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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호남의 부채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2.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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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동서 태어난 손일선쑨원 등을 제외하면 주목할만한 중국 혁명가는――황흥, 채악차이어, 송교인숭자오런 모두 호남후난서 태어났다. 이는 물론 증국번에게 감화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감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호남 사람의 드센 기질도 생각해야 한다. 나는 호남으로 여행 갔을 때 우연히 조금 소설과 같은 아래의 작은 사건과 만났다. 이 사건도 어쩌면 정열로 가득 찬 호난 백성의 면모를 보여준 걸지도 모르겠다…………

   * * * * *

 다이쇼 십 년 오 월 육 일 오후 네 시 경, 내가 타고 있던 겐코마루는 장사창사 다리에 이르렀다.
 나는 그 몇 분 전에 갑판 난간에 기댄 채로 서서히 좌현으로 다가오는 호남의 부성을 바라보았다. 높고 어두운 하늘의 산 앞에 하얀 벽이나 기와지붕을 겹겹이 쌓아 올린 장사는 예상 이상으로 볼품없었다. 특히 비좁고 갑갑한 부두 주위는 새로운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서양 가옥이나 어린 버들도 보이는 만큼 사실상 이이다 해안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당시 장강에 접한 대부분의 도시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으니 장사서도 물론 돼지 이외에 볼 게 없으리라 각오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볼품 없음은 역시나 내게 실망에 가까운 감정을 준 게 분명했다.
 겐코마루는 운명을 따르는 것처럼 천천히 다리로 다가갔다. 또 동시에 푸른 상강샹강의 물도 천천히 폭을 좁혀 갔다. 그러자 더럽고 칙칙한 중국인 하나가 그릇 하나를 든 채로 대뜸 내 눈앞에서 훌쩍 다리로 뛰어 넘어갔다. 그건 인간보다도 메뚜기에 가까운 빠른 동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멜대를 든 사람이 또 물을 뛰어넘었다. 이어서 둘, 다섯, 여덟――서서히 내 눈앞은 다리로 뛰어 넘어가는 무수한 중국인으로 가득 메워지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배는 어느 틈엔가 다시 붉은 벽돌로 지은 서양가옥이나 어린 버들 등이 줄지은 광경을 옆에서 우뚝 세워두고 있었다.
 나는 겨우 난간서 벗어나 같은 '회사'의 B 씨를 찾았다. 장사에 육 년이나 있었다는 B 씨는 오늘도 특별히 겐코마루에 마중을 와줄 예정이었다. 하지만 B 씨로 보이는 모습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뿐 아니라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건 죄 중국인 투성이였다. 그들은 서로를 밀면서 무어라 떠들고 있었다. 특히 한 노신사는 사다리를 내리자마자 돌아보더니 뒤에 있던 쿨리를 때리기도 했다. 이는 장강을 거슬러 올라온 내게는 별로 특별한 광경도 아니었다. 하지만 익숙해진 걸 장강에 감사하고 싶은 광경도 아니었다.
 나는 점점 짜증을 느껴 다시 한 번 난간에 기대어 역시나 인파가 오고 가는 부두 전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중요한 B 씨는 물론이요 일본인은 한 명도 찾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다리 너머서――가지가 뒤엉킨 어린 버들 아래서 한 중국 미인을 발견했다. 그녀는 하늘색 여름 옷의 가슴에 메달 같은 걸 걸친 참으로 아이 같아 보이는 여자였다. 내 눈은 혹은 그것만으로 그녀에게 끌린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높은 간판을 올려다 본 채로 붉은색 짙은 입가에 입술을 띄운 채로 누군가에게 신호라도 하듯이 반쯤 열린 부채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야."
 나는 놀라서 돌아보았다. 내 뒤에는 어느 틈엔가 회색 중국옷을 입은 중국인 하나가 얼굴에 애교를 머금은 채 서있었다. 나는 이 중국인이 누군지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곧 그의 얼굴서――특히 그의 얇은 눈썹서 옛친구 한 명을 떠올렸다.
 "너구나. 그렇지. 너 호남 출신이었지."
 "그래, 여기서 장사해."
 담영년은 나와 동기로 제일고등학교부터 도쿄대 의과로 간 재능 있는 유학생이었다.
 "오늘은 누구 마중 왔어?"
