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건곤
Judith Gautier가 쓴 시 속 중국은 중국이되 중국이 아니다. 카츠시카 호쿠사이가 그린 수호화전 속 삽화 또한 이와 비슷하게 여실히 중국을 옮겼다고는 할 수 없다. 허면 그 명모한 여시인도 이 단발 노화백도 그 무성의 시와 유성의 그림에 방불케한 중국은 되려 그들이 백일몽 속에서 돌아다닌 별건곤이라 해야 할까. 인생의 행복이란 이 별건곤에 있다. 누가 코이즈미 야쿠모와 함께 천풍해도의 푸르고 맑은 곳에 떠나 돌아오지 않는 신중루를 한탄하랴.(1월 22일)
경박
원나라의 이간李衎이 문호주가 대나무에 그린 보기에 수십 폭이 전부 마음에 차지 않았다. 동파의 산곡 등의 평을 읽어 보아도 친교에 따른 편들기라고만 여겼다. 어쩌다 친구인 왕자경을 만나 화제가 문호주에 이른다. 자경이 말하길 이간은 아직 제대로된 걸 보지 못 했단다. 부사의 장서가 굉장히 좋다길래 다음날 빌려보란다. 다음 날 곧장 이를 보니 갑갑한 연기가 걷히고 이슬 맺힌 쓸쓸한 안개가 드리워 마치 위천의 강물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이간은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고 말았다. 견문이 한없이 좁았음을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이간은 이렇기에 미워할 수 없다. 세잔의 사진판을 보고 색채의 밸류를 떠드는 필차의 경박함엔 침을 뱉어줘야 마땅하리라. 경계를 허투루 해선 안 된다.(1월 23일)
속물
발자크가 페르 라셰즈 묘지에 보내질 때 관옆에선 내상 바로슈가 있었다. 장송 도중에 마찬가지로 관 옆을 지키던 유고에게 묻기를 "발자크 씨는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지요?" 한다. 유고는 뱉어내듯 말했다. "천재지요." 바로슈는 그 답에 화가 났는지 옆사람에게 속삭이길 "이 유고 씨도 듣던 것 이상으로 미치광이로군." 프랑스의 내각 또한 이처럼 속물이나 다름없다. 일본 제국의 대신들 또한 마음을 놓아도 되리라.(1월 24일)
동성연애
도리언 그레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Escal Vigor을 읽어야만 한다.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정을 이 글만큼 유감 없이 묘사한 건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누가 이를 번역한다면 당국을 불쾌하게 할 글이 적지 않겠지. 출판 당시 유명한 소송 사건이 벌어진 것 또한 이 매혹적인 글의 지분이 적지 않으리라. 저자 George Eekhoud는 벨기에의 근대 대작가 중 한 명이다. 그 카미유 르모니에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나 인재가 많은 일본 문단 중에서 아직도 이를 소개하는 글 하나 없다. 문예는 어찌하여 오로지 북미의 하늘에만 오로라를 드리우는가?(1월 25일)
동인잡지
어린 자제들이 돈을 모아 동인잡지를 출판하는 게 요즘 유행 중 하나이다. 하지만 종이값에 인쇄 비용이 결코 저렴하지 않은 시기이니 경영을 어려워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 전해 듣기를 메르쿠르 드 프랑스가 창간호를 시장에 내놓을 때에도 문단의 불우한 작가들이 유복할 리도 없으니 도리 없이 한 주에 육십 프랑의 채권을 동인에게 팔았는데 유일한 대주주였던 쥘 르나르가 가진 주식마저 고작해야 네 주에 지나지 않았다 한다. 심지어 그 동인 중에는 Albert Samain이나 레미 드 구르몽처럼 한 대를 풍미한 재능인도 많았던 걸 생각하면 요즘 유행하는 동인잡지 또한 자금이 넉넉치 않음에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단지 현대의 메르구르선 상징주의의 깃발을 든 영령들의 그림자란 한 다스 정도 밖에 찾아 볼 수 없다.(1월 26일)
아호
