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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악마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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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테렌 우르간의 눈에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 하는 것까지 보였다고 한다. 특히 인간을 유혹하러 오는 지옥의 악마 따위는 고스란히 형태가 보였다 전해진다. ――우르간의 푸른 눈동자를 본 자라면 누구나 그런 말을 믿었다고 한다. 적어도 남만사의 데우스 여래를 예배하는 봉교인 사이에선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로 통했다.
 고본사에 전해지기를 우르간은 오다 노부나가의 앞에서 자신이 교토에서 본 악마의 모습을 말했다고 한다. 인간의 얼굴과 박쥐 날개, 산양의 다리를 지닌 기묘한 작은 동물이었다. 우르간은 이 악마가 어느 때는 탑의 구륜 위에서 손뼉을 치며 춤추고, 어느 때는 태양빛을 두려워해 대문 지붕 아래에서 몸을 움츠리고 겁에 떠는 모습을 이따금 보았다. 아니, 그뿐일까. 어느 때는 산속 법사의 등에 매달리고, 어느 때는 시녀의 머리에 매달려 있는 걸 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악마 중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건 한 아가씨의 가마 위에 안방 다리를 하고 앉았다는 녀석이리라. 고사본 작가는 이 악마 이야기를 우르간의 비유라 해석했다. ――어느 날, 노부나가는 그 아가씨에게 끌려 자신의 손에 넣으려 했다. 하지만 아가씨도 아가씨의 양친도 노부나가의 바람을 내켜 하지 않았다. 때문에 우르간은 아가씨를 위해 악마를 빗대어 노부나가의 폭거를 말렸다고 전해진다. 이런 해석의 사실 여부는 훗날에 이른 지금 와서는 어느 게 진실인지 간단히 정할 수 없다. 동시에 우리에게는 되려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 문제기도 했다.
 우르간은 어느 날 저녁 남만사 문 앞에서 아가씨의 가마 위에 한 악마가 앉아 있는 걸 보았다. 하지만 이 악마는 다른 악마와 달리 보석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지녔다. 심지어 팔짱 낀 두 팔이나, 축 처진 얼굴이나 마치 무언가를 깊게 고민하는 듯했다.
 우르간은 아가씨의 몸을 걱정했다. 부모와 함께 열성적인 천주교 신자인 아가씨가 악마한테 매료 당했다니 평범한 일이 아니지 싶었다. 때문에 이 반려천은 가마 옆으로 다가가서는 금세 성스러운 십자가의 힘으로 어려움 없이 악마를 붙잡았다. 그렇게 소매를 붙잡고 남만사의 내진으로 끌고 왔다.
 내진에는 예수의 사진 앞에 불이 붙은 촛대가 놓여 있었다. 우르간은 그 앞에 악마를 앉혀 왜 아가씨의 가마 위에 올라탔는지 엄중히 물었다.
 "저는 그 아가씨를 타락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타락시키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 청렴한 혼을 보면 왜 지옥의 불로 더럽히고 싶어 하는 걸까요. 저는 그 혼을 더더욱 청렴하게, 더럽히지 않게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끝내는 타락시키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이 두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저는 그 가마 위에서 저희의 운명을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당신의 그림자가 보이기도 전에 지옥의 밑바닥으로 모습을 감추어 이런 우울한 꼴을 볼 일은 없었겠지요. 저희는 언제나 그렇습니다. 타락시키고 싶지 않을 수록 되려 타락시키고 싶어집니다. 이런 이상한 슬픔이 달리 또 있을까요. 저는 이 슬픔을 맛볼 때마다 과거에 본 천국의 밝은 빛과 지금 보는 지옥의 어둠이 제 작은 가슴속에서 하나가 되는 것만 같습니다. 부디 그런 저를 안타까워해주십시오. 저는 쓸쓸해 도리가 없습니다."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악마는 그렇게 말하고는 눈물을 흘렸다……
 고사본 전설은 이 악마의 행방을 더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우리에게 무슨 상관일까. 우리는 이걸 읽으면서 이렇게 소리치고 싶어지는 감정을 느끼기만 하면 족했다……
 우르간이여. 악마와 함께 우리도 연민해다오. 우리 또한 같은 슬픔을 지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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