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밤, 나는 혼고 대학 앞에 자리한 어떤 헌책방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가게 앞 진열대에 오래된 국판 책 한 권이 "오오쿠보 코슈 저, 이에야스와 나오스케, 할인 불가 50 전"이란 푯말을 붙인 채로 잡서 위에 적당히 놓여 있었다. 난 이 책의 먼지를 털고 안을 훑어보았다. 내용물은 책 이름처럼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이이 나오스케에 관한 역사론을 모은 책인 듯했다. 하지만 우연히 펼친 곳은 부속에 수록된 잡문이었다. "사람의 일생"――나는 이 잡문 하나에 이런 이름이 지어진 걸 발견했다.
사람의 일생
도쿠가와 이에야스
서두르지 마라.
마음에 바람이 생기면 곤란했던 때를 떠올려라.
분노는 적으로 여겨라.
이기는 것만 알아서는 그 해가 몸으로 온다.
미치지 못한 게 과한 것보다 낫다.
오오쿠보 요소고로
뒤처지지 마라.
마음에 실망이 생기면 잘 나갔을 때를 떠올려라.
비굴을 적으로 여겨라.
지는 것에 안주하여 이기는 걸 모르면 그 손이 몸으로 온다.
이루는 건 이루지 못하는 것보다 낫다.
나는 저도 모르게 작게 웃었다. 이 오오쿠보 요소고로는 정이대장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처세훈의 장단을 비교하고 있다. 심지어 그의 처세훈은 신기하게도 향간에서 말하는 교과서 냄새는 두르고 있지 않다. 어딘가 자신이 접한 인생의 숨결이 느껴진다. "마음에 실망이 생기면 잘 나갔을 때를 떠올려라"――정열으로 가득 찬 재능인의 면모는 이런 한 줄서도 볼 수 있는 듯하다. 나는 막연히 그 다음 장의 "카마쿠라 만필"에 눈을 옮겼다. 막연히――하지만 내 호기심은 곧 근래에 없던 자극을 느꼈다. 먼저 나를 기쁘게 한 건 역사가를 평한 몇 줄이다.
"만약 하쿠세키처럼 역사를 연구하려 든다면 그 사안은 결코 하쿠세키 위로 갈 수 없으리라. '나루베시'를 읽어 보아라. 라이 산요를 역사가라 여길 순 없다. 니혼세이기의 논문에도 취하게 부족할 얄팍한 견해가 많다."
다음으로 흥미를 느낀 건 반 페이지도 되지 않는 역사론이었다.
"대일본사의 주된 요지는 충성에 있다고 한다. 미토 코몬이 이 글을 떠올리면 백이전을 읽고 느끼는 바가 있다고 한다. 주의 무왕은 당대의 강자이다. 백이는 당대의 강자를 제압하고 명분을 바로잡은 남자이다. 코문은 중국의 일개 불평당에 공감하여 충성 정신을 드러낸 국사를 편찬했다고 한다. 막부는 당대의 강자이다. 이를 제압하여 명분을 바로 잡아야 했다. 하지만 도쿠가와는 그 종가이다. 종가의 불이익을 돌아보지 않았다. 코문은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 말한다. 어떤 사람은 조정이 무거워지면 도쿠가와가 가벼워지는 걸 보려 하지 않는다. 이에 코문의 진의는 굉장히 의심스럽다. 불평당에 동의하여 연구할 필요가 있다. 당대의 장군 츠나요시와 코문이 사이가 좋지 않은 바는 세상에 알려져 있다. 잘 알지 않았다면 대일본사를 짰을까 어떨까 나는 알지 못한다. 아름다운 건 겉표면뿐이고 뒤편은 그렇지 않다."
"조정을 향한 이에야스의 정신은 존경하되 멀리 두는 것이다. 노부나가나 히데요시는 모두 조정을 업고 일을 꾀했으나 이야야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세키하가라 오사카의 군에서도 조정의 뜻을 받아 왕사황군의 모습을 꾸미지 않았다. 무가와 무가의 싸움으로 두어 조정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 이는 실로 이에야스의 생각이 깊은 걸 알 수 있는 바이다. 도쿠가와의 말세에 충성을 외친 자는 조정존승을 외치며 토쇼구가 남긴 뜻처럼 말하며 정부를 괴롭혔다고 말했는데 실로 아무것도 모르는 자의 어리석은 말이다. 조정에 권력을 주고 쇼군 정치가 가능하다 여기는 건 정말 우스운 일이다. 아라이 하쿠세키는 이러한 걸 알고 있는 듯하다. 이에야스 또한 공경풍을 싫어한 남자이다."
