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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나요? 사람이 사람이 먹은 이야기를. 아뇨, 러시아의 기근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일본의 이야기――먼 옛날의 일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먹은 건 할아버지고 먹힌 건 할머니였습니다.
왜 먹었냐고요? 너구리의 나쁜 짓이었습니다. 할머니를 죽인 너구리는 할머니 모습을 훔치고는 할머니의 고기를 먹인 것입니다.
물론 당신도 알고 계시겠지요. 네, 오래된 옛날이야기입니다. 딱딱산 이야기입니다. 어라, 웃고 계시네요? 그건 무서운 이야기랍니다. 남편은 아내의 고기를 먹었습니다. 그것도 동물 한 마리를 위해――이런 무서운 이야기가 또 있을까요?
아니, 무섭기만 한 게 아닙니다. 그건 교묘한 교훈담이죠. 우리도 방심하면 인간의 고기를 먹게 될지 모릅니다. 우리 내면에 자리한 동물을 위해.
그래도 마지막에는 행복합니다. 너구리는 토끼에게 죽으니까요.
불이 붙은 장작을 짊어 맨 너구리, 진흙탕에 빠진 너구리――너구리의 죽음을 잘 보세요. 너구리를 죽인 건 토끼입니다. 역시 한 마리의 짐승이지요. 이만큼 깊이 있는 이야기가 있을까요?
저는 그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어쩐지 장엄해집니다. 동물은 동물을 위해 죽고 그렇게 인간은 번성했습니다. 자라투스트라도 이 이야기를 들으면 분명 작게 웃어 보이겠지요.
당신은 웃고 계시군요. 웃으세요, 웃고 계세요. 당신의 귀는 너구리의 귀인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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