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소설번역413 하나의 약속 - 다자이 오사무 난파되어 노도에 삼켜져 해안가에 내동댕이 쳐져 필사적으로 매달린 곳은 등대의 창가였다. 아, 살았구나. 도움을 청하려 창문 안을 보니 등대지기와 아내, 그 어린 딸이 다소곳하면서도 행복한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다. 아아, 이러면 안 되는데. 내 비참한 목소리 하나로 이 단락도 전부 깨지고 말 테지. 그런 생각을 했더니 목으로 나오려던 "살려줘!"란 목소리가 아주 잠깐 당혹스러워 한다. 아주 잠깐이다. 곧 큼지막한 파도가 덮쳐 와 그 소심한 피난자를 삼켜 먼 바다까지 납치했다. 이제 살아날 도리는 없다. 이 조난자의 아름다운 행위를 대체 누가 보았을까. 아무도 보지 못 했다. 등대지기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일가단락의 식사를 계속했을 게 분명하다. 조난자는 노도에 삼켜져(혹은 눈보라 부는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2021. 10. 7. 오토미의 정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메이지 원년 5월 4일 오후였다. "관군은 내일 밤이 밝는 대로 토에이잔 쇼기타이를 공격한다. 우와노카이와이의 민가 사람들은 신속히 퇴거하라"――그런 통달이 내려온 오후였다. 시타야마치 니쵸메의 장신구점, 코가야세이베이가 떠난 흔적에는 주방 구석의 전복 껍데기 앞에 커다란 수컷 삼색 고양이 한 마리가 조용히 몸을 말고 앉아 있었다. 문을 닫은 집 안은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웠다. 사람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단지 귀에 들어오는 건 며칠 동안 이어지고 있는 빗소리뿐이었다. 비는 보이지 않는 지방 위에 이따금 급하게 내려서는 어느 틈엔가 다시 하늘로 멀어져 갔다. 고양이는 그 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호박색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궁이마저 구분이 가지 않는 주방에서도 이때만큼은 꺼림칙한 인광이 보였.. 2021. 10. 5. 나의 산문시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가을밤 화로에 숯을 넣으려니 숯이 두 개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숯 그릇 밑바닥에는 숯 가루 안에 무언가의 나뭇잎이 건조하게 말라 있다. 어느 산에서 온 나뭇잎인가?――오늘 석간에 따르면 키소의 온타케엔 예년보다 훨씬 이른 첫눈도 내렸다고 한다. "아버지, 안녕히 주무세요." 붉게 칠해진 낡은 책상 위에는 무로우 사이세이의 시집 한 권의 가철된 페이지를 펼치고 있다. "나는 펜을 들면 우울해진다"――이는 이 시인의 한탄이라고만 할 수 없다. 오늘 밤에도 홀로 차를 마시고 있으면 마음에 같은 쓸쓸함이 스며든다. "이제 좀 바깥으로 나오지." 이 청화자기잔은 십 년 전에 산 것이다. "나는 펜을 들면 우울해진다"――그런 한탄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몇 년 후의 일이리라. 잔에는 이미 금이 가있다. 차도 차갑.. 2021. 10. 4. 매화에 대한 감상 - 이 저널리즘의 한 편을 근엄한 니시카와 에이지로 군에게 바친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우리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기에 세상만사를 여실히 봐야만 한다. 적어도 만인의 안광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안광을 통해 봐야만 한다. 예로부터 위대한 예술가는 모두 이런 독자적인 안광을 지녀 저절로 독자적인 표현을 이루었다. 고흐의 해바라기의 사진판이 오늘날에도 애완 받는 건 결코 우연의 결과가 아닐 터이다.(GOGH를 고흐라 발음하는 걸 나무라지는 않길 바란다. 나는 ANDERSEN을 아나아센이라 부르지 않고 안데르센이라 부르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는 예술을 사명으로 삼는 자에겐 하늘의 햇살보다도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독자적인 눈을 가지는 게 꼭 쉬운 일은 아니다.(아니 절대적인 독자의 눈을 지니는 건 불가능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특히 만인의 시에 이따금 들어가는 풍경을 볼 적에 독자적.. 2021. 10. 3. 속 야인생계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방귀 안드레예프에겐 백성이 코를 파는 묘사가 있다. 프랑스에겐 할머니가 소변을 보는 묘사가 있다. 하지만 방귀를 하는 묘사가 있는 소설은 아직까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나오지 않았다는 건 서양 소설 중에 없다는 뜻이다. 일본 소설 중에 없는 건 아니다. 그중 하나는 아오키 켄사쿠 씨의 아무개인가 하는 여공을 다룬 소설이다. 도망쳐 나온 두 여공이 마른 풀 안에서 야숙한다. 여명에 두 사람이 눈에 띈다. 한 사람이 뿡하고 방귀를 뀐다. 다른 한 사람이 쿡쿡 웃음을 터트린다――분명 그런 내용이었지 싶다. 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그 여공이 방귀 뀌는 묘사가 굉장히 질 좋게 완성되어 있었다. 나는 이 단락을 읽었기에 오늘도 아오키 씨의 수완에 경의를 느끼고 있을 정도이다. 또 하나는 나카토가와 .. 2021. 10. 2. 봄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어느 봄의 어두운 아침이었다. 히로코는 교토의 주차장에서 토교행 급행 열차를 탔다. 결혼 후 2년 만에 어머니의 건강을 살피기 위함이기도 했으며 외할아버지의 금혼식에 참석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물론 그 외의 용무도 존재했다. 그녀는 마침 이번 기회에 동생 타츠코의 연애 문제도 해결하고 싶었다. 동생의 희망을 이뤄주든 이뤄주지 않든 어찌 되었든 해결은 해야겠지 싶었다. 히로코가 이 문제를 알게 된 건 4, 5일 전 받은 타츠코의 편지를 읽었을 때였다. 히로코는 한창때인 동생에게 연애 문제가 생긴 걸 별로 의외로 여기지 않았다. 예상했다고 할 정도는 아니라도 당연하다는 생각은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그 연애 상대로 아츠스케로 골랐다는 말만큼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히로코는 기차서 흔들리는 지금도 아.. 2021. 9. 30. 이전 1 ··· 36 37 38 39 40 41 42 ··· 69 다음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