하지만 가장 유쾌했던 건 작가 본인의 성격이 선명히 드러난 몇 줄의 감상이었다.
"사람이 서른이 되면 노인하고도 소년하고도 어울려야 한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으나 남에게 술을 마시게 해 말을 듣는 건 즐겁다."
"처음으로 사람을 찾을 때는 시치미 뚝 떼고 실내 모습을 바라보아라. 그 후 다시 찾을 때마다 방의 변화를 주목하라. 이윽고 주인의 입으로는 잘 포장된 성벽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사람을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돈을 쓰는 법과 아내를 대하는 행동에 가장 주목해라. 만약 아내가 직접 붓을 적셔 남편의 일상을 자세히 적는 일기와 가계부가 있다면 이는 우수한 전기 소재가 되리라."
"세상이 평하는 착한 사람이 실제로 그만한 거물이란 법은 없다. 나쁜 소리를 듣는 사람 또한 그만큼 나쁜 사람이란 법은 없다. 고금에 모두 그렇다. 개인을 보려면 세간의 봉투를 벗기는 걸 잊지 마라."
"지혜가 있으면서 기질이 강한 자가 있다. 약한 자도 있다."
"되도록 노력을 절약하여 되도록 많이 성공할 궁리를 운이라 한다. 그렇다고 도박꾼이라 되라곤 하지 않는다. 단지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 크던 작던 도박의 기질이 있음을 염두해두라."
"바보를 상대하는데 능력을 갖춘 정치가는 여론 정치의 세상에서 정치가를 할 자격이 있는 자이다."
남자나 여자에게 꼬리를 흔들어야 한 사람 몫을 하는 인간이라 착각하는 건 삼천 년 이래의 오류이다. 한 사람 몫의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뇌수라 불리는 회색 덩어리에도 한 사람 몫의 주름을 갖추어야 한다. 이 오오쿠보 코슈란 서생은 확실히 공작이나 원숭이를 탈피한 한 사람 몫의 뇌수를 소유하고 있다. 아니, 한 사람 몫뿐 아닐지 모른다. 그의 문장은 냉철함 속에 신기할 정도의 정열을 품고 있다. 한 사람 몫의 뇌수를 가진 존재라 말해주는 지표는 천하에 이러한 문장 이외엔 존재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가격은 오십 전이다. 나는 주름진 오십 전 지폐를 꺼내 짙은 푸른색 표지를 한 "이에야스와 나오스케"를 사기로 했다.
사고나서 펼쳐보니 권두에는 코노에 공의 제목 표기를 시작으로 시게노 세이사이, 츠보우치 쇼요, 시마다 소난, 토쿠토미 소호, 다구치 테이켄 등의 서문이니 미즈타니 후토의 '오오쿠보 코슈 소전'이니 메이지 정취가 묻어나는 턱수염 자란 저자의 사진 등이 붙어 있었다. 무명 서생인 줄 알았던 코슈는 생각보다 지기가 풍부했나 보다. 하지만 현대에 태어난 우리가 코슈를 알지 못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 명사들의 금과 옥 같은 서문도 "이에야스와 나오스케"를 전달하는데 실패했다고 해야만 하리라. 이는 독자인 내게 용기가 꺾이게 하기 충분한 발견이다. 재능인인 줄 알았던 오오쿠보 코슈 또한 혹은 수많은 대학 교수처럼 장엄한 바보 중 하나였을지 모른다. 나는 긴 가을밤의 전등 아래서 이러한 의문을 품으며 일단 그의 대작인 이에야스편을 읽기 시작했다……
이는 벌써 재작년――혹시 몰라 적어두자면 다이쇼 십일 년 가을의 일이다. 그 후로 나는 모종의 기회로 이 잊힌 역사가를 소개해주고 싶다 생각하며 기어코 오늘에 이르러 버렸다. 소개하고 싶다고 말한 이상 코슈 오오쿠보 요소고로가 재능인이었음은 분명히 해야 하리라. 아니, 코슈는 메이지에 태어난 수많은 재능인 중에서도 가장 특색 있는 한 사람이다. 제군은 물론 이러한 찬사에 회의적 미소를 지으리라. 제군이 확신하는 바에 따르면 고금의 재능인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제군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물며 가장 특색 있는 재능인이라면 등한시될 리가 없다. 물론 이는 맞는 말이다. 애당초 고금의 재능인은 비단 재능인이었기에 제군의 사랑을 받는 게 아니다. 제군의 사랑을 받았기에 재능인으로 있을 수 있었다. 요컨대 재능인을 재능인으로 만드는 건 재능인 본인보다도 수많은 사람들이라 해야 하리라. 제군은 그런 점에서는 신보다도 전지전능하다. 그 어떠한 재능인도 그대들에게 문전박대 당하는 순간 여생마저 이어가지 못할 게 분명하다. 때문에 오가타 켄잔은 조용하고 좁은 곳에서 죽어갔다. 때문에 오오쿠보 코슈 또한 메이지 십사 년 출판, 정가 일 엔 이십 전의 저서를――심지어 그의 유일한 저서를 "할인 없음 50 전"에 파는 중이다.