 "그래, 누구――누구일 거 같아?"
 "나는 아니잖아?"
 담은 잠깐 입을 꾸물거리더니 횻토코에 가까운 웃음을 지었다.
 "너 맞아. B 씨가 오륙 일 전부터 말라리아를 앓고 있어서."
 "그럼 B 씨가 부탁하셨나?"
 "부탁 안 해도 와보지."
 나는 그가 옛날부터 붙임성이 좋았던 걸 떠올렸다. 담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우리 중 누구에게도 나쁜 감정을 주지 않았다. 만약 우리 사이서 조금 안 좋은 평가가 돌았다면 그건 역시 같은 방을 쓴 키쿠치 칸의 말처럼 누구에게도 이렇다 할 나쁜 감정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네 신세 지는 건 미안한데. 실은 내가 숙소도 B 씨한테 맡겨 놔서………"
 "잘곳은 일본인 구락부에 말해뒀어. 보름이든 한 달이든 지장 없어."
 "한 달이나? 농담도. 나는 사흘만 지낼 수 있으면 돼."
 담은 놀란 것처럼 갑자기 애교 없는 표정이 되었다.
 "겨우 사흘 있다 가게?"
 "글쎄, 범죄자 참수라도 구경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내심 장사 사람 담영년이 얼굴을 찌푸리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한 번 붙임성 좋은 표정을 짓고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럼 일주일 전에 오지 그랬어. 저기 빈 공터 보이지――"
 벽돌 건물로 된 서양식 집의 앞――마침 뒤엉킨 어린 버들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 중국 미인은 어느 틈엔가 찾아 볼 수 없었다.
 "요전 번에 저기서 다섯 명 가량이 한 번에 목이 잘린 참이야. 왜, 저기 개가 걷는 곳에서………"
 "아까운걸."
 "참수만은 일본서는 못 보니까."
 담은 큰소리로 웃은 후 조금 진지해졌나 싶었더니 적당히 화제를 돌렸다.
 "그럼 슬슬 갈까? 인력거도 저기서 기다리고 있어."

   * * * * *

 나는 다다음 날인 십팔 일 오후, 담이 모처럼 권한 걸 따라 상강샹강을 둔 녹산사의 애만정 구경을 갔다.
 우리를 태운 모터보트는 재류 일본인이 "가운데 섬"이라 부르는 삼각주를 왼측에 둔 채 두 시 전후의 상강을 달렸다. 밝게 개인 오 월 날씨는 양 기슭의 풍경을 선명하게 했다. 우리 오른쪽에서 이어진 장사도 하얀벽이나 기와지붕이 빛나는 만큼 어제만큼 우울해 보이진 않았다. 하물며 귤나무가 무성하고 돌울타리가 긴 삼각주는 작게 자리한 서양 가옥을 들여다보거나 또 서양 가옥 사이서 망에 걸린 세탁물이 반짝이는 등 활력으로 넘쳐 있었다.
 담은 어린 선원에게 명령을 내려야 하는 만큼 보트의 앞쪽에 자리해 있었다. 하지만 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줄곧 나를 신경 써줬다.
 "저게 일본영사관이야………이 오페라 글래스를 써봐………그 오른쪽에 있는 건 일청기선회사고."
 나는 담배를 입에 문 채로 배 밖으로 한 손을 내린 채 이따금 내 손가락 끝에 닿는 상강의 물줄기를 즐기고 있었다. 담의 말은 단지 끊길 줄 모르는 소음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가리키는 대로 양쪽의 풍경에 눈을 주는 건 물론 내게도 불쾌한 일이 아니었다.
 "이 삼각주는 귤주라고도 해서………"
 "솔개가 울고 있네."
 "솔개?………응, 솔개도 잔뜩 있지. 왜, 언제인가 장경오쟝징야오와 담연계탄옌카이의 전쟁이 있었을 때 말야. 그때 장의 부하의 시체가 이 강으로 몇 개나 떠내려 온 거야. 그러자 솔개가 시체를 향해 두 마리고 세 마리고 내려와서………"
 담이 마침 그런 이야기를 할 적에 우리를 태운 모터 보트가 한 척의 모터 보트와 대여섯 간을 둔 채 엇갈렸다. 중국옷을 입은 청년 이외에 훌륭하게 꾸민 중국 미인을 둘셋 태운 보트였다. 나는 이러한 중국 미인보다 되려 그 보트가 거침 없이 강을 가르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담은 이야기를 하며 그들의 모습을 보자마자 거의 원수라도 만난 듯이 황급히 내게 오페라 글래스를 건넸다.
