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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110

은하철도의 밤 - 미야자와 겐지 1. 오후의 수업 "그럼 여러분은 이런 식으로 강이나 젖의 줄기로 불리는 이 희미하고 하얀 게 실제로는 무엇인지 알고 계시나요?" 선생님은 칠판에 걸어 둔 커다란 별자리판을 위에서 아래로 하얗게 물들은 은하대 같은 곳을 가리키며 모두에게 물었습니다. 캄파넬라가 손을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네다섯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조반니도 손을 들으려다 황급히 거두었습니다. 선생님이 가리킨 것이 전부 별이라는 건 언젠가 잡지에서 읽었습니다만, 요즘 들어 교실에서도 매일 같이 자는 통에 책을 읽을 여유도, 읽을 책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 탓인지 어쩐지 어떤 것이나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걸 놓치지 않았습니다. "조반니는 뭔지 알고 있지?" 조반니는 기세 좋게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막상 일어.. 2021. 2. 26.
거미줄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어느 날의 일입니다. 석가모니께서는 극락의 연못을 혼자 어슬렁어슬렁 걷고 계셨습니다. 못에 핀 연꽃은 모두 옥구슬처럼 하얬고, 그 한가운데에 있는 금색의 꽃술에서는 말로는 다 못 할 좋은 향기가 끊임없이 퍼져 주위를 가득 매웠습니다. 극락은 마침 아침이었던 것입니다. 이윽고 석가모니께서는 그 연못가에 서셔서는 수면을 뒤덮은 연꽃잎 사이로 아래쪽을 내려다보셨습니다. 극락의 연못 아래에는 마침 지옥의 밑바닥이 있어, 수정처럼 투명하게 비치는 수면을 통해 삼도천이나 바늘산의 풍경이 마치 망원경처럼 또렷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지옥 밑바닥에서 칸다타라는 남자가 다른 죄인들과 함께 꿈틀거리는 것이 석가모니의 눈에 들었습니다. 이 칸다타라는 남자는 사람을 죽이고 집에 불을 지르는 등 갖은 나쁜 짓을 하여 .. 2021. 2. 26.
코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이케노오에서 젠치 나이구의 코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길이는 5, 6척이이요, 윗 입술에서 턱 아래까지 뻗었다. 뿌리부터 끝까지 같은 두께로 굵었다. 말하자면 얇고 긴 소시지 따위를 얼굴 한가운데 데롱데롱 걸어둔 꼴이다. 쉰을 넘은 나이구는 수도승일 적부터 내동장공봉 자리에 오른 지금까지 내심 이 코로 고심을 해왔다. 물론 겉으로는 그리 신경 쓰지 않는 체를 해왔다. 본래 내세의 정토에 임해야 할 승려가 코를 걱정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탓만은 아니었다. 되려 자신이 코를 신경 쓴단 사실이 남에게 알려지는 게 싫었다. 나이구는 일상 대화 속에서 코의 이야기가 오가는 걸 무엇보다도 두려워 했다. 나이구가 코를 불편해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하나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코가 길어 불편했던 것이다... 2021. 2. 26.
라쇼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어느 저녁 날의 일이다. 한 하인 하나가 라쇼몬 아래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넓은 문 아래에는 남자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곳곳에 도장이 벗겨진 커다란 기둥에 귀뚜라미 한 마리가 들러붙어 있었다. 라쇼몬이 스자쿠오오지에 자리한 이상은 이치메카사나 모미에보시를 쓴 사람들이 둘셋 정도는 비를 피하고 있을 법도 하다. 그렇 건만 남자 말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어째서일까. 교토는 요 2, 3년 동안 지진, 태풍, 화재, 기근 같은 재해가 차례로 벌어졌다. 그런 마당이니 교토의 쇠퇴가 심상찮을 수밖에 없다. 옛 기록에 따르면 불상이나 불구를 박살 내 붉게 칠하거나 금은 도색이 된 나무를 거리에 쌓아 땔감으로 팔았다 할 지경이다. 교토가 그 모양이니 라쇼몬의 수리를 신경 쓸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황.. 2021. 2. 26.
영웅의 그릇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항우란 남자는 영웅의 그릇이 아니지요." 한나라 대장 여마통은 안 그래도 긴 얼굴을 한 층 더 길게 늘리고는 얼마 없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의 얼굴 주위에는 열 개의 얼굴이 중앙에 놓인 등불의 빛을 받아 밤의 막사 안에 떠올라 있다. 얼굴에 하나같이 웃음이 떠오른 건 서초 패왕의 목을 따낸 오늘의 승전이 주는 기쁨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런가?" 코가 높고 눈빛이 날카로운 얼굴 하나가 살짝 비꼬는 웃음을 머금은 채 여마통의 미간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여마통은 어째서인지 당황한 듯했다. "그야 강하기는 하지요. 도산 우왕묘에 있다는 돌 가마솥마저 찌그러트렸다니까요. 오늘 벌어진 전투만 해도 그렇죠. 저는 한때는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좌가 죽고 왕황이 죽었습니다. 그.. 2021. 2. 26.
악마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바테렌 우르간의 눈에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 하는 것까지 보였다고 한다. 특히 인간을 유혹하러 오는 지옥의 악마 따위는 고스란히 형태가 보였다 전해진다. ――우르간의 푸른 눈동자를 본 자라면 누구나 그런 말을 믿었다고 한다. 적어도 남만사의 데우스 여래를 예배하는 봉교인 사이에선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로 통했다. 고본사에 전해지기를 우르간은 오다 노부나가의 앞에서 자신이 교토에서 본 악마의 모습을 말했다고 한다. 인간의 얼굴과 박쥐 날개, 산양의 다리를 지닌 기묘한 작은 동물이었다. 우르간은 이 악마가 어느 때는 탑의 구륜 위에서 손뼉을 치며 춤추고, 어느 때는 태양빛을 두려워해 대문 지붕 아래에서 몸을 움츠리고 겁에 떠는 모습을 이따금 보았다. 아니, 그뿐일까. 어느 때는 산속 법사의 등에 매달리고, 어.. 2021.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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