나는 코슈를 재능인이라 말했다. 하지만 제군의 미소 앞에선 잠시 이 말을 덮어놔도 좋다. 대신 나는 제군의 총애를 받는 영광을 얻지 못한 코슈의 박복함을 빌어줘야 한다. 나중에 들어 보니 코슈 또한 적어도 식자 사이서는 완전히 잊힌 게 아니라 한다. 하지만 코슈의 모교인 당시의 와세다 전문학교――현재의 와세다 대학은 카타가미 노보루나, 혼마 히사오 또 미야지마 신자부로 같은 유수한 비평가를 세상에 배출했다. 하지만 오오쿠보 코슈는 아직 그들의 커다란 붓에 한 번도 오르지 못 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직업에 충실한 비평가이다. 혹은 그들의 직업에 지나치게 충실한 게 조금 유감일 정도일지 모른다. 하지만 코슈를 놓치는 건 태만의 죄라기보다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무지의 죄라 해야 하리라. 그들은 사이에 만 리의 파도를 둔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의 군소 작가의 이름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선배이자 대재능인의 이름만은 알지 못한다. 그런 코슈를 박복하다 하는 건 과장이라 꾸지람 듣기 어려우리라. 또 코슈는 와세다 대학 앞에 동상이 세워져 있어도 이상할 게 없는 박복한 역사가이다. 확실히 "이에야스와 나오스케"는 그의 면모를 전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가진 평생의 사업은 "이이 나오스케전"의 대성이다. 그는 이 일을 위해 삼십육 년 동안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죽음은 그의 목숨과 동시에 "이이 나오스케전"도 뺏어가 버렸다. "뜻 없이는 서지 못하는 몸이 드디어 가야 할 길을 가는구나"――미즈타니 후토의 코슈 소전에 따르면 죽음을 앞둔 그는 가득한 아쉬움을 이런 시에 담았다고 한다. 이를 박복하다 하지 않다면 무엇이 박복하단 말인가? 나는 적어도 길 한가운데서 죽어 간 선도자들의 박복함을 안타까워해야만 한다.
오오쿠보 코슈의 작품은 가장 먼저 "도쿠가와 이에야스편"이다. 두 번째로 "이이 나오스케편"이다. 세 번째로 "옛 신하의 실력담에 대해"이다. 세 번째의 "옛 신하의 실력담에 대해"는 "메이지 유신 전후로 만난 옛 신하들의 실제 경험담을 세상에 풀어놓는다"에 해당하여 그 역사적 가치를 생각한 삼십 페이지 가량의 논문에 지나지 않는다. 두 번째의 "이이 나오스케편"도 "이이 나오스케는 개국론자가 아님에 대하여", "오카모토 코세키", "나가노 슈젠" 세 편의 논문을 모은 말하자면 "나오 이이스케전"이란 계획 중인 도시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첫 편인 "도쿠가와 이에야스편"만은 다행히도 미완성품이 아니다. 아니, 내가 믿는 바에 따르면 오히려 이전 사람들을 허망하게 할 독창적인 완성품이다.