 "저 여자를 봐. 저 배 끝에 앉은 여자."
 나는 누가 재촉하면 한 층 더 뭔지 궁금해지는 고집을 타고 났다. 그뿐 아니라 보트가 남긴 물결은 이쪽 배를 쓸어내며 내 옷을 손목 단추까지 적시고 있었다. 
 "왜?"
 "왜면 어때. 저 여자 좀 봐."
 "미인이냐?"
 "그래, 미인이다 미인."
 그들을 태운 모터 보트는 어느 틈엔가 열 간 정도 떨어져 있었다. 나는 겨우 몸을 비틀어 오페라 글래스의 도수를 조절했다. 또 동시에 갑자기 상대편 보트가 뒤로 후진하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저 여자"는 둥근 풍경 안에서 옆얼굴을 보인 채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듯했다. 이따금 웃어 보이고 있다. 턱이 사각으로 뾰족한 그녀의 얼굴은 누가 봐도 크다는 것 이외에 별달리 아름답다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앞머리나 옅은 노란색 여름 옷이 강바람에 파도치는 건 멀리서 보아도 아름다운 게 분명했다.
 "보였냐?"
 "그래, 속눈썹까지 봤다. 근데 별로 미인은 아닌데?"
 나는 어딘가 의기양양한 담과 다시 한 번 얼굴을 마주했다.
 "저 여자가 뭐 어쨌다고."
 담은 말이 많은 평소와 달리 유유히 담배에 불을 붙이며 내게 엉뚱한 말을 되물었다.
 "내가 어제 그랬지――저 다리 앞 공터서 다섯 명의 목을 베었다고."
 "그야 기억하지."
 "그 동료의 두목은 황육일이라고 해서――아, 그 녀석도 목 베여 죽었는데――이게 또 오른손엔 소총을 들고 왼손엔 권총을 들어 한 번에 두 명을 죽였다는 호남에서도 이름이 자자한 악당이었는데………"
 담은 곧장 황육일이 평생동안 저지른 잔학한 짓을 설명했다. 그의 이야기는 대부분 신문기사에서 따온 듯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피냄새보다는 로맨틱한 색채로 풍만한 이야기였다. 황이 평생 동안 밀수업자에게 황노야라 불린 이야기. 또 상담상탄의 어떤 상인들에게 삼천 위안을 강탈한 이야기. 또 허벅지에 탄환을 맞은 변아칠을 업고서 노림담을 헤엄쳐 건넌 이야기. 또  악주웨저우의 어떤 산길서 열두 보병을 사살한 이야기――담은 거의 황육일을 숭배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그런 이야기를 계속했다.
 "듣자하니 그 녀석은 살인에 납치를 백십칠 건이나 저질렀다나 봐."
 그는 이따금 대화 사이사이에 그런 주석을 덧붙였다. 나도 물론 나 자신에게 어떠한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결코 토비土匪는 싫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 같이 별 차이 없는 무용담만 듣는 건 조금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 여자는 뭔데?"
 담은 그제야 히죽거리며 내심 내가 예상한 것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대답을 했다.
 "저 여자는 황의 정부였어."
 나는 그의 주문 대로 놀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키지 않는단 얼굴로 담배만 물고 있는 것도 미안했다.
 "흥, 토비도 풍류가 있는걸."
 "뭐 황 따위는 대단할 것도 없어. 전청 말년에 강도짓을 한 채란 녀석은 한 달 수입이 일만 위안도 넘었다니까. 이 녀석은 상하이 조계 바깥에 당당히 양옥집까지 세웠다니까. 아내는 물론 첩까지도………"
 "그럼 저 여자는 게이샤라도 되는 거야."
 "그래, 옥란이란 게이샤야. 저래 봬도 황이 살아 있을 적에는 제법 이름 좀 날렸지………」
 담은 무언가를 떠올리 듯이 잠시 입을 다문 채로 옅은 미소만을 띄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윽고 담배를 던지고는 진지하게 이렇게 권했다.