현재의 일본 작가 중 대다수는 아호를 쓰지 않는다. 문단의 신인을 구별하는 방법이 이 아호에 있을 정도이다. 그러하니 이전에 쓰던 아호를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호의 생명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 테지. 러시아 작가 중에 오쉽 드모프란 자가 있다. 체호프의 단편 '메뚜기'의 주인공과 같은 이름이리라. 디모프는 그 이름을 빌려 아호로 삼은 셈이다. 똑똑한 자는 이가 시사하는 바를 알아줬으면 좋겠다.(1월 28일)
청루
프랑스말로 기루妓楼를 la maison verte이라 하는 건 공쿠르의 조어라고 한다. 생각하기에 이는 청루 미인 모음을 번역한 것이리라. 공쿠르는 일기서 말한다. "올해에 내가 일본 미술품을 병적으로 수집한 탓에 소비한 돈이 삼천 프랑에 이른다. 이는 내 모든 수입으로, 회중시계를 사야 할 사십 프랑의 여유마저 남아 있지 않다." 또 말한다. "요 며칠 동안 일본에 가고 싶단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여행은 내가 평소 하는 수집벽을 채우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나는 꿈꾼다. 책 하나를 완성하는 일을. 제목은 '일본의 일 년'. 일기와 같은 형태, 서술보다는 정서적 동조. 그리하면 비할 바 없는 좋은 글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나의 이 늙음을 어찌하면 좋으리오." 일본 그림을 사랑하고 일본의 골동품을 사랑하고 더욱이 또 일본의 국화를 사랑한 외롭고 적막한 공쿠르를 생각하면 청루란 한 마디가 짧다고는 해도 무한한 정취를 가지고 있다 해야 하리라.(1월 29일)
언어
언어란 본래 다양하다. 산이라 하는가 하면 악嶽이라고도 하고 봉이라고도 하며 란巒이라고도 한다. 요컨대 뜻이 같아도 글자가 다른 걸 사용하면 교묘하게 뜻을 숨길 수 있단 뜻이다. 옛날에는 대식가를 대송大松이라 하며 경솔한 자를 사베이지라 칭했다. 이를 모르는 사람한테 쓴다면 욕을 먹는 와중에도 이해하지 못하리라. 한 번 생각해 보라. 품소品蕭, 펠라치오나 후정화後庭花, 항문, 도요촉倒澆燭, 기승위과 같이 금병매의 육포단 속 조어를 빌려 한 편의 소설을 썼을 때, 과연 그 풍기문란함을 간파할 수 있는 검세관이 몇이나 되겠는가.(1월 31일)
오역
드 퀸시는 칼라일의 독어문 번역에 오역이 있음을 지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첼시의 철학자 칼라일은 이 후진 귀재의 출현에 되려 크게 놀랐으며 드 퀸시 또한 그 넓은 마음에 감복하여 백 년의 우정을 나누었다고 한다. 칼라일의 오역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오역 중 가장 우스웠던 건 마돈나를 사모님이라 번역한 것이었다. 번역자가 낙원의 문을 지키는 하급 천사인 것도 아닐 터임에도.(2월 1일)
희훈
과거에 쿠메 마사오 씨는 쇼에 笑迂라는 한자를 붙이고 입센에 燻仙이라 붙이고 마테를링크에 瞑照燐火라는 한자를 붙였으며 체호프를 知慧豊富라 칭했다. 이를 희훈이라 하지 않는다면 무어라 해야 할까. '두 비구니'의 작가 스즈키 쇼산이 기독교를 배척하는 글의 제목으로 파키리시탄破鬼理死端이라고 한다. 이 또한 악의가 담긴 희훈 중 하나이다.(2월 2일)
하이쿠
코요의 구가 아직까지 옛사람의 명묘함을 얻지 못한 게 비단 단린하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사람의 문장을 보기에 그 소소한 낙묵이 소나무를 이루는 절묘함이 없다. 장점은 정교하고 정밀하여 돌을 그려도 풀 한 포기마저 세심히 잊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하이쿠가 부족한 것도 당연하다 해야 하지 않을까. 규몬의 수재 쿄카 씨의 작품이 스승을 뛰어넘는 것도 이 이치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하니 사이토 료쿠가 그 종횡무진한 재능을 가졌음에도 하이쿠에서는 평범한 건 참 신기한 일이다.(2월 4일)
소나무 가로수