일부인 "도쿠가와 이에야스편"은 소년 시절의 이에야스를 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중년의 이에야스를 논한 "오니사쿠자", 노년의 이에야스를 논한 "혼다 사도노카미" 세 편의 논문으로 이루어져 있다.(물론 코슈는 이러한 순서로 논문을 쓴 게 아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메이지 삼십일 년, "오니사쿠자"는 메이지 삼십 년, "혼다 사도노카미"는 메이지 이십구 년――즉 작품 순서와 정반대로 적었다.) 이러한 논문이 꼭 금과 옥 같은 명문이란 건 아니다. 또 동시에 대단히 새로운 사료에 입각한 자료도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문 속에서 우리의 눈앞에 떠오르는 정이대장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소위 역사상의 이에야스보다 훨씬 이에야스 다운 이에야스이다. 이를테면 "도쿠가와 이에야스"서 여종을 대하는 이에야스를 논한 아래의 한 문단을 읽어 보라.
"이에야스의 자식은 남녀를 합해 열여섯이다. 이를 낳은 배는 열이다. 부인이 낳은 두 아이를 제외하면 모두 첩의 자식이다.(중략) 마지막으로 오카츠가 배에 막녀를 품은 건 이미 쇼군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어 슨푸에 은거하며 늙어도 한참 늙은 예순여섯 살 때의 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이 호걸이 장난스레 꺾어 아이를 가졌음에도 허무하게 흩어져 간 꽃은 한둘이 아니다. 실로 이에야스 또한 색을 좋아하는 영웅이란 옛사례서 빠지지를 않는다. 히데요시는 호죠 정벌의 진 안에서 요도도노에게 글을 하나 보내 '이십 일쯤에 반드시 찾아가 아들(츠루마츠)를 보고 싶다. 그때 옆에 두고 싶다. 모처럼 기다려진다'는 글을 보냈다. 천진난만하다 할 수도 있고 또 치정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에야스는 겉으론 이런 면이 드러나지 않지만 결국 말로 한다 하지 않는다의 차이지 실은 두 사람 모두 욕구가 왕성한 남자들이다. 단지 히데요시는 깊이 있다고는 하지 못하리라."
"허먼 이에야스는 얼마나 생각이 깊었는가. 이는 히데요시처럼 규문 안에 일가멸망의 씨를 뿌리지 않고 가장 조심해야 할 사치를 여종에게도 엄격하며 가족에게도 검소했음은 그 혼다 마사노부가 히데타다 쇼군의 유모에게 한 마디 꾸지람을 들어 한 마디도 반박하지 못했음을 통해 알 수 있으리라. 슨푸서 아내들이 무절임의 소금간이 약하다고 이에야스에게 한탄하니 주방을 담당하는 마츠시타 죠케이를 불러 좀 더 소금간을 하라고 타이르니 그 노인이 이에야스 옆으로 다가와 무언가를 속삭였고, 이에야스가 말없이 웃고 있자니 그는 그대로 물러났다고 한다.
"노인이 속삭이기를 '지금 소금간을 맞추어주면 아침저녁의 수많은 아내들 취향마저 맞춰줘야 합니다. 그리하면 비용이 얼마나 생길지 알 수가 없지요. 여종들의 말은 들어만 주시고 실행하는 일은 없어야 마땅하다 아뢰옵니다.' 죠케이도 짠돌이였으나 웃음을 참는 이에야스도 어지간하다. 천하를 삼킨 후에도 이렇지 않은가. 미카와는 또 어떨까.(중략)"
"'요즘 들어 일과를 줄였다. 늙은 몸으로서 지나친 일을 맡고 있으니 줄이는 게 좋겠다는 주위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일을 줄이니 편하긴 하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전장에서 살아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면 최소한의 속죄는 해야만 한다. 단지 젊을 적부터 하루도 쉴 새가 없었기에 이가 쉽지 않았다. 때문에 염불을 매일의 일과처럼 마음 먹고 매일 아침 일어나면 염불을 외고 밤에도 쉬지 않도록 하고 있다. 때문에 식사 중에도 염불의 그림자가 따라붙고 있다'하고 말한 걸 보아도 뒷면의 행적서 큰 방종을 휘두르지 않았단 걸 알 수 있다. 단 그 히데요시마저 "여자에게 모든 마음을 열지 말라"고 스스로 경계한 걸 생각하면 이에야스의 청렴결백한 염불담도 과거에 수많은 첩을 둔 남자의 말이란 걸 기억해야 한다. 사람을 죽이고 속죄 이외엔 달리 설명할 도리 없는 참회의 염주를 세는가. 카치가 아내의 여종에게 글을 써 카치카시라 마츠다이라가 영지 몰수를 당했다 알렸으니 그 규율이 엄정했음을 알 수 있으리라. 또 갑갑한 규칙 속에서도 그 주인에겐 이를 빠져나가는 융통의 길이 있었음을 잊지 말라. 미카와에 있을 때는 특히 어떤 일이나 가볍게 하였다. 이에야스가 나이를 거듭하며 처세의 길에 능통해지길(중략)