 "기슭가에 호남 공업 학교란 학교도 하나 있거든. 먼저 거기를 참관하지 않겠어?"
 "그래, 한 번 보지 뭐."
 나는 미적지근한 대답을 했다. 그건 지난 아침에 어떤 여학교를 참관 갔다 의외로 지독한 배일적 분위기에 불쾌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를 태운 보트는 내 생각 따위 아랑곳 않고 "카운데 섬" 주변서 여전히 맑게 개인 물 위를 똑바로 거슬러 올라 기슭으로 다가갔다………

   * * * * *

 나는 역시나 같은 날 밤, 어떤 기관 계단을 담과 함께 오르고 있었다.
 우리가 지난 2층방은 중앙에 자리한 테이블은 물론이요 의자도 타호도 장롱도 상하이나 한커우의 기관과 거의 차이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방 천장 구석에는 세금세공의 세장 하나가 유리창 옆에 걸려 있었다. 또 새장 안에는 다람쥐 두 마리가 아무 소리도 없이 안에 걸린 나무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그건 창문이나 문 아래에 깔린 붉은 천과 함께 보기 드문 물건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꺼림칙한 물건으로만 보였다.
 방에서 우리를 맞이한 건 살짝 통통한 보부鴇婦였다. 담은 그녀를 보자마자 무언가를 술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녀도 애교 있게 매끄럽게 그를 대응했다. 하지만 둘의 대화는 한 마디도 알아볼 수 없었다.(이는 물론 내가 중국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래 장사의 말은 베이징말에 능통한 귀로도 간단히 알아들을 수 없는 듯하다.)
 담은 보부와 이야기한 후 커다란 홍목 테이블에 나와 함께 앉았다. 그리고 보부가 가져온 활판 국표 위에 게이샤의 이름을 적었다. 장샹아, 왕교운, 함방, 취옥루, 애원――여행자인 내게는 하나같이 중국 소설의 여주인공처럼 느껴지는 이름들이었다.
 "옥란도 부를까?"
 나는 대답하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보부가 불을 붙여준 담배 하나를 물고 있었다. 하지만 담은 테이블 너머로 내 얼굴을 보고는 붓을 휘두르는 법은 없었다.
 그때 활달히 들어 온 건 얇은 금테 안경을 쓰고 혈색이 좋은 둥근 얼굴의 게이샤였다. 그녀는 하얀 여름옷에 다이아몬드를 수없이 빛내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테니스나 수영 선수로 보이는 체격을 갖추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미추나 혐오를 느끼기보다도 묘하게 통렬한 모순을 느꼈다. 그녀는 이 방의 분위기와――특히 새장 안 다람쥐와 어울리지 않는 존재임에 분명했다.
 그녀는 작게 목례를 하고는 춤추듯이 담의 옆으로 걸어갔다. 심지어 그의 옆에 앉고는 한 손을 그의 무릎 위에 얹고는 막힘 없이 무어라 떠들기 시작했다. 담도――담은 물론 의기양양히 是了시이라是了시이라 했다.
 "얘는 이 집에 있는 게이샤인데 임대교라고 해."
 나는 담의 말을 듣고 저절로 그가 장사서도 몇 안 되는 부잣집 자제였던 걸 떠올렸다.
 그로부터 십 분 가량 지난 후, 우리는 역시나 마주 앉은 채로 버섯이니 닭이니 야채가 많은 사천요리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임대교 외에도 수많은 게이샤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그들 뒤에는 사냥 모자를 쓴 남자도 대다섯 명 정도 호궁을 연주하였다. 게이샤는 이따금 앚아서 마치 호궁 소리에 이끌리 듯이 높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게도 전혀 재미 없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경조의 당마나 서피조의 분강담보다 내 왼쪽에 앉은 게이샤에 더 많은 관심을 느꼈다.
 내 왼쪽에 앉은 내가 어제 겐코마루 위에서 잠깐 본 중국 미인이었다. 그녀는 하늘색 여름옷 가슴에 여전히 메달을 걸고 있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설령 병적인 약함은 있어도 의외로 음침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의 옆얼굴을 보면서 어느 틈엔가 그늘서 자란 자그마한 구근 따위를 생각했다.