토카이도에서 소나무 가로수를 구한다는 걸 언젠가 신문에서 읽은 적 있다. 도로 개수를 위한 일이라면 도리 없지만 이 때문에 백 척에 이르는 노송이 수없이 도끼에 찍혀 나갈 걸 생각하면 아까워할 수밖에 없다. 폴 클로델이 일본에 왔을 때 이 토카이도의 소나무 가로수를 보고 쓴 글이 하나 있다. 연기처럼 뻗은 마른 가지를 품은 줄기가 돌을 감싼 모습이 참으로 영묘한 아름다움을 두르고 있다 해야 하리라. 이제는 그 소나무 가로수가 사라지려 하고 있다. 클로델이 혹여 이를 들으면 노란 얼굴의 멍청이들은 아직 개화되지 않았다며 길게 한탄 하지 않을까 걱정될 따름이다.(2월 5일)
일본
고티에의 딸이 그린 중국 이야기는 더는 하지 않겠다. José Maria de Heredia의 일본 또한 별건곤이다. 발 안의 미인은 비파를 연주하며 철옷을 입은 용사가 오길 기다린다. 일본의 광경인 건 확실하다.(le samourai) 하지만 그 흰색과 흑색, 금색 비단으로 장식된 세계는 되려 넓고 흐릿한 고답파의 몽환 속에 자리해 있을 뿐이다. 심지어 에레디아의 몽환경을 만약 지도상에서 찾는다면 아마 프랑스와 가까울지언정 일본하고는 크게 떨어져 있으리라. 그 괴테의 그리스마저도 트로이의 용맹한 전사들의 입에 뮌헨 맥주 거품이 묻어 있지 않은가. 한탄한다면 상상에 또한 국적이 있단 사실뿐이리라.(2월 6일)
타이가
토카이의 화가가 많다지만 이케노 타이가만한 큰 그릇도 또 없으리라. 하지만 그 타이가마저 서른이 되어 손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실에 우울해하며 기 난카이에게 가르침을 청한 적이 있다. 타이가보다 혈기 넘치는 자들은 자신의 느린 진보를 초조해하는데 여념이 없다. 단지 몇 번이나 계속 배워야 하는 건 긴 수행 속에서 배울 기회를 분명히 알았던 타이가의 노력뿐이리라.(2월 7일)
요파妖婆
영어 witch는 대개 요파로 번역되는데 어리고 아름다운 위치 또한 결코 적지 않다. 메레시콥스키의 '선각자', 단눈치오의 '졸리오의 딸' 혹은 질은 훨씬 떨어지나 크로퍼드의 Witch of Prague 등 아름다운 위치를 그린 작품도 찾아보면 많이 나오리라. 하지만 백발에 얼굴이 창백한 위치만큼 활약시키기에 어려운 건 사실이지 않을까. 스콧이나 호손 등의 고전은 어찌 되었든 근대 영미문학 중 요파를 그려내 특색을 뽐낸 건 키플링의 The Courting of Dinah Shadd 따위가 굴지라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하디의 소설 중에도 요파를 소재로 삼은 게 드물지 않다. 명성 높은 Under the Greenwood 속의 엘리자베스 언더필드도 그 중 하나이다. 일본에선 야마우바나 오니바바 또한 위치의 일종이다. 중국에서는 야담수록에 속한 야성자 또한 거의 요파라 해도 좋다.(2월 8일)
유술
서양인은 일본을 논할 때마다 반드시 유술을 상기한다 들었다. 그러하니 아나톨 프랑스의 "천사의 반역"의 한 장에서도 일본에서 파리로 찾아온 천사가 프랑스의 순사를 붙들어 훌륭히 던져내는 부분이 있다. 모리스 르블랑의 탐성 소설 주인공 협적 루팡이 유술에 능통한 것도 일본에서 배워 온 것이라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현대 일본 소설 중에 유술의 절묘함을 깨우친 주인공은 고작해야 이즈미 쿄카 씨의 '작약의 노래' 속 키리타로 뿐이다. 유술 또한 예언자는 고향에 융화되지 못하는 바를 한탄할 수밖에 없으리라. 웃긴 일이다.(2월 10일)
과거의 풍류
조익이 오문잡시서 말한다. 看尽煙花細品評꽃을 세밀히 품평해보자니 始知佳麗也虚名비로소 아름다움의 허무함을 아는구나 従今不作繁華夢이제 번화의 꿈은 꾸지 말고 消領茶煙一縷清차를 끓여 맑은 김 올려 보내자꾸나. 또 산당이 시로 말한다. 老入歓場感易増늙어도 기생을 찾으면 감개를 느끼고 煙花猶記昔遊曾과거에 논 기생은 지금도 기억이 나는구나 酒楼旧日紅粧女 어여쁘게 꾸민 추억 속 기생 하나 已似禅家退院僧이미 은퇴해 승려처럼 지낸다네. 이러한 시적 정서는 거진 나가이 후우 씨를 연상시키게 한다.(2월 11일)
발음
포의 이름은 Quantin판에 Poë라 인쇄되어 프랑스를 시작으로 포에라 발음되게 되었다. 때문에 영문학 선생님이셨던 고 롤렌스 선생님께서도 이따금 포에라 발음하는 걸 들은 적 있다. 이처럼 서양인의 이름은 발음을 실수하기 쉽다는 건 알지만 휘트먼이나 에머슨 등을 숭배하는 사람이 자신의 부처 이름마저 발음을 틀리는 건 참으로 추해 보인다. 조심해야 할 일이다.(2월 13일)