"항상 신하들의 평가를 들으며 홀로 권력을 독점하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은 사료 상으로도 또렷이 남아 있으나 표면의 정치에 이용한 이 필법은 아내들을 제어하는데도 응용하여 한 여자에게 총애를 들이지 않았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열여섯 아이를 두고 열 명의 첩 중 세 명 이상 낳은 자가 없음을 보면 그 섬세함을 알 수 있으리라. 무작정 우연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단지 여색을 사랑하는 노인이 아니라 산아제한도 추진한 정치가였다. 이는 명백히 삼백 년 동안 우리가 익숙히 봐온 이에야스가 아니다. 우리가 익숙히 봐온 이에야스보다 훨씬 인간 다운 이에야스이다. 훨씬 인간 다운――제군은 어쩌면 내 말이 지나치게 평범한 걸 보고 웃을지도 모른다. "인간다움"이란 말은 물론 비범할 구석이 없다. 갖은 신간 소설이나 희곡은 반드시 그 광고 속에 "인간 다운 괴로움"이니 "인간 다운 생활"이니 인간 다운 만사를 상품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소설이나 희곡은 과연 그 광고처럼 인간 다운 무언가를 보고 있는가? 특히 영웅의 전기 작가는 순수한 영웅 숭배자가 아니라면 고색창연한 도덕주의자이다. 확실히 그들 중 어떤 이는 인간다움을 논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인간다움도 실제로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 다운지는 의문이다. 그들은 항상 제군에게 엄숙히 이렇게 말하리라――"영웅은 물론 평범한 사람이지 않다. 하지만 신으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은 역시나 평범한 사람의 일부도 갖추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럼 우리 앞에 아무개란 인물을 세우고 그 아무개가 영웅임을 인정하게 하기 위해서는 평범하지 않은 면모를 지적함과 동시에 평범한 면모도 지적해야만 한다. 종래 전기의 영웅에 인간다움이 결여되어 있는 건 이런 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만큼 중요하면 과연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 다운 영웅을 보여줄 수 있는가? 이를테면 제군이 경멸하는 "한초군담"을 펼쳐보라. "한초군담"은 한고조는 진시황을 꿈꾸거나 백제白帝의 자식인 뱀을 베거나 평범하지 않은 면모를 크게 보여주는가 하면 여자와 향락을 즐기고 오만하게 구는 등 평범한 사람에 밀리지 않는 면모 또한 크게 드러냈다. 하지만 "한초군담"의 한고조서 왕자의 진면모를 발견하는 자는 삼 척의 어린아이뿐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또 사례를 하나 꼽자면 제군이 "한초군담"보다 더 믿지 못하는 역사――신문기사를 읽어 보라. 신문 기사 속 대신 또한 민의를 들어주고 헌정을 보호하는 등 평범하지 않은 면모를 크게 보여주는가 하면 거짓말하고 돈을 훔치는 등 평범한 사람보다 못한 면모마저 크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신문 기사 속 대신에게 영웅의 진면목은 고사하고 평범한 사람의 진면목마저 발견할 수 있는 건 삼 척의 어린아이――는 아니더라도 육 척의 어린아이뿐이리라. 그럼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평범치 않은 면모와 함께 평범한 면모를 지적하는 건 조금도 영웅을 영웅으로 만드는 무언가를 공연히 하지 않으리라. 그들은 이런 도리에도 아랑곳 않고 신경쇠약에 걸린 여호와처럼 소위 인간 다운 영웅이란 걸 창조했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산처럼 쌓인 그들의 전기 속에서 우리의 눈앞에 떠오르는 건 마치 머리 둘 달린 뱀처럼 평범하지 않은 면모와 평범한 면모를 좌우로 드러낸 우스꽝스러운 정신적 괴물이다. 영웅숭배자의 영웅은 영웅보다도 되려 신에 가까울 테지. 도덕주의자의 영웅도 너무나 착하지 않다면 너무나 악한 걸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영억은 어떤 통일성을 지니지 않는 한 인간 답다고는 하지 못하더라도 인형 다운 귀여움은 보여주고 있다. 단지 일부 전기 작가의 소위 인간 다운 영웅은 이러한 귀여움마저 보여주고 있지 않다. 그중에서도 그들이 창조한 정이대장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가장 불쾌한 괴물이다. 성 안토니우스를 유혹한 어떠한 지옥의 권속보다도 더 불쾌한 괴물이다.