 "네 옆에 앉은 건――"
 담은 노주에 붉어진 얼굴에 사람 좋은 웃음을 지은 채로 새우를 잔뜩 쌓은 접시 너머로 대뜸 내게 말했다.
 "그 애가 함방이야."
 나는 담의 얼굴을 보자 어째서인지 어제 그에게 품은 친근함이 가셔버렸다.
 "얘가 목소리가 진짜 좋아. R 같은 건 거의 프랑스인 같아."
 "응, 그 애는 베이징 출신이거든."
 우리의 화제가 된 건 함방 자신도 아는 듯했다. 그녀는 내 얼굴에 이따금 재빠른 눈초리를 주면서 곧장 담과 문답을 했다. 하지만 멍텅구리나 다를 바 없는 나로선 이때도 역시 여느 때처럼 두 사람의 얼굴색을 번갈아 볼 수밖에 없었다.
 "네가 언제 장사에 왔나 묻더라고. 그제 왔다고 대답하자니 얘도 그제 누구를 맞이하러 부두에 갔다네."
 담은 그렇게 통역한 후 다시 한 번 함방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녀는 작은 웃음을 머금은 채로 아이처럼 고개를 저었다.
 "흥, 도통 자백을 안 하네. 누굴 데리러 간 건지 묻는데……"
 그러자 임대교가 대뜸 가지고 있던 담배로 함방을 가리키더니 비웃듯이 무어라 말했다. 함방은 확실히 놀란 듯하여 대뜸 내 무릎을 누르려 했다. 하지만 겨우 미소를 짓더니 또 한 마디 대답을 했다. 나는 물론 이 연극에――혹은 이 연극 뒤에 자리한 의외로 깊은 그들의 적의에 호기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뭐라는 거야?"
 "저 얘는 대단한 게 아니라 어머니를 데리러 갔다고 하네. 뭐, 지금 여기 있는 선생님은 XXX라는 장사의 배우를 데리러 간다고 말하는 참이고."(나는 아쉽게도 그 이름만은 노트에 적을 수 없었다.)
 "어머니?"
 "의붓어머니를 말하는 거야. 즉 그 사람은 옥란이 있는 집의 보부란 게 되지."
 담은 내 물음을 정리하고는 노주를 한 잔 들이키며 불쑥 끝없이 떠들기 시작했다. 내게는 這箇치코 這箇치코 이외엔 한 마디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게이샤나 보부가 열심히 듣는 걸 보면 무어라 재미난 이야기인 듯했다. 그뿐 아니라 이따금 내게 그들의 눈이 향하는 걸 보면 적어도 나하고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 듯했다. 나는 얼핏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문 것처럼 보였겠지만 속으론 점점 짜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야! 무슨 이야기하는 거야?"
 "뭐, 오늘 강에서 옥란과 만났단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어. 그리고……"
 담은 윗입술을 핥으며 전보다 더 기분 좋게 덧붙였다.
 "그리고 네가 참수를 보고 싶다고 하던 참이었지."
 "뭐야 재미없게."
 나는 이런 설명을 들어도 아직까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옥란은 물론이요 그녀의 친구인 함방에도 별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함방의 얼굴을 보았을 때, 이지적으로는 그녀의 심정을 꽤나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귀걸이를 흔들며 테이블 구석에 그늘진 무릎 위에서 손수건을 접었다 풀었다 했다.
 "그럼 이것도 재미없어?"
 담은 뒤에 있던 보부에게 작은 짐 하나를 받아서 펼쳐 보았다. 그 종이 안에는 초콜릿색으로 말라진 전병 크기의 묘한 게 한 장 담겨 있었다.
 "이게 뭔데?"
 "이거? 이건 그냥 비스킷이야………왜, 아까 황육일 이야기를 했잖아? 그 황의 목피를 넣어 만든 거지. 이거야말로 일본서는 못 볼 물건이야."
 "이런 걸 어따 쓰는데?"
 "어따 쓰긴? 그냥 먹는 거지. 이 주변선 이걸 먹으면 병을 앓지 않고 재해를 만나지 않는다 여기지."
