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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합리적, 동시에 다량의 인간미――상호인상, 키쿠치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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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쿠치는 삶의 방식이 언제나 철저하다. 어중간한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스스로가 옳다 생각하는 바를 척척 실행으로 옮긴다. 그 신념은 합리적인 동시에 반드시 다량의 인간미를 머금고 있다. 나는 그 점을 존경한다. 나 따위는 예술에 숨는 편이지만 키쿠치는 예술에 드러낸다――그렇게 말하면 이상하지만, 키쿠치의 경우엔 예술이 그의 생활 속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애당초 예술가 중에는 톨스토이처럼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보고 있는지 관심을 지닌 사람과 플로베르처럼 그 사람이 어떻게 예술을 보는가에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 나뉜다고 한다. 키쿠치는 물론 전자에 속하는 예술가로, 그런 의미에서는 인생을 위한 예술이란 주장과 인연이 가까운 듯하다.
 키쿠치의 소설도 키쿠치의 생활 태도처럼 생각하는 바를 척척 적고 있다. 자잘한 맛은 부족할지 모른다. 세간 일부는 그 점을 부족하게 느끼는 듯하지만, 불만족하는 쪽이 잘못된 것이다. 키쿠치의 소설은 큼지막한 맛을 지닌 채로 소설로서 제대로 완성되어 있다. 자잘한 맛 이외에 아무것도 없는 작품보다 얼마나 나은가.
 키쿠치는 그런 용감한 삶을 살고 있지만 배려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 물질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특히 동정심이 두터운 듯하다. 실례가 얼마든지 있는 사안이지만 공공연히 드러내야 할 일은 아닌 듯하기에 일일이 꼽지는 않겠다. 또, 나로서는 일과 관련된 일로 꽤나 위로받거나 격력 받는 경우가 많다. 아니, 직접 말로 하기보다는 키쿠치의 세심한 배려를 무언 속에서 느껴 든든해질 때가 많다. 때문에 일할 때는 물론이요 실생활 문제로도 번번이 키쿠치에게 상담하였고 앞으로도 상담할 생각이다. 단지 정사에 관한 상담만은 털어놓을 생각이 없다.
 또 고등학교 시절부터 우리 친구 사이에선 머리 좋은 걸로 평판이 자자하다. 어학도 뛰어나지만 그건 결국 키쿠치의 분석적 두뇌력 중 하나가 발현된 것에 지나지 않지 싶다. 소위 이성이나 지혜란 영역에서 키쿠치보다 뛰어난 사람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으리라. 언젠가 비가 내릴 적에 키쿠치와 바깥을 걸은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진흙탕에 전철 그림자가 비치거나 비에 잦은 우산이 빛나는 데에 감복했지만 키쿠치는 간판이나 표찰을 보면서 성씨를 읽는 법이나 독특한 직업 이름 따위에만 주의했다. 키쿠치의 이지적인 마음가짐은 이런 사사로운 일에도 드러나지 싶다.
 또 키쿠치는 가정에서도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버지이면서 좋은 이웃마저 겸하는 듯하다. 키쿠치의 집에 가면 주위 아이들이 단체로 모여 키쿠치 부부나 키쿠치의 아이와 놀고 있을 때가 빈번하다. 한 번은 키쿠치 일가는 집을 비우고 이웃 아이들만 둘 셋이서 집을 보고 있을 때가 있었다. 이렇게 아이들과 사이가 좋으니 그 부모들하고도 사이가 좋을 게 분명하다. 친구들 사이에선 키쿠치가 곧 마을 위원으로 나가는 거 아니냐는 소문마저 있다.
 이제까지 말한 걸 돌아보면 키쿠치에게는 키쿠치의 경애[각주:1]가 또렷한 듯하다. 그리고 그 경애는 내게 꽤나 부럽게 느껴지는 경애이다. 만약 다사다난한 현대에 순일[각주:2]에 가까운 생활을 즐기는 작가가 있다면, 그건 시적인 자연이나 인생을 바라보는 일부의 시인적 작가보다도 오히려 키쿠치 따위가 걸맞지 않나 싶다.

 

  1. 자기자신(自己自身)이 처하여 있는 환경(環境)과 생애(生涯) [본문으로]
  2. 다른 것이 섞이지 않고 한 가지로만 되어 있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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