코슈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러한 괴물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인간 다운 영웅이다. 그 차이는 어디서 왔는가? 코슈는 이에야스를 논하면서 평범하지 않은 면모와 평범한 면모를 동시에 지적한 게 아니다. 단지 평범한 면모가 평범하지 않은 면모와 융합된 점을 지적했다――보다 정확히는 되려 영웅 속에서 묵묵히 삶을 꾸려가는 인간 전체를 지적하였다. 이는 말을 꾸미자면 평범하지 않은 면모와 함께 평범한 면모를 지적하는 것과 아주 작은 차이일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론 천 리의 산과 강을 사이에 두었다 해도 좋을 정도로 큰 차이가 있다. 평범하지 않은 면모와 함께 평범한 면모를 지적하는 건 일반적인 작가도 가능하리라. 하지만 눈부신 인간 전체를 지적하는 건 희대의 천재성을 지녀야만 한다. 코슈가 이전 사람을 능가하는 이유는 이 인간 전체를 지적한 날카로운 눈초리에 존재한다. 코슈 자신도 역사상 인물서 인간 전체를 발견하는 걸 끝없이 공들인 모양이다. 이를테면 메이지 이십칠 년부터 이십팔 년까지 적은 '부감록'이란 제목의 수필에 다음과 같은 한 구절이 실려 있다.
"글을 읽고 마음과 정서 깊이 옛사람에 닿고 조용히 달밤을 올려다 보아 감개를 곱씹으며 옛사람에 이른다. 동정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이를 관찰하며 그를 생각한다. 틀리지 않기를 바라며."
더욱이 거의 동시기에 쓴 "전기사언수칙"은 모두 이런 결을 두르고 있다.
"사실을 통해 그 심리를 깨닫고 그 심리를 통해 사실을 해독한다. 하지만 이따금 모순될 때가 있다. 인간은 바깥 사정에 휘둘려 자신의 뜻을 누르며 일을 행한다. 이 사이에 감춰진 관계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단점과 장점의 봉재이다. 장점 하나가 있으면 이에는 반드시 단점이 따른다. 단점을 보면 즉 장점도 알 수 있다. 군자는 잘못을 보고 그 뜻을 안다던가. 이 또한 마찬가지다.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 하는 걸 확실히 알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을 논해야 한다."
"사람은 세상에 나서 제각기 한 개의 지위를 지닌다. 이를 보려면 동등한 지위에 서서 봐야 한다. 결코 위에서 내려다보면 안 된다. 아래서 올려다보면 안 된다. 한 지역의 사람은 한 지역의 눈으로 보고 한 나라의 사람은 한 나라의 눈으로 보아야 하고 천하의 사람은 천하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말은 하나 같이 역사상 인물을 들여다보는 태도를 논하고 있다. 하지만 코슈는 옛사람에게만 이러한 관점을 주었는가? 아니, 도쿠가와 이에야스마저 차갑게 본 오오쿠보 코슈가 역사상 인물에게만 이런 시선을 준다는 것부터가 잘못된 말이지 않을까? 미즈타니 후토의 코슈전에 따르면 "오오쿠보 코슈는(중략) 사람을 대할 때면 관용의 자세로 손님 대하듯이 한다. 때문에 오오쿠보를 찾아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끊이지 않고 미래의 정치가, 문학가, 시인, 예술가, 역사학자, 철학자, 사업가 등 그 종류 또한 비범하다"고 한다. 미래의 정치가, 문학가, 시인, 예술가, 역사학자, 철학자, 사업가란 건 물론 서생이었을 게 분명하다. 코슈는 분명 이러한 사람들에게도 독특하고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으리라. 또 동시에 그러한 사람들 속에서 욕심을, 간휼을, 야비함을, 우매함을, 오만함을 하지만 항상 동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인간 전체를 발견했으리라. 내가 믿는 바에 따르면 코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란 영웅 속에서 인간 전체를 발견하기 전에 이 소위 미래의 정치가, 문학가, 시인, 예술가, 역사학자, 철학자, 사업가 같은 무리서 인간 전체를 발견했으리라. 