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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110

게와 원숭이의 싸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게의 주먹밥을 빼앗은 원숭이는 기어코 게의 손에 죽고 말았다. 게는 절구, 벌, 계란과 함께 원망스러운 원숭이를 죽였다.――새삼 그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으리라. 단지 원숭이를 죽인 후, 게를 시작한 동지들은 어떤 운명에 이르렀는가. 그걸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동화는 이 이야기를 전혀 언급하지 않기에. 아니, 이야기하지 않는 건 고사하고 마치 게는 구멍 속에서, 절구는 부엌의 구석에서, 벌은 제 벌집에서, 계란은 겉겨 속에서 무사태평한 일생을 보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거짓이다. 그들은 원수를 갚은 후, 모조리 경관에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심지어 재판을 거듭한 결과 주범인 게는 사형, 절구, 벌, 계란과 같은 공범은 무기징역의 선고를 받았다. 동화밖에 알지 못 하는 독자는 이런 그들의 운.. 2021. 2. 23.
'가면' 사람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학창 시절의 나는 제3차 및 제4차 '신사조' 동인 사람들과 가장 친밀히 왕래했다. 본래 작가 지망생이 아니었던 내가 기어코 작가가 되어버린 건 전부 그들의 악영향이다. 전부?――물론 전부인지는 의문일지 모르겠다. 당시의 나는 그들 이외에도 와세다 사람들과 교제했다. 그 사람들 또한 역시 청정한 내게 악영향을 끼친 건 분명하다. 그 사람들이란 동인잡지 '가면'을 내던 히나츠 코노스케, 사이조 야소, 모리구치 다리 제군이다. 나는 한두 번 산구 마코토 군과 함께 붉은 초립 전등이 들어온 사이조 군의 객간에 놀러 갔다. 히나츠 군이나 모리구치 군은 물론, 선생격인 요시에 코간 씨와 만나게 된 것도 그 객간이다. 당시에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언젠가 괴담을 나눈 밤, 사람 하나 지.. 2021. 2. 23.
형 같은 느낌 ――키쿠치 칸 씨의 인상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는 키쿠치 칸과 함께 있으면서 단 한 번도 어색함을 느낀 적이 없다. 동시에 지루함을 느낀 기억도 전무하다. 키쿠치하고라면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질리는 법이 없겠지 싶다.(물론 키쿠치는 질릴지 몰라도.) 왜냐하면, 키쿠치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형과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내 좋은 점은 물론 이해해주고, 부주의한 점을 드러내도 동정해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실제로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그렇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동생이라 해야 마땅할 내가 이따금 키쿠치의 호의에 기대어 있을 수 없는 일방적인 열을 내뿜을 때도 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마저도 키쿠치가 형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형처럼 느껴지는 이유의 일부는 물론 키쿠치의 학식이 뛰어나기 때문.. 2021. 2. 23.
기관차를 바라보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우리 아이들은 기관차 흉내를 내고 있다. 물론 정차한 기관차는 아니다. 손을 휘젓고, "칙칙폭폭"하고 말하는 등 진행 중인 기관차 흉내를 내고 있다. 꼭 우리 아이들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리라. 그럼 왜 기관차 흉내를 내는가? 물론 기관차에게 모종의 위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혹은 그들 본인 또한 기관차처럼 격한 생명을 지니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요구를 지닌 건 아이들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어른들 또한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어른들의 기관차란 말 그대로의 기관차가 아니다. 하지만 제각기 돌진하고 심지어 궤도 위를 달리는 것 또한 역시 기관차와 마찬가지다. 이 궤도란 금전이기도 하고, 혹은 명예기도 하며, 마지막으로 여인이기도 하리라. 우리는 어른 아이를 구분 않고 자유에 돌진하고 싶다는 욕망을 지.. 2021. 2. 23.
헛소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제 위장은 고래입니다. 콜럼버스가 보았다는 고래입니다. 이따금 물줄기도 내뿜고는 합니다. 우는 소리는 듣다 질렸습니다. 둘 제 혀나 구강은 이따금 열을 낼 때마다 양치류를 가득 낳습니다. 셋 설사할 때마다 커다란 소철을 떠올리는 건 저뿐일까요? 넷 저는 배울림을 듣고 있으면 저 스스로가 언젠가 상어 알을 낳을 것처럼 느껴졉니다. 다섯 저는 우울해지면 제 뇌수의 주름에 이가 꼬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2021. 2. 23.
이른봄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대학생 나카무라는 얄팍한 봄철 오버코트 아래로 자신의 체온을 느끼며 어두컴컴한 돌계단을 올라 박물관 2층으로 향했다. 계단을 올라 왼쪽으로 가면 파충류 표본실이 나왔다. 나카무라는 그 안에 들어가기 전에 금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손목시계 바늘은 다행이 아직 두 시를 가리키지 않았다. 의외로 늦지 않았다――나카무라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안도하기 보다는 손해를 본 느낌이 들었다. 파충류 표본실은 고요했다. 간수마저 오늘은 걸어 다니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희미한 방충제향만이 풍겼다. 나카무라는 실내를 돌아본 후, 심호흡하듯이 기지개를 폈다. 그러고는 커다란 유리 선반 안에서 두터운 썩은 가지를 휘감고 있는 남쪽 나라의 뱀 앞에 섰다. 이 파충류 표본실은 대략 작년 여름부터 미에코와 만나는 장소로 이용하고 .. 2021.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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