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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352

어떤 친구에게 보내는 수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이제까지 누구도 자살자 본인의 심리를 있는 그대로 적지는 않았어. 그건 자살자 본인의 자존심 혹은 스스로를 향한 심리적 관심이 부족했기 때문일 테지. 나는 네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속에 이 심리를 확실히 전해 두고 싶어. 물론 내 자살 동기는 딱히 너에게 전하지 않을 거야. 레니에는 단편 속에 어떤 자살자를 묘사했지. 이 단편 주인공은 무엇 때문에 자살하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 해. 너는 신문의 삼면기사에서 생활난이니 병고, 혹은 정신적 고통 같은 여러 자살 동기를 발견할 거야. 하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그건 동기의 전부가 아냐. 그뿐 아니라 대부분엔 동기에 이르는 길 정도를 적어놓은 거뿐이야. 자살자는 대부분 레니에가 묘사한 것처럼 무엇 때문에 자살하는지 알지 못 할 테지. 그건 우리의 행위처럼 복잡한 .. 2022. 8. 17.
유서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우리 인간은 한 사건 때문에 간단히 자살하지 않는다. 나는 과거 생활의 총결산 때문에 자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큰 사건이었던 건 내가 스물아홉 살일 때에 히데 부인과 죄를 저지른 일이다. 나는 내가 저지른 죄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건 아니다. 단지 상대를 고르지 않았기에(히데 부인의 이기주의나 동물적 본능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내 생존에 불이익을 낳은 건 적잖이 후회하고 있다. 또 나와 연애 관계에 빠진 여성은 히데 부인만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서른 살 이후로 새로운 정인을 만든 적이 없었다. 이것도 도덕에 어긋나기에 만들지 않은 건 아니다. 단지 정인을 만드는 이해타산을 따졌기 때문이다.(하지만 연애를 느끼지 않은 건 결코 아니다. 나는 그때에 "고시비토", "소몬' 등의 서정시를 .. 2022. 8. 16.
길 위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오전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많이 다셨던 대학 도서관도, 채 30분이 지나지 않아 사람으로 가득 메워졌다. 책상에 마주 앉은 건 대부분 대학생이었으나 개중에는 하카마나 정장을 입은 연배 지긋한 사람도 둘셋 정도 섞여 있는 듯했다. 그렇게 규칙적인 인파로 채워진 넓은 공간 너머서는 벽에 걸어둔 시계 아래로 어두컴컴한 서고 입구가 보였다. 또 그 입구 양쪽에는 올려다봐야 하는 커다란 책장이 낡은 책등을 줄지으며 마치 학문을 지키는 요새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한 인파가 있음에도 도서관 안은 조용했다. 아니, 오히려 그만한 인간이 있어야 비로소 느낄 수 있을 법한 일종의 침묵이 지배하고 있었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 종이에 펜을 놀리는 소리, 그리고 가끔 들리는 기침 소리――그런 소리마저.. 2022. 7. 3.
스사노오노미코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타카마가하라노쿠니에도 봄이 찾아왔다. 이제 사방의 산을 둘러보아도 눈이 남은 봉우리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소와 말이 뛰노는 초원은 희미한 녹색을 한가득 펼쳐 놓고, 그 자락을 따라 흐르는 아메노야스카와의 물빛도 어느 틈엔가 사람 좋은 따스함을 머금게 되었다. 하물며 그 강 아래에 위치한 마을에는 제비가 돌아왔는가 하면 여자들이 머리 위에 병을 얹고서 물을 뜨러 가는 우물 옆 참죽나무도 하얀 꽃잎을 젖은 돌 위로 살랑살랑 흩날리고 있었다―― 그런 나른한 봄날 오후, 아메노야스카와의 강가엔 수많은 젊은이가 모여 여념도 없이 힘겨루기에 심취하고 있었다. 당초 그들은 제각기의 손에 활과 화살을 들고 머리 위 하늘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그들의 화살비 속에선 현이 울리는 용맹한 소리가 바람처럼 불었다 그치.. 2022. 6. 5.
요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당신은 제 말을 믿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아뇨, 분명 거짓말이라 생각하실 테죠. 과거라면 또 모를까 제가 하는 이야기는 다이쇼 초대에 있었던 일이니까요. 심지어 이렇게 우리에게 친숙한 이 도쿄서 있었던 일입니다. 밖으로 나가면 전철이나 자동차가 달립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끝없이 전화벨이 울리죠. 신문을 읽으면 동맹파업이나 여성 운동 보도가 이어지고 있어요――그런 오늘날에 이 대도심의 일각에서 포나 호프먼 소설에서나 볼 법한 꺼림칙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건 제가 아무리 사실이라 말해본들 쉽게 믿기지 않기 마련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도쿄 거리에 아무리 많은 등불이 있다 해도 일몰과 동시에 찾아오는 밤을 모조리 떨쳐내 낮으로 되돌리는 것도 아닐 테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무선 통신이나 비행기가 아무리 자연을.. 2022. 5. 12.
캇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서장 이는 어떤 정신병원 환자――제23호가 누구에게나 떠드는 이야기다. 그는 벌써 서른을 넘었으리라. 하지만 얼핏 보기엔 참으로 젊어 보이는 미치광이다. 그가 반생 동안 겪은 경험은――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그는 단지 가만히 두 무릎을 안은 채 이따금 창밖을 바라보며(철창이 자리한 창문 밖에는 갈라진 잎마저 보이지 않는 떡갈나무 한 그루가 눈발에 어두워진 하늘에 가지를 뻗고 있었다.) 원장 S 박사나 나를 상대로 길게 이 이야기를 떠들어 갔다. 물론 몸짓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를테면 그는 "놀랐다"고 말할 때엔 갑자기 그 얼굴을 돌리곤 했다…… 나는 이런 그의 이야기를 꽤나 정확하게 옮겼다. 만약 누군가가 내 필기만으로 부족하다 느낀다면 도쿄 시외 XX마을의 S 정신병원을 찾아보라. 나이보다 .. 2022.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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