응하는 종류의 인간으로 예전부터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면 풍류를 즐기던 와중에도 온몸에 땀이 흐르는 듯한 불쾌한 무서움을 경험했다. 따라서 자신 이외의 사람이 죽었단 말을 들으면 자신이 죽는 게 아니라 다행이라며 안심이 들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또 만약 자신이 죽으면 어쩌지 하는 반대의 불안도 느낄 때가 있다. 이는 역시 바쇼 또한 예외가 아니라서 당초 아직 그의 임종이 다가오지 않았을 적에는――장자에 겨울의 맑은 햇살이 들어오고 소노죠가 준 수선화가 청아한 냄새를 풍기면 일동이 스승의 머리맡에 모여 위안을 위한 시를 지을 때에는 이런 어두운 심정을 그때 그때의 하이카이에 담아보고는 했다. 하지만 서서히 그 종언이 다가오자――잊을 수도 없는 첫 장마날. 자신이 좋아하는 배마저 먹지 않는 스승의 모습을 보고 걱정스레 모쿠세츠가 고개를 갸우뚱거린 그쯤부터 안심은 서서히 불안으로 몰려 갔고 끝내는 그 불안마저 다음에 죽는 건 자신일지 모른다는 험악한 공포의 그림자를 차갑고 희미하게 마음 위에 드리우게 된 것이다. 때문에 그는 머리맡에 앉아 스승의 입술을 칠하는 동안 이 공포에 휩싸여 죽어가는 바쇼의 얼굴은 제대로 보지 못한 듯했다. 아니, 한 번은 제대로 보려 하는가 싶더니 마침 그때 바쇼의 목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작게 들려 모처럼의 용기도 도중에 주저 앉고 말았으리라. "어쩌면 스승 다음으로 죽는 건 자신일지 모른다"――끝없이 그런 예감과 같은 목소리가 귀 안쪽에서 들린 이넨 스님은 작게 몸을 움츠리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후에도 무뚝뚝한 얼굴을 더욱 무뚝뚝하게 바꾸며 되도록 아무의 얼굴도 보지 않도록 눈동자를 위로 굴렸다.
 이어서 오츠쿠니, 세이소, 시도, 모쿠세츠가 순서대로 스승의 입술을 적셨다. 하지만 그 동안 바쇼의 호흡은 한 숨마다 가늘하지고 숫자마저 서서히 줄어갔다. 목도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 옅은 종양 같은 게 떠오른 어딘가 밀랍처럼 자그마한 얼굴은 저 먼 공간을 바라보고 있다. 빛이 가시는 눈동자색, 그리고 턱에 뻗은 은처럼 하얀 수염――그 모든 게 인정의 차가움에 얼어 붙어 이윽고 찾아야 할 적광토를 가만히 꿈꾸고 있는 것처럼만 보였다. 그러자 그때, 쿄라이의 뒷 자리서 가만히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죠소는, 그 성실한 선객 조쇼는 바쇼의 호흡이 가늘어짐에 따라 한없는 슬픔과 또 한없는 안도가 천천히 마음 속에 흐르는 걸 느꼈다. 슬픔은 애당초 설명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 안도는 마치 여명의 차가운 빛이 서서히 어둠 속에 퍼지는 듯한 신기하리만치 밝은 심리였다. 심지어 그게 시시각각 갖은 잡념을 떨쳐주어 나아가 그 눈물 그 자체마저 꿈틀이는 마음을 꽂는 고통이 없는 청아한 슬픔으로 바꾸어버렸다. 그는 스승의 혼이 허몽의 생사를 초월해 상주열반의 비옥한 땅으로 돌아 간 걸 기뻐하기라도 한 걸까. 아니, 이는 그 스스로도 긍정할 수 없는 이유였다. 그렇다면――아아, 누가 한 바퀴 에둘러 자신을 속이는 우를 범한단 말인가. 죠소의 이 안도는 오랫동안 바쇼의 인격적 압력의 수갑에 허무하게 굴해 있던 그의 자유로운 정신이 그 본래의 힘을 얻어 손발을 쭉쭉 뻗으려 하는 해방의 기쁨이었다. 그는 이 황홀한 슬픈 기쁨 속에서 보리수 염주를 쥔 채로 주위서 훌쩍이는 제자들이 안 보이는 것처럼 입꼬리에 희미한 웃음을 지은 채로 공손히 임종하는 바쇼에게 인사를 올렸다――
 이렇게 고금에 둘도 없는 하이카이의 대스승, 바쇼는 "비탄스럽기 짝이 없어 한" 제자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숨을 거두었다.

(다이쇼 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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