오만불손
한 청년 작가 모임 자리에서 우리 문예가들은 하고 운을 떼니 옆에 있던 발자크가 곧장 그 말을 끊고 말하기는 "그 우리에 끼고 싶지 않다. 나는 근대 문예를 이끄는 자이다." 문단의 두세 명이 이를 불손하다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발자크와 닮은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애당초 인간희극의 저술자 두세 명조차 듣지 못 했다마는.(2월 15일)
담배
담배가 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건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의 일이다. 이집트, 아라비아, 로마 등에서도 담배가 유행했다는 건 눈 뜬 장님의 헛된 말에 지나지 않는다. 아메리카 사람은 흡연을 즐겨서 콜롬버스가 신세계에 이르렀을 땐 이미 엽궐련이, 살담배가, 코담배가 존재했다. 담배 이름도 실은 식물 명칭에서 따온 게 아니라 살담배를 맛보기 위한 파이프를 뜻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러하니 서양의 백인종이 담배에 신기축을 제시한 건 고작해야 가벼운 궐련의 고안 하나뿐이다. 와한삼재도회에 따르면 남만인이 가장 먼저 일본에 옮겨 온 것 또한 이 궐련이다. 무라타의 담뱃대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때부터 우리 선조는 이미 궐련을 입으로 옮기며 봄볕이 드는 야마구치서 천주회당의 십자가를 올려다보며 서양기공의 문명에 감탄사를 아끼지 않았다.(2월 24일)
니코틴 부인
보들레르의 파이프의 시는 물론이요 Lyra Nicotiana를 돌아봐도 서양 시인이 담배를 사랑하는 건 동양 시인이 차를 즐기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봐도 되리라. 소설로는 배리의 "니코틴 부인"이 가장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리라. 하지만 경묘한 글로 독자를 안일하게 웃기는 정도에 그친다. 니코틴의 이름은 본래 프랑스의 장 니코서 나온 말이다. 십육 세기의 중엽, 니코 대사가 명을 받아 스페인에 파견되었을 때 플로리다서 건너온 담뱃잎을 구해 이가 의료에 효능이 있다는 걸 알고 재배를 위해 크게 노력했으니 프랑스 사람들이 한때는 담배를 니코티아나라 불렀다고 한다. 드 퀸시의 "아편 흡연자의 참회"는 사토 하루오 씨에게 "지문"이란 기이하면서도 훌륭한 글을 완성케 했다. 누가 또 배리의 뒤를 이어 배리를 뛰어 넘을, 그야말로 하바나와 마닐라의 관계에 해당하는 담배 소설을 쓰게 될까.(2월 25일)
일자지사
당의 임번任翻이 천태산 건자봉에 놀러 가 절의 벽에 시 하나를 지었단다. "絶頂新秋生夜涼절정의 초가을이 서늘한 밤을 낳네 鶴翻松露滴衣裳학은 소나무에 맺힌 이슬을 흩뿌려 옷을 적신다 前峯月照一江水앞 봉의 달은 강 하나의 물을 비추며 僧在翠微開竹房승려는 산의 중턱에서 죽방竹房을 여는구나." 시를 짓고 뒤로하여 수십 리, 도중에 一江水강 하나보다 半江水강 절반이 낫겠지 싶어 곧장 시를 적은 곳으로 돌아가니 누군가가 이미 "一"자를 지우고 "半"자로 바꿔놓은 뒤란다. 임번이 긴 한숨을 내쉬며 말하기를 "태주(천태산이 위치한 땅 이름)에 이만한 사람이 있는가". 옛사람이 시에 얼마나 마음을 들이고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세이세이의 구집 츠마기 속에 "初夢や赤なる紐の結ぼほる붉은 끈으로 서로 이어져 있는 새해 첫꿈아"라는 구가 있다. 내 생각에 "る" 대신에 "れ"를 써 좀 더 희망을 드러냈으면 어땠을까 싶다. 세세이가 나를 보고 일자지사라 여길까. 웃음만 나온다.(2월 26일)
응보
