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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다자이 오사무

하나의 약속 - 다자이 오사무

by noh0058 2021.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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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파되어 노도에 삼켜져 해안가에 내동댕이 쳐져 필사적으로 매달린 곳은 등대의 창가였다. 아, 살았구나. 도움을 청하려 창문 안을 보니 등대지기와 아내, 그 어린 딸이 다소곳하면서도 행복한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다. 아아, 이러면 안 되는데. 내 비참한 목소리 하나로 이 단락도 전부 깨지고 말 테지. 그런 생각을 했더니 목으로 나오려던 "살려줘!"란 목소리가 아주 잠깐 당혹스러워 한다. 아주 잠깐이다. 곧 큼지막한 파도가 덮쳐 와 그 소심한 피난자를 삼켜 먼 바다까지 납치했다.
 이제 살아날 도리는 없다.
 이 조난자의 아름다운 행위를 대체 누가 보았을까. 아무도 보지 못 했다. 등대지기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일가단락의 식사를 계속했을 게 분명하다. 조난자는 노도에 삼켜져(혹은 눈보라 부는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홀로 죽어갔다. 별도 달도 그런 걸 보지 못 했다. 심지어 이 아름다운 행위는 엄연한 사실로 이야기 되고 있다.
 바꿔 말하자면 이는 작가의 하룻밤 환상에 시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미담은 결코 거짓말인 건 아니다. 확실히 그런 사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역기에 작가의 환상이 가진 신비함이 존재한다. 사실은 소설보다 기이하단다. 하지만 누구도 보지 않은 사실도 세상에는 존재할 수 있다. 그러한 사실이기에 귀중한 보물의 빛을 내뿜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걸 쓰는 게 작가의 보람이다.
 제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제군. 마음을 편하게 가져라.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어느 날, 어느 순간 속에서 벌어지는 제군의 아름다운 행위는 반드시 한 무리 작가들에 의해 구김 없이, 남김 없이 자자손손 이어지리라. 일본 문학의 역사는 삼천 년 동안 그런 걸 이루고 앞으로도 변하는 바 없이 전통을 계승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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