위대한 중국 현자는 "온고지신"이라 말하였다. 확실히 진구황후란 옛것을 아끼는 건 용맹한 부인 참정권론자의 새로움을 아는 일과 통할지 모른다. 하지만 또 반대로 새로운 걸 아껴 옛것을 알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뿐 아니라 새로운 걸 모르는 주제에 옛것만 아끼는 건 새로운 것과 옛것 모두를 넓은 마경에 떨어트리는 일임도 확실하다. 불행히도 요즘의 전기 작가 중 대다수는 이 마경에 안주했다. 그들은 역사상 인물을 알고 있다 믿는다. 하지만 그들 본인을 시작으로 그들의 부모처자식의 인간성마저 제대로 알지 못한 그들에게 모호한 역사상의 인물은 얼마나 제 심장을 열어주고 있는가? 코슈는 그러한 출발점에서 이미 그들과 반대되는 길을 향해 정진의 걸음을 옮기고 있다. 코슈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인간 다운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우연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에야스(중략) 서자 오기마루를 보낼 때 이시카와 카즈마사가 카츠치요를, 사쿠자에몬이 센치요를 수도에 데리고 가게 한다.(주, 코마키야마의 전투 후 수도에 있는 히데요시에게 사실상의 인질로 보낸 것이다.) 오기마루란 코몬 히데야스의 아명으로 시종 오만이 낳았는데, 이에야스가 이를 사랑하니 질투심 깊은 츠키야마 부인의 화를 피해 혼다 히로타카가 혼다 사쿠자에몬을 몰래 찾아 이를 상담하니 사쿠자에몬이 몰래 이에야스에게 몰래 알려 구해냈다.(중략) 태어난 아이는 사쿠자에몬이 자기 아이처럼 길러 세 살이 되었을 때 형인 노부야스가 이 사랑하는 동생을 데리고 이에야스를 찾아 나서 처음으로 친아빠 무릎에 안기게 했다. 이를 가장 기뻐한 건 아버지도 형도 아니고 또 당사자인 아기보다도 피 하나 섞이지 않은 사쿠자에몬이었다.(중략)
"수많은 무사가 아군에게 자란 양자를 기뻐하나 또 적국으로 보내 게 될 걸 생각하니 주위가 침울해진다. 그중에서도 사쿠자에몬은 특히 이가 강해서 용서 못할 원수의 기만술을 보니 설령 전국의 처세를 배웠더라도 본성은 어디 가지 않았다 냉소한다. 하물며 이제는 사쿠자에몬이 직접 기른 공자를 희생해야 한다는 난문이 직접 내려 온 꼴이지 않은가. (중략) 이러한 사쿠자에몬을 긍정하는 건 이에야스 또한 마냥 쉽지 않아서 사쿠자에몬 또한 자신을 억누르며 무시하기 어려운 군명을 받게 될 때엔 온 힘을 다해 용단하겠다 말한다. 하물며 고작 열하나 먹은 제 자식을 오기마루와 함께 보냈으니 이 봉공의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우랴. 헤어질 적에 사쿠자에몬은 무뚝뚝한 슬픔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 후로 사쿠자에몬의 마음은 항상 위로 솟아 두 사람을 향하게 되고 또 히데요시의 행동거지를 한 층 더 심각하게 주목하게 되었다.(중략)
"그 후로(중략) 도쿠가와의 집안에서는 적의와 의심이 한층 강해져 하늘만 바라보며 마음을 알 수 없는 히데요시가 언제 공격할지 모른다고 다들 잠자리마저 쉽게 청하지 못 했다. 그런 말이 흐르는 와중에 히데요시가 요기마루 등을 죽였다는 풍문은 일가 사람들의 마음에 깊숙히 꽂혔다.(중략) 허나 이에야스는 인고의 사내로 냉정히 말하길 '그 아이들은 지금 내 아이가 아니고 히데요시의 아이다. 이를 죽이는 건 히데요시의 불의다. 죽이라면 죽이라지'. 생각하기에 히데요시가 왕왕 위압으로 사람을 억누르는 기질은 있더라도 일부러 무익한 살생을 하는 미치광이는 아닐 터이다. 이에야스의 현명함이 이를 알고 있었다 봐야 할 테지. 흔히 이에야스가 태연하고 뻔뻔하다는 말이 도는 건 아마 이러한 이야기의 관찰에 기반을 두고 있으리라. 하지만 사쿠자에몬은 이처럼 냉혹히 간과할 수 없어서 '센쵸가 수도에 있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하나 있는 자식을 잃을 수는 없다'며 곧장 어머니가 큰 병에 걸렸음을 알리고 이별을 위해 돌아 오라 불러냈다. 