위고는 어베뉴 데일로 자택에서 파티를 열었다. 손님들이 잔을 들어 주인의 건강을 축복하자니 유고가 옆에 있던 프랑수와 꼬뻬를 보며 말하길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두 시인이 서로 건강을 축하하는 걸세. 그것도 좋지 않겠나?" 즉 꼬뻬를 위해 건배를 하잔 것이었다. 꼬뻬는 사임하며 말했다. "아뇨아뇨, 이 자리에 시인은 한 명밖에 없으니까요." 이는 즉 시인의 이름을 짊어질 수 있는 건 유고 한 사람뿐이란 뜻이다. 그러자 "오리엔탈"의 작가는 곧장 웃으며 말했다. "시인이 하나뿐이라. 맞는 말이지. 그럼 나는 어떻게 되나?" 이는 즉 꼬뻬의 말을 뒤집어 자신의 겸양으로 만든 것이다. 왈 "절의 가을" 모임, 왈 "미우라 제실장 주최" 모임, 왈 작자 모임, 요즘에는 문단 모임이 굉장히 많다지만 아직 이만큼 해학적 절묘함을 가진 응보는 듣지 못했다. 옆사람은 웃으며 말했다. "무얼, 자신부터 시작하면 어떻겠나."하고(2월 27일)
백우선白雨禅
카노 호가이가 항상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를 "그림의 진리란 단지 홀로 깨달을 뿐 가르침을 줄 수 없다." 하루는 카노 호가이가 병에 걸려 드러누웠다. 우연찮게 비가 퍼붓는 날이어서 마을 안쪽의 거리에도 행인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 스승과 제자가 나란히 아무 말없이 빗소리만 들을 때였다. 그때 마침 한 사람이 목소리를 높여 노래하며 문밖을 지났다. 카노 호가이가 웃으며 제자들에게 말하길 "알겠더냐?" 그 말에는 매서운 기세가 담겨 있었다. 깨달음을 얻은 자의 날카로운 검은 천금의 돈에 값어치 하며 요정은 그 태음에 눈물 흘린다. 차가운 빛 한 줄기, 그대는 이를 알아야 한다.(3월 3일)
비평
삐롱은 곧잘 빈정거린 걸로 유명하다. 한 문인이 그에게 말하기를 전대미문의 일을 하고 싶단다. 삐롱이 냉정하게 답하길 "간단하지. 자네 스스로를 찬가하면 되네." 듣기로는 당대 문단에는 당파 비평이, 매소 비평이, 인사 비평이, 전동 비평이 있단다. 수많은 훼예포폄 속에서 멍청한 재능을 가진 자가 자화자찬을 해본들 이가 또 사실처럼 전해져 삐롱의 말처럼 전대미문의 일은 되지 않으리라. 쥬료요시는 이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 삐롱 또한 버거운 세계에.(3월 4일)
오류
문앞의 그물이 몽구를 읊는다 1고 말하는 선생이 있는가 하면, 요원을 불태우는 불처럼 2이라는 말을 쓰는 교사도 있다. 메이지 신구의 재료를 찬사하며 문질빈빈 3이란 용어를 쓰는 농학 박사가 있는가 하면 육해군의 확장을 논하며 병선파휴 4라 실수하는 정치인이 있다. 과거에 강도가 아리를 낳았을 때 이임보가 편지를 써서 말하길 "농장弄麞의 기쁨이 있다 들었다." 한 손님은 이를 보고 입을 덮었다. 임보가 글자를 실수하여 농장弄璋을 잘못 쓴 걸 웃은 바이다. 요즘엔 대신이 시대상에 분개하며 위험 사상이 막연함을 논하며 병이 이미 고맹膏盲 5에 이르렀다, 국가의 흥망이 눈앞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의아해하는 자는 천하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문 소양을 돌아 볼 필요가 있다. 하물며 요즘의 청년들은 라벨의 영어는 이해할 수 있어도 사서는 읽어 본 적이 없고 톨스토이의 이름은 들었어도 이청련의 호는 알지 못하는 자가 수도 없다. 언젠가 한 번은 서점 앞에서 몇 권의 낡은 잡지를 보았다. 거기에 홍조사가 발행한 홍조 제 몇 호란 게 있었다. 혹시 모르는 걸까. 영어로 홍조는 여자의 월경을 뜻한다는걸.(4월 16일)
입월
서양에 여자의 홍조를 노래하는 시가 있는가. 견문이 좁아 아직 이를 알지 못한다. 중국에는 궁야규합의 시 속에 이따금 월경을 노래한 시가 있다. 왕건이 말하길 "密奏君王知入月군왕께 이르되 달이 차고 있습니다. 喚人相伴洗裙裾사람을 불러 나란히 옷을 씻는군요." 봄바람이 주렴에 불어 은으로 된 걸이를 흔드니 미인 궁녀가 옷을 씻는 걸 본다. 월사 또한 풍류지 않을까.(4월 16일)
유정
서양에 남자의 유정몽정을 노래하는 시가 있는가. 견문이 좁아 아직 이를 알지 못한다. 일본에는 하이카이 키시우단에 "유정에 놀란 지난밤의 잠자리 신슈쿠" 단지 이 유정이란 말이 과연 현대와 같은 뜻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식자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면 기쁘겠다.(4월 16일)
후세
