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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어떤 친구에게 보내는 수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2.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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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까지 누구도 자살자 본인의 심리를 있는 그대로 적지는 않았어. 그건 자살자 본인의 자존심 혹은 스스로를 향한 심리적 관심이 부족했기 때문일 테지. 나는 네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속에 이 심리를 확실히 전해 두고 싶어. 물론 내 자살 동기는 딱히 너에게 전하지 않을 거야. 레니에는 단편 속에 어떤 자살자를 묘사했지. 이 단편 주인공은 무엇 때문에 자살하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 해. 너는 신문의 삼면기사에서 생활난이니 병고, 혹은 정신적 고통 같은 여러 자살 동기를 발견할 거야. 하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그건 동기의 전부가 아냐. 그뿐 아니라 대부분엔 동기에 이르는 길 정도를 적어놓은 거뿐이야. 자살자는 대부분 레니에가 묘사한 것처럼 무엇 때문에 자살하는지 알지 못 할 테지. 그건 우리의 행위처럼 복잡한 동기를 품고 있어. 하지만 적어도 내 경우엔 단지 막연한 불안일 뿐이야. 무언가 내 장래에 대한 단지 희미한 불안일 뿐이지. 너는 어쩌면 내 말을 믿지 못 할지 몰라. 하지만 십 년 동안 내가 겪은 바로는, 내게 가까운 사람들과 내게 가까운 경우가 아닌 한 내 말이 단지 바람 속 노래처럼 사라진다는 걸 가르쳐주고 있어. 그러니 나는 너를 나무랄 수 없지……
 나는 요 2년 동안 죽음만을 생각했어. 내가 스며 드는 듯한 심정으로 마인랜더를 읽은 게 이 시기지. 마인랜더는 추상적인 말로 교묘하게 죽음을 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게 분명해. 하지만 나는 좀 더 구체적으로 같은 걸 쓰고 싶어. 가족들을 향한 동정 따위는 그런 욕망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지. 이 또한 네게는 Inhuman란 말을 떠올리게 할 거야. 하지만 만약 비인간적이라면 내 일면 또한 비인간적인 셈이지.
 나는 어떤 일이든 정직히 적어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어.(나는 내가 가진 장래에 대한 희미한 불안을 해부했지. 그건 내 "바보의 일생" 안에 대부분 녹아내려 있어. 단지 나에 대한 사회적 조건――내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 봉건 시대의 일만은 일부러 그 안에도 적지 않았어. 왜 일부러 적지 않았냐면 우리 인간은 오늘날에도 다소는 봉건 시대의 그림자 속에 있기 때문이지. 나는 거기에 있는 무대 외에 배경이나 조명, 등장인물의――대부분은 내 행동거지를 쓰려 했지. 그뿐 아니라 사회적 조건 따위는 그 사회적 조건 안에 있는 나 자신이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어.)――내가 가장 먼저 생각한 건 어떻게 해야 괴롭지 않게 죽느냐는 거였어. 목을 매달아 죽는 건 물론 이 목적에 가장 적합한 수단이지.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이 목을 매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사치스럽게도 미적 혐오를 느꼈어.(나는 어떤 여인을 사랑했을 때도 그녀가 문자를 잘 알지 못 해 갑자기 사랑을 잃은 걸 기억하고 있지.) 익사 또한 수영을 할 줄 아는 나로서는 목적을 이룰 거 같지 않았지. 그뿐 아니라 설령 성취한다 한들 목을 매달아 죽는 거보다 더 고통스러울 거야. 차에 치여 죽는 건 무엇보다도 먼저 미적 혐오감을 주었어. 피스톨이나 나이프를 필요로 한 죽음은 손이 떨려 실패할 가능성이 있었어. 빌딩 위에서 떨어지는 거 역시 보기 괴로울 게 분명하지. 나는 이러한 사정으로 약품을 통해 죽기로 했어. 약품을 이용해 죽는 건 목을 매달아 죽는 것보다 괴롭겠지. 하지만 목을 매다는 것보다도 미적 혐오감을 주지 않는 데다가 소생할 위험이 없는 이익을 가지고 있지. 단지 이 약품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어. 나는 내심 자살하기로 결심하고 갖은 기회를 이용해 이 약품을 구하려 했지. 동시에 독물학 지식도 얻으려 했어.
 다음으로 생각한 건 내가 자살할 장소였지. 내 가족들은 내가 죽은 후에 내 유산을 받게 될 거야. 내 유산은 백 평의 땅과 내 집, 내 저작권과 내 저금 2천엔뿐이야. 나는 내가 자살해 집이 팔리지 않게 될까 걱정했어. 따라서 별장을 지닌 부르주아들에게 부러움마저 느꼈지. 너는 이런 내 말이 우습게 들릴 거야. 나도 한 지금은 내 말이 우습게 느껴져. 하지만 이 일을 생각했을 때에는 실제적인 불편함을 느꼈어. 이 불편함은 도저히 피할 수 없었지. 나는 단지 가족들 말고는 되도록 시체를 보이지 않도록 자살하고 싶어.