그렇게 제 자식을 아끼는 사쿠자에몬이니 자신이 오랫동안 기른 공자가 위험하다 들어서는 그 고통이 센쵸에 비할 바가 없으리라. 이미 히데요시에게 보낸 이상은 돌이킬 수 없으나 그대로 두어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센쵸가 먼저 돌아오면 반드시 이에야스에게 공자의 일을 호소하며 히데요시를 매도해 그 울분을 더욱 키워주리라. 이에야스 또한 요기마루는 어찌 되었든 센쵸가 돌아 오면 사쿠자에몬도 노여움을 조금이나마 풀고 기뻐해줄 테니 어머니가 큰 병에 걸린 것도 듣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그냥 넘길 수 없는 호기였음은 분명하다. 사나운 사쿠자에몬도 자식이 돌아오면 잠시 동안은 온건히 말하게 되리라. 속이 검은 주인의 뜻은 그러하였다. 또 센쵸와 함께 보내진 카츠요메의 아버지는 그 히데요시 밑으로 간 이시카와 카즈마사이니 도쿠가와 집안에서는 이전부터 흑심을 의심하는 자도 있었다. 사쿠자에몬은 본래 충성 외길을 걸은 남자이나 당시 돈 이야기로는 자식을 아끼는 사쿠자에몬이라면 카즈마사와 마찬가지로 움직일 법하다고 그 속내를 의심하며 결백함에 상처를 입혔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쿠자에몬의 성급함 또한 의심의 씨앗을 거두기 위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이는 혼다 사쿠자에몬과 함께 히데요시에게 숨을 죽인 이에야스를 논한 "오니사쿠자"의 한 구절이다. 제군은 지금도 오오쿠보 코슈를 메이지의 재능인 중 한 명으로 두는 나의 몽매함을 비웃겠는가? 비웃고 말고는 물론 제군의 뜻에 달렸다. 단지 나는 앞서 꼽은 "전기사언수칙" 속에서 "하늘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사람을 통해 말하게 한다. 하지만 사람의 목소리가 반드시 하늘의 목소리라 할 수는 없어서 사람을 향한 칭찬과 폄훼는 하늘의 심판과 일치하지 않는다. 인간이 불쌍한 건 생전엔 하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채 죽어감에 있다. 이 때문에 후대 사람은 하늘을 대신해 사후의 지기가 되어야만 한다"는 말을 읽었을 때 우리가 잊고 있던 코슈를 위한 슬픔을 느꼈다. 나의 문장이 무엇이든 엄숙한 하늘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않는 건 사실이다. 아니, 제군들 앞에서 내 발견을 의기양양히 자랑스러워하는 인간의 목소리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 문장을 기회로 진짜 하늘의 목소리를 통해 "이에야스와 나오스케"를 찬미하는 게 전혀 없다고는 못하리라. 그렇게 생각하면 내 문장도 길 도중에 쓰러진 앞선 사람들을 위한 조금의 위로는 될 터이다. 말하자면 나는 외로운 무덤의 위치를 되도록 정중히 가리킨 셈이다. 이 쓸쓸한 무덤 앞에서 사람들은 언제쯤 인사를 올리게 될까? 또 더욱이 무수한 꽃다발을 바치는 건 언제가 될까?
'고전 번역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골동갱―쥬료요시란 가명 뒤에서 쓴 잡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2.02.04 |
---|---|
오리츠와 자식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2.01.23 |
발타자르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역 (0) | 2022.01.11 |
지옥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2.01.03 |
베이징 일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1.12.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