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제일 좋아한 애독서는 '서유기'였다. 이건 지금도 내 애독서이다. 이만한 걸작 비유담은 서양에선 하나도 찾아 볼 수 없으리라. 명성 높은 버니언이 쓴 '천로역정'도 이 '서유기'는 이길 수 없다. 또 '수호전'도 애독서 중 하나이다. 이 또한 지금도 애독하고 있다. 한때는 '수호전'에 나온 108 호걸의 이름을 모조리 암기한 적도 있다. 그때도 오시카와 순로의 모험소설보다 '수호전'이나 '서유기' 쪽이 훨씬 더 재밌었다.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도쿠토미 로카 씨의 '자연과 인생'이나 타카야마 조규의 '평가잡감', 코지마 우스이의 '일본산수론'을 애독했다. 동시에 나츠메 씨의 '고양이'나 이즈미 쿄카 씨의 '풍류선', 사이토 료쿠 씨의 '아라레 사케'를 애독했다. 때문에 남 말 할 수는 없었다. 내게도 '문장 클럽'의 '청년문토록'에 실릴만한 '톨스토이, 츠보우치 시코, 오오마치 케이게츠'를 읽는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많은 책을 읽었지만 이렇다 애독서라 할만한 건 없었다. 굳이 말해보자면 오스카 와일드나 테오필 고티에 같은 현란한 소설이 좋았다. 내가 가진 기질 탓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이유는 일본의 자연주의적 소설에 가진 반동 때문이지 싶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전후로 어떻게 된 것인지 취미나 세상을 바라보는 견해가 크게 달라져 방금 말한 와일드나 고티에 같은 작가가 굉장히 싫어졌다. 아우구스트 스트린드 베리에 빠진 게 이쯤이었다. 이때 내 심정을 말해보자면 미켈란제로 같은 힘을 지니지 못 한 예술은 모두 부스러기처럼만 느껴졌다. 이건 당시 읽은 '장 크리스토프'의 영향도 있었지 싶다.
그런 생각이 대학 졸업 후까지도 이어졌지만 서서히 불타는 듯한 힘은 사라지고 1년 전부터 조용한 힘을 가진 서적에 가장 끌리게 되었다. 단지 조용하다 해도 힘 없이 조용하기만 한 것엔 별로 관심이 없다. 스탕달이나 메리메나 일본 쪽에선 이하라 사이카쿠의 소설은 이런 점에서 지금의 내게 굉장히 즐거우며 또 도움도 되는 책이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얼마 전 '장 크리스토프'를 꺼내 읽어 보았는데 옛날만큼의 감흥은 들지 않았다. 그 시절 책은 다 안 되는 걸까 싶었지만 '안나 카레니나'를 꺼내 두세 장 읽어 보았더니 이건 옛날 것임에도 고맙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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