 담은 활짝 웃으며 마침 그때 테이블을 벗어난 두세 게이샤에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함방이 일어서는 걸 보자 거의 연민을 구하듯이 웃으며 무어라 말하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끝내는 한 손을 들어 정면의 나를 가리켰다. 함방은 잠시 주저한 후 다시 한 번 웃고는 테이블 앞에 앉았다. 나는 굉장히 귀엽기에 주위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살며시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런 미신이야말로 굴욕이지. 나로선 의사란 직업상 꽤나 성가시지 싶지만………"
 "그야 참수가 있으니 말이야. 일본서도 뇌수를 달여 먹고 말야."
 "설마."
 "설마라니. 나도 먹은 적 있어. 물론 어릴 때 일이지만……"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옥란이 온 걸 알아차렸다. 그녀는 보부와 이야기한 후 함방 옆에 앉았다.
 담은 옥란이 온 걸 보고 또 나를 제쳐두고 그녀에게 애교를 부렸다. 그녀는 바깥서 보는 것보다는 제법 아름다운 게 분명했다. 적어도 그녀가 웃을 때마다 에나멜 같은 이빨이 빛나는 건 훌륭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이빨서 저절로 다람쥐를 떠올렸다. 다람쥐는 지금도 여전히 붉은 커튼 자락을 깐 유리창 근처서 새장 안을 매끄럽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럼 이것도 하나 먹어보지?"
 담은 비스킷을 쪼개보였다. 단면 또한 같은 색이었다.
 "헛소리 마."
 나는 물론 고개를 저었다. 담은 큰소리로 웃고서 이번에는 옆의 임대교에게 비스킷 한 쪽을 권했다. 임대교는 조금 얼굴을 찌푸리더니 비스듬하게 그의 손을 밀어냈다. 그는 같은 농담을 몇몇 게이샤에게 반복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어느 틈엔가 역시나 붙임성 좋은 얼굴을 한 채 꼼짝도 하지 않는 옥란에게 갈색 조각을 들이 밀었다.
 나는 잠시 그 비스킷 냄새만 맡아보고 싶단 유혹을 느꼈다.
 "야, 나도 좀 줘봐."
 "그래, 여기에 아직 반 있어."
 담은 거의 왼손잡이인 것처럼 남은 한 쪽을 던져 건네주었다. 나는 작은 접시나 젓가락 사이서 그 조각을 주워 올렸다. 하지만 모처럼 주워 올리니 불쑥 냄새를 맡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가만히 테이블 아래로 떨어트렸다.
 그러자 옥란은 담의 얼굴을 바라보며 두세 마디 대답을 했다. 그리고 비스킷을 받아 든 후 그녀를 지켜보는 주위를 상대로 재빠르게 무어라 말했다.
 "어때, 통역해줄까?"
 담은 테이블에 턱을 괴고는 슬슬 꼬이기 시작한 혀로 내게 말했다.
 "그래, 해줘봐."
 "알았어? 축역이야. 저는 기꺼이 제가 사랑하는………황노야의 피를 맛봅니다………"
 나는 몸이 떨리는 걸 느꼈다. 그건 내 무릎을 잡은 함방의 손이 떨리는 것이었다.
 "여러분도 부디 저처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옥란은 담이 말하는 도중에 어느 틈엔가 아름다운 이빨로 비스킷 한 쪽을 씹기 시작했다………

   * * * * *

 나는 삼 박의 예정을 따라 오 월 십구 일 오후 다섯 시 경 전과 같은 겐코마루의 갑판 난간에 기대어 있었다. 하얀벽이나 기와지붕을 쌓아 올린 장사는 내게는 참 꺼림칙했다. 그건 서서히 다가오는 저녁색의 영향임이 분명했다. 나는 담배를 문 채로 몇 번이나 그 애교성 좋은 담영년의 얼굴을 떠올렸다. 하지만 담은 무슨 이유인지 나를 배웅하진 않았다.
 겐코마루가 장사를 뜬 건 일곱 시인가 일곱 시 반이었다. 나는 식사를 마친 후 어두컴컴한 선실 전등 아래서 내 체류비를 계산했다. 내 눈앞에는 부채 하나가 두 척이 안 되는 책상 밖에 복숭앗빛 날개를 뻗고 있었다. 이 부채는 내가 여기 오기 전에 누군가가 두고 간 것이었다. 나는 연필을 움직이며 또 담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가 옥란을 괴롭힌 이유는 나도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체류비는――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일본 돈으로 환산하면 딱 십이 엔 오십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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