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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110

한 무명 작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7, 8년 전의 일입니다. 카가였던가요 노토였던가요. 북쪽 지방의 동호인 잡지였습니다. 이제는 잡지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헤이케이모노가타리를 주제로 삼아 적은 소설이 게재되어 있었습니다. 그 작가는 아마 청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소설은 세 화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하나는 헤이케이모노가타리의 작가가 오오하라 고코우를 찾아 글이 조금도 진행되지 않아 곤란해하던 차에 갑자기 영감을 얻어――용마루가 무너지면 향을 피우고 문이 떨어지면 달빛을 올려다보네――하는 부분을 적는 내용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헤이케이모노가타리의 주역자의 이야기로, 주역자가 지금 인용한――용마루가……부분에서 출처를 조사하고 생각하지만 도저히 알지 못 해 나는 학문이 부족하다, 헤이케이모노가타리에 주역을 달만 한 학문이 부족하다.. 2021. 2. 25.
나는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누구라도 나처럼 할 수 있는가?――쥘 르나르 나는 굴욕을 받으면 어째서인지 바로 불쾌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래저래 한 시간 정도 보내면 점점 불쾌해지고는 한다. × 나는 로댕의 우골리노 백작을 보았을 때――혹은 우골리노 백작의 사진을 보았을 때 바로 남색을 떠올렸다. × 나는 수목을 바라볼 때, 우리 인간처럼 앞뒤가 존재할 거란 생각이 든다. × 나는 이따금 폭군이 되어 수많은 남녀를 사자나 호랑이 먹이로 주고 싶단 생각을 한다. 하지만 퍼스펜 안에 떨어진 피투성이 거즈를 보기만 해도 육체적으로 불쾌해지고 만다. × 나는 이따금 타인이 죽기를 바랄 때가 있다. 또 죽었으면 하는 사람 중에 우리 부모님마저 들어갈 때가 있다. × 나는 어떤 양심도――예술적 양심마저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신경은 지니고.. 2021. 2. 25.
도심에서 혹은 1916년의 도쿄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1 바람에 나부끼는 성냥불만큼 꺼림칙하면서도 아름다운 푸른색은 없다. 2 왜 도심을 사랑하는가?――과거의 많은 여자를 사랑하듯이. 3 눈내린 공원의 마른 잡초는 무엇보다도 설탕 과자와 똑 닮았다. 4 내게 중세기를 떠올리게 하는 건 거친 붉은 벽돌로 된 감옥이다. 만약 간수만 없었다면 말에 올라 탄 잔 다르크가 뛰쳐 나와도 놀라지 않을 거 같다. 5 어떤 여자 종업원의 말.――싫다. 오늘 밤은 나이포크야. 요컨대 나이프나 포크를 씻는 일을 말한다. 6 가로수의 대다수는 버즘나무다. 상수리나무, 단풍나무는 극히 적다. 물론 파출소 순사는 이 나무의 고전적 취미를 알지 못 하리라. 7 아가씨에 가까운 게이샤 한 명이 내 다섯 걸음 앞에 멈추고는 대뜸 손을 들어 인사했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뒤를 돌.. 2021. 2. 25.
카루이자와에서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검은 말에 풍경이 떠올라 있다. × 아침 빵을 패랭이꽃과 같이 먹는다. × 이 한 무리의 천사들은 측음기의 레코드를 날개로 삼고 있다. × 마을 외각에 밤나무 한 그루. 그 아래에 잉크가 부려져 있다. × 푸른 산을 긁어 봐라. 비누가 몇 개나 나올 테니. × 영자신문에는 호박을 싸라. × 누군가가 저 호텔에 꿀을 발라두었다. × M부인――혀 위에 나비가 잠들어 있다. × F씨――이마의 머릿결이 듬성듬성하다. × O씨――그 턱수염은 타조 날개 같다. × 시인 SM의 말―까끄라기 벼는 껍질이네. × 어떤 목사의 얼굴――배꼽! × 레이스나 냅킨 안으로 미끌어지는 길. × 우스이 산 위의 달――달에도 살짝 이끼가 나있다. × H 노부인의 죽음――안개는 프랑스 유령과 닮았다. × 말파리는 수성에도 무리지어 갔다.. 2021. 2. 25.
창작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보고 소설을 쓰라는 건가. 쓸 수 있다면 진작 썼겠지. 하지만 쓸 수 없어. 유감스럽게도 일에 쫓겨 펜을 들 새가 없거든. 그래서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그 사람이 그걸 소설로 쓰지. 내가 이렇게 소재를 제공한 소설만 해도 열에서 스물은 될 거야. 물론 유명한 작가의 작품으로 말야. 다만 네게 주의해주고 싶은 건 내가 제공하는 소재가 대부분은 내 창작이란 사실이지. 물론 이건 이제까지 남한테 말한 적이 없어. 그렇게 말하면 내 이야기를 듣고 소설로 만들 녀석이 없을 테니 말이야. 나는 언제나 소설 다운 사실을 상상으로 만들어내, 그걸 내 친구 소설가들에게 사실처럼 말하지. 그러면 그게 얼마 지나지 않아 소설이 돼. 스스로 소설을 쓰는 거나 마찬가지지. 단지 대부분의 경우엔 기교가 내 마음에 들지 않지만 .. 2021. 2. 25.
교훈담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나요? 사람이 사람이 먹은 이야기를. 아뇨, 러시아의 기근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일본의 이야기――먼 옛날의 일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먹은 건 할아버지고 먹힌 건 할머니였습니다. 왜 먹었냐고요? 너구리의 나쁜 짓이었습니다. 할머니를 죽인 너구리는 할머니 모습을 훔치고는 할머니의 고기를 먹인 것입니다. 물론 당신도 알고 계시겠지요. 네, 오래된 옛날이야기입니다. 딱딱산 이야기입니다. 어라, 웃고 계시네요? 그건 무서운 이야기랍니다. 남편은 아내의 고기를 먹었습니다. 그것도 동물 한 마리를 위해――이런 무서운 이야기가 또 있을까요? 아니, 무섭기만 한 게 아닙니다. 그건 교묘한 교훈담이죠. 우리도 방심하면 인간의 고기를 먹게 될지 모릅니다. 우리 내면에 자리한 동물을 위해. 그래.. 2021.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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