 하지만 나는 수단을 정한 후에도 반쯤 삶에 집착했지. 따라서 죽음에 뛰어들기 위한 도약판이 필요했어.(나는 서양인들이 믿는 것처럼 자살이 죄악이라 생각하지 않아. 부처는 실제로 아함경 속에서 그의 제자가 자살한 일을 긍정했지. 곡학아세파는 이 긍정에도 "어쩔 수 없는" 경우에 한정된다고 말하겠지. 하지만 제삼자가 보기에 "어쩔 수 없는 경우"란 건 척 보기에도 비참하게 죽게 될 비상시에만 한정된 건 아냐. 누구라도 자살하는 건 스스로에게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하는 셈이지. 그전에 자살을 결단하는 건 되려 용기를 지니고 있어야 해.) 이 도약판으로 도움이 되는 건 역시 여자지. 클라이스트는 그가 자살하기 전에 이따금 그의 친구들에게 (남자의) 길동무가 되어 줄 걸 권했어. 또 라신도 모리엘이나 부알로와 같이 센강에 투신하려 했지. 하지만 나는 불행히도 그런 친구를 가지고 있지 않아. 단지 내가 아는 여인은 나와 함께 죽으려 했어. 하지만 그건 우리를 위해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지. 그러던 중 나는 도약판 없이 죽을 자신을 얻었어. 그게 꼭 누구도 같이 죽어주지 않아 절망했기 때문은 아냐. 되려 서서히 감상적으로 변한 나는 설령 사별한다 한들 내 아내를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 동시에 나 혼자 자살하는 편이 둘이 자살하는 것보다 간단하단 걸 알았기 때문이지. 그 점에는 또 자살할 시기를 스스로 고를 수 있단 편의도 있었을 게 분명해.
 마지막으로 내가 고심한 건 가족들에게 들키지 않고 교묘하게 자살하는 일이야. 이건 몇 달 동안 준비하여 어떤 자신에 도달했지.(자세한 건 내게 호의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적지 않겠어. 물론 여기에 적어본들 법률상 자살 방조죄((이만큼 우스꽝스러운 죄명도 없지. 만약 이 법률을 적용하면 얼마나 많은 범죄자들이 생길까. 약국이나 철포상, 면도날 상점은 설령 "모른다"고 말한들 우리 인간의 말이나 표정에 우리의 뜻이 드러나는 한 다소의 혐의는 받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뿐 아니라 사회나 법률은 그 자체로 자살방조죄를 구성하고 있지. 마지막으로 이 범죄자들의 대부분은 정말로 상냥한 심장을 가지고 있을 거야.))가 구성되지 않을 건 분명할 거야.) 나는 냉철히 이 준비를 마치고, 지금은 단지 죽음과 놀고 있어. 이 너머의 내 마음은 대부분 마인랜더의 말과 비슷할 거야
 우리 인간은 인간이자 동물이기에 동물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소위 생활력이란 건 사실 동물력의 이명에 지나지 않아. 나 또한 동물 중 한 마리야. 하지만 식욕에나 색욕에나 지쳐버린 걸 보면 서서히 동물력을 잃고 있는 거겠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건 얼음처럼 투명하며 병적인 신경의 세계야. 나는 어제저녁 어떤 매춘부와 함께 그녀의 집세(!) 이야기를 하며 "살기 위해 사는" 우리 인간의 애처로움을 뼈저리게 느꼈어. 만약 스스로 영원한 잠을 달게 받을 수 있다면 우리 스스로를 위해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평화로울 건 분명하지. 하지만 내가 언제쯤 제대로 자살해낼지는 의문이야. 단지 이런 내게 자연은 평소보다도 한 층 더 아름답지. 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면서도 자살하려는 나의 모순을 비웃을 테지. 하지만 자연이 아름다운 건 말기에 이른 내 눈동자가 담고 있기 때문이야. 나는 남들보다도 보고, 사랑하고, 또 이해했어. 그것만은 괴로움을 거듭해 온 가운데에도 나를 조금 만족시켰지. 부디 이 편지는 내가 죽은 후에도 몇 년은 공표하지 말아주게. 어쩌면 나는 병사하여 자살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추기. 엠페도클레스전을 읽고 스스로를 신으로 삼고 싶다는 욕망이 얼마나 오래된 건지를 느꼈어. 내 수기는 의식하는 한 스스로를 신으로 삼지 않아. 아니, 스스로를 미천한 자 중 하나로 두고 있겠지. 너는 그  보리수 아래서 "에토나의 엠페도클레스"를 논한 20년 전을 기억하고 있겠지. 나는 그 시대엔 스스로를 신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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