그대는 본 적이 있는가. 혼아미의 종이마저 과거와 현재가 다르다는걸. 낭만파를 일으킨 셰익스피어의 이름이 사해에 번개처럼 울리는가 하면 낭만파가 죽고 유고의 작품이 팔방으로 전해지다 다시 황폐해지는 게 서리낀 단풍만 같다. 수없이 변화하는 모습. 눈앞은 거품이요 등 뒤는 몽환이다. 지음은 구하지 못한다. 어리석은 민중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프라고나르가 이탈리아서 기술을 배우려 하니 부셰가 그를 보내며 왈 "미쉘 안쥬의 작품은 보지 말아라. 그와 같은 건 미치광이뿐이다." 부셰를 비웃으며 속물이래 봐야 할까. 이는 어려울 게 없다. 그런가 하면 천 년 뒤에 천하가 똘똘 뭉쳐 부셰를 보라 입을 모을지 또 모를 일이다. 차가운 시선은 당대의 오만이며 긴 휘파람으로 후세를 기다린다. 이 또한 귀굴리의 생계일 뿐이다. 속된 것에 섞여 자신마저 속되게 되기에는 젊지 않다. 울타리엔 국화가 피었다. 코토에는 현이 없다. 남산을 보러 가면 항상 유유해진다. 쥬료요시는 글을 팔아 생활한다. 바라자면 앞으로 평생 후세를 논하지 않고 문단의 평범한 사람처럼 톨스토이를 다루고 사이카쿠를 논하고 혹은 갑 주의 을 경향을 떠들며 유희삼매의 경지에 머무르고만 싶다.(3월 26일)
죄와 벌
오가이 선생님께서 주필이신 "시가라미소시" 제47호에 노구치 네이사이의 칠언절구 "죄와 벌 상편을 읽다"가 몇 수 실려 있다. 서양 소설을 주제로 삼은 시는 아마 이 몇 수가 고작이지 않을까. 두세 개를 적어 보자면 "考慮閃来如電光 茫然飛入老婆房 自談罪跡真耶仮 警吏暗殺狂不狂"(제13회) "窮女病妻哀涙紅 車声轣轆仆家翁 傾嚢相救客何侠 一度相逢酒肆中"(제14회) "可憐小女去邀賓 慈善書生半死身 見到室中無一物 感恩人是動情人"(제18회) 정도가 있다. 시의 좋고 나쁨은 잠시 제쳐두고 메이지 26년이란 과거, 이미 문단서 도스토옙스키를 논하는 자가 있었단 걸 생각하면 이 몇 수의 시에 웃음이 지어지는 게 비단 쥬료요시만은 아니리라.(5월 27일)
악마
악마는 참 숫자가 많다. 총수 백칠십사만오천구백이십육 마리이다. 이를 나눠서 칠십이 부대가 존재하고 한 부대마다 대장을 한 명씩 둔다. 이는 십육 세기 말 독일인 요한 와이어가 악마학에 실은 내용이다. 고금을 가리지 않고 또 동서를 따지지 않고 마계의 소식을 전하는데 이만큼 세밀한 것도 없으리라.(16세기 유럽에는 악마학을 이끄는 자가 적지 않았다. 와이어 이외에도 이탈리아의 Pietro d'Apone나 잉글랜드의 Reginald Soct 등이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또 말하길 "악마는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다. 법률가가 되고 곤륜노가 되고 검은 말이 되고 승려가 되고 나귀가 되고 고양이가 되고 토끼고 되고 심지어는 마차 바퀴마저 될 수 있다." 마차 바퀴도 될 정도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밤에 사람을 현혹해 불 붙은 성으로 끌고 가려는 자동차 바퀴도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무서운 일이다. 경계해야만 한다.(5월 28일)
요재지이
요재지이가 전등신화와 함께 괴이를 이야기한 중국 소설로서 푸른 불빛 같은 절묘함을 이뤄낸 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터이다. 하지만 작가 포송령이 만주 조정을 곱게 여기지 않아 우귀사신을 통해 궁정 내부의 은밀함을 풍자한 사실을 일본 독자들이 간과하는 현실에는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제2권에 수록된 협녀도 실은 관인 연갱요의 여자가 옹정제를 암살하려 했다는 야사를 소재로 삼았다고 한다. 곤륜외사의 첫 시로 "어찌 동호만이 인륜의 귀감이랴!"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 또한 이러한 뒷내용을 슬쩍 풀어놓은 것이 아니곤 무엇이랴. 스페인에는 고야의 Los Caprichos가 있다. 중국에는 유선의 요재지이가 있다. 나란히 산정야귀를 빌려 난신적자를 쫓아내려 했다. 동서 한 쌍의 백옥이요 금궤에 소장하기 충분하리라.(5월 28일)
