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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소설 작법 10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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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설은 갖은 문예 중에서 가장 비예술적이란 걸 알아야 한다. 문예 중의 문예는 시뿐이다. 즉 소설은 소설 속 시 덕에 문예 중 하나로 취급될 뿐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역사서나 전기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2. 소설가는 시인인 이외에 역사가 내지는 전기작가기도 하다. 따라서 인생(한 시대의 나라)과 마주해야 한다. 무라사키시키부부터 이하라 사이카쿠에 이르는 일본 소설가의 작품은 이 사실을 증명해준다.
 3. 시인은 항상 자신의 내면을 누군가를 향해 호소해야 한다.(여자를 꾀기 위해 연가를 짓는 걸 보라.) 소설가는 시인인 이상으로 역사가이자 전기 작가이기에, 전기 중 하나인 자서전 작가 또한 소설가 자신의 내부에 존재해야 한다. 때문에 소설가는 일반인에 비해 스스로의 암담한 인생과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건 소설가 속 시인은 일반적으로 행동력이 빈곤하기 때문이다. 만약 소설가 속 시인이 역사가 내지 전기작가보다도 힘이 강하다면 그의 일생은 세상으로 나서 비참함을 면하리라. 애드거 앨런 포가 좋은 사례이다. (나폴레옹이나 레닌이 시인이었다면 불세출의 소설가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4. 소설가의 재능은 이전에 열거한 3조를 따라 시인적 재능, 역사가적 내지 전기작가적 재능, 처세적 재능의 세 가지로 귀착된다. 이 셋을 두루 갖추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어렵지 않다고 하는 자는 범재이다.) 소설가란 면허도 없이 자동차로 길을 달리는 것과 같다. 평생의 평온함과 무사함은 기대해서는 안 된다.
 5. 이미 평생의 평온과 무사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체력과 금전과 단신입명(즉 보헤미아니즘)에 의지해야 한다. 단 어느 쪽도 효과가 적다는 걸 각오해야 한다. 비교적 평화로운 일생을 원한다면 애초에 소설가가 되지 말아야 한다. 비교적 평화로운 일생을 보내는 소설가는 항상 자신들의 전기의 세부가 또렷하지 못 한 소설가가 되리란 걸 기억해야 한다.
 6. 그럼에도 현대에서 비교적 평화로운 일생을 보내고 싶다면, 소설가는 어떤 재능보다 처세적 재능을 단련해야 한다. 단지 그게 견고하고 독창적인 작품을 남기는 것과 같은 뜻이 되지는 않는다.(반대 또한 마찬가지다.) 처세적 재능이란 뛰어난 자는 운명을 지배하고(단 지배해내리란 보장은 없다) 그렇지 못 한 자는 어떠한 바보를 정성스레 다루는 것이리라.
 7. 문예는 문장에 표현을 맡기는 예술이다. 따라서 문장 단련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만약 하나의 말이 가진 아름다움에 황홀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소설가의 자격에 크고 작은 결점이 있으리라 각오해야 한다. 사이가쿠가 '오란도 사이카쿠'의 이름을 얻은 것 또한, 비단 당시 소설상을 혁신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하이쿠를 통해 말의 아름다움을 알았기 때문이다.
 8. 한 시대, 한 나라의 소설은 과거부터 이어진 수많은 약속에 기반을 두고 있다.(이것은 역사의 결정에 따른다.) 소설가란 이 약속을 따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역사를 따르는 이익은 하나, 이전 시대 사람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자신의 소설을 만들 수 있다는 점. 둘, 진지한 체 거드름 피우는 문단의 개들이 짖을 일이 없다는 점이다. 단 그게 견고하고 독창적인 작품을 남긴다는 뜻은 아니다.(반대 또한 마찬가지다.) 천재 중에는 그러한 약속을 걷어차고 유린하는 자도 많다.(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유린한다는 보증은 없다.) 때문에 그들은 다소 천명, 즉 문예의 사회적 진보(혹은 변화) 바깥을 달리기에 물 흐르는 것처럼은 되지 않는다. 문예적 태양계 바깥에 자리한 일개 유성이 된다. 때문에 당대에 이해받지 못 하는 건 물론이요, 후대에도 알아주는 사람을 얻어야 알려지게 된다.(이건 비단 소설만이 아니라 갖은 문예에도 통용된다.)
 9. 소설가란 항상 철학적, 자연과학적, 경제 과학적 사상에 반응하는 걸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사상 내지 이론도 대다수 인간의 일생을 지배하지는 못 한다. 따라서 사상에 반응할 적에는(적어도 의식적으로) 인간의 일생――즉 인생에 걸쳐 불편해지리란 걸 알아야 한다.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그리는 걸 사생寫生이라고 한다. 단 여기서 "있는 그대로"란 "자신이 보는 있는 그대로"이다. "빌려 온 걸 있는 그대로"가 아니다.

 10. 소설 작법에 황금률이란 없다. 이 "소설 작법 10조" 또한 물론 황금율이 되지 못 한다. 결국 소설가가 될 사람은 되고 되지 못 할 사람은 되지 못 한다.
 덧붙임. 나는 매사에 회의주의자이다. 단 아무리 회의주의자가 되려 해도 시 앞에서는 아직 회의주의자가 되지 못 한 걸 자백한다. 동시에 시 앞에서도 항상 회의주의자이려 노력한다는 걸 자백한다. (다이쇼 15년[각주:1] 5월 4일.)

 

 

 

  1. 1926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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