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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110

김장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어느 여름 날, 삿갓을 쓴 중 두 사람이 조선 평안남도 용강군 동우리의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단순한 행각승이 아니었다. 사실은 먼 일본에서 조선을 살피러 온 카토 키요마사와 코니시 유키나가였다. 두 사람은 주위를 바라보며 아직 익지 않은 밭 사이를 걸었다. 그러자 길에서 농부의 자제로 보이는 아이 하나가 둥근 돌을 베개 삼아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걸 발견했다. 키요마사는 삿갓 아래로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이상한 꼬맹이로군." 무서운 상관은 두 말 하지 않고 베갯돌을 걷어찼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어린아이의 머리는 땅에 떨어지기는 고사하고, 돌이 있던 공간을 베개로 삼더니 여전히 조용히 자고 있지 않은가! "이 꼬맹이는 필시 보통내기가 아니로군." 키요마사는 갈색 법의에 숨겨두었던 계도 자루에.. 2021. 2. 25.
영구히 불쾌한 이중생활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카무라 씨. 문제가 크니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지만 일단 생각한 바를 적어 봅니다. 본래 예술의 내용이란 우리 인간의 생활 전모인 셈이니, 이중생활이란 말은 큰 뜻에서는 불가능하다 봅니다. 하지만 작은 뜻으로 좁히면 여러 어려운 문제가 벌어집니다. 생활을 예술화하느니, 혹은 반대로 예술을 생활화하느니 하는 말도 거기서 오는 것이겠지요. 당신의 편지에 적혀 있던 예술가의 직업 문제는 그런 걸 한 발짝 더 피상적인 방면으로 다가간 문제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물심 양면 상의 인간적 생활과 예술가로서의 생활의 관계 교섭"이라 해도 제각기의 뜻에 상당한 입장을 정하지 않으면 모처럼의 의논이 혼란스러워지기만 할 테지요. 그리고 저는 앞서 말했 듯이 지금 그런 문제를 이야기할 여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구태여 무어.. 2021. 2. 25.
꿈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꿈에서 색채를 보는 건 신경이 지친 증거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줄곧 색채를 품은 꿈을 보고 있다. 아니, 색채가 없는 꿈이란 걸 거의 믿을 수 없었다. 실제로 나는 요전 번에도 꿈속의 해수욕장에서 시인 H・K 군과 만났다. H・K 군은 밀짚모자를 쓰고 아름다운 감색 망토를 입고 있었다. 나는 그 색에 감탄하여 "무슨 색이지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시인은 모래를 바라보며 지극히 적당히 대답했다.――"이거 말인가요? 이건 삿포로색입니다." 또 꿈속에선 결코 후각을 느끼지 않는다 한다. 하지만 나는 꿈속에서 고무인지 무엇인지가 타는 듯한 악취를 느낀 적이 있었다. 강이 보이는, 해가 진 듯한 변두리 거리를 걸을 때의 일이었다. 또 강에는 어째서인지 목재처럼 커다란 악어가 몇 마리나 헤엄치고 있.. 2021. 2. 24.
딱딱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동화 시대의 여명에서, 한 노인과 한 토끼가 혀잘린 참새의 작은 날개 소리를 들으며 노인의 아내의 죽음을 조용히 슬퍼했다. 멀리서 울적히 울리는 건 오니가시마로 통하는 꿈속 바다의 영원히 그칠 일 없는 파도 소리였다. 아내의 시신이 묻힌 땅 위에는 꽃이 없는 벚나무가 얄팍한 청동가지를 공중으로 뻗고 있었다. 나무 위 하늘에선 여명의 반투명한 빛이 맴돌고 있어 숨소리 정도의 바람마저 불지 않았다. 이윽고 토끼는 노인을 위로하면서 앞발을 들어 해변가에 놓인 두 척의 배를 가리켰다. 한 척은 새하얗고, 한 척은 먹을 끼얹은 것처럼 검었다. 노인은 눈물로 젖은 고개를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동화 시대의 여명에서, 한 노인과 한 토끼는 꽃이 없는 벚나무 아래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힘없이 작별을 고했다. 노인은 주저.. 2021. 2. 24.
예술과 그 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예술가란 무엇보다도 작품의 완성에 임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예술에 봉사하는 게 무의미해지고 만다. 이를테면 인도적 감격일지라도, 그것만 추구한다면 단순히 설교를 듣는 정도로도 얻을 수 있을 터이다. 예술에 봉사하는 이상 우리의 작품에 주어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예술적 감격이어야 한다. 그건 오로지 우리가 작품을 완성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며 다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 예술을 위한 예술은 자칫 엇나가면 예술 유희설로 추락한다. 인생을 위한 예술은 자칫 엇나가면 예술 공리설로 추락한다. × 완성이란 읽는데 문제가 없는 작품을 갖추는 게 전부가 아니다. 분화발달한 예술상 이상을 제각기 완벽히 실현시키는 일이다. 그런 게 항상 불가능해서야 그 예술가는 부끄러움을 느껴 마땅하다. 따라서 위대한 예술가란 .. 2021. 2. 24.
된 사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무로우 사이세이는 된 사람이다. 나는 사실 얼마 전까지 무로우 사이세이만큼 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 같지는 않았다. 된 사람이란 간단히 말하자면 한 집안을 이룬 사람이라 생각하면 된다. 혹은 다른 어떤 것도 기다리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면 된다. 무로우는 거창하게 형용하면 자연만물 위에 무로우 성좌가 있다며 안하무인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엉덩이를 붙이는 건 결코 간단하지 않다. 가볍게 주위를 둘러보면 내 주위에도 태반은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엔 두려워 않는다. 내견도――내견이란 말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스스로에게도 자신은 두려울 게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밑바닥에서는 조금이나마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 이런 공포의 유무를 이야기할 때면 .. 2021.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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