미인도
스페인에 미인이 있다. Dona Maria Theresa라고 한다. 젊은 나이에 뷜랑카 11대 후작 Don Jose' Alvalez de Toledo에게 시집을 갔다. 밝은 눈동자에 붉은 입술, 고운 피부. 여왕 마리아 루이자가 그 아름다움을 질투하여 독한다. 이 끝을 모르는 깊은 질투는 양귀비와 비견이 될까. 공작부인에게는 내연 남이 있었다. Francesco de Goya라고 한다. 고야는 그림으로 온 스페인에 이름을 떨친 자로 생전에 이따금 돈나 마리아 테레사를 그려주었다. 야사를 믿자면 Maja vestida와 Maja desnuda 두 그림은 사실 후작 부인의 국보와 같은 아름다움을 전하는 것이라 한다. 훗날 프랑스에 한 화가가 나온다. Edouard Manet라고 한다. 고야의 후작 부인의 그림을 얻어 광희를 금할 수 없었다. 곧장 이 그림을 본따 한 정의 봄과 같은 미인도를 만들었다. 마네는 인상파의 선구자였다. 그와 교유를 맺은 자는 당대의 재능인들 뿐이었다. 그 중에 한 시인도 있었다. Charles Baudelaire라고 한다. 마네가 후작 부인의 그림을 얻어 아끼기를 보물과 같이 했다고 한다. 천팔백육십육 년, 보들레르가 발광하여 파리의 집에서 목숨을 잃었을 때에도 벽에는 이 붉은 입술과 눈처럼 하얀 피부를 한 하늘 위 신선과 같은 미인도가 걸려 있었다. 별과 같은 눈동자에 추파를 드리운 채 '악의 꽃'을 쓴 시인의 임종을 보는 마리아. 이 또한 왕년 마드리드 궁전서 노란 얼굴의 난장이가 재롱을 떠는 꼴을 보는 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5월 29일)
매색봉향병
중국 남색을 파는 소년을 상공相公이라고 한다. 상공이란 말은 본래 상고像姑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요염한 모습이 마치 어린 여자아이 같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상공과 상고는 중국어로 같은 발음이다. 즉 끌어와 남창을 뜻하는 말로 바꾸었을 뿐이다. 중국의 거리서 색을 파는 여자를 야꿩이라 부른다. 이는 행인을 붙드는 모습이 마치 야꿩만 같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그런 사람들을 "밤매"라고 부른다. 사실상 같은 축에서 나온 말이다. 야꿩이란 말은 야꿩차란 말을 만드는데 이르렀다. 야꿩차란 무엇이랴. 베이징이나 상하이서 출몰하는 무허가 인력거를 뜻한다.(5월 30일)
쥬료요시, 잡지 "인간"을 위해 골동갱을 쓰기를 삼 회. 동서고금의 잡서를 인용해 현학의 기염을 토하는 게 마치 맥베스 속 요파의 냄비와 같다. 아는 자는 삼천 리 밖에서도 그 냄새를 피하고 우매한 자는 손가락 사이에 그 독을 묻힌다. 생각하기에 이는 이려구업이라 해야 마땅하리라. 나관중이 수호전을 써 세 시대에 걸친 바보들을 낳았다면 쥬료요시 또한 골동갱을 써 어떠한 명계의 벌을 받을지 모를 일이다. 묵살인가. 박멸인가. 혹은 토시의 소설집이 시장에서 단 한 권도 팔리지 않게 되는 일일까. 그렇다면 빠르게 펜을 던지고 술에 취해 홀로 부처 그림 앞에 앉아 도선의 한가함을 사랑해야 마땅하리라. 어제의 잘못을 후회하고 오늘 이를 안다. 어찌 주저하는가? 던져버리자 나의 골동갱. 오늘 만끽하여 별나단 걸 알면 다음 날 화장실에는 빛이 들리라. 허면 변 안에는 부처의 유골 있으리. 성대히 받들라.(5월 30일)
* * *
Pilgrim's Progress을 천로역정으로 번역한 건 청의 동치 8년(서력 1869년) 상하이 화초서관에서 출판한 한역판 이름을 답습한 것이다. 이 책에는 작중 등장인물이나 배경을 모조리 중국풍으로 그린 동판화 그림이 몇 장 수록되어 있다. 그 입착문도入窄門図나 혹은 입미궁도入美宮図는 나가사키 그림의 서양인에는 미치지 못하나 또 다른 종류의 풍운을 지니고 있다. 문장도 한문을 통해 서야을 다루니 읽기 시작하여 다 읽을 때가지 되려 묘한 감흥을 받은 기억이 있다. 특히 그 영시를 번역한 시라 보기는 어려운 것도 다른 정취가 존재하는 게 앞서 말한 그림과 같다. 예를들어 생명수 강의 시에 "路旁生命水清流길가의 생명수 푸르게 흐르네 天路行人喜暫留천로를 향하는 사람들 기뻐서 잠시 머무는가 百菓奇花供悦楽수많은 과일과 기이한 꽃에 기쁨과 즐거움이 함께 오는구나 吾儕幸得此埔遊다행히 나는 얻어도다 이 땅의 유희를" 같은 게 그렇다. 이런 종류의 흥미를 운운하는 건 누군가의 비웃음을 살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지옥의 오스카 와일드가 행왕좌와 함께한 것도 그리스어로 된 성서였음을.(1월 21일)
