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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110

모모타로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옛날 옛날, 먼 옛날. 어떤 깊은 산 안쪽에 커다란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크다는 말로는 부족할지 모르다. 이 복숭아 가지는 구름 위로 뻗었고 뿌리는 대지의 밑바닥에 자리한 황천에까지 미쳤다. 듣자 하니 천지개벽의 때, 이자나기노미코토는 여덟 개의 번개를 물리기 위해 요모츠히라카사에 복숭아 씨앗을 뿌렸다고 한다――그 신화 시절의 복숭아 열매가 이 나무가 된 셈이다. 이 나무는 세계의 여명 이후로 만 년에 한 번 꽃을 피우고 만 년에 한 번 열매를 맺었다. 꽂은 진홍 꽃봉오리에 황금 술을 지녔다고 한다. 열매는――물론 열매 또한 큼지막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신비한 건 그 열매의 중심에 아름다운 갓난아기를 한 명씩 절로 품고 있다는 점이었다. 옛날 옛날, 먼 옛날. 이 나무는 산골짜기를 덮은 가.. 2021. 2. 22.
여자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암거미는 한여름의 태양빛을 받으며 붉은 월계화 아래에서 무언가를 가만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날갯소리가 들리며 꿀벌 하나가 무너지듯이 월계화 아래로 왔다. 거미는 곧장 고개를 들었다. 고요한 대낮의 공기 속에는 벌들의 날갯소리가 만든 잔향이 자그마한 파동을 남기고 있었다. 암거미는 어느 틈엔가 소리도 없이 꽃 밑바닥에서 움직였다. 벌은 이미 꽃가루 범벅이 된 채 꽃술 아래에 담긴 꿀에 주둥이를 뻗었다. 잔혹한 침묵이 몇 초인가 흘렀다. 이윽고 붉은 월계화 꽃은 꿀에 취한 벌 뒤 쪽에 암거미의 모습을 토해냈다. 거미는 맹렬히 벌의 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벌은 필사적으로 날개를 휘저으며 무작정 적을 쏘려 했다. 날갯짓에 꽃가루가 태양빛의 품에 날렸다. 하지만 거미는 한 번 물은 입을 결코 놓는 .. 2021. 2. 22.
산실――하기와라 사쿠토 군에게 바친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남자는 강에서 갈대를 잘라와 여자를 위한 산실을 깔았다. 그러고는 걸음을 돌려 다시 강기슭으로 갔다. 잘라낸 갈대 안에 무릎을 꿇고 아마테라스 오오카미니 어머니와 아이의 행복을 기도했다. 해가 지자 여자는 산실을 나와 갈대 안에 자리한 남자를 찾았다. 그러고는 "이레째에 와주세요. 그때 아이를 보여드리죠."하고 말했다. 남자는 하루라도 빨리 태어난 아이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여자의 부탁은 남자답게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런 가운데 해가 졌다. 남자는 갈대밭 안에 연결해둔 통나무배를 타고 아랫마을로 쓸쓸히 돌아갔다. 하지만 마을로 돌아온 남자는 이레를 기다리는 게 굉장히 힘들어졌다. 하여 목에 찬 일곱 곡옥을 매일 하나씩 떼어갔다. 그렇게 숫자가 늘어나는 걸 최소한의 위안으로 삼기 위해. 해는 매일 같이 .. 2021. 2. 22.
합리적, 동시에 다량의 인간미――상호인상, 키쿠치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키쿠치는 삶의 방식이 언제나 철저하다. 어중간한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스스로가 옳다 생각하는 바를 척척 실행으로 옮긴다. 그 신념은 합리적인 동시에 반드시 다량의 인간미를 머금고 있다. 나는 그 점을 존경한다. 나 따위는 예술에 숨는 편이지만 키쿠치는 예술에 드러낸다――그렇게 말하면 이상하지만, 키쿠치의 경우엔 예술이 그의 생활 속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애당초 예술가 중에는 톨스토이처럼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보고 있는지 관심을 지닌 사람과 플로베르처럼 그 사람이 어떻게 예술을 보는가에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 나뉜다고 한다. 키쿠치는 물론 전자에 속하는 예술가로, 그런 의미에서는 인생을 위한 예술이란 주장과 인연이 가까운 듯하다. 키쿠치의 소설도 키쿠치의 생활 태도처럼 생각하는 바를 척척 .. 2021. 2. 22.
강연군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내가 강연 여행을 나선 건 이번에 사토미 군과 홋카이도로 간 게 처음이었다. 입장료를 내지 않은 청중은 자연스레 소란스러워지기 마련이니 그것만으로도 말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런 마당이 몇 번이나 떠들고 다니니 적잖이 지쳐버렸다. 다만 공연 후의 회식 자리만은 사토미 군이 과감히 거절해준 덕에 많이 편할 수 있었다. 카이조샤의 야마모토 사네히코 군은 우리가 오타루에 있을 적에 전보를 쳤다. 우리가 그때 대답으로 "힘들어 힘들어 너덜너덜해"하고 보냈다. 그러자 시청 체신국에서 우리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사토미 군의 라디오 드라마 일인가 싶어 바로 전화기를 넘겼다. 사토미 군은 "아, 그렇습니다. 네, 그렇습니다."니 뭐니 하면서 쿡쿡 웃었다. 그러고는 내게 "웃긴다, 많이 힘드냐, 그렇게 너덜너덜하냐.. 2021. 2. 22.
진로(塵勞)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어느 봄날의 오후였다. 나는 지인 타자키를 만나기 위해 그가 근무하는 출판사의 좁은 응접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웬일이래." 얼마 지나지 않아 타자키가 바쁘다는 양 만년필을 귀에 꼽은 채 볼품 없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너한테 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말야――실은 이삼일 정도 보양삼아 슈젠시나 유가하라에 소설을 쓰러 가고 싶은데……" 나는 바로 볼일을 꺼냈다. 요즘에는 내 소설집이 이 출판사에서 출시된다. 그 인세를 앞당겨 받을 수 있도록 좀 힘 좀 써줄래――그게 내 볼일의 요점이었다. "그야 못 할 건 없지만――그나저나 온천에 가다니 호화로운걸. 나는 머리 나고 자란 이후로 여행 다운 여행을 한 적이 없어서 말야." 타자키는 '아사히'에 불을 붙이고는 생활에 지친 얼굴에 순수한 부러움을 드러내다... 2021.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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