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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창작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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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보고 소설을 쓰라는 건가. 쓸 수 있다면 진작 썼겠지. 하지만 쓸 수 없어. 유감스럽게도 일에 쫓겨 펜을 들 새가 없거든. 그래서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그 사람이 그걸 소설로 쓰지. 내가 이렇게 소재를 제공한 소설만 해도 열에서 스물은 될 거야. 물론 유명한 작가의 작품으로 말야. 다만 네게 주의해주고 싶은 건 내가 제공하는 소재가 대부분은 내 창작이란 사실이지. 물론 이건 이제까지 남한테 말한 적이 없어. 그렇게 말하면 내 이야기를 듣고 소설로 만들 녀석이 없을 테니 말이야. 나는 언제나 소설 다운 사실을 상상으로 만들어내, 그걸 내 친구 소설가들에게 사실처럼 말하지. 그러면 그게 얼마 지나지 않아 소설이 돼. 스스로 소설을 쓰는 거나 마찬가지지. 단지 대부분의 경우엔 기교가 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말야. 뭐 그건 어쩔 수 없겠지.
 물론 진짜처럼 보이려면 여러 조건이 필요하지. 나 자신이 내 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도 있어. 혹은 내 친구의 부부 관계를 바탕으로 채용한 적도 있지. 하지만 결코 모델 문제는 일어나지 않아. 일어날 수가 없지. 모델 본인은 내가 제공하는 소재 같은 일을 하지 않는 데다가, 내 친구인 소설가도 그게 간통이나 절도 같은 심각한 일일수록 예의상 모델 이름을 꺼내지 않으니까. 그렇게 그 소설은 활자가 되는 거야. 작가는 원고료를 받지. 그러고는 나를 불러 한 잔 쏘고는 해. 실은 내 쪽이 작가에게 보답을 해야 할 일이겠지만 상대가 기뻐하니 내버려 두는 거지.
 그런데 요전 번에 곤란한 일이 생겼지. K 녀석을 주인공으로 삼아 봤거든. 왜 알다시피 톨스토이안이잖아. 그 녀석이 게이샤에 관여하게 된다면 재밌겠지 싶어서 그런 이야기를 창작해 본 거야. 그리고 그 소설이 나오고 대여섯 일쯤 지났나, K가 내게 찾아와 원망을 늘어놓 뭐야. 아무리 네 이야기가 아니라 해도 알아듣지를 않더라고. 처음부터 내 손에서 나온 소재가 아니라 말하면 되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게 내 실수였지. 하지만 내가 K의 이야기를 한 소설가는 대학도 나온 소심한 남자니, K의 명성에 관련된 일이라 겁을 주면 결코 모델이 누구인지 떠들 일은 없을 거야. 그래서 수상쩍다 싶어서 K한테 어떻게 자신이 모델인지 알았냐고 추궁했더니 이거 또 놀랍던걸. K 녀석이 실제로 몰래 게이샤 놀음을 하고 있다더지 뭐야. 그것도 단골이라더군. 도리가 없으니 표면상으로 K의 사생활을 폭로한 죄를 달게 받아들이며 사과하게 되었지. 누명에 굴한 꼴이 되어버렸으니 민폐가 따로 없어. 그래도 그 이후로 내 친구 소설가 사이에 내가 제공하는 소재가 거짓이 아니라는 게 증명되어서 말야. 마냥 손해만 본 건 아닌 셈이지.
 그래도 가끔은 재미난 일도 생겨. 언젠가 M이 다른 사람의 아내한테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창작한 적이 있지. 물론 모든 사회적 기반을 짓밟으며 그 여자와 결혼하는 게 남자다운 만큼 자신의 사랑을 밝히지 않는 것 또한 남자답다는 신념으로 태연히, 정조를 지키며 여자와 깔끔한 교재를 한다는 내용이었어. 그걸 들은 내 친구 소설가는 그 이후로 M에게 크게 감복했다나. 사실 M만큼 유혹에 지기 쉬운 남자 답지 못 한 인간도 또 없는데 말야. 그런 걸 보면 아무리 나라도 웃을 수밖에 없었어.
 얼굴이 안 좋은 걸. 내가 죄라도 짓는 거 같지? 숨겨봐야 소용없어. 내 관찰안은 엇나가는 법이 없거든. 이게 다 돈벌이니까 말야. 환자의 얼굴색 또한 의사의 병상 진단 요소 중 하나라지. 네 도덕관은 나도 잘 알 수 있어. 근데 말야, 내가 하는 일이 남에게 폐라도 끼치나? 갑이 을에게 가진 생각을 살짝 변경한 게 고작이야. 선한지 악한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 않겠어? 뭐, 거짓이 진실이 될 우려가 있다? 웃기는 소리네. 갑이 을에게 가진 생각에 진위 따위가 어디 있겠어. 스스로를 아는 건 스스로뿐이지. 또 하나 있다면 스스로를 만든 스스로의 실재뿐이겠고.
 그야 그 탓에 갑과 을 사이에 불화라도 생기면 내 책임이겠지.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 없다고 아니, 이쯤 할까. 그것만큼은 나도 제대로 주의하고 있으니 말야.
 애초에 나 같은 짓을 벌이는 작자는 옛날부터 얼마든지 있었을 거야. 그야 나처럼 명백한 자각을 가지고 하는 녀석은 없었을지 모르지. 하지만 존재했던 건 분명해. 이를테면 말야, 내가 실제로 무언가를 경험해 그 이야기를 친구한테 했다고 치자. 그때 내가 엄밀한 의미로 거짓말 하나 없이 있는 그대로 말할 거 같아? 좋아, 못 할 건 없더라도 굉장히 어려울 건 분명하겠지. 그러면 거짓 소재를 제공하는 것과 실제 소재를 제공하는 차이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적어지는 셈이지. 그렇다면 옛날부터 거짓부렁을 소설가나 시인에게 말한 녀석이 잔뜩 있었던 게 되지 않겠어? 거짓부렁이라 하면 듣기 안 좋은가? 실은 훌륭한 상상의 산물이니 말야.
 뭐, 그런 어려운 얼굴은 그만하자고. 그보다도 커피라도 마시고 같이 바깥에 나가지. 그리고 저 전등 아래에서 베토벤이라도 듣는 거야. 벨덴 레벤은 자동차 소리하고 닮아서 좋다는 남자가 장 크리스토프 안에 나오잖아. 내가 베토벤을 듣는 방식도 그 남자와 같을지 모르지. 요컨대 인생이란 관점 차이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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