산바
둘셋이 모여 말하길 요즘 사람의 눈으로 옛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건 자연주의 이후로 문단서 가장 눈부신 경향이란다. 노인 하나가 옆에서 끼어들며 시키테이 산바의 대천세계 가쿠야 찾기는 어떠하나며 물었다. 두세 사람은 아무 말도 못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입을 다물 뿐이었다.(1월 27일)
오자키 코요
코요가 죽은지 이십 년. 그 '다정다한'이나 '카라마쿠라', '니닌뇨보' 등 지금 다시 읽어 보아도 별갑 목란 한 송이가 광채를 잃지 않은 듯하다. 사람이 죽어야 비로서 그 업이 나타난다는 건 정말로 이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에 앞에 적은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잘 계산되어 뚜렷한 상이 보이고 문체는 잘 정돈되었으며 변화무쌍하면서도 큰 흐름서 벗어나지 않는다. 필시 영원히 전해져야 할 이유다. 나는 항상 생각한다. 예술의 경지에 미완성이란 없다고. 코요 또한 그렇지 않을까.(2월 3일)
회음의 글
금병매나 육포단은 잠시 제쳐두고 내가 아는 중국 소설 중 회음을 권하는 걸 열거하자면 앵화천, 등심기승전, 치파자전, 모단기록, 여의군전, 도화암, 품화옥람, 의외연, 살자보, 화영기정전, 추세제일기서, 환희기관, 춘풍득의기록, 앵앙몽, 야유폭언, 창패흑막 등이 있다. 듣기로는 이미 바다를 건너 일본어로 번안된 것들이 있다 한다. 또 듣기로는 요즘 들어 이런 종류의 번안을 몰래 인쇄하여 파는 자가 있다고 한다. 만약 이처럼 일본어로 번역된 연정 소설을 읽고 싶은 자는 당대의 마경인 검세관들의 문을 두드려 그들이 소장한 발매금지본을 빌려보라.(2월 12일)
연극사
서양 연극을 연구한 책은 많이 나오고 있으나 그 시초로는 나가이 테츠의 각국연극사 한 권을 꼽아야 하리라. 이 책은 북과 나팔, 하프를 그린 동판화 표지 위에 Kakkoku Engekishi란 로마자 표기를 해두었다. 내용은 극장 및 기관 도구 등의 변천, 고금의 남녀 배우들의 기본 사항, 각국 희곡의 유래 등을 다루고 있는데 영국 연극을 가장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 하나를 소개하자면 "1576년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특별 연극 부흥을 위해 블랙프라이어스 사원의 불필요한 영지에서 극장을 세웠다. 이게 영국 정통 극장의 시조이다. (중략) 배우 중에는 윌리엄 셰익스피어란 사람이 있다. 당시엔 열두 살 아동이었는데 스트랫퍼드 학교에서 라틴 밑 그리스의 초학을 졸업했었다" 같이 웃음을 금치 못할 기사가 적지 않다. 메이지 17년 1월 출판. 저자 나가이 테츠가 경시청 경시속 소속인 것도 재미난 사실이다.(2월 14일)
쥬료요시
(다이쇼 9년)
'고전 번역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남의 부채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2.02.15 |
---|---|
가레노쇼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2.02.08 |
오리츠와 자식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2.01.23 |
오오쿠보 코슈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2.01.16 |
발타자르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역 (0) | 2022.01.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